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6화. 고독한 계 씨 노인
위무외는 두 사람을 위해 정중한 태도로 노태야와 자신의 큰 백부, 셋째 숙부를 소개했다. 그가 몇 마디 잇기도 전에 이미 위원생의 목소리가 밖에서부터 들려왔고, 곧이어 위원생이 목 씨를 이끌고 응접실로 들어왔다.
“의의 누나, 관 사형! 이분이 우리 어머니셔. 이쪽은 소취라고 해!”
위원생은 기쁜 얼굴로 사형과 사저에게 자신의 어머니 목 씨와 소취를 소개했다. 그러자 두 사람은 선인(仙人)인 상의의와 관화를 향해 만복례를 올렸다. 위원생은 그들에게 예를 올리지 않아도 되지만, 그들은 아니었다.
그러자 그들의 인사를 받은 상의의와 관화도 서둘러 일어나 예를 올렸다.
위원생은 헤헤 웃으며 사형과 사저 곁으로 걸어가 그들을 가리키며 목 씨를 향해 말했다.
“어머니, 이쪽은 관화 사형이에요. 이전에 제가 힘이 약해서 물을 길어오지 못하면 자주 저를 도와줬어요. 또 함께 약초밭을 관리하기도 했고요. 이쪽은 의의 사저예요. 맛있는 게 있으면 저한테 자주 나눠주기도 하고, 또 저를 데리고 몰래…….”
“크흠…….”
위무외가 이렇게 헛기침을 하자 상의의의 얼굴에 열이 올랐다. 마치 어느 모친 앞에서 그 아이를 나쁜 길로 이끈 것을 들킨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자, 어찌 되었든 오늘은 섣달 그믐날이고, 우리도 연말을 보내러 집에 돌아왔으니 오늘 밤 연회는 떠들썩할 겁니다!”
위무외는 이렇게 소리 높여 말한 뒤, 자신의 부인을 향해 살짝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 얼굴에 깊은 정이 담겨 있어 목 씨의 뺨이 붉게 물들었다.
위원생이 들어오자 분위기는 전보다 더욱 빨리 화기애애해졌다. 이렇게 상의의와 관화는 점차 위씨 가문의 연말 분위기에 물들어갔다.
사실 선문에서도 문을 닫아걸고 수행하는 이만 아니라면, 새해가 되는 시각은 그들에게도 매우 중요한 때였다. 게다가 선문만의 독특한 연말 분위기도 있었다. 그때는 옥회산에 자라는 화초와 흐르는 물조차 평소와 다른 변화를 보인다. 또한, 나이 어린 제자들은 종종 자신의 사부가 직접 만든 장난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옥회산의 연말 분위기는 위씨 가문의 떠들썩하고 기쁨이 넘치는 분위기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특히 이번에 가주와 어린 도련님이 돌아오자, 위씨 가문에는 아래위로 모두 경사스러운 분위기가 흘러넘쳤다. 이에 상의의와 관화는 무척 흥미로움을 느꼈다.
연말에 가장 즐거운 것은 항상 노인들과 아이들이었다. 위원생이 소소한 술법을 선보일 때마다 그의 가족들은 경탄을 금하지 못했다. 위씨 집안 노태야는 항상 위원생과 함께 붙어 있었다.
그와 동시에, 초대장 하나가 위씨 집안의 두 고수에게 전해져 영안현으로 향했다. 비록 섣달 그믐날 연회를 함께 보내지는 못하겠지만, 위무외와 위원생이 모두 고향으로 돌아왔으니 마땅한 예의는 지켜야 했다.
게다가 위씨 집안 부자가 이번에 하산한 데에는, 가족들을 보려는 목적뿐만 아니라 계연을 만나야 하는 중요한 일이 있었다.
이에 위씨 집안의 두 고수는 두꺼운 외투를 걸치고서 밤낮없이 말을 달리는 중이었다.
이 시각 거안소각에서는 계연이 후원에서 대나무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는 다리 한쪽을 다른 허벅다리에 올린 채로 담장에 등을 기대고서는 떨어지는 눈꽃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이런 모습은 마치 쓸쓸한 독거노인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는 지난 생의 가족들을 잠시 떠올리고 있었을 뿐, 크게 슬프거나 외로운 기분은 느끼지 않았다.
도성에서 돌아온 후, 계연은 두장생에게서 얻어온 종이 인간을 만드는 술법을 잠시 연구해보다가 오랫동안 잠이 들었었다.
오늘에서야 잠에서 깨어 국수를 한 그릇 먹으러 갔더니, 손기 노점의 주인이 바뀌어 있었다. 손기는 더는 그곳에 없었고, 그의 작은아들이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그래서 계연은 손기의 건강이 나빠졌다는 사실과, 작은아들이 장사를 끝내고 돌아오기를 집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깨어나 보니 날짜가 12월 30일인 것을 알게 된 계연은 연말이 이렇게 빨리 돌아온 것이 조금 어색했다. 하지만 국수를 먹으러 가는 동안 행인들이 나누는 대화를 듣자 조금 실감이 났다.
