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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가기연-268화 (268/892)

268화. 공모(共謀)와 음모(陰謀)

임 귀비는 그제야 한숨을 돌린 뒤, 아들을 바라보며 한 번 더 꾸짖었다.

“호아, 어서 부황께 감사 인사를 올리지 않고 뭘 하느냐?”

진왕은 그제야 그것을 깨달은 것처럼 황제를 향해 공수하며 말했다.

“소자의 죄를 용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황. 사실 소자가 방금 말했던 것은…….”

진왕은 임 귀비를 한 번 쳐다본 다음, 한숨을 내뱉으며 말을 잇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몸을 숙여 인사했다.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진왕이 떠나자 임 귀비의 얼굴에는 우울한 기색이 떠올랐다. 아들이 떠나기 전 지은 슬픔에 잠긴 표정이 그녀의 마음을 불안하게 했다.

“폐하, 호아는…….”

황제는 천천히 숨을 내쉰 뒤, 애비(愛妃)의 등을 몇 번 두드렸다.

“괜찮소. 저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도록 두지 않을 것이오…….”

황제는 그제야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그간 오왕은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렸고, 진왕은 줄곧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진왕은 언제나 총명했으니, 아마 자신에게는 희망이 없다는 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재능있고 출중한 동생을, 오왕이 제위에 오르면 과연 순순히 놔줄 것인가?

그날 밤 일련의 소식들이 오왕부로 쏟아져 들어왔다. 늦은 밤까지 잠자리에 들지 못했던 오왕은 아예 옷을 걸쳐 입고 대청으로 나왔다.

“셋째가 저녁에 입궁했다고?”

남색의 야행복(*夜行服: 비밀스럽게 움직이는 이들이 입는 어둡고 간편한 옷)을 입은 남자가 공수하며 대답했다.

“전하께 아룁니다. 예, 진왕의 마차가 술시(*戌時: 오후 7시~9시)에 출발하여 자시(*子時: 오후 11시~새벽 1시)가 되어서야 돌아왔다고 합니다!”

오왕은 눈썹을 찡그려 미간에 내 천(川)자를 만들며 이렇게 물었다.

“황궁에서 특별히 알려온 소식은 없느냐?”

낮에 심복들과 이미 조용히 몸을 사리기로 결정을 내렸지만, 이 순간 오왕은 무의식적으로 다시 이렇게 물었다.

“그것이…… 전하의 분부에 따라 성상의 곁에 있던 이들이 더는 소식을 전해 오지 않고 있어서…….”

오왕은 손바닥을 내려친 뒤 초조한 걸음으로 대청 안을 이리저리 거닐었다.

“그럼, 되었다!”

사내가 물러나자, 오왕은 자리에 앉아 오래도록 침실에 들어가지 않았다.

둘째 날, 셋째 날…… 진왕은 연달아 며칠간 입궁했다. 그리고 어느 날, 진왕부의 마차는 당당하게도 경기부 역관 앞에 멈춰 섰다.

윤재성은 진왕이 이렇게 갑작스럽게 자신을 방문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하지만 황자가 직접 왔으니 그는 맞이하러 나가야만 했다. 그래서 그는 진왕을 안에 들이기는 했지만, 대신 정문을 활짝 열어 놓았다. 그리고 역관의 하인들에게 차를 내오라고 분부했다.

이 일은 당연하게도 황제와 오왕의 귀에 들어갔는데, 두 사람의 반응은 확연히 달랐다.

황제는 그날 바로 그들이 나눈 정확한 대화 내용을 알게 되었다. 진왕은 윤재성에게 그를 따르던 몇몇 대신들의 안위를 부탁했는데, 특히 소사 이목서에 대한 당부가 대부분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황제가 그대로 그의 말을 믿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진왕의 말이 진심일 가능성도 적지 않았다. 이에 황제의 마음에 씁쓸함이 몰려왔다. 이 상황에서 진왕은 마치 염라대왕이 문밖에서 기다리는 듯한 기분일 터였다.

오왕은 그들 두 사람이 만났다는 것을 알게 되자, 더는 참지 못하고 비밀리에 심복들을 오왕부로 소집해 대책을 상의했다.

진왕의 연이은 행동은 오왕을 무척 초조하게 했다. 이에 그는 결국 몇 차례나 황궁에 심은 이들과 접촉했고, 임 귀비가 몇 차례나 어서방에서 황제의 수발을 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사실은 오왕부에 모인 이들의 계심과 불안함을 불러일으켰다.

