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284화 (284/892)

284화. 괴이쩍은 사인(死因) (2)

잠시 후 흥분이 가라앉자, 그들은 점차 냉정함을 되찾았다. 일행 중 많은 사람이 다쳤고, 상처가 위중한 자들도 있었다. 얼른 비바람을 피할 만한 곳을 찾아 상처를 수습하고 쉬어야 했다.

비적들이 적지 않은 시체들을 남기고 간 것을 보고, 두건을 쓴 남자와 다른 두 사람이 그들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그들에게서 약품이든 다른 어떤 쓸모있는 것이라도 찾길 바랐기 때문이다.

“에고, 아……!”

이때 바닥에 누운 한 비적이 중얼거리자, 칼 두 자루가 즉시 그의 목에 겨눠졌다.

“어이쿠! 이, 이게 무슨……!”

칼에 눌린 비적은 깜짝 놀란 얼굴로 얼른 주위를 살폈다. 바닥에 누운 시체들을 빼면 다른 형제들은 없었다. 보아하니 자기들이 진 것 같았다!

“하하, 왜 네 형제들이 없을까 생각 중이냐? 당연히 우리가 무찔렀으니 없지!”

“다른 말 할 필요 없이 그냥 죽여!”

“기다려봐, 잠깐만!”

두건을 쓴 사내가 걸어오더니 땅바닥에 누운 비적을 바라보았다.

“이 근처에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곳이 있나? 사실대로 말하는 게 좋을 것이다. 네 무리는 전부 우리한테 죽거나 다쳤거든. 살고 싶다면 협조하는 게 좋을 거다!”

그러자 비적은 다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예! 알겠습니다! 요 앞에 마을이 하나 있습니다. 아무도 살지 않지만, 가옥들은 그런대로 괜찮습니다!”

“음, 네 이름이 뭐지?”

비적은 침을 꿀꺽 삼킨 뒤, 덜덜 떠는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했다.

“파, 파자…… 파자라고 합니다!”

그 시각.

버려진 마을에 있던 계연은 손에 든 서책을 내려놓았다. 몸을 일으켜 문을 살짝 열자, 곧 바깥의 비바람이 불어 닥쳤다.

방금 그는 특이한 휘파람 소리를 들었다. 아주 희미한 소리였지만, 결코 잘못 들은 것이 아니었다.

비가 쏟아지는 어두운 밤이었으므로, 강호의 협객들은 시신들을 그리 주의 깊게 살피지 않고 그저 자신들의 손에 죽었겠거니 여겼다.

부상자들이 없던 점에 대해서는, 다른 비적들이 도망칠 때 부상자들을 데리고 갔다고 생각했다.

방금 치러진 싸움은 너무나 혼란스러웠기에, 협객들은 자신들이 총 몇 명을 베었고, 몇 명을 죽였는지 알지 못했다. 게다가 이런 목숨을 건 싸움이 끝나면, 사람들은 종종 자신이 아주 많은 이들을 죽였다는 착각을 하기도 했다.

이들 중 몇이 시신들의 몸을 수색하여 유용할 것 같은 몇 가지를 챙기는 동안, 다른 이들은 잠시 휴식을 취했다.

“어서 움직이세. 저 비적들이 도망치기는 했지만, 곧 다시 올 수도 있어!”

“맞아, 어서 안전하게 몸을 숨길 수 있는 장소를 찾아야 해. 상처도 치료해야 하고.”

그들을 이끄는 두건 쓴 남자가 일행을 재촉하자 사람들이 분분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어서 남자는 파자의 등을 두드리며 차가운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가자, 방향을 말해라.”

“예, 예. 마을은 동서쪽에 있습니다. 이쪽 수풀 언덕 밑에 있는 길을 따라가면 됩니다.”

열 몇 명의 무인들은 그래도 무공을 익힌 몸이라 상태가 그리 나쁘지 않았다. 휴식을 취한 이들은 체력을 조금 회복했기 때문에, 진흙탕이 된 숲길에서도 말 하나에 두 명이 올라탄 비적들에 비해 그리 느리지 않았다.

비는 여전히 주룩주룩 쏟아지고 있었고, 진흙탕이 된 길은 걷기에 배로 힘들었기 때문에 무인들은 적지 않은 체력을 소모했다.

