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258화 (258/892)

258화. 사나워진 ‘홍수’ (2)

“계 선생님, 강신 나리께서는 무엇을 하러 가신 건가요?”

장예는 막 돌아왔기 때문에 자신이 없던 사이 그들이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지 몰랐다. 이에 왕립이 헛기침을 하더니, 이야기꾼이 말하는 듯한 어조로 대답했다.

“강신 대인께서는 물속의 정도(正道)를 닦는 요괴들을 뭍으로 불러, 각기 사람과 말로 변신하게끔 하려고 가신 겁니다. 그들에게 금화와 비단을 들려 보내어 홍수 낭자를 데려오려는 목적이지요.”

어쨌든 이 일은 겉으로 그럴듯해 보이도록 만들어야 했다. 계연 혼자서 그 많은 재물을 가져오는 것은 그림이 이상했으니 말이다.

이날 밤은 대수루에 있어서 너무 많은 일이 한꺼번에 일어난 날이었다.

존귀하기 이를 데 없는 신비한 손님이 오더니, 그 손님이 한눈에 홍수에게 반해 그녀를 속량하고자 했다.

뒤이어 흉악한 기세의 하인들이 줄지어 들어왔다. 그들과 눈을 한번 맞추는 것만으로도, 대수루의 하인들은 등에 땀줄기가 흐를 지경이었다.

하지만 가장 기세가 흉흉한 것은 그자들이 아니라 홍수 낭자 본인이었다. 금기서화에 모두 정통한 이 낭자는 하룻밤 만에 흉악한 기세로 대수루 모든 여인을 눌러 잡았던 것이다. 심지어 포주조차 그녀를 두려워할 정도였다.

물론, 대수루에서 받게 된 재물을 보면 결코 손해 본 장사는 아니었다. 비록 돈줄은 끊겼지만 이리 값비싼 재물들이 들어왔으니, 포주의 얼굴에 웃음을 드리우게 할 정도는 되었다.

다만 자신의 ‘딸아이’에게 뺨을 맞았을 때는 너무 아파서 웃기가 조금 힘들었다.

계연이 들고 온 재물은 황금 한 상자, 무게가 육중한 진주 한 상자였다. 황금은 넉넉히 잡아 오백 냥은 되었으나 사실 그보다 진귀한 것은 저 진주였다. 한 알 한 알 모두 크고 동그란 모양으로, 돈이 있어도 구할 수 없는 아주 희귀한 것들이었다.

대수루의 대수선에는 홍수 말고도 이름을 날리는 기녀들이 몇 있어, 홍수가 없다 해서 장사가 망할 정도는 결코 아니었다. 대수루에서는 이런 상황에 대비해 다른 이들을 진작부터 길러내고 있었기 때문에, 곧 그중 누군가는 유명세를 떨치게 될 것이다.

다음 날 오후, 성숙부 부성 밖에서 수십 리는 떨어진 숙수강 위에 작은 배 하나가 천천히 물살을 가르고 있었다. 그 위에는 계연, 두광통, 장예 그리고 왕립이 서 있었다.

이 배는 예전에 계연이 춘목강에서 탔던 것과 같은 구조로, 일고여덟 명 정도는 가볍게 태울 수 있는 크기였다. 그리고 배를 젓고 있는 것은 당연히 계연이었다.

“어젯밤에는 정말 어목혼주(*魚目混珠: 물고기의 눈알을 진주에 섞다, ‘가짜로 속이다’라는 뜻)라는 말 그대로더군요.”

계연이 웃으며 곁에 서 있던 두광통에게 농을 건넸다. 숙수강의 신이 알아서 일을 꼼꼼히 잘 처리했기 때문에, 계연이 따로 나서서 무언가를 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하하, 과찬이십니다. 사실은 일을 준비하기 전에 성숙부 저승의 사람을 만나서 그간 대수루 간판 기녀들의 속량 가격을 알아보았지요. 황금 수백 냥 정도가 평균이었고, 나이가 들어 미색이 쇠한 이들의 경우에는 이보다 좀 더 적었습니다. 저희가 낸 금화 정도면 대수루에서도 결코 손해 본 것은 아닐 것입니다.”

황금은 전부 진짜였지만, 진주는 전부 다 진짜는 아니었다.

황금 한 상자는 두광통이 성숙부의 어떤 전장(*錢庄: 옛날, 개인이 운영하던 금융 기관) 지하에서 ‘빌려’ 온 것이었다. 물론 계연은 진짜 홍수를 숨겨 놓은 사람에게 가서 그 돈을 받아낼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 진주들은 본래 대수루에서 마땅히 받을 만한 값은 아니었으므로, 며칠 후 두광통이 직접 가서 ‘회수’해 올 예정이었다.

