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5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장면
노염생은 마침내 계연에게 한 가지 사실을 털어놓았다.
“계 선생님, 그날 제 머리가 잘렸다가 붙은 것을 보셨을 때 아주 신비롭지 않던가요?”
어찌 그런 일을 잊을 수 있겠는가? 이에 계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솔직하게 대답했다.
“선생께서는 그날 장안법을 써서 눈속임을 한 것이 아니라, 정말로 머리가 잘렸었어요. 바닥에 떨어진 피도 진짜였으니 정말 신비로웠지요. 만약 다른 수선자들이었다면, 선생처럼 곧바로 다른 이에게 자신의 목을 내주지 않고 온갖 기이한 술법들로 육신을 보호하려 했을 거예요.”
“하하…….”
노염생은 계연조차 자신을 꿰뚫어 보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는 점과 그가 자신에게 감탄하고 있다는 데에 기쁜 웃음을 숨기지 못했다.
“저는 양종을 제자로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저승의 형벌을 다 받으면 경기부 저승으로 가서 그자를 돌려받을 계획입니다. 계 선생님께서 일부러 같이 가주실 필요는 없지만, 제게 법령 하나만 남겨 주실 수 있겠습니까? 경기부 저승에서도 계 선생님의 체면은 세워드릴 테니까요.”
“네, 그게 뭐가 어렵겠어요. 그런데 궁금한 게 있어요.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니 아무래도 양종의 육신과 혼백을 모두 완전하게 만들 방도가 있는 것 같은데, 아닌가요?”
귀신들의 수행은 아주 어려웠다. 그들은 육신이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설령 신도(神道)를 닦는다 해도 결코 쉬운 길이 아니었다. 그들이 설령 법체나 금신(*法體, 金身: 신령들이 수행을 통해 빚어내는 몸)을 만들어낸들 그것이 완전무결한 육체는 아니었다. 게다가 노염생의 말을 들어보면, 양종이 신도를 걷게 할 생각은 아닌 것 같았다.
계연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이렇게 물어보자, 노염생의 마음에 뿌듯함이 가득 찼다.
“사실 제게 오랜 세월 연구해 온 특이한 술법이 하나 있습니다. 예전에 머리가 잘렸을 때도 그 술법의 갈래에서 뻗어져 나온 것을 사용한 것이지요. 실은 백 년 전, 제가 벽옥련(碧玉蓮) 몇 가지를 기르기 시작해 최근에 꽃을 몇 송이 얻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진귀하다는 연근 십 수 뿌리가 생겼습니다. 그것은 마치 선죽(仙竹)처럼 육신을 떠난 혼백에게 큰 보양이 되는 음식이지요. 그러나 일단은 양종이 귀신의 길에 들어서지 않게 하는 것이 먼저이고, 그 후에는…… 계 선생님, 제가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맞혀 보시겠습니까?”
노염생이 벽옥련이라는 말을 꺼내던 순간, 계연의 뇌리에는 이미 빨간 두두(肚兜)를 입은 통통한 아이가 붉은 비단 끈을 쥔 채로 불의 고리를 밟고 서 있는 모습이 떠올랐다. (*나타(哪吒)라는 신화 속 등장인물로, 연꽃 속에서 새로 육신을 얻어 태어남)
“노 선생님께서는 혹 벽옥련의 연뿌리를 이용해 양종에게 새로운 육신을 만들어주려는 건가요?”
노염생은 원래 계연의 ‘잘 모르겠는데요’라는 말을 기다렸다가, 계연이 정확히 답을 맞히자 깜짝 놀라 어리둥절한 얼굴로 이렇게 물었다.
“어찌 이런 것도 추측해내실 수 있으십니까?”
‘추측이 필요한가?’
계연의 입꼬리가 자신도 모르게 위로 솟았다. 동시에 그의 머릿속에 또 다른 장면이 하나 떠올랐다. 주름 가득한 얼굴로 위엄이 넘치는 표정을 짓던 황제 양종의 모습에 나타의 모습이 겹쳐진 것이다.
“으…….”
그건 굳이 떠올리고 싶지 않은 화면이었다.
“노 선생님, 양종에게 새로운 육신을 빚어주려 하신다면 원래 모습대로 만들어주실 건가요, 아니면 아이의 모습으로 만들어주실 건가요?”
그의 물음에 노염생의 의혹은 더욱 깊어졌다. 계 선생님이 이 오묘한 술법에 대해서는 조금의 관심도 보이지 않고, 오히려 괴상한 질문을 던졌기 때문이다.
“당연히 원래 모습을 유지해야지요. 아이의 모습으로 빚으면 무슨 좋은 점이라도 있습니까?”
