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4화. 사람의 마음은 예측하기 어렵다
황제는 윤재성의 머리에 하나둘 나타난 흰머리를 바라보았다. 윤재성의 나이가 아직 마흔이 되지 않았으니, 나이에 비하면 흰머리가 꽤 많다고 볼 수 있었다. 이에 황제도 그가 완주에서 얼마나 심력을 쏟았는지 알 수 있었다.
“윤 애경, 이제 와 생각해보면, 짐의 일생은 실은 운이 꽤 따르는 편이었소. 한 번 만나기도 어려운 선연이 실은 수차례나 짐의 지척에 있기도 했지…….”
이에 윤재성은 수륙법회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한 소문을 떠올렸다. 특히 황제가 물속의 달을 잡으려 했다는 이야기와 신선을 베었다는 이야기 두 가지가 가장 널리 퍼진 것이었다. 민간에서는 그에 대해 이미 제각기 조금씩 다른 판본이 만들어져 완주에까지 전해질 정도였다.
만약 이 사건이 대정국 양씨(楊氏) 황족과 관련된 일이 아니었다면, 진작에 여러 권의 책이 출판되었을 정도였다. 윤재성이 들은 것은 모두 소문이기는 했지만, 이를 통해 수륙법회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추측하기에는 충분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두 가지 사건은 모두 황제의 실수였다. 특히 신선의 목을 벤 사건은 그야말로 기이하고 비범하다 할 수 있어, 많은 이들이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이제 짐은 남은 날이 얼마 없소. 그래서 더는 그런 헛된 희망을 품지는 않는다오. 다만 대정국은 우리 양씨 황실의 강산이니, 짐이 죽은 후에 부디 큰 혼란이 일어나지 않길 바랄 뿐이오.”
윤재성은 황제의 말을 경청하다가 이 부분에서 다시 한번 공수했다.
“하늘이 폐하와 대정국을 보우하실 것입니다!”
황제는 손을 저으며 이렇게 말했다.
“방금 경에게 두 황자 중 누가 더 적합하냐고 물은 것은 정말로 농담이 아니었소. 짐은 신선을 찾아다니며 도를 깨우치려 한 지 오래지만, 여태 어떠한 답도 구하지는 못하였소. 하지만 그만큼 신비로운 일을 많이 접하기도 했소. 그래서 짐은 사실 윤 애경에게 정말로 호연정기가 있다고 믿고 싶소. 완주의 그 더러운 진창 속에서도 윤 애경은 물들지 않았으니, 장래는 물론 지금 현재도 경은 이미 고굉지신(*股肱之臣: 다리와 팔, 임금이 가장 믿고 중하게 여기는 신하)이오.”
원덕제는 대번에 너무 많은 말을 쏟아냈기 때문에, 잠시 숨을 고르다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짐은 예전에 한 천사(天師)에게서 호연정기를 가진 이는 굉장히 드물다고 들은 적이 있소. 그런 자가 재야에 있다면 덕이 높은 유생으로 이름을 떨치며, 자신의 학파(學派)를 세울 것이라고 했지. 그리고 만약 그자가 조정에 든다면 분명히 현명한 재상이 될 것이며, 군왕의 올바름과 어리석음을 알아볼 수 있다고도 했소.”
여기까지 말한 황제는 돌연 웃으며 그에게 물었다.
“윤 애경, 말해 보시오. 짐은 명군(明君)이오, 혼군(昏君)이오?”
윤재성은 눈썹을 찡그리며 진지한 얼굴로 황제를 향해 공수했다.
“소신에게 있어 폐하는 명군이십니다!”
“경에게 있어서…… 하하, 그럼 다시 한번 묻겠소. 오왕과 진왕은 어리석고 무능한 재목인가?”
황제의 물음에 침전에 있던 모든 이들의 심장이 다시 한번 아래로 쿵 떨어졌다. 윤재성은 깊이 숨을 들이쉰 다음, 눈을 감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천천히 대답했다.
“두 분 전하께서는 서로 성격이 다르십니다. 그리고 재능으로 따지자면 두 분 다 남달리 뛰어나신 분들입니다. 그러니 어리석고 무능하다는 말은 당치 않습니다!”
“오? 경의 마음에는 어떤 치우침도 없소? 짐이 잘못 기억하는 게 아니라면, 춘위를 치르기 전 진왕부에서 열린 섣달 그믐날 연회에 경도 있지 않았소?”
황제는 이렇게 말하는 동안 줄곧 윤재성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러나 상대방에게서는 조금도 당황스러워하는 기색을 읽을 수 없었다.
“예, 폐하의 말씀대로 소신도 그 자리에 참석해 있었습니다. 관직이 없는 몸으로 왕부에 초대를 받아 갔으니, 소신도 초대를 받고 놀랐었던 기억이 납니다.”