두광통은 내심 계연이 빚을 받아내려 하는 자가 그 돈을 내지 못하기를 바랐다. 그때 자신이 나서서 계 선생님의 우환을 덜어준다면, 이분과 맺은 인연이 더욱 견고해질 것이리라.

숙수강은 직접 통천강과 닿아 있지는 않았지만, 화물을 옮기는 작은 운하들이 구불구불 통천강까지 이어져 있었다. 계연도 굳이 서두를 필요는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 쭉 배를 저어 경기부까지 갈 예정이었다. 그의 속도로 보면 아마 2주도 걸리지 않을 듯했다.

수신은 계연과 몇 마디 더 한담을 나누다가 곧 작별 인사를 하고 떠났다. 계연은 선창 안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왕립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왕 선생님, 어젯밤 내내 자지 못했으니 지금 좀 쉬세요. 일어나면 제가 선생께 전해드릴 이야기가 또 하나 있거든요. 책으로 엮어내도 좋을 거예요.”

왕립은 어물어물 “예”하고 대답한 뒤, 선창 벽에 기대 잠이 들었다.

열흘 후.

계연과 왕립, 장예를 태운 작은 배는 강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어느새 전방에 보이는 통천강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들이 탄 배는 아주 평온해서 거의 아무런 흔들림도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선창 안에 놓인 작은 탁자 위에는 붓과 먹, 벼루와 종이가 모두 갖춰져 있었다. 왕립은 붓을 쥐고 무언가 써 내렸고, 장예는 그 옆에 앉아 그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한참이 지난 후, 왕립은 마침내 마지막 글자를 적었다. 그리고 깊이 숨을 내뱉은 뒤 붓을 붓걸이에 걸었다.

옆에 있던 장예를 바라본 그는 얼마 전 얻었던 교훈을 떠올리고는 계연에게 이렇게 물었다.

“계 선생님, 이야기에 등장하는 이들이 제가 각색한 내용을 싫어하면 어쩌지요? 그리고 어떤 부분들은 아무래도 책으로 엮으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시대를 전 왕조로 바꾸거나 아예 가상의 왕조를 배경으로 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요.”

조금 전 계연이 말해 준 이야기는 춘목강의 늙은 거북이 계연에게 들려주었던 이야기였다. 왕립은 이것이 계 선생님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이니, 분명 실제로 일어났던 일일 거라고 확신했다.

왕립이 아무리 사리를 구별하지 못한다 한들, 이런 이야기를 수정도 거치지 않고 바로 책으로 내면 안 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사실 그간 겪었던 일로 왕립은 적잖은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하지만 설서 선생인 그는 자신의 직업적인 방면에서는 여전히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하하……! 너무 심하게 바꾸지만 않으면 돼요. 그 거북도 그리 개의치 않을 거예요.”

“네. 흐음…….”

왕립은 이렇게 대꾸한 다음,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망설이며 이렇게 입을 열었다.

“계 선생님, 아무래도 저는 이 이야기의 결말이 타당치 않은 것 같습니다.”

계연은 노를 저으며 그의 말에 이렇게 물었다.

“어느 부분이 그런가요? 저도 궁금하네요.”

그간 왕립은 계연의 성격에 대해 꽤 많이 알게 된 상태였으므로 그다지 꺼리지 않고 대담하게 입을 열었다.

“계 선생님, 이 이야기는 우여곡절도 있고 신기하기도 하면서 세상사의 변천까지 담고 있는, 꽤 깊이 있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결말은, 아무리 생각해도 적절하지 않은 듯합니다. 생각해보세요, 현 왕조의 태조도, 소씨 일가도 그렇다 칩시다. 그들은 아마 어떤 식으로든 그 사건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되겠지요. 이 점은 신선이신 선생께서 자연히 더 잘 알고 계시겠지만요. 하지만 제가 볼 때 그 부분이 그다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왕립은 이어질 말을 잠시 고르며 생각에 잠겼다.

“제 생각에, 이야기는 흥미를 가져다주는 것 말고도 대중을 깨우치는 작용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 세상에서는 선악의 행동에 대해 항상 인과응보가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이야기 속에서는 그것이 있어야 합니다. 설서 선생의 이야기 속에서도 그 정도 통쾌함이 없다면, 그 얼마나 기운 빠지는 일입니까?”

짝짝짝짝……!

계연은 돌연 노를 내려놓고 왕립을 향해 손뼉을 쳤다.

“정말 옳은 말씀이세요! 그럼 선생님이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방향대로 이야기를 바꾸세요.”

“하하, 그럼…… 정말 바꿔도 되겠지요?”

왕립은 확인하려는 듯 한 번 더 물었다. 계연은 다시 노를 쥐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그러자 왕립은 더는 망설이지 않고, 붓에 먹을 찍어 새 종이에 글자를 써 내려갔다.