계연의 물음에 노염생은 이미 그 모습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아뇨, 아뇨! 원래 모습대로 만드는 것이 좋지요! 아이의 모습인 게 무슨 좋은 점이 있겠어요!”
계연이 손을 휘휘 저으며 이렇게 대답하자, 노염생은 의혹이 담긴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계연을 바라보았다. 노염생에게 있어 계연은 항상 신비롭고 무슨 생각을 가졌는지 짐작할 수가 없는 인물이었다. 결국은 계연에게 조금 전 부탁한 법령을 받은 다음, 소유만 데리고 함께 경기부 저승으로 향했다.
양종이 저승에서 받는 형벌은 끝날 때까지 시일이 좀 걸릴 것이고, 계연에게는 다른 사람이 형을 받는 모습을 보는 취미는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노염생은 벽옥련을 다른 은밀한 곳에서 기르고 있었고, 평소에도 자신에 대한 정보를 쉬이 밝히려 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또한 이 술법은 아주 특별하고 신비롭기까지 하니, 노염생은 분명 다른 이에게 보여 주려고 하지 않을 터였다.
몇 번이나 계연이 그에게서 뭔가 듣고자 말을 걸어봐도, 노염생은 시종일관 모르는 체하며 입을 다물었다. 이에 계연도 결국 육신을 빚는 과정은 보지 못할 것이라 여기고는 먼저 길을 떠났다.
황제의 죽음은 대정국에 있어 커다란 사건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보통 백성들에게 무슨 영향을 끼칠 만큼 대단한 사건은 아니었다.
처음 며칠간 원덕제의 붕어는 사람들 입에 한창 오르내렸지만, 그 후로 대정국은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일상을 회복했다.
그렇게 어느새 정해(丁亥)년의 마지막 날이 다가왔다.
한 해의 마지막 날, 계주의 백성들은 창문에 창화(*窓花: 붉은 종이를 오려 창문에 붙여 장식하는 것)를 붙이고 문에는 빨간 대련(對聯)을 붙였다. 사정이 조금 넉넉한 이들은 커다랗고 빨간 등롱(燈籠)을 달기도 했다. 이보다 더한 대갓집들은 일찍부터 폭죽이며 새해를 보낼 물건들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모든 백성이 공통으로 준비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공들여 준비한 연야반(*年夜飯: 제야 음식, 섣달 그믐날 밤 온 가족이 모여 먹는 음식)이었다.
이 시각, 덕승부의 위씨 집안 저택에서는 한 부인이 방안에 앉아, 넋을 놓고 바깥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렇게 또 한 해가 지나는구나…….”
밖에서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부인, 날씨가 추우니 가서 문을 닫을까요?”
한쪽에 서 있던 계집종이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고 이렇게 물었다.
“되었다. 눈 내리는 풍경을 보는 것도 좋겠지.”
바로 그때, 위씨 가문의 저택 밖에서는 네 사람이 막 대문 앞에 도착한 참이었다. 그중 맨 앞에 선 두 사람은 발걸음이 재빨랐는데, 너무 급해 얼핏 보기에는 초조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멈추십시오. 여러분들은 누구십니까? 저희 위씨 가문에는 무슨 일로 오셨는지요?”
위무외는 피풍(皮風)에 달린 모자를 잡아내려, 자신의 살집 두둑한 얼굴을 드러냈다.
“누구긴 누구겠느냐!”
“가주님?”
“가주님!”
문지기를 비롯하여 근처에 있던 장정들이 깜짝 놀라 이렇게 소리쳤다. 위원생은 이미 인내심이 다 떨어진 상태였기 때문에, 그들을 밀치고 곧바로 안으로 뛰어갔다. 그렇게 달리는 동안 그는 안채가 있는 곳을 향해 계속해서 큰 소리로 이렇게 외쳤다.
“어머니……! 제가 왔어요……. 어머니, 원생이 왔어요!”
그의 우렁찬 목소리는 겹겹이 지어진 건물을 관통해 멀리 안채 깊은 곳까지 들려왔다.
방 안에 앉아 있던 부인이 돌연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취(小翠), 들었니?”
“아무래도 도련님께서 오신 것 같습니다!”
그들이 막 그런 대화를 나누던 순간, 바람처럼 달려간 위원생은 자신의 기억을 되짚어가며 순식간에 제 어머니가 있는 건물 안으로 뛰어들었다.
“어머니!”
목(穆) 씨는 일고여덟 살은 되어 보이는 눈앞의 아이를 바라보았다. 전보다 많이 자라기는 했지만, 그녀는 당연히 한눈에 아이가 제 아들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원생아!”
