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2화. 황제와 노염생 (1)
“사부님!”
두장생은 이렇게 소리친 뒤,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계연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
그의 말과 동작에 계연은 깜짝 놀랐다.
“왜 그러세요! 어서 일어나세요, 이런 예를 받을 만한 가르침은 드리지 않았는데요.”
“제게 정통 선법(仙法)을 전수해 주려 하시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니 당연히 스승과 제자 사이의 예를 올리는 것입니다. 이런 예라도 올리지 않으면 사부님에 대한 경의를 표할 수가 없습니다. 사부님, 부디 저를 제자로 받…… 읍……으…….”
두장생은 갑자기 입을 뗄 수가 없어 나머지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혀에 힘을 주어 이리저리 굴려 보았지만, 여전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계연은 이마를 문지르며 이렇게 물었다.
“그만하세요, 두 천사. 그런 예를 저는 감히 받을 수 없습니다. 아니면 이 일은 그냥 없던 일로 할까요?”
그러자 두장생은 마음이 급해져 품 안에서 서책 한 권을 꺼내 바닥에 놓았다. 그리고 멈추지 않고 바닥에 머리를 조아렸다. 이를 지켜보던 계연은 자기도 모르게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상황 파악이 빠르시네요. 그럼 이렇게 하지요. 만약 이번 교환으로 천사께서 손해를 보는 것 같다면, 제가 이 술법을 좀 더 보완한 후에 다시 전수해 드릴게요. 사제의 연에 대한 일은 이제 없던 일로 하고요.”
두장생은 때맞춰 동작을 멈춘 뒤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계연은 어디에도 없었다. 다만 자신이 놓았던 서책은 사라졌었고, 그 위치에는 실로 엮인 서책이 하나 놓여있었다.
서책의 이름이 있어야 할 곳에는 <소련(小練)>이라는 두 글자가 있었다. 책장을 펼쳐보니 안에는 도력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서체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그것을 한 번 보자마자 정신을 놓고 이끌린 두장생은 짧은 찰나, 그 책에 담긴 신묘한 뜻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현재 피곤함을 느꼈기 때문에, 아무리 해도 다시 정신을 집중할 수가 없었다.
흥분해 있던 그는 잠시 휴식을 취해 정기를 회복한 뒤, 다시 곧바로 수련을 시작했다.
그동안 하늘은 어느새 다시 밝아오기 시작했다.
정해(丁亥)년 가을, 9월 23일, 대정국의 오왕이 군사를 이끌고 반역을 도모했으나 결국 실패하여 생포되었다. 이에 그 동생인 진왕이 황제의 전위조서를 받아 다음 대 제위를 잇게 되었다.
9월 24일에 열린 조회에서 단정하고 완벽한 차림새의 오왕은 칼과 족쇄를 차고 중앙에 꿇어앉아 있었다. 반면 몸 곳곳에 상처를 입고 피 묻은 옷을 갈아입을 새도 없던 진왕은 대전 안에 꼿꼿이 서 있었다.
만조백관(*滿朝百官: 조정의 모든 벼슬아치)이 모인 자리에서 태감 이사철은 황제 앞으로 나와, 다시 한번 큰 목소리로 전위조서를 읽었다.
이번 일을 겪은 조정과 백성들은 당연히 황제의 결정을 모두 납득했다.
그렇게 3일이 흘렀다.
제위를 이을 자를 결정하자마자 그간 억지로 버텨온 황제는 곧바로 윤재성이 돌아오기 전과 같은 상태가 되었고, 곧 그보다 더 심각한 상태가 되었다.
2년 전만 해도 황제는 자신이 최소한 십여 년은 더 살 수 있을 거라 자신했었다. 또한, 그 시간 내에 선인을 찾아내어 불로장생의 묘약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황제는 자신의 운이 전반적으로 그리 나쁘지 않다고 여겼다. 그간 모든 정신력을 선인을 찾는 데에 쓰면서, 그는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는 사실도 알게 되었고 정말 선인의 흔적을 발견하기도 했었다. 비록 원하는 수준을 충족하지는 못했지만, 신선의 존재를 확인한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이로 인해 황제는 불로장생하여 영원히 황권을 손에 쥘 생각에만 빠져있었다. 오왕과 진왕 모두 자질은 충분했지만, 어쩌면 자신이 영원히 황제가 될 수도 있다 생각하니 그들이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다만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선인이 있었던 수륙법회가 지난 후, 그 충격으로 인해 황제의 건강이 급격히 악화했고, 더는 그는 어떤 선연(仙緣)도 얻지 못할 것처럼 보였다.
