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283화 (283/892)

283화. 괴이쩍은 사인(死因) (1)

비적은 온 힘을 다해 자신의 목을 물어뜯는 이의 머리통을 떼어내려 했다. 하지만 그것의 힘이 어찌나 센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단 몇 초 만에 비적은 손발에 모든 힘을 잃었다.

“으으…….”

곧 발버둥 치는 소리조차 점차 희미해졌다.

잠시 후 비적의 온몸에 힘이 쭉 빠지더니 몇 번의 경련이 일어났다. 이제 땅 위에 남은 것은 누렇게 뜬 피부의 시체 한 구뿐이었다.

비는 아직도 멈추지 않고 쏟아져 내렸고, 주위의 지면은 모두 젖어 질척해졌다. 이곳의 부상자들은 싸움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고, 이들 대부분은 빗물에 의해 제대로 눈조차 뜨지 못하고 있었다. 간혹 목이 마른 이들은 입을 벌려 빗물을 받아마시고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이 결국 견디지 못하고 옆으로 몸을 뉘었다. 그때 등 뒤에 누군가의 몸이 닿는 것이 느껴졌다. 이를 확인하려고 고개를 돌린 비적은 순식간에 목을 깨물렸다.

멀지 않은 곳의 싸움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고, 하늘은 어느새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다. 오늘 밤은 비가 쏟아져 내려 당연히 달도 별도 없었으므로 사위가 무척 어두웠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은 모두 무공을 익힌 몸이라, 어둠에 어느 정도 적응하자 사물을 분간할 수는 있었다.

비적들은 상대처럼 치열한 사투를 벌이고 있지는 않았다. 이들은 이미 무공을 익힌 적들을 상대해 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인원수로 제압하며 자신들의 손실을 최대한 줄이려 하고 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부상자와 사망자가 자신들의 예상보다 더 많았다.

하지만 자신들이 공격하는 자들은 분명 돈이 있어 보였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일행에 자태가 뛰어난 여인 둘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척박한 땅에 자리 잡은 비적들에게 있어 저들은 놓치기에 너무나 기름진 먹잇감이었다.

안 그래도 이미 여인을 못 본 지가 오래되어 암컷 돼지마저도 예뻐 보이는 상황이었다. 이에 비적들은 이 일행들의 움직임을 이미 이틀 전부터 주시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 여인 둘을 제외한 다른 두세 명의 여인들도 그다지 빠지는 외모는 아니었다.

비가 내리기 전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진 싸움에서 비적들은 이미 저 무인들의 패색(敗色)이 짙음을 눈치챘다.

두립을 쓴 두목들은 말 위에 탄 채 멀리서 싸움을 이어가는 무인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초반의 맹렬하고 날카로운 기세였던 무공 초식들을 더는 쓰지 못하고 있었다.

“하하, 무공이 좀 뛰어난 게 무에 대수라고! 그래 봤자 강호인은 강호인일 뿐이지. 일대일 싸움에는 뛰어날지 몰라도 어떻게 진을 짜고 군대를 이루며, 단체를 상대하는지는 알지 못해.”

동료의 조롱을 듣고 다른 사내도 코웃음을 치며 그의 말을 받았다.

“맞는 말일세, 저들이 처음 사용한 초식은 기세가 날카롭긴 했지만 소모되는 진기(眞氣)가 너무 컸지. 비록 우리 형제 중 적지 않은 이들이 다치고 죽기는 했지만, 저들에게는 이미 대국을 바꿀 힘이 없어. 저 중에 뛰어난 몇몇 이들이 이 포위를 뚫는다면 모를까…….”

“흥, 비가 온 것만 아니었으면 화살로 이미 이 싸움을 끝냈을 거야!”

그들은 이렇게 대화를 나누며 비적들의 형세를 지켜보고 있었다. 마침 비적 중 한 명이 동료에 의해 끌려나가고 있었는데, 보아하니 팔다리에 조금도 움직임이 없어 얼마나 다쳤는지 알 수가 없었다.

비적 두 명은 오늘 부상을 입은 형제들을 싸움에서 격리하는 임무를 맡았다. 오늘 이 싸움은 다른 날보다 훨씬 격렬해서, 자신들이 빼낸 형제들만 이미 20명이 넘어가고 있었다. 그것도 죽은 이들은 포함하지 않은 숫자였다.

두 사람은 정신을 잃은 형제를 부축하며 후방의 부상자들이 있는 곳에 데려다주었다.