황제가 이미 그 일을 알고 있다면 윤재성도 무어라 더 변명할 생각이 없었다. 이에 그는 정중하게 예를 올린 다음 사실대로 고했다.
황제는 고개를 끄덕인 뒤 좌우를 향해 명했다.
“윤 애경 한 사람만 남기고 모두 나가거라!”
태감들은 서로 영문을 몰라 마주 보다가, 명을 받들어 침전을 나갔다. 거대한 침전에는 이제 병상에 누운 황제와 침상 앞 작은 의자에 앉은 윤재성만이 남았다.
황제는 진지한 눈빛으로 윤재성을 향해 물었다.
“윤 애경, 이제 침전 안에는 자네와 짐 둘뿐이오. 그러니 안심하고 대답해도 괜찮소. 짐도 경에게 어떤 죄도 묻지 않겠소. 경이 느끼기에, 두 황자 중 누가 더 대업을 맡기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하시오?”
황제가 다시 한번 이렇게 묻자, 윤재성은 오늘 그 문제를 결코 피하지 못하리란 것을 깨달았다. 그는 이제 황제의 마음을 추측해 완벽한 답안을 내놓아야 했다. 만약 틀린 답을 내놓는다면, 황제가 비록 그에게 어떤 죄도 묻지 않겠다고 말했다 해도 결국 죽음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윤재성은 황제가 조금 전 자신에게 했던 칭찬들이 모두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임을 알았다. 그러나 황제가 자신의 능력을 중시하면 할수록, 그는 이 문제에 대해 절대 틀린 답을 내놓을 수 없었다. 후계에 대해 황제와 다른 의견을 가진 영향력 큰 대신을 황제가 그냥 두고 볼 리가 없었다.
이에 윤재성은 눈을 감고 숨을 깊이 들이마신 후, 뱉는 순간 눈을 부릅떴다. 그는 진지한 얼굴로 황제와 눈을 마주치며 입을 열었다.
“폐하! 소신이 이미 말했다시피, 두 분 전하께서는 모두 뛰어난 자질을 갖고 계십니다. 두 분 중 누가 대업을 잇게 되더라도…….”
여기까지 말한 윤재성은 몸을 일으켜 읍한 다음, 황제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목숨을 건 맹세를 하는 사람처럼 엄숙한 태도로 말을 이었다.
“소신을 신임해주시는 한, 힘이 닿는 데까지 그분을 보좌하겠습니다. 대정국이 성세(盛世)를 이루고, 조정에 국운이 따르도록 힘쓰겠습니다. 또한, 천하에 유학의 기강을 바로 세우고, 국법(國法)의 지엄함을 수호하겠습니다. 저 윤재성이 있는 한, 조정에 결코 분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소신의 능력을 믿어 주십시오!”
윤재성이 이렇게 말하는 순간, 그의 온몸에서는 호연정기가 불길처럼 치솟았다. 그러자 원덕제는 마치 실내에 환한 빛이 비쳐드는 듯하여 마음 깊이 전율을 느꼈다.
황제는 오랫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알겠소! 알겠소! 짐은, 경만 믿겠소!”
정신을 차린 황제는 연이어 알겠다고 말하며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한쪽 팔을 뻗어 절을 올리는 윤재성의 두 손을 받쳐 들었다.
“경에게 단서철권(*丹書鐵券: 황제가 공신(功臣)에게 하사하여 대대로 죄를 면하게 하던 증명서)을 내리겠소. 부디 애경은 오늘 짐에게 했던 맹세를 잊지 마시오!”
“신, 죽는 날까지 잊지 않겠습니다!”
그의 대답을 듣고 원덕제는 미소 지었다. 그의 미소는 평상시의 위엄있는 미소라기보다는, 마음이 가벼워져 짓는 미소였다.
“자, 어서 앉으시오.”
윤재성은 황제가 다시 앉을 수 있도록 부축한 다음, 원래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사실, 진왕의 재능이 오왕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짐도 알고 있소. 심지어 짐은 진왕을 좀 더 아끼기도 하오…….”
황제의 이런 어조는 듣기에 어쩐지 진왕에게 결코 좋은 소식이 아닐 듯했다. 과연, 황제는 곧바로 방향을 바꿨다.
“그러나 오왕은 적장자(嫡長子)이고, 오랜 세월 본분을 지키며 잘못을 저지른 적이 없소. 조정에서의 명망도 작지 않고, 사실 그 아이도 범재(*凡才: 평범한 재주를 가진 사람)라 할 수는 없지. 하하, 어찌 되었든 짐의 아들이니 성격은 짐이 제일 잘 안다고 할 수 있소. 그러니 경에게 짐의 밀지(*密旨: 비밀리에 내리는 임금의 명령)를 하나 남겨 주겠소. 만약 대업을 잇는 자가 후일 자신의 형제를 해치려 한다면, 그때 그것을 꺼내 들도록 하시오…….”
