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271화 (271/892)

271화. 두 천사(天師)

자정이 된 시각, 황성(皇城)에 있던 두 황자는 모두 참담한 심정이었다.

오왕은 병사를 이끌고 어서방 밖에서 자신의 부황과 대치하는 중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태감 이사철은 성지를 손에 들고, 제위를 진왕에게 물려준다는 조서를 낭독했다.

그 뒤에 벌어진 일은 오왕이 바라던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그가 이끌던 세 개의 군대 중, 장건영과 북현영의 군중통사(軍中統師)들은 태감이 조서를 읽자마자 곧바로 창을 거꾸로 들고 오왕이 모반을 일으켰다 소리치며 자신들의 군대로 하여금 중간에 있던 남군을 에워쌌다.

또 한 번의 격전이 벌어지고, 남군 통령(統領)이 죽임을 당하자 자신들이 ‘정의로운’ 쪽이 아닌 것을 알게 된 남군 병사들의 사기가 땅에 떨어졌다. 그들은 차례로 무기를 땅에 던지며 투항했고, 오왕부의 고수들이 거의 모두 죽고 난 다음 얼굴이 흙빛이 된 오왕도 곧 생포되었다.

그 시각 진왕은 이미 경기부 관아로 도망쳐 추격에서 벗어난 상태였다. 얼마 되지 않아 그는 오왕이 거병(擧兵)하여 황궁으로 진격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사실 진왕은 얼마 전 부황이 한백산을 죽였을 때, 그자뿐만 아니라 오왕과 관련된 자들을 모두 처리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장건영, 북현영, 남군 세 갈래의 군대들이 모두 오왕의 명령에 따라 황궁에 쳐들어갔다는 사실에 몹시 놀랐다.

이런 상황이라면 황궁 안의 수비 병력으로는 오왕의 세력을 당해내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진왕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화복을 점칠 수 없어, 그저 자신의 부황이 무언가 준비해 놓은 게 있었기를 바랐다.

그렇지 않아도 근심 어린 진왕을 더욱 슬픔에 잠기게 만든 것은 그의 스승이었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그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었던 소사 이목서가 자객들이 날린 화살에 의해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경기부 관아 근처에서 그 안으로 들어가려 길을 열던 도중, 적들이 날린 화살에 맞았던 것이다.

“전하, 목이라도 좀 축이십시오!”

그때 시위 하나가 열기가 솟아오르는 차를 들고 관아의 대청으로 들어왔다. 이목서의 시신 옆에 앉아 있던 진왕은 고개를 저었다.

사내로 태어나 쉬이 눈물을 흘리면 안 된다는 말이 있지만, 그것은 아직 그만큼 슬픈 일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성년이 된 이후로, 진왕은 거의 모든 일에 대해 희로애락을 잘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이목서의 죽음 앞에서 그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전하, 어서 방도를 찾아 몸을 숨겨야 합니다. 만일 오왕의 일이 성공하면, 결코 저희를 살려 보내지 않을 테니 말입니다.”

“숨자고? 하……!”

진왕은 무심결에 몸을 움직이다가 상처를 건드려 눈썹을 찡그렸다. 옆에 누운 스승의 시신을 보던 그는 다시 충심 깊은 시위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숨을 필요 없다. 본왕은 아직 자존심과 오기를 잃지 않았고, 도망치는 것에도 흥미가 없다. 천하를 얻으려 싸움에 뛰어든 이는, 지더라도 그 결과를 감내해야 한다! 만약 황궁에서 온 소식이 좋지 않다면, 너희는 나를 큰형님께 직접 압송해라.”

이렇게 말한 진왕은 자조하듯 한마디 더했다.

“다만 형님이 이렇게 빨리 손을 쓸 줄은 몰랐구나. 내가 왕부로 돌아가는 것조차 기다리지 않다니…… 원래는 형님의 심복들이 형님을 이틀 정도는 더 붙잡아 둘 수 있을 거라 여겼는데 말이다. 소식도 빠르고 결정을 내리는 것도 과감하군.”

진왕의 목소리에는 깊은 슬픔이 묻어났다. 그때 이목서의 영혼은 사실 자신의 시신 옆에 서 있었다. 그는 안타까운 눈길로 온몸에 상처가 가득한 진왕을 바라보았다.

이미 진왕을 몇 차례나 불렀으나, 상대는 그의 말이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이제 그들은 정말로 이승과 저승으로 갈라진 것이다.

