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2화. 정신(正神)과 요물의 차이
계연은 의자에서 몸을 일으킨 다음, 바닥에서 서로를 끌어안은 두 사람에게 걸어갔다. 그러자 소릉과 단목완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소 공자께서는 그래도 얼마간 배움을 쌓은 사람이니, 앞으로는 이익을 위해서 어떤 사실을 눈감고 지나가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무릇 서생(書生)이란 마땅히 기개와 자긍심을 갖고 있어야 하는 법이지요. 7, 8년 전의 공자는 2년 전의 공자보다 더욱 그런 기개를 갖췄었지요.”
“7, 8…… 년 전이요?”
소릉은 실력을 짐작할 수 없는 이 푸른 옷을 입은 서생을 바라보았다. 그의 마음에 담긴 의혹이 목소리에도 묻어났다.
그러자 계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해 겨울 통천강 위의 큰 누선 선미에서, 소 공자는 영존(*令尊: 상대의 아버지)과 크게 말싸움을 했었어요. 바로 이 홍수 낭자 때문이었지요. 그때 제 인상에 남은 소 공자는 기개가 넘쳤었는데요.”
“선생은……?”
“기억을 못 하시나 보군요.”
계연은 웃으며 설명했다.
“소 공자와 영존께서는 그날 저를 화제로 삼기도 했었는데……. 그러나 저처럼 생계를 잇기 위해 가끔 낚시하던 일개 백성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이상한 일을 아니지요.”
마침내 소릉은 눈을 휘둥그렇게 뜨면서 이렇게 물었다.
“선생께서는 그때 노를 젓던 그 낚시꾼입니까?”
“맞아요.”
계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친히 소릉과 단목완을 땅에서 일으켜 세웠다.
소릉은 어렴풋이 그날의 눈 내리던 강 풍경을 떠올렸다. 그때의 그는 반드시 장원이 되어 아버지의 인정을 받아내고야 말겠다고 다짐했었고, 그 순간 앞에서 노를 저어가던 어부가 그를 향해 몸을 돌리더니 멀리서 고개를 숙였었다.
어느새 희미해졌던 기억이 이 순간 다시 또렷해졌다.
“두 사람의 정이 깊은 것을 보고, 강신마마께서는 손속에 자비를 베푸셨지요. 이게 바로 정신(正神)과 사도(邪道)를 닦는 이의 차이점입니다. 하나는 동정을 베풀 줄 알고, 다른 하나는 다른 이와 자신을 해치게 하는 삿된 부적을 주었어요. 소 공자께서는 앞으로 일을 행함에 있어 좀 더 신중해지는 편이 좋을 겁니다.”
계연의 말을 듣고 소릉과 단목완은 한쪽에 서 있던 응약리를 바라보았다. 그녀도 그들을 한 번 쳐다보더니, 곧 눈을 감으며 계연의 말을 묵인했다.
이에 소릉은 깊이 안도한 뒤, 응약리를 향해 공수하고서 다시 계연을 향해 읍했다.
계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소릉의 손을 잡고서 그가 더욱 깊이 허리를 숙이지 않도록 했다.
“공자를 속인 것은 다른 주에서 온 요괴예요. 정체도 모르고 그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 무슨 속셈을 가진 자입니다. 저조차 그녀에게 한 번 당한 적이 있으니, 보통 사람인 두 사람이 만약 그녀의 정체를 꿰뚫어 보았다 해도 사실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을 것을 알고 있어요. 그러니 이번에는 어쩔 수 없었던 일이라 치고 넘어가겠습니다.”
비록 이 일은 계연과 응약리의 손에서는 이대로 넘어갔지만, 사정을 모르는 경기부 저승에서는 분명 기록에 남을 만한 일이었다. 소릉이 죽기 전에 충분한 덕을 쌓지 않는다면 사후에 이에 상응하는 벌을 받게 되겠지만, 계연은 굳이 그 점을 알려주지 않았다.
소릉은 씁쓸하게 웃으며 다시 한번 계연을 향해 공수했다.
“선생의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소릉은 마침내 이분들이 진정 신령한 인물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일을 행하는 태도와 수단이 전에 만났던 ‘강신마마’와는 천지 차이가 났다. 게다가 그저 직감만으로도 이 사람들에게서는 밝은 빛이 보이는 듯했고, 그뿐만 아니라 청량하며 따뜻한 기운까지도 느껴졌다.