이 세상에 진왕의 능력을 그들보다 더 잘 아는 이들은 없었다. 결국 무신 몇 명은 몰래 오왕을 찾아와 단독으로 면담을 요청하기도 했다.

9월 17일의 이른 아침, 경기부 성문 밖 인적 드문 곳에서는 소사 이목서와 그의 가족들이 마차에 나눠 타고 있었다. 그의 가족들은 여러 명이 각기 다른 시간대에 움직여 이곳까지 몰래 나온 것이었다. 그들의 주위는 진왕부의 고수들이 지키고 있었다.

노쇠한 이목서는 진왕을 향해 공수하며 아쉬움과 슬픔을 숨기지 못했다.

“전하, 이 늙은이는 아무래도 남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에 진왕은 고개를 저으며 이렇게 말했다.

“스승님, 그래도 연주(燕州)로 돌아가셔야 합니다. 만약 큰형님이 제위를 잇는다면, 멀리 연주에 떨어져 있는 데다 나이도 드신 스승님을 어쩌지 못할 테니 말입니다. 게다가 윤재성도 있으니 아무 일도 없을 겁니다.”

“그럼 전하께서는요?”

“저요? 당연히 결과에 승복해야지요. 제게 도망갈 곳이 있기나 하겠습니까?”

진왕은 웃으며 이목서를 향해 공수했다.

“스승님, 부디 몸조심하십시오!”

이목서가 눈을 깜빡이자 그 안에 언뜻 물기가 비쳤다. 그는 살짝 떨리는 손으로 공수하며 대답했다.

“전하께서도 부디 조심하십시오!”

진왕은 친히 앞으로 걸어가 이목서를 부축해 마차에 타도록 도왔다. 떠난 마차와 시위들이 더는 보이지 않자, 그는 왔을 때처럼 조용히 몸을 돌려 성안으로 향했다.

그간의 시간은 오왕에게 있어 입이 바짝 마르는 듯한 초조한 시간이었다. 이목서의 실종을 알게 된 후로는 더욱 그랬다. 특히 진왕부의 고수들이 한꺼번에 종적을 감췄기 때문이기도 했다.

진왕은 이리저리 많은 일을 벌이면서 오왕의 측근들을 좌불안석으로 만들었다. 상대방의 행동에 연달아 자극받을 때 자신은 그것에 아무 반응도 하지 못한다면, 그 상황이 초조하게 느껴지기 마련이었다.

몇몇 나이 든 대신들이 오왕에게 침착할 것을 권하였고, 오왕도 그래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시기가 너무나 절묘했다.

오왕이 자세히 생각해보니, 일련의 일들은 태감 한백산이 독주를 받은 후에 일어난 변화였다.

그리하여 오왕 일파의 심복들은, 줄곧 조용하던 진왕이 이렇게 바삐 움직이는 것은 분명 어떤 원인으로 인해 진왕에게 유리하게 형세가 변했다는 뜻임을 마침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오왕이 황궁에 심어둔 자들이 있는 것처럼, 진왕이라고 하여 그런 자들이 없겠는가? 그러니 진왕이 오왕 자신은 모르는 어떤 소식을 알고 있다 해도 놀랍지 않았다.

게다가 진왕은 사실 자신에 비해 크게 우세한 부분이 있었는데, 바로 임 귀비를 생모로 두었다는 점이었다. 오왕의 생모인 장(張) 황후는 일찍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왕이 황궁에 대한 소식을 얻는 통로가 임 귀비일 확률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정보의 신속함이 굉장히 중요해진다. 그래서 오왕은 수하들을 모두 풀어 이 상황과 관련된 모든 소식을 알아 오도록 지시했다. 오왕의 심복들도 각자의 사람들을 풀어 진왕부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았다. 그러나 황궁 안의 소식은 그저 밖에서 가만히 지켜볼 따름이었다.

그동안 그들은 진왕부의 고수 두엇을 사로잡았으나, 오왕의 수하들이 수차례 심문해도 그들의 입을 열 수는 없었다.

9월 23일은 요즈음 그랬듯이 흐렸다.

오왕은 응접실에 앉아 흰 천으로 보검(寶劍)의 칼날을 닦고 있었다. 그의 곁에는 심복인 두 명의 문관과 두 명의 무관 모두가 앉아 있었다. 서둘러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이들은 오늘 밤 오왕부에서 연회가 열릴 예정이라는 소식을 알게 되었다.

