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4화. 안 될 게 뭐가 있겠어요?
계연이 이때 입을 열어 한마디 했다.
“설령 그렇다 해도, 속세에 사는 모든 인간은 분명 황제가 되고 싶어 하겠지요.”
“맞습니다, 계 선생님의 말씀이 사실이긴 하지요!”
노염생은 이렇게 탄식한 후, 다시 황제를 바라보았다. 방금 그가 많은 말을 늘어놓았지만, 황제는 단 한 마디도 반박하지 않았다. 보아하니 그에게는 더는 어떤 충고도 할 필요가 없을 듯했다.
“만약 계 선생님께서 그 핏자국들을 없애지 않았더라면, 오늘 저희가 이렇게 편안한 마음으로 이야기 나눌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조차 인연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폐하께서 더 알고 싶은 것이 있다면, 이 왕조와 관련된 일만 빼고 뭐든지 물어보십시오.”
노염생은 엄숙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러자 황제의 눈에는 약간의 희망이 차오르다가 곧 천천히 어두워졌다.
“이미 임종의 순간에 이르렀으니, 저도 더는 소망할 것이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궁금한 것은, 혹 제 음수(陰壽)가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까?”
이제는 저승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으니, 그에 관해 떠도는 말들도 어쩌면 진실일 것이다. 그래서 황제는 자신의 음수가 몇 살일지에 대해 궁금해졌다.
“하하……!”
노염생은 한번 웃음을 터뜨린 뒤 이렇게 대답했다.
“그것은 폐하께서 죽고 난 후에야 비로소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아는 사실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실은 사서에 명군(明君)이라고 기록된 자들도 죽은 후에 음수는 10년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이 3~5년 정도였지요.”
“그, 그럼 그 후에는 어찌 됩니까?”
“그 후에는 당연히 혼백이 자연으로 돌아갑니다. 그때는 더는 원덕제 양종(楊宗)은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황제는 이에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러고는 임 귀비의 손을 놓더니 계연과 노염생을 향해 공수했다.
“알겠습니다. 선도(仙道)의 진정한 뜻을 제게 조금이나마 알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진왕은 결국 참지 못하고 황제를 불렀다. 그 목소리에 담긴 걱정을 황제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그는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여전히 창백한 안색을 한 아들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말없이 진왕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윤 대인께서 드셨습니다. 조 승상께서 드셨습니다. 언 대인께서 드셨습니다…….”
바깥에서는 계속해서 태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윤재성은 몇몇 늦게 도착한 대신들과 함께 침전에 들었고, 아무 말 없이 예를 행한 후 한쪽에 줄지어 섰다.
휘이이……!
이때 소리 없는 음산한 바람이 침전에 불어 닥치자, 대신과 황족들은 모두 온몸이 차가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런 그들과 달리 황제의 눈에는 천천히 다가오는 저승의 관리들이 보였다.
이제 황제는 더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저승의 관리들은 계연과 노염생이 이 안에 있는 것을 이미 알았기 때문에, 놀라지 않고 그들을 향해 예를 올렸다.
“두 분 선장(仙長)을 뵙습니다!”
계연과 노염생이 그들을 향해 인사하자, 그들은 천천히 몸을 돌려 윤재성이 서 있는 위치를 향해서도 살짝 공수했다.
그러자 윤재성은 무언가를 느끼고 의혹에 찬 눈길로 그들이 서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때 온몸의 호연정기가 빛나며, 윤재성은 얼핏 검은 그림자들이 황제의 침상 곁에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윤 대인, 무엇을 보고 계십니까?”
언상도 실은 감각이 꽤 예민한 편이었다. 하지만 이때 그는 음산한 냉기만 느꼈을 뿐 어떤 것도 볼 수 없었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황제는 이 장면을 목격하고는 윤재성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의 의혹을 눈치챈 노염생이 이렇게 설명했다.
“윤재성은 왕성한 호연정기를 지녀, 만민이 그의 평안을 빌고 귀신들조차 흠모하는 자입니다. 한 마디로 이 시대의 대학자이자 대현(*大賢: 매우 어질고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저승의 관리들에게 저런 예를 받아도 이상할 건 없지요.”
이에 황제가 문득 무언가를 깨우치던 순간, 주간 순시 우정사(右正使)가 이렇게 입을 열었다.
“양종(楊宗), 당신의 수명이 다 되었소. 신체와 영혼이 분리되기 시작했으니, 기력이 남아있을 때 어서 유언을 남기시오!”