“계 선생님. 그곳이 어느 주인지는 모르나, 그 요괴가 선생님까지 애를 먹게 했다면…… 우리 대정국 백성들에게 해를 끼치면 어찌합니까? 제가 이 부적을 2년간 가지고 있었던 것이 대정국에 어떤 영향이라도 끼칠까요?”
소릉은 불안한 마음에 이렇게 물었다.
“풋…… 하하하하……!”
응풍은 소릉의 말을 듣고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응약리조차 얼굴 근육이 조금 느슨해졌지만, 애써 냉정한 표정을 유지하는 중이었다.
응풍은 손가락으로 소릉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자네도 참…… 하하하! 계 숙부님이 애를 먹다니? 천지가 이토록 크니, 대단한 실력을 갖춘 요괴도 물론 있겠지. 하지만 그 여우는 절대 그런 수준이 아니야. 그저 운이 좋았을 따름이지. 숙부님의 성격이 좋아 무슨 일이든 느긋하게 처리하셔서 그렇지, 만약 우리 아버지셨으면…….”
“크흠!”
응약리가 참지 못하고 두어 번 헛기침을 하자, 그제야 응풍도 ‘헙’하고 입을 다물었다.
비록 이곳이 통천강에서 멀고 현재 아버지가 잠을 자고 있기는 하지만, 만약 그가 꿈에서라도 이 장면을 보게 된다면 절대 좋은 일이 벌어질 리 없었다.
계연은 응풍을 보며 그가 늙은 용과 함께 있을 때보다 훨씬 거침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중에 늙은 용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 오늘 일을 ‘의도치 않은 듯’ 조금 발설해야 하나 생각에 잠겼다.
계연이 다시 소릉과 단목완을 바라보았을 때, 그들의 눈빛에는 어느새 경외심이 담겨 있었다.
“소 공자는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제 아무 일도 없을 거예요.”
“선생님께서 이왕 뛰어난 신통력을 지니셨고, 상대가 마침 다른 주에 있으니 그자를 물리쳐 주실 수 있습니까? 화를 입게 될 대정국의 백성들은 무고하니까요…….”
비록 자기 일이 아니라고 쉽게 말하는 듯한 느낌이 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계연은 그의 말에 살짝 감동을 받았다.
비록 소리는 같았지만, 계연은 소릉이 말한 ‘주(州)’는 ‘주(洲)’가 아님을 알았다. 이에 그는 고개를 저으며 웃는 얼굴로 그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소 공자, 그 주는 대정국 13주(州) 중 하나가 아니고, 주부(州府)를 뜻하는 주도 아닙니다. 이 천하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거든요!”
‘대정국에 있는 주가 아니라니?’
소릉은 잠시 어리둥절한 채로 생각에 잠겼다. 저 멀리 천보국을 포함한 주변 각국은 대부분 주부(州府)와 비슷한 명칭을 쓰고, 소수의 야만족은 부족(部族)과 같은 이름을 쓰기도 했다. 하지만 만약 단순하게 다른 나라를 뜻하는 거라면, 이 선인께서도 그런 식으로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막 그가 다시 한번 물어보려던 때에 계연이 먼저 입을 열어 그의 말문을 막았다.
“소 공자께서는 그 일에 신경 쓰실 필요 없어요. 그리고 잊으신 듯한데, 저는 오늘 빚을 받으러 온 것입니다.”
이 짧은 시간 동안 일어난 일이 너무 많아, 만약 계연이 먼저 말하지 않았다면 그도 그것을 잊어버릴 뻔했다. 그리고 방금 그 일이 아니었다면, 그는 그 빚을 강신마마께 가서 받으라고 대꾸했을 것이다.
눈앞의 신선이 빚 얘기를 꺼내자, 소릉은 한 번 더 확인하기 위해 이렇게 물었다.
“황금 오백 냥이라고 하셨지요?”
“네, 황금 오백 냥입니다. 공자께서 내지 못할 정도의 액수는 아니겠지요?”
계연이 소씨 집안에 대해 아는 바에 의하면, 소릉의 부친은 그다지 청렴한 관리는 아니었다. 비록 그가 청렴한 인물이라고 해도 오랜 세월 받아온 녹봉이 있으니, 그 정도의 돈은 낼 수 있을 것이었다.
“네. 선생께서도 저와 함께 가시겠습니까, 아니면 따로 생각하시는 바가 있으십니까?”
“아니요, 소 공자 혼자 갔다 오세요. 저희는 여기서 기다릴 테니까요.”
이에 소릉은 단목완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렇다면 완아는요?”
