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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가기연-269화 (269/892)

269화. 하늘의 뜻인가, 인화(人禍)인가?

입궁하는 마차 안에서 진왕은 복잡한 얼굴로 이목서를 향해 물었다.

“스승님, 어찌 다시 돌아오셨습니까?”

그러자 이목서는 오히려 홀가분한 듯한 얼굴로 이렇게 대답했다.

“가족들이 안전하게 자리 잡은 것을 확인하고 저는 중간에 돌아왔습니다. 어차피 저는 나이가 있어, 본래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자입니다. 그러니 두려울 게 뭐 있겠습니까? 진왕 전하와 함께 있다가 결과가 어찌 될지 지켜보는 게 더 낫지요.”

그러자 진왕은 힘주어 스승의 손을 잡은 뒤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마차가 황궁 안으로 들어섰고, 얼마 후 그들은 용안을 뵙기 위해 함께 어서방으로 들어갔다. 이는 사실 황제의 분부였다.

책상 뒤에 앉아 있던 황제는 오랜만에 정신이 또렷한 얼굴로 무언가 글을 적고 있었다.

진왕과 이목서는 그것을 보고 서로를 잠시 마주 본 뒤, 함께 허리를 숙이며 예를 올렸다.

“신 이목서, 폐하를 뵙습니다!”

“소자 양호, 부황을 뵙습니다!”

황제는 고개를 들어 감정을 읽을 수 없는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두 사람은 긴장으로 인해 등허리가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곧이어 황제는 하하 하고 웃음을 터뜨리더니 다시 책상 위로 고개를 숙여 글자를 써 내려갔다.

무언가를 다 쓴 후, 황제는 곁에 서 있던 이 공공을 쳐다보았다. 이에 그는 황제의 뜻을 읽고, 옥새를 가져와 노란 비단 위에 그것을 내리눌렀다.

“호야, 그간 이것을 손에 넣기 위해 수고가 많았구나!”

진왕 양호는 공수하며 허리를 굽힌 자세 그대로를 유지하다가, 그 말을 들은 뒤에 손바닥에서 땀이 치솟는 것을 느꼈다.

“소, 소자…….”

“되었다, 가져가거라.”

원덕제가 태감을 향해 눈짓하자, 태감은 책상 위에서 끈으로 묶여 돌돌 말린 노란 비단을 들고 진왕에게 가서 두 손으로 공손히 건넸다.

진왕은 부황과 태감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조심스럽게 성지(聖旨)를 받들었다.

종이 위에 적힌 내용을 본 그는 자신이 실망해야 할지 기뻐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어찌 그러느냐? 기쁘지 않은 것이냐?”

“그럴 리가요……. 소자, 무척 기쁘옵니다…….”

“오, 그럼 잘되었구나. 이제 가보거라. 네가 걱정하던 것이 그것이 아니냐? 나갈 때 많이 웃거라, 알겠느냐?”

황제는 웃으며 손짓으로 그들을 내보냈다.

진왕과 이목서는 서로를 잠시 바라본 후, 숨을 깊게 들이마신 뒤 다시 한번 예를 올렸다.

“소자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소신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진왕과 이목서가 나가자, 원덕제는 웃는 표정을 거두고서 손안에 쥐고 있던 족제비 털로 만든 붓을 땅바닥으로 던졌다.

그러자 붓대의 상아(象牙)가 땅바닥과 부딪히며 둔탁한 소리를 냈다.

쿠당탕!

그 소리는 마치 바닥이 아니라 태감의 심장을 두드리는 듯하여, 태감은 간담이 서늘해졌다.

“이사철(李思哲).”

“예, 폐하!”

황제를 고개를 돌려 태감을 잠시 쳐다본 후 다시 바닥에 떨어진 붓을 바라보았다.

“호가 이목서에게 정말 지극정성이더군. 이목서도 호를 위해서 죽음까지 불사할 정도로 충심이 깊지……. 말해 보게, 호가 이렇게까지 노력을 하는데 짐이 너무 냉정하다고 생각하는가?”

“소인이 어찌 감히 그런 생각을 품겠습니까? 영명하신 폐하께서 생각하시는 바가 있을 것입니다!”

“하하! 하하하하……. 그렇지, 물론 짐이 생각하는 바가 있겠지. 그리고 그것이 바로 선연(仙緣)을 얻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지. 보아하니 내가 내린 결정들이 썩 옳지는 않은 듯하군…….”

태감은 황제의 말에 놀라 바닥에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폐하! 소인이 조금 전 한 말은 맹세코 그런 뜻이 아니었습니다!”