그들은 계연과 노염생을 보아 특별히 모습을 살짝 드러내어 귀띔해 준 것이었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그들은 사람이 죽은 후에야 나타났을 것이다.
황제는 호흡이 점차 긴박해지더니 진왕 양호를 향해 손짓했다.
“호아야, 이리 오거라. 가까이…….”
진왕이 황제의 곁으로 다가가자, 황제는 그의 귓가에 이렇게 속삭였다.
“윤재성은 특별한 재능을 갖춘 이 시대의 대현(*大賢: 매우 어질고 지혜로운 사람)이니, 그에게는 중임을 맡길 만하다. 다른 간사한 무리에게 해를 입지 않도록 잘 지켜보아라. 조정의 승상들 중에서는 조(趙) 씨와 류(劉) 씨를 제하면 모두 괜찮은 자들이다…….”
황제는 서둘러 이렇게 말을 남기며 점차 숨이 거칠어졌다. 마지막에는 떨리는 손으로 진왕의 어깨를 꽉 붙잡았으나, 결국 다시 입을 열지는 못했다.
“부황? 부황……!”
진왕은 자신의 부친을 바라보았지만, 두 눈은 다시 열리지 않았다.
“황상께서 붕어하셨습니다!”
문무백관이 꿇어앉은 가운데 비빈들의 곡소리가 울려 퍼졌다.
황제의 시신을 쳐다보던 계연과 노염생은 곧 저승사자들이 그의 혼을 데리고 나가는 것을 목격했다. 이에 계연은 복잡한 감정이 담긴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저는 노 선생님께서 한 번 더 물어보실 줄 알았어요.”
노인도 솔직하게 대답했다.
“방금 저도 그런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그럼 제게는 곧 저승에 들어갈 제자가 생기는 것이 아닙니까?”
“안 될 게 뭐가 있겠어요?”
계연은 그를 향해 담담한 어조로 대답한 뒤 표연히 침전을 떠났다.
계연의 말을 들은 노염생은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황제의 시신을 바라보며 복잡한 표정을 드러냈다.
“에잇…….”
그는 이렇게 탄식한 후 몸을 돌려 떠나갔다.
침전 안팎으로 곡성이 이어지자, 황제가 붕어했다는 소식이 곧 궁 안 곳곳으로도 전해졌다. 이에 황궁 안의 모든 궁인과 시위들은 침전을 향해 무릎을 꿇었고, 원덕제의 죽음은 얼마 후 대정국 전국에 알려졌다.
노염생은 황궁 벽을 나서서 멀리 저승사자들이 떠나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이때 황제의 혼백은 막 육체를 떠난 상태였기 때문에, 폐음산(蔽陰傘)으로 혼백이 다치지 않게 햇빛으로부터 보호받고 있었다. 게다가 아직 밤바람을 맞지 않아서, 인간의 기운이 다 흩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본질적으로는 아직 귀신이라 볼 수 없었다.
마음에 결심이 선 노염생은 법력을 운용해 단번에 날 듯이 뛰어가 그들을 따라잡았다. 저승사자의 곁을 지나던 순간, 그는 다 떨어진 주머니 안에서 길고 얇은 빨간 끈을 꺼내든 다음 황제의 혼을 향해 던졌다.
저승의 관리들과 황제 중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가 던진 빨간 끈은 곧바로 황제의 허리에 묶였다.
이 일을 끝내고 노염생은 손을 탁탁 털고는 다른 방향으로 걸어갔다.
한 박자 일찍 떠난 계연은 더는 노염생이 무얼 하든 신경 쓰지 않았다. 자신이 데려온 사람이기는 했지만, 그의 자유까지 제한할 권리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계연은 홀로 황궁을 떠난 다음 영녕가를 따라 번화한 경기부 안을 거닐었다.
대로는 떠들썩한 소리의 상인과 백성들로 붐볐고, 대정국 밖 멀리에서부터 온 희귀한 물건들도 가득했다. 황제가 붕어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그런 일은 백성들에게 있어 한담을 나눌 때나 잠시 등장하여 ‘아이고’라든가 ‘오’라는 탄식만 끌어낼 뿐이었다.
“계 선생님!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계 선생님!”
노염생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부터 들려오자, 계연은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곁에 다가서자 두 사람은 함께 앞으로 걸어갔다.
“계 선생님, 계주로 돌아가실 겁니까?”