계연은 그가 이렇게 묻는 이유를 알았다. 하지만 그는 이들의 자유를 제한할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두 분 편하신 대로 하세요.”
그의 말을 듣고 소릉은 크게 안심한 뒤 계연과 응씨 남매에게 인사했다. 그리고 단목완과 함께 주루를 나서 어두운 밤길을 걸어 떠났다.
계연은 다시 의자에 돌아와 앉았고, 응풍은 창문을 통해 두 사람이 멀어지는 것을 잠시 바라보다가 자리에 앉았다.
“하하하……. 저자는 일전에 운 좋게도 계 숙부님께 좋은 인상을 남겼기 때문에 오늘 같은 행운을 얻을 수 있었네요. 하지만 만약 자신의 노력으로 무언가를 쟁취해낸 다음 오늘 다시 만났다면 좋은 인연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안타깝군요.”
응약리도 그의 말에 공감을 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씨 남매는 이미 계 숙부님의 성격에 대해 꽤 깊이 파악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그런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계연은 이미 젓가락 세 개를 새로 꺼내 그들에게 한 벌씩 나눠주고 있었다.
“손도 안 댄 술과 요리가 이렇게 많이 남았으니, 낭비하지 않는 것이 좋겠어요.”
탁자 위에는 일고여덟 종류의 풍성한 요리가 준비되어 있었다. 오늘 밤 소릉과 단목완은 분명 이것을 먹지 못할 테니, 계연도 거리낌 없이 젓가락을 들었다.
계연이 식사를 시작하자, 응씨 남매도 계연에 맞춰 주기 위해 예법에 따라 젓가락을 들었다.
소릉이 다시 돌아왔을 때는 이미 반 시진 가까이 지난 시각이었다. 그는 단목완 없이 홀로 작은 상자를 품에 안고 별실로 들어왔다.
은표를 가져올 수도 있었지만, 소릉은 상대방이 원하는 것이 황금이라고 여겼기에 상자를 전부 금으로만 채워왔다.
“계 선생님, 정확히 황금 오백 냥입니다. 단 한 푼도 모자라지 않습니다.”
소릉은 작은 상자를 탁자 위에 내려놓고, 뚜껑을 열어 안에 가지런히 놓인 금덩이들을 보여 주었다.
상자는 계연이 지난 생에 보았던 아이들용 신발의 상자와 비슷한 크기였고, 안에는 벽돌 하나보다는 조금 작은 크기의 황금 오백 냥이 가득 들어있었다.
아무리 소릉이 무공을 연마했다고는 해도 황금 오백 냥이 든 상자를 홀로 들고 온 데다 이전보다 몸이 허약해졌기 때문에, 이때 소릉의 몸에는 땀이 흐르고 그의 호흡은 불규칙했다.
계연은 번쩍거리는 상자 안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인 뒤 말했다.
“예, 그럼 이제 저희 둘 사이에 빚은 없는 거예요.”
이렇게 말한 후 계연은 소매를 한번 휘둘러 탁자 위의 상자를 소매 안으로 사라지게 했다.
빚도 받아냈고 그 여우 요괴가 무슨 짓을 꾸몄는지도 알았으니, 계연은 이곳에 더 머물 이유가 없었다. 이에 그는 소릉과 작별 인사를 나눈 뒤, 응씨 남매와 함께 주루를 나섰다.
소릉은 별실에 서서 창문을 통해 그들이 떠나가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단 열 몇 걸음 만에 그들은 소릉의 시선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계 숙부님, 저 소씨 집안이 바로 소정(蕭靖)의 후손들이지요?”
길을 걷던 도중 응약리가 돌연 이렇게 물었다.
“맞아요. 이곳에 오기 전까지는 확실하지 않았는데, 소릉을 만나 그의 기운을 보고 점을 쳐보았더니 소정의 후손이더군요.”
계연은 응약리가 전에 배 위에서 왕립이 쓴 것을 조금 읽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특히 결말 부분은 전부 읽은 것이나 다름없기에, 그녀가 소정의 일을 안다는 것이 그리 놀랍지는 않았다.
그러자 응풍은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약리야, 계 숙부님과 도대체 무슨 수수께끼 같은 소리를 하는 거냐? 소정은 누구고, 왜 너는 아는데 나는 그자를 모르지? 계 숙부님과 보낸 시간은 내가 너보다 긴데!”
계연은 그에게 설명해주기 귀찮았기 때문에 응약리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래서 계연은 홀로 앞서가고, 그들 남매는 뒤에서 계연을 따라오며 소정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