황제는 바닥에 엎드린 태감을 향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몰래 소식을 퍼뜨려라. 방금 짐이 진왕에게 준 성지가 황위를 진왕에게 물려준다는 내용의 조서라고 말이다. 참, 그자들이 일단 소식을 내보내고 나면 모두 처리해라.”

태감은 침을 꿀꺽 삼킨 다음 명을 받들고 떠났다.

그 시각 진왕과 이목서는 성지를 손에 들고 궁 안을 걷고 있었다.

부황께서 웃으라 하셨으니 진왕은 돌아가는 길 위에서 내내 활짝 미소 짓고 있었다. 그리고 그 웃음은 어쩌면 진심일 수도 있었다.

비록 성지에 적힌 내용은 오왕이 제위를 잇고 나면 진왕의 목숨을 보호해주는 용도였지만, 어서방을 나선 뒤 부황이 했던 말을 떠올려 보니 아무래도 무언가 이상했다. 심지어 황제의 이런 조치로 인해 그는 원래 준비해놨던 몇 가지 일을 실행에 옮기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오왕부에서 오왕 양경은 진왕이 또 입궁했다는 소식을 듣고 기분이 언짢았지만 이로 인해 냉정함을 잃을 정도는 아니었다.

오왕부에 일찍이 와있던 대신 네 사람을 제외하고 잠시 후 특별한 손님이 도착할 예정이었다.

왕부의 대청 안에서 그들은 이목서와 진왕이 입궁한 일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오왕은 불편한 심기를 억누른 채, 그들이 의견을 나누고 서로 반박하기도 하는 것을 듣고 있었다.

이때 시종 하나가 밖에서부터 뛰어 들어오며 소리쳤다. 그 소리에 대청에 있던 모든 이들이 깜짝 놀랐다.

“전하, 황궁 안에서 급보를 몇 개 전해왔습니다!”

최근의 형세 때문에 오왕은 심각한 일이 아니라면 황궁 안의 자기 세력들과 연락을 삼가고 있었다.

오왕은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서신 몇 장을 친히 받아들었다.

그 안에 적힌 내용을 보던 오왕의 안색이 점차 창백해졌고, 그는 서신을 다 읽은 후에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읽은 서신이 모든 대신의 손에 넘어간 후에는 대청 전체가 적막에 휩싸였다.

“전, 전하. 그것이 정말 전위조서(*황위를 물려준다는 내용의 조서)인지는…… 아직…….”

“장 대인……. 셋째가 어서방에서 나온 후 계속 웃는 얼굴이었다 하오…….”

오왕은 손톱이 손바닥을 찌르고 들어갈 정도로 주먹을 힘주어 쥐었다. 그는 초점 없는 눈으로 바깥의 화원을 바라보았다.

그때 하인 하나가 선풍도골(仙風道骨)의 분위기가 나는 긴 수염의 노인을 이끌고 들어왔다.

노인은 방 안에 들어선 후, 오왕과 대신들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심상치 않은 긴장감을 느꼈다. 그러나 해야 하는 대로 착실히 오왕에게 예를 올렸다.

“노부(老夫) 두장생(杜長生), 오왕 전하를 뵙습니다.”

이자는 도성에 아직 남아있는 소수의 천사(*天師: 사람의 얼굴을 보고 그의 운명, 성격, 수명 따위를 판단하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 중 하나였다. 또한, 적지 않은 황족과 귀족들에게 정말로 능력이 있다고 인정받은 자였다. 요즘 황제는 더는 불로장생이나 선단(仙丹)에 빠져있지 않았기 때문에 천사들은 그간 냉대를 받고 있었다.

“본왕이 듣기로 두 천사(天師)께서는 사람의 기운을 살피고 화복(禍福)을 읽을 수 있다던데, 맞소?”

“흠……. 제가 기운을 조금 볼 수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와 같은 정도의 도행(道行)은 진정한 고인에는 비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게다가 기운은 항상 변화하니, 누군가의 기운은 그때가 어떤 시기이냐에 따라서도 다릅니다…….”

줄곧 화원을 쳐다보고 있던 오왕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그럼 천사(天師)께서 보기에 본왕의 기운은 어떻소?”

곧이어 두장생은 오왕을 바라보며 법력을 이용해 그의 기운을 관찰했다. 황족 특유의 자미(紫薇)의 기운에 회색 안개가 끼어있었다. 이에 기운을 명확히 읽기가 어려웠고, 천둥과 벼락같은 것이 그 위로 수시로 몰아쳤다.

