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285화 (285/892)

285화. 사악한 존재

머리에 두건을 쓴 남자의 이름은 황지선(黃之先)이었다. 그는 겉옷을 벗어 물기를 짜는 동안 한명과 계연을 비롯한 이들에게 비적을 만나 전투를 벌인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를 듣던 한명의 일행들은 때때로 숨을 들이켜거나 놀라 경악하기도 했다.

계연은 구석에 앉아 비적들이 도망친 후 그들이 다친 비적 하나를 잡아 왔다는 것을 듣고 마침내 이렇게 입을 열었다.

“대협들의 무공이 비범하기는 하지만, 비적들이 도망친 데에는 다른 연유가 있는 듯합니다.”

계연이 이렇게 말하자 강호 협객들의 주의가 단번에 그에게로 쏠렸다. 하지만 계연의 말에 반박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고, 황지선은 오히려 그의 말에 찬성하기까지 했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확실히 조금 이상하긴 합니다. 계 선생님께서는 어느 부분이 이상하다고 느끼셨습니까?”

계연은 구석에서 감시당하고 있는 어색한 표정의 파자를 바라보았다.

“분명 무언가 삿된 것을 마주친 거예요. 너무 놀라 동료조차 두고 도망친 거지요.”

“삿된 것이요? 선생님의 뜻은…… 귀신 말씀입니까?”

황지선이 자기도 모르게 이렇게 되물었다.

모든 이들의 주의가 계연에게로 쏠렸다. 이런 외진 곳에서 ‘귀신’이라는 단어는 모두에게 민감한 주제였다.

하지만 계연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꼭 귀신이라고 할 수는 없고요. 어쨌든 아주 사악한 존재일 거예요. 사실 제 후각이 좀 뛰어난 편이라, 아까 여러분들의 몸에서 이상한 냄새를 맡았거든요.”

그의 말을 듣고 어떤 이가 이렇게 물었다.

“이상한 냄새요? 피비린내 말씀입니까?”

“아니요, 피비린내도 여러 종류가 있어요. 보통 사람에게는 사람의 기운과 양기가 있고, 귀신들에게는 음기와 귀기가 느껴지지요. 요물들이라면 요기가 느껴지고요. 하지만 여러분들이 마주친 것에서는 이런 기운이 안 느껴져요.”

계연은 이렇게 설명한 뒤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그러나 그것이 여러분들을 따라오지 않았으니, 아마 비적을 따라 산채로 간 듯하네요. 하지만 분명 여러분들 쪽이 더 쉬운 상대일 텐데……?”

계연은 이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다시 무인들을 훑어보았다.

“설마, 이쪽이 입맛에 맞지 않았나?”

그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모골이 송연해졌다. 심지어 무인들은 두피가 바짝 서는 것을 느꼈고, 불을 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온몸에 한기가 느껴졌다.

“안 되겠어요. 그것은 너무 사악한 존재라 이대로 두면 위험해요. 대협분들, 이 비적을 제가 데려가도 되겠지요?”

잠시 계연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던 황지선은 곧 이렇게 되물었다.

“저 비적들의 산채에 가려고 하십니까?”

이에 계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제가 본 요사스러운 것들이 적지 않은데, 오늘 저것은 그중에서도 가장 특이한 존재예요. 비적들은 죽어도 싸지만, 그렇다고 저 삿된 것들이 더욱 힘을 얻게 만들 수는 없어요! 저것은 몸을 숨기는 데에 능하니, 오늘 제거하지 않으면 영영 기회를 놓칠 수도 있어요.”

이렇게 말하며 계연은 비적의 곁에 다가와 앉아 있던 파자를 잡아당겼다.

“아, 안 돼요! 저, 저는 가고 싶지 않습니다.”

“나랑 같이 가요, 아무 일도 없을 테니.”

계연은 호리호리한 몸매에 손발도 크지 않았지만, 비적은 어떻게 발버둥을 쳐도 계연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결국 그는 억지로 문가까지 끌려왔다.

문가에 선 계연은 잠시 발걸음을 멈추더니, 누런 종이 한 장을 황지선에게 건넸다.

“이 물건은 여러분들의 안전을 위해 잠시 빌려드릴게요. 삿된 것이 그것 하나가 아닐 수도 있으니까요. 제가 이미 술법을 펼쳐두었으니, 이것만 기억하세요. 만약 위험한 상황이 되면 손가락에서 피를 낸 뒤 이 위에 떨어뜨리고, 역사(力士)는 모습을 드러내라고 외치세요.”

