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7화. 사나워진 ‘홍수’ (1)
몇 분 뒤, 배 안의 풍경은 포주가 막 떠났던 그때와 같은 모습이 되었다. 홍수, 계연, 왕립이 모두 자리에 있었다. 유일한 다른 점은 이제 이 별실에 강신 두광통도 있다는 것이었다.
실내의 더러워진 자국도 술법으로 깨끗이 정리하자 곧 원래 상태를 회복했다.
장예는 퍽 불편한 기색이었다. 시신에서 벗겨낸 옷을 입고 있는 건 상관없었지만, 자신에게 청루 기녀의 행세를 하라니…….
비록 그녀가 죽은 지 이미 오래되었고 신도(神道)를 걸어 신녀가 되었다고는 하나, 이런 사회 환경 속에서 자라난 여인이었다. 그래서 지금의 이 상황이 아주 불편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녀는 참을 수 있었다. 유일하게 거슬리는 것은 왕립의 저 눈빛이었다. 그 눈빛을 받은 그녀는 왕립을 당장 찢어발기고 눈알을 파내고 싶을 정도였다.
그러나 왕립은 이때 장예의 얼굴 때문에 그녀를 보는 것이 아니었다. 물론 조금은 그런 원인도 있겠지만, 더 주된 이유는 호기심이었다. 그는 두 눈으로 직접 장예가 ‘홍수’가 되는 장면을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과연 신선의 수단이란…… 분명 이것이 전부는 아니겠지!’
“흠……. 이제 문제가 딱 하나 남았네요.”
“어떤 문제인가요?”
장예는 이 일이 빨리 끝나길 바라고 있었기 때문에 즉시 이렇게 물었다. 두광통과 왕립도 계연을 쳐다보며 그의 말을 기다렸다.
계연은 약간 멋쩍은 듯 웃으며, 소매 안에서 작은 금과 은 덩이들을 꺼냈다.
“백 냥이 넘는 돈을 십 년간 썼더니, 현재 이 정도밖에 남지 않았네요. 아마 2, 30 정도 될 것 같아요……. 흠, 명성이 자자한 유주의 일지홍수를 속량하려면 얼마를 내야 할까요?”
“어…… 천 냥 정도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장예가 조심스럽게 추측하자 왕립이 즉시 고개를 저으며 반박했다.
“택도 없어요, 분명 그 정도로는 안 될 거예요!”
계연은 이 중에서 그나마 가장 희망을 걸어볼 만한 두광통을 바라보았다. 지난 생 드라마에서 보던 물의 신이며 용왕들은 모두 보배들을 산더미처럼 쌓아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강신 나리, 혹시 은자가 얼마나 있으십니까?”
계연이 철판을 깔고 이렇게 묻자, 두광통도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계 선생님, 소신(小神) 단 한 번도 금은보화를 지녀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 게 있어 봤자 제가 어디에 쓴단 말입니까?”
‘끝났네, 이제 돈 나올 구석이 없군…….’
똑똑똑……!
밖에서 포주가 문을 두드리는 순간, 계연은 술법을 끊고 방 안과 밖을 연결했다.
“손님, 곧 해가 뜰 터인데 방을 준비해 두었으니, 잠시 쉬다 가시겠어요?”
포주는 부채를 흔들면서 웃는 얼굴로 걸어 들어왔다.
“얘야, 오늘 밤 이 계 선생님을 꼭 잡아 두어야 한다? 그리고 저 두 분도…….”
‘음? 두 명이라니?’
포주는 눈을 비비며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별실에는 여전히 왕립과 계연뿐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조금 전 검은 옷을 입은 누군가를 본 것처럼 느껴졌다. 이에 그녀는 자신이 밤을 새워서 눈이 침침해진 것 같다고 여기고는 곧 잊어버렸다.
“오호호! 그리고 왕 선생님, 소아가 선생을 기다리고 있답니다!”
장예는 부자연스러운 얼굴로 뻣뻣하게 미소 지었다. 탁자 아래의 두 손은 힘껏 주먹을 쥔 채였다.
“그, 그럴 필요 없어요, 어, 어머니.”
“응?”
포주는 어찌 된 영문인지 몰라 멍하니 되물었다. 속으로는 오늘 홍수가 어쩐지 답답하게 군다고 생각했다.
“홍수 낭자를 속량하는 데에 은자가 얼마나 필요할까요?”
돈은 없었지만, 계연은 장안법으로 속여 넘기면 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이렇게 물었다.
계연의 말에 포주는 멍하니 물었다. 하지만 이 귀인의 진지한 표정을 보고서 자신이 방금 잘못 들은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안색을 조금 뻣뻣하게 굳히더니 그래도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나리, 제 이 딸아이를 얼마나 많은 귀한 분들께서 아끼시는지 모릅니다. 나리의 신분도 물론 존귀하시지만, 저 아이를 좋아하는 도성의 귀인들이 적지 않아서요…….”