위원생은 곧바로 목 씨의 품 안으로 뛰어들었고, 그 짧은 순간에 힘을 거두어 그녀가 다치지 않도록 했다.
“어찌 이리 오래 나를 보러 오지 않은 것이냐, 어찌하여 이리 오랫동안 집에 오지 않은 것이야……! 어미는 다시는 너를 보지 못할 줄 알았다…….”
아들을 보지 못한 5년이 너무나 길었기 때문에, 목 씨는 흐르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이 장면을 지켜보던 계집종조차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는 최대한 부인과 도련님의 재회를 방해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잠시 후 모자는 포옹을 풀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어서 한번 보자, 그새 우리 원생이가 이렇게나 컸구나…….”
목 씨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아들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떠날 때는 세 살이었고 거의 5년간을 보지 못했지만, 아이는 튼튼하고 포동포동하게 자라 있어 보아하니 큰 고생을 한 것 같지는 않았다.
“원생아, 밥은 잘 챙겨 먹니? 잠은 잘 자고 있고? 너를 괴롭히는 사람은 없느냐? 참, 너희 아버지는?”
“어머니, 저는 선문에서 수행을 하는 거지, 어디 황폐한 곳으로 유배 간 것이 아니에요! 아버지도 잘 지내셨어요. 참, 네 이름이 소취였지? 많이 변했지만 딱 보아하니 너로구나!”
그러자 한쪽에 서 있던 계집종이 눈물을 닦은 후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원생 도련님께서 아직 저를 기억하시는군요. 5년이나 지나서 저를 잊으셨을 거라 생각했는데요.”
“흥, 그게 무슨 소리야. 나는 보통 아이가 아니라고!”
위원생은 기세등등한 얼굴로 이렇게 대답하고는, 다시 자신의 어머니와 소취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산에서 아주 재미 난 일이 많았어요, 제가 몇 가지 들려드릴게요…….”
위원생은 흥분한 얼굴로 어머니에게 옥회산에서의 생활을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또한, 그는 보통 사람들이 선계에 대해 큰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특별히 신비로운 이야기들만 골라 이야기해주었다.
잠시 후, 하인 한 명이 들어와 가주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러자 목 씨는 바깥채의 응접실로 향했다.
위원생은 이때 마침 무언가를 떠올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아, 참! 어머니, 이번에 저와 아버지만 온 게 아니라, 사형과 사저도 함께 모셔 왔어요. 그분들은 모두 제 사백(師伯)의 제자들이에요. 아버지와 사부님을 제외하면 그분들이 저와 가장 친해요!”
“그럼 어서 가자, 응접실로 가보자!”
그때 위씨 가문의 바깥채 응접실에는 덕승부 부성 안에 사는 체면이 좀 있는 위씨 집안 사람들이 모두 모여들고 있었다. 심지어 위씨 집안의 노태야마저 황급히 도착한 상황이었다.
위무외는 이미 관화(關和)와 상의의(尙依依)를 데리고 그곳에 함께 앉아 있었다.
위무외의 큰 백부와 셋째 숙부를 포함하여 점점 더 많은 위씨 집안 사람들이 도착했다. 어렸을 때부터 선문에서 자라, 처음으로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이게 된 두 사람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특히 상의의는 위씨 집안 사람들이 보기에 의심할 여지도 없이 선녀처럼 보여 위씨 집안 사람들의 관심을 샀다. 그들은 그녀처럼 속세를 초월한 듯한 자태의 여인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처세에 능한 위무외가 곁에 있어 두 사람은 그리 어색함을 느끼지 못했다. 게다가 그의 가주로서의 위엄은 떠나 있는 동안 오히려 더욱 드높아진 것 같았다.
그가 몇 마디 꾸짖자, 위씨 집안 사람들은 흥분을 감추고 각자 감정을 자제하려 했다. 곧이어 차를 마시려는 사람은 따로 흩어지고, 연회를 준비하러 간 이는 그쪽으로 향하며 응접실에는 어느 정도 나이가 있고 정도를 지킬 줄 아는 이들만 남게 되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위무외의 한마디에 썰물처럼 빠져나가자, 그는 그제야 겸연쩍은 듯 옥회산의 두 제자를 향해 웃어 보였다.
“하하……. 가족들이 모두 궁금해해서요, 두 분께 실례를 범했습니다.”
위무외의 사과를 듣고 두 사람은 다급히 손을 저었다.
“위 숙부님, 그런 말씀 마세요. 저희가 오고 싶어서 온 건데요!”
“맞아요, 숙부님. 원생이가 그믐날 밤이 재밌다고 해서 저희도 호기심에 따라온 거니까요. 오히려 저희가 감사 인사를 드려야지요!”
“그럼 다행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