도성에 남은 몇몇 천사들은 비록 약간의 실력을 갖추긴 했으나, 진정한 선인의 실력을 목격한 황제의 눈에는 그것이 이제 눈에 차지 않았다. 게다가 황제도 그들의 실력으로는 불로장생의 선단(仙丹)을 만들어내지 못할 것임을 알았다.
황제를 더욱 절망케 한 것은 자신의 건강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좋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윤재성이 완주를 한창 재정비할 때는 그래도 좀 괜찮았는데, 그 이후로는 악화일로였다.
이 시각 경기부 황궁의 천자가 머무는 침전에서는 원덕제가 침상에 누워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현재 날씨는 그다지 춥다고 할 수 없었지만, 몸이 좋지 않은 원덕제는 추위를 많이 타게 되었다. 이에 궁인들은 침전 안에 화로를 구석구석 배치하여 항상 뜨끈하게 불을 때고 있었다.
방금 막 탕약을 마신 원덕제는 급격히 피곤함을 느꼈다. 다만 신경이 쇠약하다 보니 눈을 감아도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그리고 계연은 이때 천자의 침전 안에서, 황제의 침상 곁에 선 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황궁 시위들이 당연히 계연 같은 인물의 침입을 막아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다만 황제의 기운은 국운과도 연관되어 있고, 자미의 기운이 온몸을 휘감고 있으니 어느 정도는 삿된 것을 물리치는 힘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이때 황제의 기운은 아주 많이 약해져 있는 상황이었다.
“허억…… 허억…….”
황제는 결국 잠을 이루지 못하고 다시 눈을 뜨고는 천장을 바라보며 멍하니 누워 있었다.
계연은 이때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척 궁금해졌다.
지난 생의 계연은 평생 이 정도의 위치에 있는 인물을 만나본 적이 없었다. 이렇게 노쇠한 황제의 모습은 일생 논밭을 일군 나이 든 농부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어쩌면 그의 사정이 더 딱하다고 볼 수도 있었다.
“헉……. 누구…… 있느냐?”
황제가 돌연 거친 목소리로 이렇게 물었다.
그러자 멀지 않은 곳에서 졸고 있던 태감이 즉시 잠에서 깨어, 재빨리 침상 곁으로 달려와 이렇게 대답했다.
“폐하, 제가 여기 있습니다!”
황제는 다가온 태감을 보더니, 고개를 젓고는 다시 쓸쓸한 눈빛이 되었다. 그러나 사실 계연도 태감의 곁에 서 있었다. 다만 태감은 허리를 구부리고 황제의 곁에 서 있었고, 계연은 손을 뒷짐 진 채 서 있었을 뿐이었다.
“폐하, 분부하실 것이 있으신지요?”
태감이 다시 조심스럽게 물었다. 호랑이는 죽어도 그 위엄은 남는다는 말도 있는 데다, 황제는 아직 죽지도 않았으니 태감은 당연히 소홀할 수 없었다. 하지만 황제는 태감을 보지 않고 눈을 좀 더 크게 뜨고서 태감의 옆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덜덜 떨리는 손으로 무언가를 잡으려 했다.
이에 태감 이사철은 자신의 옆쪽은 물론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여전히 이곳에는 자신뿐이었다.
“폐하, 제가 질문을 하나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계연의 온화하고 평온한 목소리가 원덕제의 귓가에 들려오자, 순간적으로 눈을 부릅뜬 황제의 호흡이 긴박해졌다.
“허, 허억……. 헉…… 물, 물으십시오!”
계연은 웃으며 대답했다.
“예전에 노 선생님께서 대전에서 폐하께 질문을 한 가지 했었지요. 하지만 두 분은 결국 연이 닿지 못했어요. 제가 그분을 다시 불러올 수 있는데, 한번 만나보시겠어요?”
“헉, 허…… 저, 저를, 고쳐주실 수 있겠습니까?”
황제의 질문을 듣고 계연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삶과 죽음은 천도(天道)의 순환입니다. 폐하께서는 이미 기름이 다 떨어진 등잔과 같은 상태세요. 며칠 더 버티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건강을 회복하기에는 이미 늦었습니다.”
“그…… 그렇다면 무엇 하러……?”