잠시 후, 파자가 수풀 사이로 난 길을 찾아냈다. 그는 저 앞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대협(大俠)분들, 바로 이 길입니다. 여기는 오가는 이가 적은 길인데, 이 길을 따라 쭉 가면 그 버려진 마을이 나옵니다.”

머리에 두건을 쓴 남자가 아무 말 없이 일행을 향해 손짓하자, 다른 이들은 재빨리 그의 뒤를 따랐다. 제대로 난 길을 따라 걷자, 그들의 속도는 전보다 훨씬 더 빨라졌다.

파자가 말하는 마을은 계연과 다른 일행들이 머무는 바로 그곳이었다.

7, 8리 정도의 거리는 그다지 멀다고 할 수 없어서, 일행은 얼마 되지 않아 마을 부근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때 선두에 서 있던 남자가 하나가 발걸음을 멈추고 이렇게 말했다.

“잠시 멈춰! 마을이 보이기는 하는데 불빛이 있어!”

이에 일행들이 마을 쪽을 쳐다보니 과연 그곳에서부터 불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사람이 사는 건가?”

“설마 이놈이 우리를 비적들 소굴로 이끈 것은 아니겠지?”

남자 하나가 추위에 덜덜 떨고 있던 비적의 옷깃을 잡아 올렸다.

“아, 아닙니다! 억울합니다! 저 마을은 황폐해진 지 오래고 주위에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게다가 방책도 없고 수비도 없는데, 어찌 저곳이 저희 산채이겠습니까? 아마 행인들이 쉬고 있는 것이겠지요!”

“이자 말이 맞는 것 같아. 불빛이 약한 것을 보니 저 안에 있는 게 비적 무리는 아니야. 일단 가서 보자.”

계연은 일찍부터 그들의 움직임을 알아챈 상태였다. ‘마음으로부터 느낀’ 바에 의하면, 다가오는 이들은 총 16명에 남녀가 섞여 있었다. 어떤 이들은 부축을 받고 있었지만, 대부분은 스스로 무리 없이 걷고 있었다. 보아하니 무공을 익힌 자들이었다.

그들이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드디어 가옥 안의 다른 이들도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계연이 이미 문가에 서서 밖을 내다보고 있는데, 한명과 청년 두 명이 긴장한 듯이 문가로 다가왔다.

“계 선생님, 밖에 또 누가 왔습니까?”

“예, 강호 사람들인 듯합니다. 그런데 방금 다른 이들과 싸움이 있었던 것 같네요. 대부분이 상처를 입었고 피도 잔뜩 묻었어요.”

한명과 그의 일행은 마을 입구에서부터 가까워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긴장된 기색으로 계연을 향해 이렇게 물었다.

“저자들이 상처를 입은 것을 어찌 아십니까?”

계연은 자신의 코를 가리키며 말했다.

“제 후각은 아주 뛰어나거든요. 저들 몸에서 저들 자신의 피와 다른 이들의 피 냄새가 동시에 나요.”

‘무슨 코가 저리 좋지? 게다가 본인과 다른 이들의 피 냄새를 구분할 수도 있나?’

그러나 지금은 이런 궁금증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순간이 아니었다. 한명의 일행들은 모든 주의를 강호인들에게 쏟고 있었다.

마침내 한명의 일행들은 열 명이 넘는 사람들이 마을로 들어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게다가 보아하니 저자들은 곧바로 이 가옥을 향해 오는 모양이었다.

“저 사람들 이곳으로 오고 있네요. 아무래도 피하지 못하겠어요.”

강호인들이 가까워지자, 계연은 한명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바깥을 향해 이렇게 소리쳤다.

“쉴 곳을 찾아오신 건가요? 이 근방에서는 이 가옥이 그나마 보존이 잘 되어 있어요. 마른 장작도 남아있고요. 여러분만 괜찮으시다면 여기로 오셔도 됩니다.”

그러고서 계연은 다시 한명을 향해 말했다.

“한 선생님, 저 말 두 필은 구멍 뚫린 옆방에 데려다 놓아야겠어요. 말 두 필 정도는 들어가고도 남을 거예요. 이 가옥은 어쨌든 주인도 없고 저자들의 상황이 나빠 보이니, 저희가 도움을 베푸는 게 맞겠지요.”

계연의 돌발행동에 한명은 꽤 불만이 있었지만, 곧 자신들이 어떻게 이곳에 들어왔는지를 떠올리고는 입을 다물었다. 게다가 바깥의 사람들은 자기들보다 수가 더 많으니, 최대한 충돌을 피하는 것이 좋았다. 이에 그는 일행 중 한 사람에게 말들을 끌고 가게 했다.

