소설리스트

난가기연-252화 (252/892)

252화. 일지홍수(一枝紅秀) (2)

장예는 이어서 다시 정중한 태도로 계연에게 말했다.

“성숙부에 머무른 시일이 길지는 않지만, 원래 저는 오늘 밤 대수선(大秀船) 앞에서 저 이야기꾼을 기다리려 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그 홍수(紅秀)라는 낭자의 정체를 알게 되었지요. 제가 담당하는 지역에 몇 차례 여우 요괴로 인한 소동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풍기는 냄새가 어떤지 잘 압니다.”

계연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이 성의 저승 관리들은 아직 그 요괴를 발견하지 못한 건가요, 아니면 신경 쓰지 않는 건가요?”

“저승에서는 분명 아직 모를 거예요. 홍수의 본적(本籍)은 성숙부가 아닌 데다, 사실 홍수 본인이 죽은 것도 아니니까요. 게다가 그녀가 머무는 대수선은 숙수(肅水)에 떠 있어서, 사실상 수신(水神)이 담당하는 영역에 있거든요. 또 그 요괴가 무척 조심하고 있어서 더욱더 저승에서는 요괴의 기척을 찾을 수 없을 거예요.”

“홍수라……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중얼거리던 계연은 곧 기억을 떠올렸다.

‘그렇지! 누선 위에 있던 소씨 가문의 공자가 흠모하던 여인이 바로 그 이름이었어!’

세 사람은 적막한 밤중의 성안을 걸어서 서남쪽으로 향했다.

계연이 성황당에 가보자는 말을 하지 않자, 장예는 그가 스스로 가서 상황을 살펴볼 생각이라고 짐작했다.

이번 일에 대해 계연은 이쪽 저승의 귀신들에게 알릴 생각이 없었다. 첫째로는 이로 인하여 관할에 대한 논쟁이 일어나기 쉬웠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번거롭기 때문이었다. 간단히 해결할 길이 있다면, 계연은 그편을 훨씬 선호했다.

세 사람 중 계연은 호기심에 차서 이런저런 추측을 떠올리고 있었고, 왕립은 눈썹을 잔뜩 찡그린 채 걷고 있었다. 반면에 장예는 가장 여유로워 보였다. 계연이 칙령을 통해 그녀의 원력이 흩어지지 않도록 잠시 봉해 놓았기 때문에, 그런 방면에 관한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성숙부 부성의 특이한 점은, 남쪽 성벽의 대부분이 쌓아 올린 성벽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라 숙수강에 바로 닿아 있다는 점이었다. 숙수강은 큰 강이었는데, 성벽과 맞닿은 부분의 너비는 수십 장에 이르렀다. 성숙부의 이러한 구조는 성의 서남쪽 일대를 천연의 부두로 만들었다.

이 부두는 성숙부 부성의 해운 요충지일 뿐만 아니라, 부성에서 가장 풍광이 아름답고 번화한 곳 중 하나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역시 춘혜부 부두의 규모와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장예가 말했던 대수선이 바로 이곳에 있었다. 대수선은 성숙부에서 가장 유명한 기루(妓樓)에서 사용하는 배였다. 그리고 이 배에서 일하는 일지홍수는 유주에 명성이 자자한 기녀로, 경기부의 부잣집 공자나 노야들도 그 소문을 듣고 찾아올 정도였다.

성의 고요한 다른 구역과 달리, 숙수 부둣가 옆에는 아직도 행인들이 꽤 있었다. 이런 시간에 이런 곳에서 걷는 이들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자명했다. 어떤 이들은 밤을 틈타 몰래 집에서 빠져나온 이들도 있었다.

대수선은 사실 커다란 누선(樓船)일 뿐이고 그 옆에는 그보다 훨씬 더 큰 청루(*靑樓: 기방, 기루)가 있었다. 대수루(大秀樓)라는 이름의 청루 안에는 ‘진짜’ 대수선이 기루 뒤편 오목하게 파인 강변에 세워져 있었다. 정박한 대수선의 주위를 대수루의 누각들이 감싸 안는 형태였는데, 그 배에 들어가려면 청루를 통해야만 했다.

세 사람이 미처 대수루에 도착하기도 전에, 계연은 이미 교태 섞인 웃음소리와 떠들썩한 소음을 들을 수 있었다. 잠시 후, 연지(胭脂)와 분 냄새가 코를 찌를 듯 풍겨왔다.

계연은 머뭇거리거나 멋쩍어할 이유가 없었으므로, 곧장 왕립과 함께 청루로 향했다. 장예는 비록 그들을 따라가고 있었지만, 술법을 썼기 때문에 다른 이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상태였다.

“장 공자, 오늘은 왜 이렇게 늦게 오셨어요?”

“나리, 살펴 가세요!”

“자자, 공자님! 이쪽으로 오세요.”