“계 선생님…… 계 선생님…….”
문밖에서 아주 조심스럽게 그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오자 계연은 웃음을 터뜨렸다.
“문 안 잠겼으니 들어오렴.”
그의 목소리가 떨어지자마자 붉은 털의 여우 한 마리가 대문을 열고 잽싸게 들어왔다. 그러고는 서둘러 문을 닫고 자물쇠까지 걸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니? 개 떼라도 마주친 거야?”
계연이 이렇게 놀리자 호운은 다급히 손을 들어 올려 얼굴 앞에 대고는 ‘쉬잇’하는 소리를 냈다.
“계 선생님, 오늘이 30일이라 인간들의 기운과 양기가 모두 왕성해요. 심지어 개들조차 더욱 사나워졌어요. 오늘 선생님께 인사드리러 온 것도 제게는 엄청난 위험을 감수한 거라고요!”
“하하하……. 횡골을 녹이기까지 한 여우가 이렇게 개를 두려워하다니, 다른 요괴들이 알게 되면 너를 부끄러워할 거야!”
“개들한테 쫓기는 것보다는 체면 좀 구기는 게 낫지요!”
호운은 후원에 개가 한 마리도 없다는 걸 확인하고는 계연의 앞으로 걸어가 두 손을 모아쥐며 공수했다.
“호운이 육 산군과 저 자신을 대표하여 계 선생님께 새해 인사 올립니다!”
“새해 인사를 하려면 춘절까지 기다려야지. 30일은 아직 일러.”
이렇게 대답한 계연은 몸을 일으켜 주방으로 향한 다음, 호운을 위해 꿀차를 타줄 준비를 했다.
“계 선생님, 저희가 예절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실은 올해 새해가 될 때 육 산군이 저를 끌고 함께 수행하러 가기로 했거든요. 그는 환골탈태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이번 묵은해와 새해가 교차하는 시간에 새로운 생명의 기운을 받아들일 거래요. 계 선생님께서 가르쳐 주신대로요. 그래서 새해에는 못 오게 되었어요.”
“육 산군이 너를 참 잘 챙기나 보다. 알겠다, 돌아가면 나 대신 안부 인사 전해주렴.”
계연은 이렇게 대답한 다음 끓는 물을 준비했다. 호운은 주방을 기웃거리더니 화덕 옆에 놓인 작은 단지를 바라보았다.
“헤헤……. 계 선생님, 번거롭게 물 끓이실 필요 없어요. 제가 차 마시는 걸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요. 꿀만 조금 떠서 주시면 돼요.”
계연은 그가 풍류를 모른다며 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 그와 동시에 물을 끓여 차를 만드는 이런 보통 사람들의 생활을 그가 언제쯤 이해하게 될지 걱정되기도 했다.
계연은 빈 그릇을 꺼내 단지 안에서 꿀을 몇 숟가락 덜어낸 다음 여우에게 건넸다.
“가져가렴.”
“헤헤헤……. 감사합니다, 계 선생님!”
호운은 조심스럽게 그릇을 받쳐 들고 혀를 내밀어 꿀을 한번 핥았다. 그러자 향긋하고 달콤한 향기가 혀를 통해 입안 곳곳으로 퍼졌다.
계연은 고작 몇 숟가락의 꿀을 그릇에 담아서 주었지만, 호운은 혀끝으로 조금씩 꿀을 맛보며 최대한 그 맛을 음미하려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너무 달아서 오히려 먹기 거북해질 것이다.
계연은 여우가 도자기 그릇을 들고 행복한 얼굴로 꿀을 핥는 것을 보고, 주방을 나갔다. 그리고 조금 전, 집 밖에서 사 온 물건들을 정리했다.
오늘 잠에서 깨어난 이후로 국수를 먹고 돌아와 잠시 눈 구경도 했으니 이제 제대로 된 일을 할 때였다.
계연은 방에서 동그란 바구니를 가지고 나와 돌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그 안에는 나무 자, 숯 막대, 노란 종이 한 무더기와 가위가 들어있었다.
호운은 도자기 그릇을 들고서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계연을 따라왔다. 그리고 계연이 탁자 앞에 앉아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고 있는 것을 잠시 지켜보았다.
“계 선생님, 뭐 하시는 거예요? 백성들이 창문에 붙이는 창화(窓花)를 만드는 것이라면, 붉은 종이를 쓰셔야 하잖아요?”
계연은 이때 자와 교도(交刀)를 이용해 노란 종이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낸 다음, 그 위에 숯으로 사람 모습을 그리고 있었다.
“와, 선생님은 그림도 참 잘 그리시네요! 대단해요!”