포주는 마침내 홍수가 오늘 밤 왜 이리 뻣뻣한지 그 원인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저는 딸아이가 클 때까지 갖은 고생을 다 하며 키워냈습니다. 비록 천적에 오른 몸이지만, 그래도 저 아이가 잘 살 수 있기를 바라고 있지요. 속량한 후에 고생하지는 않을까 그것도 걱정이 되고, 또 사실 이런 일은 저 아이의 뜻이 어떤지도 봐야…….”
계연은 포주가 이리저리 변죽을 울리는 것을 보고 그녀의 말을 끊었다.
“홍수 낭자도 원하고 있으니 가격이나 말씀해 보세요.”
포주는 살짝 눈썹을 찡그리며 조심스레 홍수를 살폈다. 그녀에게서 무슨 암시라도 얻을까 했지만, 홍수는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고 있었다.
‘오호, 보아하니 이자의 신분이 대단하긴 한 모양이구나. 이 계집애가 이제 기댈 곳을 찾았으니 여기서 몸을 빼려 하는 거지!’
포주는 울상을 지으며 계연에게 말했다.
“나리, 이 일은 제 한 마디만으로 결정되는 일이 아니에요. 아시겠지만, 제 딸아이를 좋아하는 분들이 워낙 많아서요. 만약 저 아이가 이곳에서 나간다면, 저희 대수선은 앞으로 어찌해야 한단 말입니까!”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흘러가자, 포주는 자신의 고충을 털어놓으며 한 손으로 홍수를 잡아끌었다.
“나리. 아무래도 제가 홍수와 대화를 좀 나눠야 할 듯하니, 일단 여기서 잠시 쉬고 계세요.”
그녀는 이렇게 말한 뒤 홍수를 이끌고 방을 나서려 했다. 그러자 장예는 계연을 쳐다보았고, 계 선생님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본 후에야 몸을 일으켜 포주를 따라 나갔다.
두 사람이 떠나자 두광통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왕립이 곧바로 이렇게 물었다.
“계 선생님, 장 낭자가 끌려나갔는데 무슨 일이라도 벌어지면 어쩌죠?”
계연은 그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무슨 일이라니요? 그녀는 평범한 여인이 아니에요.”
왕립은 이에 곧장 입을 다물었다. 그는 이번에도 외모에 현혹된 것이다. 잘 생각해보면 상대방은 전부터도 보통 사람은 아니었다.
밖에서 포주는 홍수를 이끌고 복도를 지나, 한 별실 안으로 들어간 후 문을 닫았다.
“얘야, 어찌 이리 급하게 떠나려 하느냐? 저런 관리나 귀인들께서 너를 속량하여 데리고 나간다 해도, 기껏해야 남의 첩이 되는 것뿐이야. 처음의 신선함이 수그러들면 남은 것은 처참한 말로뿐이다…….”
장예는 억지로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나리는 다릅니다…….”
“다르긴 뭐가 달라! 네가 그걸 어떻게 안다고! 게다가 이렇게 가버리면, 어미는 어쩌니? 우리 대수루는 또 어쩌라는 말이냐…….”
장예는 조금 불편함을 느끼기는 했지만, 속세의 보통 여인이 아닌 데다 사람을 많이 겪어보기도 했으므로 순식간에 차가운 얼굴이 되어 이렇게 대답했다.
“왜 그러세요? 돈줄이 떠나면 장사가 안 될까 봐서요? 그간 많이 벌어다 드렸는데 그걸로는 부족하신가요?”
“너……! 그래, 좋다. 이제 뒷배가 있다 이거지? 내가 전에 말한 건 정말로 거짓말이 아니야. 저렇게 좋은 집안에서 태어난 귀인들이 대수루에서는 너와 웃으며 대화를 나눈다 해도, 결코 그들과 평등하다고 생각하면 안 돼! 너는 저자들 눈에 그저 장난감일 뿐이야!”
포주는 눈을 가늘게 뜨며 스스로 충고라고 생각되는 말을 던졌다.
“예전의 그 소 공자도, 너는 진정한 정인을 만났다고 여기지 않았느냐? 하지만 봐라, 흥미가 사라지니 이제 발걸음도 뚝 끊었잖느냐. 이제 거의 2년이 다 되어 가지?”
포주는 그 일을 아주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부터 홍수가 자신의 긍지를 내려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홍수의 얼굴에서 어떤 기대하는 기색도 찾아볼 수 없었다.
“흥, 지금 대답하면 돈이라도 만지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당신은 한 푼도 얻지 못할 거예요!”