“전하께서는 지금…… 마음이 심란하시군요. 전하를 뒤덮은 자미의 기운이 무척 혼란스럽습니다…….”

“자미의 기운이라니?”

“제왕별의 기운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 기운을 가진 자는 제왕이 될 수 있는 운명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자 오왕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물었다.

“그렇다면 두 천사께서는 진왕을 본 적이 있소? 그의 기운은 어떠했소?”

“그…….”

두장생은 오왕의 싸늘한 눈빛을 보고는 긴장한 모습으로 대답했다.

“진왕 전하께서도 황자이시니, 자미의 기운을 갖고 계십니다. 하지만 오왕 전하만큼 왕성하지는 않으십니다!”

“하하, 그렇습니까?”

오왕은 웃으며 탁자로 걸어가 그 위에 놓여있던 보검을 집어 들었다. 그의 동작을 지켜보던 두장생은 깜짝 놀라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다행히 오왕은 손을 내저어 하인에게 두장생을 내보내게 했다.

두장생이 떠나자 자리에 있던 노신(老臣)은 근심 가득한 목소리로 운을 띄웠다.

오왕은 몸을 돌려 대청 밖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잠시 눈을 감고 호흡을 몇 번 내쉬던 그는 돌연 눈을 번쩍 떴다. 혼란스럽던 사고는 순식간에 정리되었고 그는 곧 이를 갈며 이렇게 명했다.

“각 부(府)의 사사(*死士: 죽음을 각오한 군사)들을 보내 황궁에서 나오는 진왕을 죽여라! 그와 동시에, 장건영(章建營), 남군(南軍), 북현영(北玄營)에 알려 출병하도록 명해라. 우리는 황궁으로 간다!”

오왕부의 후원에서 하인은 두장생을 데리고 연회가 열리는 곳으로 향했다. 문이나 교차로를 지날 때마다 왕부의 하인들이 손을 뻗어 정중히 그를 안내했다.

“두 천사, 이쪽으로 오시지요.”

“그러지요!”

복도를 걷고 화원을 지나 정자와 누각 사이를 얼마간 걷자, 오늘 밤 연회가 열리는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는 하인들이 모여 연회 준비를 하고 있었고, 그를 제외한 다른 손님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저…… 방금 오왕 전하와 함께 계셨던 대인들은 오지 않으십니까?”

두장생은 그와 가까이 있던 하인에게 이렇게 물었다.

“천사께 아룁니다. 어쩌면 전하와 그분들께서 아직 나누실 이야기가 남은 것 같습니다. 식탁에 놓인 다과를 좀 드시면서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막 이런 말을 하던 때에, 다른 하인이 저 앞에서 다급히 뛰어왔다. 그 후 연회장소 밖에 서 있던 두장생에게 예를 올렸다.

“두 천사, 오왕 전하께서 분부하시기를, 천사와 손님들께서 먼저 식사를 들라 명하셨습니다. 전하께서는 오늘 일이 생겨 오지 못하실 듯합니다.”

“그럼, 다른 손님들은 어디 계십니까?”

“금방 오실 겁니다. 먼저 자리에 앉으시지요!”

두장생은 미소를 얼굴에 드리우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말을 전한 하인이 떠난 후, 두장생은 무심코 왕부의 대전(大殿)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위로 새빨간 불길이 넘실거리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는 옷깃을 펄럭이며 몸 안쪽에서 퍼지는 습한 열기를 내보내려 했다.

‘아이고, 세상에! 하필 오늘 이 시각에 오다니……. 하지만 사천감에서 발행한 황력(黃歷)에는 오늘이 대길(大吉)한 날이라 적혀 있었는데…… 되었다, 어서 떠나지 않으면 큰일에 휘말리겠어!’

두장생은 옷 아래로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지만, 얼굴에는 조금도 티를 내지 않고서 웃는 얼굴로 하인에게 물었다.

“여기 근처에 측간이 어디에 있습니까?”

“이 건물 뒤편 좌측의 복도 끝에 있습니다. 소인이 모시겠습니다.”

“아아, 아닙니다. 제가 혼자 갔다가 오겠습니다. 바쁘실 텐데 일 보십시오!”

두장생은 소변을 본다는 핑계로 연회장을 나와 복도로 접어들었다. 측간이 있는 곳에 도착하자 그는 주변에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다음, 품 안에서 주머니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조심스럽게 사람의 형체처럼 오려진 자그마한 종이를 꺼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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