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7화. 가까이 오는 자는 죽는다 (1)
한편, 마을의 황폐한 가옥 안 대들보 위에는 종이학 하나가 머리를 약간 기우뚱한 채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바깥쪽에 하나, 안쪽에 하나 있는 모닥불을 피해 종이학은 그 중간쯤에 있는 대들보 위에서 그 열기를 피하고 있었다.
종이학은 아직 영지를 얻지는 못했지만, 화를 피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것을 좇는 본능은 더욱 강해진 상태였다. 이에 종이학은 아주 미세한 기운이나 특수한 성질을 지닌 사물을 누구보다 민감하게 감지할 수 있었다.
그래서 예전에 두장생이 종이 인형을 이용해 역사를 소환했을 때, 종이학은 그 과정에서 생긴 독특하고 현묘한 기운의 변화를 감지하고 계연을 이끌고 간 것이었다.
계연이 종이학을 이곳에 남긴 데에는 만일을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보통 사람들의 반응 속도는 종이학이 위험을 감지하는 능력보다 느리기 때문이었다.
이때 종이학은 황지선이 손에 들고 있는 노란 종이 부적을 주시하는 것 외에도, 아래쪽 사람들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무인들은 널어놓은 겉옷의 물기가 마르자, 동료들의 가림막 뒤에서 내의를 벗은 뒤 겉옷으로 바꿔입었다. 그리고 벗은 옷을 다시 모닥불 근처에 널어놓았다. 저쪽의 여자아이는 따뜻한 물을 곁들여 불에 구운 전병을 씹고 있었다. 그때 한 남자가 몸을 급작스럽게 긴장시키더니 스리슬쩍 방귀를 뀌었고, 그는 곧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종이학은 이런 장면들을 지켜보며 무엇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고, 어떤 개념도 없이 그저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특히 방귀를 뀐 남자의 행동은 종이학에게는 어떤 의미도 없었지만, 그래도 아주 진지한 태도로 관찰했다.
그때, 밖에서 무언가 불안한 기운을 감지한 종이학은 본능적으로 계연을 찾았다. 하지만 지금 그의 주인은 자리에 없었기 때문에, 종이학은 대신 황지선이 손에 들고 있는 노란 종이 부적을 찾아냈다.
잠시 후, 밖에 매어 놓은 말 두 필이 이상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끼히힝……!
히힝! 푸르르……!
다각, 다각! 탁탁탁!
그들은 나이가 들어 조금 마르긴 했지만 그래도 아주 영특했다. 말들이 밖에서 발을 구르고 울어대는 것을 보니, 고삐를 끊고 이곳을 벗어나려 하는 것 같았다.
심상치 않은 기척을 들은 한명과 그의 일행들은 무척 신경이 쓰였다. 저 말 두 필은 그들의 중요한 재산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말을 보러 가야겠다. 저러다 도망치면 안 되니 말이야.”
“예, 어서 가서 봅시다!”
한명은 다른 청년 한 사람과 밖으로 나가려는 듯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황지선은 온통 암흑으로 뒤덮인 바깥을 내다보며, 저 두 사람이 무공을 익히지 않았다는 것을 떠올리고는 결국 몸을 일으켰다.
“제가 나가보겠습니다.”
황지선이 밖으로 나가려는 듯이 보이자, 대들보 위에 앉아 있던 종이학이 날개를 펄럭이며 아래를 향해 내려왔다. 그러자 황지선은 눈앞에 무언가가 휙 지나가는 것을 느꼈고, 미처 그 정체를 확인하기도 전에 손가락에 따끔한 고통을 느꼈다.
“쓰읍……!”
황지선의 왼손 엄지손가락에 작은 상처가 생기자, 그는 아픔을 느끼며 저도 모르게 손에 힘을 풀었다. 그러자 노란 부적이 그의 손에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사람을 무는 새가 다 있네.”
“여기서 비를 피하던 걸까?”
“아니야, 저건 종이새야!”
“저, 저게 날 수가 있어?”
황지선은 상황을 파악한 뒤 경악한 목소리로 이렇게 물었다. 그러자 곁에 있던 사람들 모두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종이새는 문 앞을 이리저리 날아다니기만 했고, 이에 사람들은 두려움보다는 호기심을 느꼈다.
종이학은 바닥에 떨어진 부적을 향해 날아가더니 그 옆에 앉았다. 그리고 한쪽 날개를 위아래로 펄럭이며 부적을 툭툭 쳤다.
그제야 사람들은 종이 부적에서부터 누런빛이 나는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황지선은 잠시 손가락에 난 상처를 보다가, 종이 부적 위에 자신의 피가 떨어진 것을 발견했다.