“기억했지요?”

황지선은 약간 멍한 얼굴로 이렇게 대답했다.

“예에…….”

“좋아요, 해가 뜨기 전에는 꼭 돌아올게요.”

계연은 이렇게 말을 남기고서 비적을 가볍게 잡아들고서 가옥을 나섰다.

“윽! 저는 가고 싶지 않은데요!”

무인들이 채 반응하기도 전에 계연은 이미 비적을 끌고서 떠나버렸다. 이에 모두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황지선과 다른 이들이 바깥을 내다보자 근처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좀 더 멀리 시선을 돌리자, 인영(人影) 두 개가 마을 입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뛰는 게 아니라 걸어가고 있었는데, 도대체 어찌 저리 빠르게 걸어갈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황지선이 침을 꿀꺽 삼키며 손안의 물건을 진지한 얼굴로 살폈다. 그것은 아주 얇은 노란 종이로 만들어진 종이 인형이었다.

“노황(*老黃: 황지선을 부르는 호칭)……. 저분이…… 미친 건가?”

안쪽에 있던 무인 하나가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고 이렇게 물었다. 이렇게 비가 쏟아지는 어두운 밤에, 길도 미끄럽고 날씨도 추운데 비적 하나만 데리고 나가버리다니.

“그러니까……. 왜 저분을 불러 세우지 않았어?”

황지선은 근처에 서서 계연이 떠난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일행들을 쳐다보았다. 그들의 표정을 보아하니 방금 자신이 본 것을 저들도 목격한 것 같았다.

“부르려고 했을 때는 이미 보이지 않았어. 어쨌든 오늘 밤은 조심하는 게 좋겠다.”

그는 원래 종이를 품 안에 넣으려 했으나, 자신의 옷이 모두 젖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게다가 주변은 온통 불길이니 안전한 곳을 찾지 못하고 결국 다시 손에 쥐었다.

무인들은 가옥의 문을 닫아걸었다. 방금 저 선생께서 하신 말씀이 사실이든 아니든, 최소한 그들이 경계심을 갖도록 하는 데에는 성공했다.

이때, 계연은 비가 오는 밤길을 파자의 옷깃을 잡고서 땅을 접어가며 걷고 있었다.

처음에는 소리를 지르며 돌아가고 싶다고 발버둥 치던 비적은 이제 아무런 말도 내뱉지 못했다.

방금 가옥에서부터 밖에 나올 때까지 그는 너무 어두워 거의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하지만 우르릉하는 천둥소리와 함께 번개가 치며 대지를 밝게 비추던 순간, 그 짧은 빛 속에서 파자는 주위의 사물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가는 것을 목격했다. 자신이 있던 마을은 이미 저 멀리 등 뒤로 사라진 지 오래였다. 자신들은 막 가옥에서 나왔으니, 원래대로라면 아직 마을을 나가지 못했어야 맞았다.

이에 파자는 자신을 끌고 가는 서생을 다시 바라보았다. 상대는 시종일관 보통 속도로 걷고 있건만, 자신은 입도 열지 못할 만큼 강풍을 맞고 있었다.

파자는 몇 번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것이 너무 놀라서인지 추위에 떨어서 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이 계연의 주의를 끌었고, 잠시 후 파자는 자신의 입은 옷이 물기 하나 없이 마른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제야 파자는 광풍이 불어닥치고 있지만, 자신의 몸에는 빗물이 닿지 않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번개가 치면 길을 잘 보세요. 일단 싸움이 벌어졌던 장소에 가야 하니까요. 방향은 맞죠?”

그때 계연의 목소리가 옆에서 들려왔는데, 장대비가 쏟아지는 와중에도 파자에게는 그것이 더없이 명료하게 들렸다. 게다가 무슨 까닭에서인지 땅 위에 남은 무인들의 발자국을 보니 발소리가 ‘명확하게 들려왔다’.

사실 계연이 이렇게 묻는 것은 그저 확인에 불과했다.

“맞, 맞습니다. 잠시 후에 산비탈이 나오는데 산비탈을 끼고 돌아야 합니다.”

파자는 이때 소란을 떨거나 발버둥을 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제야 그는 계연이 아까 말했던 것이 전부 사실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버려진 마을에 머무르지 않고 이 서생과 함께 있는 것이 훨씬 안전하다고 느껴졌다.