‘죽은 후에는 정말로 귀신이 되는 것이었구나.’

그가 마침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한쪽에서 음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목서, 당신의 육체는 이미 죽었으니 이제 우리를 따라오시오.”

이목서가 몸을 돌려 바라보니, 어느새 검은 장포에 높은 모자를 쓴 관리 몇몇이 멀지 않은 곳에 서 있었다. 그들의 얼굴만 보아도 이미 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미 죽었다고는 하지만 이목서는 여전히 두려움을 느끼며 이렇게 물었다.

“여러분들은 누구십니까?”

“우리는 경기부 성황신 밑에서 일하는 저승의 관리들이오. 명을 받아 당신을 저승으로 데려가려고 왔소이다. 이목서, 더 지체할 시간이 없으니 우리를 따라오시오. 속세의 일은 이제 당신과 무관하오.”

그들은 이렇게 말하면서 음기(陰氣)를 이용해 이목서를 끌어당겼다. 이에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된 그는 어쩔 수 없이 그들을 따라 밖으로 향했다.

“잠시만!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때 이목서가 그들에게 잠시 멈춰달라고 간청했다. 그러자 그들도 이목서를 강제로 데려가려고 하지 않았다. 이목서의 영혼은 낙담한 진왕의 앞으로 걸어가 읍한 뒤 허리를 숙이며 정중한 인사를 올렸다.

이목서가 예를 마치자, 저승의 관리들은 다시 그를 데리고 그곳을 떠났다.

그들은 관아를 떠나 깊은 밤 도성의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귀신같은 속도’라는 말처럼, 이때 이목서는 그들이 걷는 속도가 일반 마차보다도 빠른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실례지만 몇 가지만 좀 묻겠습니다. 오늘 밤 경기부에 적지 않은 사람이 죽었겠지요?”

“그렇소. 이쪽에도 많은 이들이 죽었지만, 황궁 쪽은 더 많은 이들이 죽었소.”

“그, 황궁 쪽의 일에 대해 혹시 결과가 어찌 되었는지 아십니까?”

이목서가 결국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이렇게 물었다.

그러자 그를 저승으로 데려갈 책임을 진 저승사자가 그를 보더니, 음산한 미소를 얼굴에 띠며 이렇게 대답했다.

“그래, 죽더라도 결과는 알고 죽어야 하지 않겠소. 듣자 하니 오왕의 반역은 실패했고, 황제가 조서를 통해 당신네 진왕에게 제위를 물려준다고 선포했다 하오.”

이에 이목서는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마침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하! 하하하……. 이제야 눈을 편히 감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대인. 하하하…….”

그의 옆에 서 있던 다른 저승의 관리는 고개를 저으며, 속으로 이미 죽었는데 아직도 그 일을 신경 쓰고 있다며 혀를 찼다.

이목서는 저승사자들과 저승으로 향하는 동안, 다른 저승사자들이 수많은 귀신을 동시에 이끌고 지나가는 것을 목격했다. 그 장면을 보고 자기 한 사람을 위해 이렇게 많은 관리가 온 것은 일종의 특별 대우라는 것을 알았다.

관아에서 묘사방으로 향하는 길에는 경기부에서 가장 큰 역관이 있었다. 그곳에 가까워졌을 때, 이목서는 다른 건물과 달리 역관에서만 빛이 나는 것을 발견했다. 마치 주위는 온통 밤인데 그 역관만 낮인 것 같았다.

관리들은 그 역관에 가까워지자, 직진하여 걸어가지 않고 조금 멀리 돌아서 갔다.

“대인들께 묻겠습니다. 저 역관에서는 왜 빛이 나는 것입니까?”

그러자 조금 전 그에게 대답해주었던 저승사자가 역관이 있는 방향을 흘끗 보더니 이목서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윤 공(公)이 저곳에 계시기 때문이오!”

그가 말하는 윤 공이 누구인지 이목서는 듣자마자 알았다. 하지만 저승에서 온 관리들조차 그를 존칭으로 부를 줄은 생각지 못했다.

“그게 무슨 뜻이신지요?”

“하하, 경기부 저승의 관리들은 모두 알다시피, 이승에 있는 윤 공은 호연정기를 지닌 데다 만민의 추앙을 받고 있어 삿된 술법으로는 그를 해칠 수 없소이다. 뿐만이 아니라 요괴나 마귀들은 그의 곁에 가까이 다가갈 수도 없소. 사람들에게는 추앙을 받고, 귀신들에게는 흠모를 받으니, 이 시대의 진정한 성현(聖賢)이라 할 수 있지.”

