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0화. 경기부의 소란스러운 밤
“휴우…….”
두장생은 이렇게 한숨을 쉰 후 검지를 이로 깨물어 누런 종이 위에 피를 한 방울 떨어뜨렸다.
“역사(力士) 소환!”
사람의 형체를 갖춘 누런 종이가 바닥에 떨어지자, 누런 연기가 퍼져나가면서 종이가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인영(人影) 하나가 납작한 모습에서 점차 근육으로 가득한 체형으로 변해갔다. 그 모습은 사람과 완전히 같지는 않았지만, 멀리서 대충 보면 정말 사람과 비슷했다. 자세히 관찰해보면 잡화점에서 파는 정교한 종이 인형 같기도 했다.
“어서, 나를 여기서 내보내렴!”
두 천사는 다급한 목소리로 이렇게 명했고, 역사는 몸을 굽혀 그가 자신의 등에 오를 수 있도록 했다. 두 천사가 올라타자 역사는 천천히 몸을 일으킨 후 담장을 타고 올랐다.
“어어, 조심해. 천천히……. 어이쿠!”
서두르며 담장을 넘어간 그는 뛰어내리던 순간 땅에 미끄러져 넘어졌다. 다행히 그간 영기를 흡수해왔던 몸이라 튼튼했기 때문에, 담장에서 떨어졌다 해도 그리 아프지는 않았다.
자신이 뛰어내린 구석진 골목에서 두장생은 떨어져 내리는 누런 종이를 받아 다급히 떠나려 했지만, 어쩐 일인지 종이가 이쪽으로 날아오지 않았다.
‘이런, 정원 안에 떨어진 것은 아니겠지? 이를 어쩐담!’
너무나 중요한 물건이었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도 그는 담장을 넘어가기로 했다. 그가 막 또 다른 종이를 꺼내 들던 순간, 그는 기이한 종이 새가 담장 위에 올라앉은 것을 보았다. 그리고 새의 머리가 있는 위치에는 그의 누런 종이가 끼워져 있었다.
‘어느 집 장난감이지? 종이가 날아오던 순간 맞물린 것인가?’
두장생은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다시 좌우를 살핀 뒤, 기다란 나뭇가지를 주워 들고 종이새와 자신의 종이를 끌어 내리려 했다. 나뭇가지가 막 종이 새에 닿으려던 순간, 담장 위에 있던 그것은 돌연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올랐다. 그러자 이 장면을 본 두장생은 깜짝 놀랐다.
“종이새가 날 수도 있다니? 어어, 기다려! 그거 내 거야!”
두장생은 다급한 마음에 종이 새를 따라 더욱 구석진 곳을 향해 뛰어갔다. 기다란 골목을 지나던 순간, 그는 돌연 무언가를 깨닫고 발걸음을 멈췄다.
‘세상에 날 줄 아는 종이새가 어디 있단 말인가? 설마 내가 정괴(精怪)를 만난 것인가? 아니면 진정한 고인? 쫓아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렇게 생각하던 때에 그는 종이새가 한쪽의 담장에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부리와 목 사이에 자신의 종이를 끼고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비록 종이 새에 눈은 달려있지 않았지만, 두장생은 그것이 자신을 바라본다고 느꼈다.
‘느낌이 심상치 않아. 아무래도 도망가는 게 낫겠어.’
그가 막 몸을 돌리려던 순간, 골목 다른 쪽 끝에서 청색 장포를 입은 남자가 걸어 나왔다. 그러자 종이 새가 그쪽을 향해 날아가더니, 그자의 어깨 위에 내려앉았다.
“두 천사께서 쓰신 술법이 정말 신묘하네요. 제 성은 계 씨이고, 천사께서 괜찮으시다면 차를 한잔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어떠세요?”
두장생은 그를 자세히 관찰하며 그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런 시기와 상황에 나타난 것도 그렇고, 어떻게 보아도 수상했다. 게다가 상대방의 두 눈은 멀어 있었고, 저 이상한 종이 새도 저자의 어깨 위에 앉아 있지 않은가?
“그…… 제가 급한 일이 있어서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습니다…….”
“아, 그럼 편한 대로 하세요. 그건 천사께 돌려 드리렴.”
계연은 두장생에게 이렇게 대답한 뒤, 나머지 말은 종이학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나 종이학은 누런 종이를 부리에 낀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두장생에게 그것을 돌려주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음? 내 말도 안 듣는 것이냐?”
종이학은 그제야 날개를 몇 번 움직이더니 다시 공중으로 날아올랐고, 두장생의 머리 위로 날아가 누런 종이를 아래로 떨어뜨렸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볼게요. 실례가 많았습니다.”