“먼저 한 번 들렀다가, 얼마간 머문 다음 다시 나올 거예요.”
“오호!”
계연의 대답을 들은 노염생은 알겠다는 듯이 탄성을 질렀다. 그러고서 둘은 어떤 대화도 나누지 않고 토지신당이 있는 방향으로 향했다.
두 사람이 보통 사람과 다를 바 없이 걸었기 때문에, 그들이 토지신당 밖에 도착했을 때 노염생은 돌연 이렇게 물었다.
“계 선생님, 만약 저 황제가 그 월병을 놓치지 않고 잡았다면, 그에게 깨달음을 주기 위해 선생께서 나타나셨을까요?”
때로 계연은 도행이 높고 심오하다는 이들의 생각에 어이가 없을 때가 있었다. 그들은 항상 너무 깊은 생각을 한다. 어떤 일들은 계연이 보기에 그보다 간단할 수가 없는데 말이다.
아무래도 노염생은 계연이 왜 돌연 황제에게 신경을 쓰는지 궁금한 것 같았다. 사실 계연은 일찍부터 황제에 대해 궁금해하고 있었지만, 오늘은 그의 수명이 다한 것을 느끼고 즉흥적으로 만나본 것이었다.
“노 선생님, 잡았으면 잡은 것으로 끝났겠지요. 저는 그 일에 대해 그리 깊은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어쨌든 고작 월병 하나인데요.”
“선생께서 일부러 준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도 노염생은 다시 한번 이렇게 물었다. 원래 계연은 ‘선생께서 너무 생각이 많으신 거예요’라고 말하려다가, 그와 더 이야기할 흥미를 잃고는 이렇게 대답했다.
“이미 지난 일인데, 무엇 하러 그런 일을 생각하시나요.”
그러자 노염생은 웃으며 대답했다.
“계 선생님께서 이 비렁뱅이와 나누는 이야기에 흥미가 없으신가 보군요? 하긴, 수행이든 도력의 경지이든 저는 선생에 비해 한참 모자라지요. 어쨌든 양종은 죽기 전 순간에는 이 늙은이의 제자가 될 만한 자질이 충분해 보였습니다. 제가 선생님을 실망하게 했겠네요. 목숨이 얼마 남지 않은 제자라 하더라도, 살아생전이나 죽은 다음이나 실은 관념의 차이일 뿐이지요. 육신이 죽은 게 아니더라도, 그자의 혼백이 온전하지 않으면 그것도 실은 완전한 자라고 볼 수 없으니까요…….”
노염생의 말을 들은 계연은 자신도 모르게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무래도 그의 말에 다른 깊은 뜻이 있는 듯했다.
“노 선생님께서는 양종을 제자로 받아들이려고 하시나요? 하지만 선생께서 말씀하셨다시피, 육신이 죽어 없다는 것은 등불이 꺼진 것과 같아 되돌릴 수 없을 텐데요. 전에는 육신과 혼백이 모두 완전한 제자를 원하셨는데, 이제는 생각을 바꾸신 건가요?”
이때 그들은 이미 토지신당 앞에 도착한 상태였으므로, 곧이어 안쪽에서 소유가 뛰어나왔다. 그 바람에 두 사람은 잠시 대화를 멈출 수밖에 없었다.
계연과 노염생이 모두 모습을 드러낸 상태인 데다 장안법도 쓰지 않았기 때문에, 자연히 토지신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할아버지!”
계연이 달려오는 소유의 주머니가 잔뜩 부풀어 있는 것을 보니, 8할 정도의 확률로 토지신에게 바쳐진 공물이 들어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저 아이의 인품으로 볼 때 분명 훔친 것은 아닐 터였다.
“계 선생님!”
가까이 다가온 소유는 계연을 향해 먼저 예를 올린 뒤, 노염생에게 다가가 자신의 주머니에서 공물을 한 움큼 꺼내 보였다.
“어서 가자. 비록 토지신께서 네게 준 것이라지만, 묘지기가 이걸 본다면 빗자루를 들고 쫓아올 거야!”
계연이 이렇게 농담을 던지자 소유의 안색이 변하더니, 소유는 서둘러 노염생을 끌어당기며 이곳을 떠나려고 했다.
세 사람은 토지신당이 있는 방향을 향해 공수한 다음 몸을 돌려 떠나갔다. 계연과 노염생은 조금 전까지 나누던 이야기를 다시 이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