그러자 계연은 노란 종이 위에 그려진 사람을 바라보았다. 머리는 동그랗고 몸과 손발은 거의 직선과 다름없었다. 인제 보니 이 여우의 아첨하는 솜씨가 수준급이었다.
그래서 계연은 호운을 더는 신경 쓰지 않고, 종이 위에 그려진 선을 따라 종이를 오려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계연의 품 안에 있던 비단 주머니에서 종이학이 빠져나왔다. 종이학은 계연의 어깨 위에 앉은 다음 유심히 그가 하는 양을 관찰했다. 요즘 이 종이학은 화를 피하고 자신에게 유익한 것을 좇는 본능 외에도 호기심이 늘어난 상태였다. 특히나 계연이 지금 하는 작업은 같은 종이를 다루는 일이었기 때문에, 종이학은 계연의 종이 오리는 모습에 호기심을 더 보였다.
잠시 후, 계연의 손안에 노란 종이로 된 종이 인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크기는 손바닥 반만 한 크기였다.
일단 그것을 한쪽으로 치워놓은 계연은 일각(*一刻: 15분) 정도 후에는 십 수 개의 종이 인형을 오려낸 상태였다.
이 종이 인형들은 형태가 모두 달랐는데, 제일 처음 것은 서 있는 자세였고 다른 것들은 각각의 동작을 본뜬 모양이었다. 쪼그려 앉은 자세, 허리를 구부린 자세, 팔 하나를 구부린 자세, 두 팔을 모두 내민 자세 등이 있었고, 좌우 다리를 각각 구부린 것과 머리가 좌우를 향해 있는 것들이 있었다.
처음에 호운은 계 선생님이 종이를 오리며 놀고 있는 것이라고 여겼다. 종이 인형의 형태들은 모두 달랐지만, 머리의 크기와 사지의 길이는 모두 같았다. 하지만 종이 인형들의 끝 모서리에는 옅은 법광(法光)이 감돌았고, 맨 처음 종이 인형을 오리던 순간부터 계연은 입으로 계속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때쯤 되자, 호운도 계 선생님이 어떠한 술법을 부리는 중이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이에 호운은 깨끗이 핥아먹은 그릇을 손에 들고서, 조용히 탁자 옆에 앉아 숨소리조차 크게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호운은 단 한 번도 눈을 깜빡이지 않으면서 계연이 내뱉는 모든 말을 유심히 들었다.
그러니까, 호운은 계연의 술법을 훔쳐 듣는 것이었다. 정확히 따지자면 엿듣는 것은 아니니 당당하게 듣는 거라고 할 수 있었다.
호운은 시간이 흐를수록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깨달았다. 육 산군의 영향으로 호운은 이미 계 선생님이 세간에 손꼽히는 고인이며, 그 도행의 깊이는 짐작도 할 수 없을 정도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지금 여기서 몇 가지 배울 수만 있다면, 그 배움이 한평생 유용하게 쓰일 것이 분명했다.
계연은 호운에게 딱히 이 술법을 숨기려는 생각도 없었다. 저 여우의 실력으로는 결코 이 술법을 배울 수 없을 것이고, 설령 호운이 조금 이 술법에 대해 알아간다고 해도 계연은 이를 별로 개의치 않았다.
호운은 계연이 점점 더 많은 종이 인형을 오려내는 것을 지켜보았다. 본래 손을 드는 동작의 종이 인형이 많았다면, 수량이 늘어남에 따라 뒤로 갈수록 팔이 구부리는 모양의 종이 인형이 늘어났다.
두장생과 그의 사부가 2대에 걸쳐 연구한 끝에, 천강지살(*天罡地煞: 도교에서 천강(天罡)은 북두성(北斗星)에 포함된 36위(位)의 별 또는 신장(神將)을 일컬음. 지살(地煞)은 72위의 흉성(凶星) 또는 흉신(凶神)을 가리킴. 전설에 따르면, 천강지살 총 108가지 별이 함께 움직이며 요괴와 마귀를 물리친다고 함.)과 같은 수인 108개의 종이 인형은 필요한 거의 모든 동작을 포함하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사제(師弟) 두 사람의 법력을 극한까지 쥐어 짜낸 셈이었다.
이 종이 인형이 동그란 머리에 직선으로 된 몸체와 사지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만들기 쉬운 것은 결코 아니었다. 종이를 자를 때는 가진 정신력과 법력을 이용하여 인형이 가져야 할 손가락, 손바닥, 뼈와 피부, 손발톱 등의 섬세한 부분을 보충해 주기 위해 입으로 계속 그 생김새를 묘사해 주어야 했다. 그렇게 술법의 구결(口訣)을 빠른 속도로 읊어야 하는 데다가, 관절이 몇 번 꺾이고 손가락은 몇 개이며 손톱은 몇 개인지 등을 정확히 설명해야 했다.
도중에 단 하나의 실수라도 생긴다면, 만드는 자와 연결된 종이 인형은 재로 변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