청루 밖에는 몇몇 여인들이 서서 손님들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이 시간대에 이곳을 지나는 이들은 그다지 체면을 차릴 필요가 없었으므로, 대부분은 곧바로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런 뜻이 없는 척 길을 거닐던 이들도, 여인들이 팔을 끌어대며 구슬리면 어쩔 수 없다는 듯 안으로 들어가고는 했다.

“어머! 왕 공자께서 또 오셨군요! 어서 들어오세요! 이쪽에 계신 나리는 누구신가요? 풍채가 비범하시네요!”

세 사람이 청루에 가까워지자, 호객하던 기녀가 바로 왕립을 알아보며 인사했다. 그리고 곧바로 그에게 다가와 왕립의 팔을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허, 허……. 계 선생님, 저…… 제가 자주 오진 않습니다…….”

청루의 기녀들은 눈치가 빨랐기 때문에, 어떤 이들에게 친분을 표하며 끌어당길 수 있는지 또 어떤 이들에게는 함부로 손을 대면 안 되는지 알고 있었다. 이때 그들을 맞이한 기녀의 마음에는 이미 대략적인 판단이 내려진 상태였다.

예를 들면 왕립에게는 친근함을 표하며 안으로 잡아당기고 심지어 몸을 비벼 대기도 했지만, 계연에게는 그럴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이처럼 다른 기녀들도 모두 계연을 관심 있게 지켜보았지만, 함부로 다가서지 못하고 있었다.

계연은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기만 하는데도, 누구도 그에게 다가와 팔을 끌어당기지 않았다.

“흥, 자주 오지 않는다고? 그 말을 누가 믿겠어! 계 선생님, 보세요! 이자는 틈만 나면 거짓말을 하는 자예요!”

왕립은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새빨개져서 계연의 표정을 차마 살필 수도 없을 정도였다. 신선께 이런 모습을 보이다니, 이제 계 선생님을 어떤 얼굴로 마주 보아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계연은 지난 생에 이런 곳에 와본 적이 없었지만, 아마 갔다면 자신도 왕립처럼 얼굴이 붉어졌을 것 같았다. 그러나 지금 계연의 얼굴에서는 어떤 감정도 읽어 내기 어려웠다. 희미한 긴장감은 있었지만, 대체로 담담한 기분이었다. 그는 흥분되는 감정을 느끼지도, 청루의 이들을 무시하며 혐오하는 감정을 가지지도 않았다.

지난 생 이런 업종에 종사하던 사람들 대부분과 달리, 이 청루의 여인들은 어려서 기루에 팔려왔거나 천적(*賤籍: 노비들을 기록한 호적)에 이름을 올린 이들이었다. 이 사회가 이들 계급의 여인들에게 가하는 압박은 상상보다 더 엄청났기 때문에, 아주 소수의 운 좋은 이들을 빼면 이 자들은 한평생 무시당하며 살아야 했다.

“왕 공자, 왜 안 들어오세요? 나리께서도 들어와서 잠시 쉬는 게 어떻겠습니까? 밖에 바람이 차니 계속 서 계시면 추울 거예요!”

청루의 여인들이 모두 자신을 알아보자, 왕립은 어색한 얼굴로 계연의 표정을 살폈다.

그러자 계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왕 선생님, 어서 들어갑시다.”

여인들이 그 말을 듣고 활짝 웃으며, 서로 계연의 팔을 끌어안으려 들었다.

위이잉……!

그때 계연의 등 뒤에 있던 넝쿨검이 날카로운 검명을 냈다. 동시에 검의(劍意)가 퍼져 나가며, 계연의 반 장(丈) 주위가 전부 엄청난 압박감에 짓눌렸다.

왕립을 비롯한 청루의 여인들은 모두 한 차례 날카로운 이명(耳鳴)을 들었고, 마음이 극도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곧이어 그들은 당황한 모습으로 계연에게서 몇 발짝 거리를 벌렸다.

“모두 어쩔 수 없는 신세의 가여운 이들이야.”

계연이 나지막이 중얼거리자, 원인 모를 공포감이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장예는 검명이 들리던 순간 십여 장 넘게 뒤로 물러난 상태였다. 범인(凡人)들과 달리 검의를 더욱 명확하게 느낄 수 있던 그녀는 계연에게서 멀리 떨어진 채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다.

방금 장예는 눈처럼 새하얀 무궁무진한 은빛이 주변에 넘실대는 것을 본 것 같았다. 그것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날카로움을 지녔는데, 마치 사람들이 엄동설한에 습기를 품은 바람을 맞았을 때 그 칼에 베이는 듯한 통증과도 비슷했다.

그 순간, 장예는 돌연 <백록연>에 나오는 그 ‘노신선(老神仙)’의 주위에는 선검이 한 자루 떠 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그 말은 즉…….’

신녀인 장예는 무의식적으로 계연의 주위를 살펴보았다. 보이지 않는다 해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도행이 낮으면 선기(仙器)를 보지 못하는 게 정상이었다.