계연은 두장생이 다시 누런 종이를 받아들자, 이렇게 인사하며 공수한 다음 몸을 돌렸다.
“선생님,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두장생은 거의 본능적으로 그를 잡아 세웠다. 그리고 잠시 망설이다가 다급히 계연을 향해 뛰어갔다.
두 사람은 이야기를 나누며 영녕가에 있던 한 찻집으로 향했다.
계연은 고개를 돌려 멀리 오왕부에서 솟구치는 기운을 살폈다. 황자가 저렇게나 음산한 살기를 내뿜다니 의외였다. 게다가 그 기운은 황성(皇城)과도 연관되어 있었다. 이에 계연은 탄식하며 이렇게 말했다.
“오늘 밤은 평온하지 못하겠네요!”
두장생은 마침 계연을 보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고개를 돌리자 두 눈을 또렷이 볼 수 있었다. 계연의 동공은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잠잠한 동시에 끝을 알 수 없이 깊었고, 어떤 그림자도 그 안에 비치지 않았다.
“선생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오왕부인지요?”
“하하, 그런 셈이죠.”
장건영 안에서는 오왕부에서 온 고수가 은밀히 통령(統領)의 거처로 숨어들어 오왕의 명령을 전달했다.
“뭐라 했느냐?”
마침 식사를 하고 있던 전균극은 그자의 말을 듣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전하에서 군사를 이끌고 황궁으로 진격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전 통령, 공신(功臣)이 될 기회는 바로 오늘 밤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자 전균극은 잠시 눈을 감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 그 눈에는 결연한 빛이 떠올라 있었다.
“이미 일이 이렇게 되었다면, 퇴로는 없겠지! 좋다, 어서 가자!”
쿵쿵쿵……!
군영 안에서는 북소리가 하늘을 뒤덮었다.
“서둘러라, 어서 갑옷을 갖추고 무기를 챙겨라! 병사들을 모두 소집해라!”
장건영에서는 곳곳에 병사들을 재촉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잠시 후 군사들이 움직이는 가지런한 발걸음 소리와 함께 갑옷과 무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모두 서둘러라, 궁노수(弓弩手)들은 화살을 넉넉히 챙겨라!”
“황궁에 정변이 일어나 어느 간악한 자가 폐하를 겁박하고 있다 한다! 그러니 우리는 오왕 전하의 명을 따라, 서둘러 입궁하여 황제 폐하를 구해내야 한다! 서둘러라! 이는 천하의 대업을 위한 일이다!”
이와 비슷한 격려가 몇 차례 더 이어지자, 병사들은 모두 잔뜩 긴장한 상태가 되었다.
하늘이 점차 어두워지기 시작한 시각에는 장건영뿐만 아니라, 북현영과 남군에서도 병사들이 소집되었다.
잠시 후 오왕은 검을 손에 쥐고서 직접 무관들과 왕부의 고수들을 이끌고 황궁으로 향했다.
하늘에는 석양이 진 후의 여명이 조금 남아있었다. 황궁 앞에는 커다란 등롱이 막 불을 밝힌 시각이었다. 황궁을 수호하는 대내금군(大內禁軍)들은 그때 수많은 병사가 황성에 들어서는 것을 발견했는데, 맨 앞에서 그들을 이끄는 자는 다름 아닌 오왕이었다.
“멈추십시오! 오왕 전하, 이곳은 황궁입니다. 이렇게 많은 병사를 이끌고 오다니, 반역이라도 하실 셈입니까?”
수문장(守門將)은 두 손으로 검을 받쳐 들고서 분노한 기색으로 이렇게 물었다. 다른 이는 이미 소식을 전하러 안으로 뛰어 들어간 상태였다.
“어느 간악한 놈이 부황을 겁박하여 대정국 강산을 혼란에 밀어 넣으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본왕이 직접 왔소. 앞길을 막는 자는 모두 죽여라!”
챙! 챙! 챙!
이미 여기까지 온 마당에 오왕은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을 생각이 없었다. 그가 손을 한번 휘두르자, 후방에 있던 병사들이 검을 뽑아 들고 황궁을 향해 달려갔다. 곧이어 양측은 전투 태세에 돌입했다.
이 시각, 진왕부로 이어지는 기다란 대로 위에서 진왕의 마차는 어느새 적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진왕마저 직접 손에 검을 들고 휘두르는 중이었다.