종이학은 고개를 돌려 바깥을 보더니, 다시 각도를 바꿔 종이 부적의 다른 한쪽에 앉아 날개로 부적을 쿡쿡 찍었다.
그러자 황지선은 종이학이 전달하려는 뜻을 깨닫고 잠시 바깥을 바라보았다. 그는 눈썹을 찡그리며 잠시 망설이다가, 약간 주저하는 기색으로 이렇게 말했다.
“역사는 모습을 드러내라.”
슈욱!
종이 인형은 순식간에 연기로 변하더니 사방으로 노란빛을 뿜었다. 뒤이어 그 연기 안에서 거대한 인영(人影)이 나타났다. 곧 인영을 감싼 연기와 빛이 스르르 사라졌다.
부적이 떨어진 자리에는 체격이 건장한 신인(神人)이 모습을 드러냈다. 키는 10척(*약 3m)이 넘어 보였고, 금속으로 만든 갑옷을 입고 있었다. 얼굴은 홍옥(紅玉)처럼 붉은 데다 머리카락과 수염은 마치 철심처럼 뻣뻣해 보였다. 그의 몸 앞뒤에는 기다란 노란 천이 펄럭이고 있어 더욱 신령스러워 보였다.
황지선도 어디 가서 빠지지 않는 건장한 체격이었으나, 이 금갑(金甲) 역사의 앞에서는 다 자라지 못한 어린아이처럼 보였다.
금갑 역사는 고개를 숙여 황지선을 바라본 뒤, 다시 한쪽에 있던 종이학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는 몇 초간 침묵을 유지하다가, 결국 몸을 돌려 공중에서 날개를 퍼덕이는 종이학을 향해 공수하며 읍했다.
“주인님!”
공손하게 예를 행한 뒤, 금갑 역사는 성큼성큼 문을 향해 걸어가더니 고개를 숙여 낮은 문설주를 피해 밖으로 나갔다.
실내의 사람들은 이 장면을 두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하겠다는 듯, 금갑을 입은 신인의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역사는 밖으로 나간 뒤 무릎을 약간 구부리면서, 왼팔을 앞을 향해 내려놓고 오른손으로 주먹을 쥐더니 위쪽을 향해 들어 올렸다. 그의 몸 앞뒤로 기다란 황색 천이 거세게 펄럭거렸다.
공기를 찢는 듯한 바람 소리와 함께 금갑 역사의 주먹이 뻗어 나가더니, 앞쪽 지면을 무겁게 때렸다. 그러자 폭탄이 터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휘이……!
콰광!
땅이 갈라진 흔적이 십수 장(*약 30m) 넘게 이어졌다.
쿵……!
이내 십수 장 떨어진 균열의 끝부분에서 검은 그림자가 하나가 지면을 뚫고 나타났다.
우우웅……!
지면이 흔들리자, 금갑 역사의 뒤쪽에 있던 가옥 안 사람들은 중심을 잡고 서 있으려 애썼다. 그 와중에 천장에서는 흙먼지가 떨어지고 있었다.
비록 금갑 역사가 모든 괴력을 앞으로 보냈고 뒤쪽 땅에는 균열이 일어나지 않았으나, 역사의 주먹이 내리쳐진 충격으로 인해 가옥 전체가 흔들렸다.
마침내 지면의 진동은 점차 가라앉았지만, 실내에서는 아직도 천장과 대들보에서부터 먼지가 떨어지고 있었다.
저 금갑을 입은 신인이 처음 나타났을 때 실내의 사람들이 모두 믿지 못하겠다는 눈빛이었다면, 지금은 완전히 넋이 나간 듯한 표정이었다.
문가에 서 있던 무인은 불빛에 의해 드러난 지면을 가리키며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따, 땅이……!”
“갈라졌네…….”
황지선은 마른침을 삼키며 상대가 하려던 말을 이었다.
“여러분, 밖으로 나가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실내에 있던 사람들은 저 멀리 금갑 역사에 의해 밖으로 튀어나온 괴물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황지선을 비롯하여 직감이 뛰어난 이들은 금갑 역사가 방금 무언가를 공격했다는 것을 알아챘다.
금갑 역사는 주먹을 내리친 뒤,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두 발을 살짝 벌리고 서서 양쪽 팔을 가만히 늘어뜨렸다. 역사의 몸 앞뒤로 노란 천이 바람에 의해 펄럭였다.
딩딩딩…….
빗방울이 금갑 역사의 갑옷 위에 떨어지며 금속에 부딪히는 미세한 소리를 냈다.