장예는 인내심도 없고 포주와 대화할 생각도 없었으므로, 정 안되면 바로 도망치려 했다. 청루에서 도망치는 여인들은 항상 있었다.
자신의 말도 먹히지 않고, 물러서지도 않는 홍수의 기세를 보며 포주는 잠시 의아함을 느꼈다. 오늘 홍수는 어쩐지 사람이 바뀐 것 같았다.
‘기댈 곳이 생겨서 성격도 변한 건가?’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던 포주는 온화한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그럼 내게 사실대로 말해 보렴. 저분이 도대체 어느 정도의 권세를 가진 분이냐? 예전의 소씨 집안 공자보다 더 대단하니?”
장예는 차가운 웃음을 지으며 생각했다. 소씨 집안 공자가 어떤 자인지는 모르지만, 계 선생님이 어떤 존재인지는 그래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사실과 거짓을 반씩 섞어 대답했다.
“소씨 집안이요? 하하, 속세의 권세는 나리의 눈에 아무것도 아니에요.”
포주는 놀라 가슴이 덜컹했다.
“설마 황족이란 말이냐? 그러나 너는 이미 깨끗한 몸이 아닌데, 황실 자제가 어찌 너를 마음에 들어 했지?”
장예는 그녀의 뺨을 때리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려 했다. 그러나 문을 여니 밖에는 건장한 어멈 두 사람과 체격 좋은 하인 둘이 서 있었다.
“홍수야, 아무리 높은 가지에 오르려 하더라도 이런 식이면 안 되지. 이렇게 얼굴을 싹 바꾸다니 말이야. 귀인에게는 내가 가서 잘 말할 테니, 너는 방에 가서 쉬거라. 자네들은 홍수 낭자를 방으로 모시게!”
“예.”
어멈 하나가 이렇게 대답하며 홍수를 붙잡으려 했다.
“어딜 감히!”
장예는 분노에 차서 두 어멈의 뺨을 연달아 때렸다.
짝, 짝!
홍수 두 명을 합쳐 놓은 것 같은 체격의 어멈들은 그녀에게 따귀를 맞고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몇 걸음이나 물러난 그들은 결국 중심을 잡지 못하고 바닥에 넘어졌다.
쿵 하는 소리가 두 번 들리던 순간 배 전체가 조금 흔들린 것도 같았다.
건장한 체격의 하인들도 이 장면에 놀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채 손을 쓰기도 전에 어느새 하인들의 눈앞에는 별이 보였다. 장예가 그들의 사타구니 사이를 발로 찬 것이다.
“어흡……!”
“윽……!”
두 사람은 창백해진 얼굴로 다리를 끌어안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흥! 날 건드리지 않는 게 좋을걸!”
장예는 코웃음을 친 뒤 소매를 떨치고 가버렸다.
이를 지켜본 포주는 너무 놀라 홍수가 떠나가는 것을 보고도 잡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잠시 후, 장예는 계연이 있는 별실로 돌아와 이렇게 말했다.
“계 선생님, 제가 생각을 좀 해보았는데요. 저희가 속세 범인들의 눈치를 볼 필요가 어디 있습니까? 전부 때려눕히면 되지 않나요? 저희는 홍수가 청루를 나갔다는 증거만 남기면 되니까요.”
아니면 계연과 왕립을 먼저 보낸 후, 자신이 뒤따라가도 될 것이다. 장예는 더는 한순간도 이곳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
계연은 미안한 마음을 담아 장예를 향해 공수했다.
“안심하세요, 낭자. 방금 그 소동으로 곧 결과가 나타날 거예요. 물론 아무 소동 없이 조용히 나갈 수 있었다면 가장 좋았겠지만요. 저 포주의 눈에는, 이곳의 여인들은 가격이 매겨진 상품일 뿐이에요. 그러니 가격만 맞으면 일은 쉬울 겁니다.”
“저자가 한몫 잡겠다고 터무니없는 가격을 내놓으면요?”
왕립이 끼어들어 이렇게 물었다.
“일단 어떻게든 해서 돈을 내기만 하면, 나중에 정말 값을 치를 사람이 있을 거예요. 이치로 봐도 그자가 내는 게 맞는 거고요!”
계연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숙수강의 신 두광통을 향해 공수했다.
“강신 나리, 이번엔 강신만 믿겠습니다.”
두광통은 찻잔 안의 차를 모두 마신 후 일어서서 계연에게 인사했다.
“염려 마십시오, 계 선생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네, 편한 대로 하세요!”
두광통은 장예와 왕립에게도 간단히 공수한 후, 그들의 인사를 기다리지 않고 바로 한 줄기 물로 변해 창밖으로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