장예가 멍하니 상공을 바라보는 동안, 계연과 왕립은 이미 대수루로 들어가고 있었다. 다른 손님들은 여인들에 둘러싸여 안으로 향했지만, 이 두 사람은 기녀 두 명이 멀찍이 떨어진 채로 길을 안내해주었다. 그들은 부자연스럽게 몇 번 말을 걸고는, 결코 두 사람 가까이 오려 하지 않았다.

휘휘 고개를 저은 뒤, 장예도 이를 꽉 물고 그들의 뒤를 따라갔다.

대수루 안에서는 숨 돌릴 새 없이 바쁘던 포주가 막 손님 몇몇을 위층으로 올려보낸 참이었다. 막 몸을 돌려 계연과 왕립이 들어오는 걸 발견한 그녀는 왕립을 잠시 보았다가 계연을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척 보자마자 아무래도 느낌이 비범한 신분의 사람일 것 같았다.

“에고, 왕 공자! 오늘도 저희 청루를 살펴주러 오셨군요! 다만 오늘 밤도 홍수 낭자는 손님을 받고 있답니다. 그나저나 이 분은……?”

포주는 화사한 미소를 얼굴에 띄운 채 둥근 부채를 부치면서, 곁에 있던 기녀들에게 몇 번 눈짓을 보냈다.

‘저 계집애들이 정말 눈치가 없군. 어떤 분을 더 잘 모셔야 하는지도 모르고 말이야.’

“나리께서는 왕 선생님의 벗인가요?”

포주는 시종일관 미소를 지으며 너무 티 나지 않게 계연을 계속 살폈다. 값나가는 장신구도 없었고 입은 의복도 소박했지만, 남다른 기품이 느껴졌다.

특히 얼핏 보면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저 묵옥 비녀를 자세히 관찰해보았더니, 등불 아래에서 유리보다 더욱 투명하게 빛났다. 그녀는 묵옥 비녀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분명 귀중하고 값비싼 물건이야! 이 손님은 대어다!’

포주의 물음에 왕립은 황공해하며 이렇게 대답했다.

“어이쿠, 자네 그런 말 말게! 내가 어찌 감히 선생의 벗이 될 자격이 있겠는가. 선생께서는…… 어, 내가 존경하는 분일세!”

왕립은 그저 이야기꾼일 뿐이지만, 세상의 온갖 일을 겪어본 사람이었다. 존귀한 신분의 공자나 노야들도 사실 그의 눈에 차는 이는 몇 없었다. 그는 가끔 술을 많이 마시면 자신의 이런 태도를 무의식중에 내보이기도 했다.

이를 알고 있던 포주는 왕립이 이렇게 조심스러워하는 태도를 보고, 얼굴에 마치 꽃이 핀 듯 더없이 화사하게 웃음 지었다. 그녀는 부채를 부치면서 분내를 계연에게 날려 보낸 다음 만복례를 해 보였다.

“호호호호……. 어찌 그런 말씀을 하세요! 그럼, 저희 대수선에 오르시지요, 나리. 이곳 대수루의 아이들은 선생께 보이기 부끄럽군요!”

계연은 과도한 지분 냄새 때문에 약간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다. 이에 그의 등 뒤에 있던 넝쿨검은 검명을 내거나 검의를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검집에 적힌 글자 중 ‘장(*藏: 숨다, 은닉하다)’ 자가 점점 옅어지고 있었다. 만약 누군가 이런 변화를 볼 수 있었다면, 손에 땀을 쥐었을 장면이었다.

계연은 어풍술을 부려 농밀한 지분 냄새를 전부 날려버리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담담하게 물었다.

“홍수 낭자를 볼 수 있을까요?”

“아……. 저, 나리. 홍수 낭자는 지금 류 대인을 위해 금을 타고 있답니다. 류 대인은 성숙부 지부 대인을 모시는 첩실의 형제분이세요. 아무래도 관아와 닿아 있는 분이니, 오늘은…….”

“푸흣!”

포주가 더듬더듬 상황을 설명하자, 왕립은 한순간 참지 못하고 웃어 버렸다. 지부의 첩의 형제라고! 그런 자를 계 선생님과 비교할 수나 있겠는가?

웃음소리를 들은 계연이 무표정한 얼굴로 왕립을 쳐다보자, 그는 일시에 안색이 창백해져서는 더는 어떤 말도 덧붙이지 않았다.

이를 본 포주의 눈이 반짝 빛나더니 기대감에 심장이 떨려왔다. 지부조차 안중에 두지 않을 정도라면, 이자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한 거물이었다!

“오호호……. 아니면 이렇게 하시지요. 일단 먼저 대수선에 올라 차 한잔 드시며 좀 쉬고 계시는 게 어떻겠어요?”

포주는 웃는 얼굴을 하며 속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이런 거물을 이렇게 떠나보낼 수는 없었다.

“그러지요.”

계연은 청루에 들어온 후 처음으로 미소 지은 후 건물 뒤편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아주 희미한 요기(妖氣)가 청루 뒤편에서부터 느껴졌기 때문이다. 농밀한 연지분의 냄새조차 계연의 후각을 가리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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