그러자 윤재성도 황제가 무슨 결정을 내릴지 짐작할 수 있어, 속으로 남몰래 탄식했다.
“짐은 이미 적장자에게 보위를 물려주기로 했소. 전위(傳位) 조서는 열흘 후에 발표하도록 하겠소. 애경이 최선을 다해 보좌해 주시오!”
“명을 받들겠습니다!”
앉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윤재성은 다시 의자에서 일어나, 침상 앞에 무릎을 꿇고 예를 올렸다.
그 시각, 진왕부에서 진왕 양호는 화원의 정자에 서서 어두운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곁에는 소사(少師)인 이목서와 초(楚)씨 집안 가주가 자리해 있었다.
“전하, 윤 공이 오늘 새벽 도성에 도착해 쉴 새도 없이 곧바로 황궁으로 들었다 합니다. 그리고서 지금까지 나오지 않은 상태라고 합니다…….”
초씨 집안 가주는 찻잔 안의 차를 모두 마신 뒤 이렇게 말했다.
“그렇군.”
진왕은 그의 말에 간단히 대꾸할 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최근 몇 년간 확연히 나이 든 이목서는 긴 수염을 쓸어내리며 진왕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성상께서는 분명 윤 지주의 의견을 중시하실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그자가 전하를 위해 성상께 말씀을 올릴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진왕은 고개를 돌려 최근 눈에 띄게 노쇠해진 스승을 향해 고개를 저으며 탄식했다.
“큰형님께서 커다란 결점이 있지 않은 이상……. 휴우, 윤재성은 그런 말을 할 사람이 아닙니다……. 그나저나 부황의 건강이…… 어째서 몇 년만 더 견뎌주지 못하시는지…….”
오왕에 비하면 진왕은 원덕제가 건강을 회복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다. 그의 효성스러움과는 별개로 제위를 손에 넣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원래는 자신에게 적어도 5년의 여유가 더 있다고 생각했는데, 수륙법회에서의 충격이 너무나 컸던 부황의 건강이 급격히 쇠약해지고 말았던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스운 일이었다.
같은 시각, 오왕부에서 오왕은 대청에 앉아 술을 데우고 옆의 탁자 위에는 과일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와 함께 있는 두 사람은 그의 심복으로, 한 명은 병부의 대신이었고 다른 한 명은 상서성의 관리였다.
이곳의 분위기는 진왕부에 비하면 꽤 가볍다고 할 수 있었다. 오왕 양경도 이미 알다시피, 현재 국면은 자신에게 매우 유리했다. 다른 황자들은 그에게 근심거리조차 되지 못했지만, 유일하게 셋째 아우인 진왕에게는 경계를 늦출 수 없었다.
“윤재성이 입궁한 지 얼마나 되었소?”
오왕은 윤재성을 매우 중시하고 있었다. 일찍이 몇 차례 그를 끌어들이려 해봤으나, 윤재성은 줄곧 입장을 표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데도 그는 윤재성에게 좋은 인상을 품고 있었다.
게다가 그자는 멀리 완주에 있어 도성의 일에 대해 잘 알지 못할 테니, 진왕에게 더 기울어져 있는 인물도 아니었다.
오왕의 물음에 상서성의 관원이 이렇게 대답했다.
“두 시진(*4시간) 정도 되었습니다. 폐하께서는 윤재성을 무척 신임하고 계시니, 이번에 그를 부른 것은 필시…….”
그때, 바깥에서 급박한 목소리가 들려와 그의 말을 끊었다.
“전하! 전하!”
회색 옷을 입은 자가 나는 듯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무슨 일이냐?”
오왕이 눈썹을 찡그리며 물었다.
하인이 숨을 한 차례 돌린 다음 종이 한 장을 전했다.
“궁중에서 은밀히 소식을 전해 왔습니다…….”
하인은 옆에 앉은 두 관원을 바라보며 이렇게 대답했다.
그러나 오왕은 두 사람을 심복이라 여기고 있었기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고 바로 서신을 열어 보았다. 그 안의 내용을 읽어 내려갈수록 그의 안색이 점차 창백해졌다.
“윤재성…… 셋째의 사람이었다니! 부황께서 몇 번이고 그에게 누구를 골라야 할지 물었다고 하오. 그러더니 좌우를 모두 물리고, 윤재성만 남겼다고 하오!”
“전하께서는 그 일을 어찌 아십니까?”
두 대신은 대경실색한 표정이었다.
“부황의 곁에 내 사람이 있소. 여러분도 읽어 보시오.”
오왕은 서신을 두 사람에게 전달한 후, 어두운 얼굴로 이를 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