지금 적는 것은 초고에 불과했지만, 일단 계 선생님께서 들려주신 이야기를 잊어버리기 전에 적어 놓는 것이 먼저였다. 그 후에 천천히 이야기를 각색하며 점차 완벽한 이야기를 완성해가는 것이었다.

사람들에게 인상 깊은 이야기를 만드는 데에는 이야기 자체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이야기꾼의 매끄러운 각색이 좀 더 중요했다. 그리고 바로 이 과정이 왕립이 가장 피땀을 쏟는 부분이었다. 이전에 온갖 이야기를 찾아 모을 때보다도, 이 사실감 있고 신비로운 이야기는 더욱 그를 흥분하게 했다.

장예는 조금 의아한 얼굴로 왕립을 쳐다보았다. 이자는 이야기를 하거나 글을 쓸 때는 청루에 있던 자와 영 딴판으로 보였다. 방금 그가 계 선생님과 했던 문답도 그녀에게는 의외로 느껴졌다.

그러나 왕립의 말에 이어 계 선생님이 그에게 박수를 보내자, 장예는 그를 조금 다른 눈으로 보게 되었다.

잘 생각해보면 그가 각색한 <백록연>도 사실 방금 왕립이 말했던 교훈을 지니고 있었다. 자신은 그 이야기의 ‘피해자’였기 때문에 잘 알아보지 못했을 뿐이었다. 사슴과 주 씨의 결말은 비극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은 저승에서 다시 함께하게 되었다. 두 사람의 행복을 잊지 않으면서도, 전체적으로 비극적인 이야기는 사람들이 탄식을 내뱉도록 했다. 게다가 성황신의 지엄한 법도도 사람들의 인상에 깊게 남았을 것이다.

다만 당시에는 왕립이 저승의 채찍형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잘 알지 못했기에, 그녀가 깜짝 놀랄 만한 묘사를 하게 된 것이었다.

왕립은 붓을 휘두르며 이야기를 적었고 때때로 멈춰서 먹을 갈기도 했다. 장예는 가끔 그가 어느 부분을 쓰고 있는지 살피기도 했지만, 주로 눈을 감고 수양했다. 향불과 원력의 힘은 당분간 얻을 수 없으니, 그녀는 천천히 물에서부터 느껴지는 음기 섞인 영기를 들이마시고 있었다.

배가 통천강에 접어들고 반나절 정도가 지난 때에, 돌연 배 옆에서 특이한 거품이 일기 시작했다.

“계 선생님?”

이상 현상을 감지한 장예가 눈을 뜨고서 계연을 불렀다. 그러나 계연은 고개를 저으며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별일 아니에요.”

과연, 배 옆에서 일던 물거품은 점차 사라지며 원래 상태를 회복했고, 물밑에서는 어떤 수상한 움직임도 느껴지지 않았다. 반면 왕립은 자신의 세계에 빠져 장예가 경계를 바짝 세우고 있는 것도 알지 못했다.

통천강에 이르자 양쪽으로 작은 토산(土山)과 수풀이 점차 많아지기 시작했다. 다시 일각(*15분) 정도가 지나자, 작은 배는 물길이 구불구불한 구역에 이르렀다. 그 순간 장예는 토산과 가까운 강기슭에 두 사람이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화려한 복식을 입은 두 사람은 각각 준수하고 아름다운 외양을 지녔다. 홍수의 미색조차 저 여인의 앞에서는 빛을 잃을 정도였다. 하지만 장예는 이렇게 편벽하고 외진 곳에서 저런 외양의 사람들이 타고 온 마차나 배도 없이 서 있는 것이 조금 이상하게 느껴졌다.

“어이, 왕립! 저쪽에 아름다운 낭자가 있어.”

“예에.”

왕립은 건성으로 대답하며 고개도 들지 않았다. 몇 글자를 이어 쓰다가 그는 돌연 정신을 차린 듯, 다급히 장예가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과연 외모가 출중한 두 사람이 서 있었다.

그 두 사람은 계속 작은 배를 쳐다보고 있었고, 곧이어 계연은 배를 강기슭으로 몰았다.

“응풍, 응약리.”

“계 숙부님을 뵙습니다!”

그들은 아직 배와 7, 8장(*약 20~25m) 정도의 거리가 남았을 때 정중하게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그러자 계연도 뱃머리에 서서 노를 내려놓고 공수했다.

“두 현질(*賢侄: 어진 조카라는 뜻으로, ‘조카’를 높여 이르는 말)도 잘 지냈나요?”

일반적으로 계연은 그들을 각각 ‘전하’와 ‘강신마마’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렇게 부른다면 배 안의 왕립이 놀랄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계연은 그저 그들을 ‘현질’이라고 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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