“소구(小九)야, 말을 끌고 나가거라.”

계연이 먼저 제안한 데에는 이들의 긴장을 풀어주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그 외에도 저들에게서 나는 괴이쩍은 냄새가 무엇인지 궁금하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밖에 있던 무인들은 계연의 말을 듣고 멈춰 서서 저들끼리 의견을 교환했다. 그리고 곧장 가옥을 향해 걸어왔다.

두건을 쓴 남자가 맨 앞에 서 있었는데, 그는 채 가까이 다가오기도 전에 큰소리로 인사하며 감사를 표했다.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마침 저희도 쉴 곳이 필요하던 참이었습니다!”

이렇게 말하며 남자는 몇 걸음 만에 앞마당을 넘어와 실내로 들어왔다.

안쪽은 사당과 비슷한 크기의 공간으로, 모닥불 두 개가 만들어져 있었다. 안쪽에 모여 앉은 사람들은 성인과 어린아이를 비롯해 남녀가 모두 섞여 있었다.

남자가 보니 바깥쪽에 서 있는 세 사람 중 하나는 고아한 문인과 같은 차림새였고, 방금 자신들에게 먼저 말을 건 사람이었다. 다른 두 사람은 자신이 손에 쥔 칼을 보더니, 자신에게 공수한 후 안쪽으로 향했다. 칼을 본 두 사람의 표정 변화는 아주 명확하여 남자에게도 똑똑히 보였다. 바깥쪽 방에는 말을 묶고 있는 남자가 있었는데, 보아하니 자신들에게 자리를 내어주기 위해 말을 데리고 나간 듯했다.

두건을 쓴 남자는 이런 정황으로 미루어보아, 이들이 전부 일반 백성일 것으로 추측했다. 서생처럼 보이는 사람은 두려운 기색은 내보이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수상쩍은 속셈을 품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계연을 포함한 실내에 있는 이들은 전부 무공을 익힌 자들이 아니었다. 그래서 두건을 쓴 남자는 속으로 남몰래 안심했다.

“감사는요, 먼 길을 떠나면 누구에게나 곤란한 상황이 닥치기 마련이지요. 저도 제가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 누군가가 도와주기를 바라니까요.”

계연은 남자가 손에 쥔 이 빠진 칼날을 보고서 간단히 화답했다. 그리고 자신의 걸상을 구석으로 밀어 공간을 마련해 주었다.

이에 두건 쓴 남자는 고개를 끄덕인 뒤, 다시 밖에서 기다리는 자신의 일행을 향해 돌아갔다.

“저기는 안전해. 안쪽에 있는 사람은 모두 일반 백성들이야. 심성도 나쁘지 않고. 그러니 모두 언행에 주의해야 해! 저 사람들을 놀라게 하면 안 돼.”

“휴우……. 잘됐군!”

“응, 드디어 쉴 수 있겠네…….”

“가자, 어서. 따뜻한 물이나 한잔 마실 수 있으면 좋겠군!”

무인들은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쉰 다음, 서로를 재촉하며 가옥 안으로 들어왔다.

무인들은 모두 물에 들어갔다 나온 사람들처럼 온몸이 젖어있었다. 그들의 옷에서는 계속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는데 그야말로 꼴이 엉망이었다.

한명의 일행들은 안으로 들어선 이들을 면밀하게 관찰했다. 과연 무인들은 계 선생의 말대로 대부분 상처를 입은 상태였고, 그들에게서 나는 피비린내도 맡을 수 있었다.

가옥은 그리 작다고 할 수 없었다. 만약 말 두 필이 아직 실내에 있었다면 너무 비좁다고 느낄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은 널찍하다고 할 수는 없어도 답답한 느낌은 없었다.

실내의 사람들은 간단히 인사를 나눈 후, 서로 할 일을 하기 시작했다.

장작이 후에 모자랄 수도 있어서 그들은 결국 또 다른 모닥불을 만들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계연이 피운 구석의 모닥불을 옮겨와 열 명이 넘는 이들이 둘러싸고 앉았다.

상황이 여의치 않다 보니, 강호인들은 옷을 벗어 말리려고 하지는 않았고 겉옷만 벗어 상처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서로 이야기를 몇 마디 나누다 보니 처음의 긴장감도 서서히 사라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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