우르릉, 쾅!
이때 천둥소리가 울려 퍼지며 번개가 대지를 밝게 비추었다. 이에 바깥을 주시하고 있던 실내의 사람들은 먼 곳의 풍경을 짧게나마 볼 수 있었다.
이 가옥 전방의 2, 30장(*약 90m) 떨어진 곳에는 세 인영(人影)이 지면 위에 서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은 이런 거리에서 보아도 무척 건장한 체격이었고, 금갑 역사와 비교해도 그리 뒤지지 않을 정도였다.
더욱 이상한 점은, 방금 번개가 내리치던 순간 저 사람들의 몸에서부터 괴이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이 희미하게나마 보였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들을 그저 보기만 했는데도 무인이든 보통 사람이든 모두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꼈다. 마치 사악한 무언가를 마주쳤을 때처럼 사람들의 온몸에 닭살이 돋았다.
그러나 사실 황지선과 다른 이들이 놓친 장면이 있었다. 실은 저 세 사람이 서 있는 곳에서부터 멀지 않은 위치에 사람 하나가 누워있었다. 다만 그자는 온몸의 피부가 갈라져 있었고, 다 뜯겨 나간 헝겊처럼 신체를 종횡으로 가로지르는 중상을 입은 채 지면에서 움찔대고 있었다.
이 끔찍한 모습의 시체는 땅 밑에서부터 가옥을 향해 가던 참에 금갑 역사의 지면을 가르는 공격을 직통으로 맞은 것이었다.
“저쪽에…… 사람인가?”
“아, 아마 아닌 것 같습니다.”
“괜찮습니다. 저 금갑 신인이 우리를 보호해주고 계시니까요.”
“맞아, 맞아……!”
“우리에게는 금갑 신인이 계셔!”
바깥에 서 있는 사람들의 괴이쩍은 모습에 소름이 돋긴 했지만, 금갑 역사가 밖에 버티고 서있으니 사람들은 무척 안심했다.
황지선은 돌연 무언가 생각난 것처럼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조금 전의 그 종이새는 보이지 않았다.
금갑 신인께서 그 종이새를 ‘주인님’이라고 부른 것을 보니, 분명 무언가 대단한 정체를 가진 존재일 것이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지금은 모습을 감춘 듯했다.
이때 종이학은 이미 원래 있던 대들보 위에 돌아간 후였다. 종이학은 거꾸로 매달려 사람들이 놀라고 두려워하는 행동들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가옥에서 2, 30장 떨어진 곳에서는 사특한 존재들이 모두 금갑 역사를 주시했다. 역사는 어둠 속에서도 희미한 신광(神光)을 뿜어내고 있어, 마치 신이 내린 맹장(猛將)처럼 모든 이들의 시선을 끌었다.
“조금 전에는 어떻게 기척을 숨긴 거지? 어째서, 내가 네 존재를 느끼지 못한 거냐?”
저 괴이한 세 사람 중에서 가장 몸집이 큰 자가 차갑고 갈라진 목소리로 이렇게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실내의 사람들도 똑똑히 들을 수 있었지만, 그는 금갑 역사를 향해서 묻고 있었다.
다만 금갑 역사는 무표정으로 제자리에 서서 입을 열지 않았다.
“너는 신령이냐, 요괴냐? 어찌하여 그리 특이한 기운을 지녔지? 왜 생명체가 지닌 불의 기운도 없고 신묘한 기운도 없는 것이냐?”
금갑 역사는 여전히 한마디도 하지 않고서 쏟아지는 빗물을 받아내고 서 있었다.
“네게는 저들이 바친 향불이나 원력(願力)이 느껴지지 않는데, 왜 저 범인(凡人)들을 보호하는 거지?”
그가 세 번째 질문을 던지자, 여전히 침묵으로 대응할 거라고 여겼던 사람들의 예측과 달리 금갑 역사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깊고 낮았지만 아주 명확하게 들렸다.
“주인님의 명을 받들어, 사악한 것들은, 가까이 다가오면, 죽인다.”
그러자 잠깐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몇 초가 지난 뒤, 그자가 다시 이렇게 물었다.
“네가 말하는 주인이 누구지?”
그러자 금갑 역사는 마치 그 질문을 듣지 못한 것처럼 다시 침묵을 유지했다.
반면 실내에 있던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그 종이새를 찾으려 두리번거렸으나 결국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어둠 속에서 커다란 덩치의 시체는 코에서부터 거무스름한 연기를 뿜어내며, 가옥 앞에 우뚝 선 금갑 역사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