“후…… 후우……. 아이고, 힘들다! 그저 정신을 잃었을 뿐인 걸 보니, 파자(巴子) 놈이 그래도 운은 좋은가 봐. 진짜 정신을 잃은 건지, 그런 척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말하며 그는 자신의 얼굴에서 핏물과 흙탕물을 닦아 내었다. 그리고 조금 모자라다 느꼈는지 고개를 들어 빗물로 세수를 시작했다.

다른 한 사람은 진흙탕이 된 땅바닥에 앉아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래도 이게 어디야. 오늘 우리는 싸움에 나설 필요가 없잖아. 최소한 목숨을 잃을 걱정은 없지!”

“맞아, 게다가 오늘 우리가 이렇게 많은 형제를 구했으니, 고기를 먹을 때도 우리에게 조금 떼어내 주겠지. 헤헤헤……!”

빗물을 마셔 갈증을 푼 비적의 웃음소리가 뚝 그쳤다. 방금 무언가 수상함을 감지했는데, 정확히 어디가 어떻게 이상한 건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그의 동료가 먼저 이렇게 물었다.

“어이, 형제들이 왜 전부 가만히 누워있지?”

“그러게 말이야! 이봐……. 뭐해? 비가 이렇게 오는데 자는 거야? 노작(老雀)!”

두 사람은 그들과 가장 가까이 있던 형제 하나를 흔들어 깨우려 했다. 이자의 별명은 노작으로, 싸움 실력이 뛰어나 항상 큰 부상은 입지 않았다. 오늘도 그저 발이 삐어 부어오른 것으로 보기에는 심각해 보이지만, 실은 그리 심각한 부상은 아니었다.

몇 번이나 흔들어도 상대에게서 아무 반응도 없자, 비적은 마침내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챘다. 이에 그는 노작의 몸을 타고 넘어가 시신을 살폈다.

그는 눈을 가까이 대고서 노작의 상태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비록 또렷하게 볼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이자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손을 뻗어 그의 가슴 부근을 만져보니 심장이 뛰지 않고 있었다.

비적은 경악한 얼굴로 한쪽에 있던 동료에게 이렇게 말했다.

“죽었어!”

“빨리 다른 녀석들도 봐봐!”

두 사람은 얼굴에서 웃음기를 싹 거둬낸 뒤, 부근에 있는 다른 부상자들의 코 밑에 손가락을 대보거나 심장이 뛰는지 일일이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모두 죽어있었다.

비적 중 하나가 죽은 형제의 목에 맥박을 확인하려 하다가 돌연 시신의 목에 난 상처를 발견했다.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그는 시신의 옷깃을 열어젖혀 그 상처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상처지?”

다른 비적도 그것을 보았고, 두 사람은 다른 시신들을 다시 한번 검사했다. 그러자 모든 시신의 목 부근에 그와 같은 상처가 나 있었다. 이에 두 사람은 대경실색한 얼굴로 이렇게 소리쳤다.

“두목님들…… 큰일이 났습니다! 이쪽의 형제들이 모두 죽었습니다!”

“어서 좀 와보십시오! 이쪽 형제들이 죽은 것이 좀 이상합니다!”

두 사람이 이렇게 소리치자 곧장 다른 이들의 시선을 끌었다. 그러자 포위망 바깥에 서 있던 비적 몇몇이 그들에게 다가왔다.

동시에 체격이 거대한 두목 하나가 빠른 속도로 시신들을 향해 걸어왔다.

“셋째 두목, 저들의 목을 좀 보십시오. 모두 물린 흔적이 있습니다!”

셋째 두목이 그들의 말을 듣고 한쪽 무릎을 구부려 한 시신의 옷깃을 열어젖혔다. 하지만 어둡고 비가 오는 상황에 상처 부위가 제대로 보이지 않았으므로, 손을 뻗어 그 부위를 더듬더듬 만져보았다.

물린 상처는 전체적으로 폭이 넓었는데, 그중 구멍 두 개가 특히 깊게 나 있었다.

셋째 두목이 시신의 이마 부근으로 손을 옮겨 그자의 앞머리를 걷어내자, 이마에 깊게 난 어떤 흔적이 보였다. 자신의 손을 그 위에 대어 비교해보니, 마치 이마 부근을 손으로 꽉 쥔 듯한 각도였다.

곧 그의 머릿속에 어떤 장면이 떠올랐다. 무언가가 이자의 목을 물었고, 동시에 반항하지 못하도록 손톱이 길게 난 손으로 그의 이마를 콱 누른 것이다. 그렇게 해서 시신의 이마에 손톱에 긁힌 상처가 난 것이 분명했다.

이런 생각을 이어가던 셋째 두목은 시신의 가슴과 배 부근을 바라보았다. 시신의 옷을 완전히 풀어 젖히자, 과연 그의 예상대로 다른 한 손이 그 부위를 꽉 누른 듯한 흔적이 남아있었다. 이렇게 해서 부상자는 몸을 일으킬 수도 없었던 것이다.