그의 말에서는 윤 공에 대한 깊은 존경심이 느껴졌다.

이에 이목서는 감탄 어린 눈길로 역관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공수한 다음 허리를 숙였다.

“윤 공, 당신이 있어 제가 가는 길이 편안합니다!”

이렇게 예를 올린 이목서는 더는 아무런 미련도 없다는 듯, 관리들을 따라 귀문관으로 들어갔다.

그 시각 계연은 천사 두장생을 데리고 영녕가에 있는 종루(鍾樓)에 앉아 있었다. 낮에는 이곳이 도성 사람들에게 시간을 알리는 역할을 하지만, 밤에는 야경꾼들이 있기에 지금은 종루에 아무도 없었다.

해가 진 후로 지금까지 두 사람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대부분은 수륙법회가 끝난 후 황제가 천사들에게 수선(修仙)의 가르침을 청한 것, 어떻게 그들에게 선단(仙丹)을 제련하라 명했는지, 또 천사들 간의 알력 다툼 같은 것에 관한 이야기였다.

두장생은 자신이 진정한 고인을 만났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이로써 그의 호감을 조금이라도 살 수 있기를 바라며 아는 것은 솔직하게 모두 털어놓고 조금의 거짓도 섞지 않았다.

“도성에 남은 천사들 중에는 두 천사께서 유일하게 진정한 능력이 있는 분이시군요.”

“당치 않습니다. 선생께서도 아시다시피, 저 정도의 도행으로 어찌 진정한 능력이 있다 할 수 있겠습니까? 나머지 천사들보다 약간의 실력만 더 있을 뿐이지요.”

이 두 시진에서 세 시진의 대화를 통해 계연은 두장생이 어떤 자인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수선자로서 꽤 괜찮은 사람이었고, 머리가 영민하기도 했다.

“제가 천사께서 실력이 있다고 말한 것은 결코 거짓이 아닙니다. 특히 종이로 만든 역사(力士)가 참 흥미롭던데요. 저는 이전에 결코 그런 것을 본 적이 없어요.”

이에 두장생도 조금 자신감에 차서 기쁜 듯 대답했다.

“제 별것 아닌 술법이 계 선생님의 법안에 들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이것은 제 사부님께서 생전에 긴 연구 끝에 만들어낸 것으로, 제가 조금 더 수정을 가하여 완성한 것입니다. 비록 어디에 자랑스럽게 내놓을 만한 것은 못 되지만, 때로는 큰 도움을 받기도 합니다. 게다가 사람들 앞에 보이면 신령스러워 보이는 효과도 있지요. 비록 종이로 만들어졌다 하나, 그 힘은 절대 적지 않습니다. 젊은 장정의 힘만큼은 낼 수 있답니다!”

“대단하네요. 두 천사께서 그리 중히 여기시는 것을 보니, 만들기가 몹시 어려운가 보군요?”

이에 두장생은 씁쓸한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수십 년간 고작 여섯 장밖에 만들어내지 못했습니다. 그중에 두 장은 오래 사용하여 손상되었지요. 이제는 힘이 충분치 않아 한 장도 다시 만들기 힘듭니다.”

계연은 마침내 자신이 속으로 생각하던 바를 입으로 꺼냈다.

“두 천사께서는 정통 연기결(鍊氣決)을 배우지 못하셨겠지요? 제게 마침 그것이 한 권 있는데, 그 책과 이 술법을 서로 교환하면 어떨까요?”

그러자 두장생은 눈을 커다랗게 뜨며 계연을 바라보았다.

“정, 정통 연기결 말씀입니까? 음양(陰陽)을 화(化)할 수 있고 오행(五行)을 구분하며 장생(長生)의 큰 도를 얻을 수 있다는 그것 말입니까?”

“장생이 어디 그리 쉽겠어요, 연기결을 얻었다 하여 바로 장생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두 천사께서 배우셨던 수련법보다는 훨씬 더 도움이 될 거예요. 입정(入定)한 후 마음의 불길을 이용해 법력을 제련하는 거친 방식보다는, 연기결을 얻으면 최소한 의식 내의 천지에 금교(金橋)가 생기고, 단로(丹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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