계연은 황제가 무엇을 묻고 싶은지 알고, 다시 한번 웃으며 말했다.
“그분을 데려오면 욕이라도 몇 마디 하시고 울분을 푸실 수 있겠지요. 현재 폐하께서 이리 위급한 상태이시니, 그분도 분명 폐하를 뵙고 싶어 할 거예요.”
황제가 혼몽한 얼굴로 계연과 대화하는 동안, 곁에 서 있던 태감 이사철은 황제와 아무도 없는 침전 안을 번갈아 바라보며 놀라 어쩔 줄을 몰랐다.
“폐하, 폐하! 어찌 그러십니까? 폐하?”
태감이 손을 뻗어 황제의 눈앞에 이리저리 흔들었다. 하지만 황제의 눈빛은 전혀 그를 향하지 않았고, 마치 그가 이곳에 서 있는 것도 모르는 듯했다.
“폐하, 누구와 대화하고 계십니까? 폐하……!”
놀란 태감이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이자, 밖에서 지키고 서 있던 궁녀와 태감들도 그것을 듣게 되었다.
곧이어 궁녀 두 명과 태감 두 명이 서둘러 안으로 들어왔다.
“이 공공, 무슨 일이십니까?”
이사철은 황제의 침상을 바라보다가 일그러진 표정으로 그들을 향해 말했다.
“어서 산삼탕을 준비해라! 폐하께서 곧 잘못되실 것 같다. 어서 가서 황자님들과 대신들, 후궁의 마마들께 알려라! 서둘러야 한다!”
태감과 궁녀들은 놀라 당황한 기색으로 서둘러 밖으로 뛰어나갔다. 밖에 서 있던 다른 궁인들과 시위들도 이사철의 명을 듣고 각각 소식을 전달하러 사라졌다.
계연은 태감과 궁녀들이 떠난 방향을 보다가, 다시 근심 가득한 얼굴의 태감 이사철을 바라보았다.
“폐하, 제가 그분을 찾아오길 바라세요?”
황제는 오락가락한 정신을 다잡고 계연을 보며 숨을 몰아쉰 뒤 이렇게 물었다.
“당, 당신은 누구십니까?”
이에 태감 이사철이 서둘러 황제의 시선이 향하는 곳으로 몸을 움직이고는 큰 소리로 이렇게 대답했다.
“폐하, 바로 저입니다. 이사철입니다! 저를 알아보지 못하시겠습니까? 폐하……!”
그러자 황제는 급한 마음에 이사철을 향해 손을 뻗어 휘휘 저었다.
“너……! 썩 꺼지거라!”
태감은 황제의 노여운 눈빛에 심장이 덜컹하여, 몸을 수그러고는 다시 옆으로 비켜섰다.
계연은 태감을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폐하의 현재 상태로는 화를 내지 않으시는 것이 좋을 거예요. 이 공공께서는 저를 보지 못하는 데다, 폐하를 살피는 마음이 크셔서 그런 거니까요. 그리고 제가 누구냐고 물으셨죠? 하하……!”
계연은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폐하께서는 조회에서 놓쳐버렸던 그 월병을 기억하세요?”
계연은 원래 그를 놀리며 ‘혹시 그 월병탕을 마시지는 않으셨나요’라고 물으려 했으나, 지금 황제의 상태를 자극하는 것은 그리 좋은 생각 같지 않았다.
“아……. 그렇군요……. 그때 그 선사(仙師)셨군요…….”
“제가 이리 모습을 드러내고 폐하를 뵈러 왔으니, 저와도 인연이 있는 것이겠지요. 물론 폐하께서 원하시는 종류의 연은 아니겠지만요.”
이런 순간이 되자, 원덕제도 마침내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이에 그는 떨리는 손을 들어 공수하며 말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부디 노 선사를 모셔 와 주십시오…….”
계연도 그에게 공수하며 이렇게 대답했다.
“그럼 조금만 더 버티세요. 노 선생님은 신묘한 도력을 지니셔서 찾기가 그리 쉽지 않거든요. 이만 가보겠습니다.”
이렇게 말을 마친 계연은 바깥으로 걸어 나갔다. 하지만 황제의 눈에는 계연이 몇 걸음을 떼자마자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허…… 허억…… 헉…….”
다시 침상 위에 누운 황제는 방금 느낀 격렬한 흥분으로 인해 힘을 너무 많이 썼기 때문에 호흡이 다시 가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