‘힘이 보통이 아니다!’

차가운 봄비조차 그에게 추위를 느끼게 하지는 못했건만, 이 순간만큼은 뼈가 아리는 듯한 한기가 그의 몸을 뚫고 들어왔다. 셋째 두목의 머리카락이 쭈뼛 섬과 동시에 온몸에는 닭살이 오소소 돋아났다.

‘이곳을 얼른 떠야겠어!’

그는 자신의 직감이 옳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그는 더 망설이지 않고, 옷 안쪽에서 호루라기를 꺼내 온 힘을 다해 불었다.

삐익! 삐익!

날카로운 호루라기 소리가 빗속을 뚫고 비적들을 비롯한 열 몇 명의 무인들의 귀에 들려왔다.

그러자 비적들의 공세가 즉시 느슨해지며, 그들은 점차 바깥으로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무인들은 마침내 숨 돌릴 시간을 얻었지만 즉시 반격하려 하지 않았다. 첫째로는 사실 그들도 무척 지쳤기 때문이고, 둘째 이유로는 비적들이 무슨 계략을 짜고 있는 게 아닌지 의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검을 바닥에 꽂고 무릎을 꿇고서 숨을 몰아쉬었다.

“허억…… 허억……. 이게, 이게 무슨 일이지? 왜 후퇴하는 거야?”

두건을 쓴 사내가 빼앗아 온 장검 두 개를 땅에 꽂고서 잠깐의 휴식을 취했다. 그는 무인 중 가장 실력이 뛰어났기 때문에 방금까지는 계속 일행의 선두에 서 있었다.

비 오는 어두운 밤이라 그의 동료들은 물론 비적들도 미처 눈치채지 못했지만, 사실 그의 손은 진작부터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모, 모르겠군. 방금 호루라기 소리가 들렸는데…… 두목이라도 죽었나?”

“그런 것 같지는 않아! 일단, 얼른 쉬자! 헉……. 허억……”

무인들은 잠깐의 틈을 내어 호흡을 가다듬었다.

“다들 어때? 참을 만해?”

“죽을 정도는 아니야!”

“아, 아직 버틸 수 있어……!”

무인들이 숨을 몰아쉬고 있을 때, 비적들의 포위망 바깥에서는 다른 두목 두 명이 호루라기 소리가 들린 곳으로 말을 달려왔다.

“셋째, 무슨 일이야? 곧 무너뜨릴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러니까, 호루라기는 왜 분 거야? 밤도 깊고 비도 이렇게 많이 오는데, 무슨 변수라도 생겼어?”

셋째 두목은 몸을 일으키더니 얼굴을 한번 문질렀다. 그리고 바닥에 누운 시체들을 가리켰다.

“근처에 삿된 것이 있습니다. 부상을 입은 형제들이 전부 죽었어요. 모두 다 목에 물린 흔적이 있습니다. 여기는 위험해요, 어서 도망가야 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동시에 그는 자신의 말에 올라 고삐를 쥐고서 이곳을 떠나려 했다.

그러자 다른 두목들은 그들을 따르는 다른 형제들을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목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손을 비벼대는 셋째 두목을 바라보았다. 그의 심상치 않은 모습은 겁에 질린 게 확실해 보였다.

두 사람은 말에서 내려 시신들을 검사했고, 확실히 수상한 점이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후퇴! 모든 이들은 후퇴하라!”

그들 중 하나가 이렇게 소리치자, 다른 두목이 호루라기를 꺼내 들었고 셋째 두목도 다시 호루라기를 입가에 갖다 댔다.

삐이!

삐이익!

세 사람이 함께 호루라기를 불자, 모든 비적이 포위망을 풀고 일시에 바깥으로 물러났다.

두목들이 포위망의 바깥에서 큰 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모두 말을 타라! 말에 올라! 말이 없는 자들은 다른 사람 뒤에 타라! 두 사람이 말 하나를 타도 된다!”

“어서 가자! 어서!”

수많은 비적이 말에 뛰어올랐고, 선두의 두목을 따라 비가 내리는 어둠 속으로 사라져갔다.

반면 무인들은 모두 멍하니 이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비적들을 막아설 힘도 그럴 생각도 없었다.

“저들이…… 도망친 거야?”

“우리가 무찌른 거야? 우리가 마침내 무찌른 거야!”

“하하하……. 우리가 이겼어!”

“저들을 몰아냈어!”

믿을 수 없는 일에 흥분한 그들은 환호를 내질렀고,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는 데에 깊은 안도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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