그때 왕부의 하인 하나가 다급히 걸어 들어왔다.

“전하, 그자가 입을 열었습니다. 진왕이 그들에게 정착할 만한 은자를 나눠주고, 보통 백성들처럼 변장한 후 몸을 숨기고 있으라 명했다 합니다. 그리고 만약 올해가 가기 전에 그들을 부르지 않는다면, 은자를 가지고 도성을 떠나라 했다 합니다…….”

그러자 오왕은 눈썹을 찌푸리며 고개를 들어 물었다.

“도성을 떠나 무얼 하라고?”

하인은 오왕의 안색을 살피며 잠시 망설이다가 이렇게 대답했다.

“도성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 가정을 꾸리라는 뜻인 걸로 압니다. 또한, 다시는 조정의 일에 연루되지 말라고 말했다 합니다…….”

“뭐라?”

오왕은 보검을 닦던 손을 잠시 멈추고 좌우를 둘러보았다. 그의 곁에 앉은 네 사람은 모두 심각한 얼굴이었다.

“이목서의 소식은 알아냈느냐?”

“물어보았습니다만, 이목서는 그자가 잡혀 온 후에 사라진 것이라 그자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곁에 앉아 있던 관리가 오랫동안 생각에 잠겨 있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전하, 보아하니 진왕은 자신이 황위와 연이 없다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수하들을 모두 내보내다니요?”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무관 하나가 즉시 반박했다.

“아닙니다! 분명 올해 전에 부를 수도 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 뜻은 진왕이 현재 무언가 거사를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우리가 모르는 어떤 일에 대해 알고 있는 겁니다.”

“맞습니다. 하필 중양절이 지나자마자 이런 행동을 취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만약 정말로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라면, 어찌 그전에는 아무런 동태가 없었단 말입니까? 수하들도 아직 도성에 남겨두지 않았습니까? 또한, 어찌하여 오왕 전하는 뵈러 오지 않는단 말입니까?”

이 말에는 상서성의 나이 든 문관도 반박할 수 없었다.

“전하, 성안 금군의 병기창(兵器廠)을 점검해 보았는데, 망가진 몇몇 병기들을 제외하면 수량은 조금도 모자라지 않았습니다.”

상서성의 문관은 이 말을 듣고 그 무관을 노려보았다.

“대체 누가 그런 일을 하라고 시켰습니까?”

“접니다.”

오왕이 먼저 나서서 대답했다.

“너무 심려치 마십시오, 장 대인. 주(周) 대인의 큰형님 되는 분께서 경기부 금군의 총참군사(總參軍師)이십니다. 병기창을 조사한 것도 평소에 하던 일과와 비슷합니다. 집으로 돌아온 후 주 대인 형제간에 나눈 이야기일 뿐이니, 누구도 이 일은 알지 못할 겁니다.”

장 대인은 입을 몇 번 달싹이다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전하! 전하! 이목서가 나타났습니다!”

이때 오왕부의 하인 하나가 밖에서부터 뛰어 들어와 이렇게 고했다. 그의 말을 들은 오왕은 단번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디에 있다더냐?”

이목서는 늙은 여우 같은 자였다. 그의 재능이라면 사실 높은 관직에도 오를 수 있었다. 그러나 진왕을 더욱 가까이서 보좌하기 위해, 일개 황자소사의 직위를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목서의 동태(動態)는 진왕의 동태라고 봐도 좋았다.

하인은 즉시 방금 들어온 소식을 보고했다.

“약 한 시진(*2시간) 전에 진왕부 밖에 나타났다 합니다. 어떤 행렬도 따르지 않는 보통의 마차를 타고 도착했고, 현재는 이미 왕부 안으로 들어간 상태입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진왕과 이목서는 함께 마차를 타고 입궁하였습니다. 아무래도 폐하께서 입궁하라는 명을 내린 듯합니다.”

이 소식을 듣고 두 무관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또 무슨 소식이 있느냐?”

오왕은 소매 안에서 주먹을 꽉 쥐며, 깊게 잠긴 목소리로 이렇게 물었다.

“그 외에는 아직 없습니다!”

하인은 응접실 안을 잠시 둘러보다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오왕은 깊은 한숨을 내쉰 다음 손을 저어 그를 물렸다.

“나가 보아라.”

하인이 떠나자 오왕은 응접실 안의 네 사람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다시 상석으로 돌아가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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