두 사람은 매우 빠른 속도로 이동 중이라, 잠시 후에 파자가 말했던 산비탈이 나왔다. 둘은 방향을 확인한 뒤 곧장 그곳으로 향했다.

몇 분 뒤, 두 사람은 무인과 비적들의 싸움이 벌어졌던 장소에 도착했다. 곧이어 두 사람의 시야에 땅 위에 널브러진 시신들이 들어왔다.

“여기인가 보네!”

계연은 이렇게 중얼거린 뒤 한껏 냄새를 들이마셨다. 시신들이 밀집한 곳에서 나는 악취를 참아내자, 자연스럽게 한 시신의 목 부근에서 그 괴이한 냄새의 원인을 찾아낼 수 있었다.

번개가 하늘을 가르고 내리치자, 파자도 시신의 목에 남은 심상치 않은 흔적을 볼 수 있었다. 시신은 거의 목의 절반이 찢어진 채였다.

“으아악……!”

파자는 놀라 벌벌 떨며 소리를 질렀다.

“시체에는 전부 피도 없고 정기도 없어. 음, 이 시신도 그렇군. 하지만 여기에는 피가 조금 남아있네. 이자는 전투 중 입은 상처로 인해 죽었겠군. 그리고 그것은 살아있는 사람을 좋아하지. 혼백조차 정기와 함께 빨려 사라진 거야.”

계연이 이렇게 중얼거릴수록 파자의 안색은 더욱 창백해져 갔다. 하지만 계연에게는 이 비적의 기분을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그의 시선은 다시 전투 중 목숨을 잃은 비적들의 시신으로 향했다.

망연한 표정의 새로 태어난 혼령들이 시신 주위를 배회하고 있었다. 보아하니 이곳까지는 저승사자들이 오지 않을 듯했다. 이렇게 되면 이들은 정말로 이승을 떠도는 외로운 넋이 되는 것이다.

“갑시다, 산채로 안내해요.”

“이, 이쪽입니다!”

파자는 두려움을 감추며 비적들이 떠난 방향을 가리켰다. 계연은 가만히 귀를 기울여 이쪽으로 사라진 한 무리 인마의 흔적을 들을 수 있었다.

“음, 정신 똑바로 차리세요. 길 잘못 안내하지 마시고요. 어서 가요.”

계연이 땅에 발을 한번 구르더니, 파자를 붙잡고 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나아갔다.

비적들은 곧바로 산채로 돌아가지 않고, 중간에 강을 건너거나 하며 자신들의 흔적을 지우려고 길을 크게 돌아갔다. 하지만 계연은 정확한 위치를 아는 길잡이가 있었으므로 가장 빠른 경로를 따라갈 수 있었다.

길을 서두르면서 계연은 파자에게 도적들의 산채 규모와 기본적인 정보에 대해 캐물었다.

시신에 남아있는 기운으로 보건대, 비적들은 모두 같은 무언가에 공격당한 듯했다. 그것은 강시(僵尸)와 비슷한 존재로 보였다.

그것은 산 자의 피를 매우 좋아했고, 피와 함께 온몸의 정기도 모두 빨아먹었다. 그래서 시신의 몸에는 피도 어떤 기운도 남지 않았다. 자연히 텅 빈 시신에는 어떤 사후 변화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도대체 피를 얼마나 좋아하길래, 홀로 수백 명이 사는 산채로 향한 것일까?’

왜남산(矮南山)에는 남왕채(南王寨)라고 불리는 도적 소굴이 있었다. 그것은 산채의 우두머리 몇몇이 붙인 이름으로, 이 드넓은 남원도를 모두 다스리겠다는 거만한 의미가 담겨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그런 교만을 부릴 정도의 위세가 있었다. 현재 이들은 4, 5백의 수하들을 거느리고 있었고, 그중 적지 않은 이들이 탈주병들이었다. 심지어 남왕채의 둘째 두목은 군관(軍官) 출신이었다.

산채가 위치한 왜남산은 비록 ‘왜(*矮: 작다, 짧다)’ 자가 붙어있긴 하지만, 의외로 산세는 매우 험준했다. 이들의 산채는 거대한 암석 봉우리 위에 지어져 있었고, 주위의 산세는 험준한 데다 유일한 산길은 좁고 구불구불했다. 즉, 지키기는 쉽고 공격하기는 어려운 천혜의 요새였다.

그리고 강호의 무인들을 습격한 비적들이 바로 그 남왕채의 비적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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