주위는 온통 무공이 뛰어난 사사들이었는데, 싸움이 격렬하게 오가는 가운데에도 마차 주위로 다가서려는 움직임이 끊이지 않았다. 진왕부의 시위들은 은밀히 숨어 있는 적들을 대비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많은 이들을 상대하게 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었다. 그들에 비해 적들의 수가 너무나 많았다.
푹!
살이 뚫리는 소리와 함께 진왕 가까이에 있던 자객 하나가 목이 베여 죽었다. 자객을 공격한 시위는 채 숨을 돌리기도 전에, 돌연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전하, 조심하십시오!”
슈수숫!
수십 개의 화살이 하늘을 가르고 날아왔다.
쉐에엑……!
피슛! 피슛!
최소한 세 명의 호위가 화살을 맞고 죽었고, 진왕조차 왼팔에 화살을 맞았다.
귀가 찢어지는 듯한 말 울음소리와 함께, 질주하는 말들에게 묶여있는 마차는 이리저리 위태롭게 흔들렸다.
“스승님!”
“전하께서 상처를 입으셨다!”
“전하를 호위하라!”
“마차를 막아라! 스승님께서 아직 안에 계신다!”
“황노(*黃弩: 중국 한(漢)나라 때 만들어진 기병을 대상으로 한 쇠뇌)다! 전하, 어서 가십시오. 금군이 온 것인지도 모릅니다!”
진왕은 온몸에 땀을 흘리면서, 상처의 고통을 참고 이를 꽉 깨물었다.
“마차를 막아 세워라! 당황하지 마라! 저들은 금군이나 무기를 갖춘 정식 병사들이 아니다. 병기고에서 무기를 빼돌린 것뿐이다! 어서 마차를 세워라!”
시위 몇 명이 진왕과 함께 마차가 달리는 방향을 따라 질주했고, 그들을 호위하는 열 몇 명의 고수들이 진왕을 따라오는 적들을 상대했다.
상처를 입은 말들이 미친 것처럼 날뛰자, 마차와 함께 고꾸라질 것 같았다. 이에 진왕부의 고수 몇몇이 경공을 사용해 공중을 날아올라 마차 위에 내려앉았다.
황노의 화살이 공중을 가르자, 진왕을 보호하던 시위 몇몇이 땅으로 고꾸라졌다. 점점 더 많은 사사가 진왕 일행을 에워싸는 중이었다. 비록 진왕부 군사들의 무공 수준이 좀 더 높긴 했지만, 이렇게 적은 인원으로 사방의 적들을 상대하기는 어려운 법이었다.
“우리 쪽 사람들은? 언제쯤 온다더냐?”
“며칠 전에 성안으로 흩어졌던 이들이 모두 오고 있을 겁니다!”
“어서 죽여라! 죽여……. 경기부 관아로 가자!”
자정이 된 시각, 온몸에 피를 뒤집어쓴 오왕은 군사들을 이끌고 어서방을 포위했다. 이곳을 수비하는 것은 고작 2백 명의 금군들과 열 몇 명의 어전 시위들뿐이었다.
그때 원덕제는 어서방 안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한밤중에 전투가 벌어졌다는 건 그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심지어 궁중에 설치된 방어선 몇 개가 무너지기 전, 진왕이 궁 밖에서 수많은 자객에게 공격을 당하고 있다는 보고도 받아 들었다. 정탐꾼에 의하면 진왕은 도망쳐서 도성의 관아로 들어갔다고 했다.
“폐하……. 만약, 만약에 전 통령이 정말…….”
태감이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황제가 이미 계획을 세워둔 것은 알지만, 이런 상황이 되자 그는 더는 긴장감을 감출 수 없었다.
황제는 그를 보며 손에 든 책을 내려놓았다.
“그럼 저 아이에게 이 천하를 모두 가지라 하지.”
황제는 피로한 몸을 이끌고 연탑에서 내려왔다.
“가자, 가서 짐의 아들을 만나보자꾸나, 이사철.”
“전위 조서도 가지고 오너라.”
태감은 잠시 망설이다가 이렇게 물었다.
“어느 것을 가져올까요?”
이에 원덕제는 하하, 웃음을 터뜨리며 이렇게 말했다.
“진왕의 것을 가져와라.”
태감은 천천히 책장으로 걸어가 침향목(沈香木)으로 된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는 두루마리로 된 조서 두 개가 들어 있었는데, 그는 진왕의 것을 가져가기 위해 조서를 펼쳐 내용을 읽었다.
두 개의 조서는 각각 오왕과 진왕을 위한 것이었다. 그 위에 적힌 일자 또한 모두 9월 초하룻날이었는데, 그날은 바로 윤재성이 용안을 뵈러 도성에 든 그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