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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가기연-290화 (290/892)

290화. 나, 계연은 내가 한 말은 반드시 지킨다

계연은 시체의 우두머리를 보고 조금 놀라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금갑 역사를 바라보았다. 다른 시체들은 거의 울부짖기만 했지만, 저것은 말을 할 줄 아는 데다 보기만 해도 다른 것들과는 달랐다.

이렇게 협조적으로 나오면 사실 계연에게도 훨씬 수월했다.

“이리 와.”

계연의 말을 듣고 시체는 잠시 망설이다가 재빨리 마을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고는 곧 계연과 10여 장(丈) 정도 떨어진 길 위에 섰다.

시체는 온몸이 바싹 마른 나뭇가지 같은 갈색이었는데, 표피에는 비늘 같은 것이 돋아나 있었고 양쪽 눈은 온통 검었다. 빗방울이 그의 몸에 떨어질 때마다 틱틱 튕겨 나오는 걸 보니, 그것만으로도 피부가 얼마나 단단한지 알 수 있었다.

비록 계연을 보는 표정에 두려움이 담겨있었지만, 저 시체는 보기만 해도 왠지 모를 압박감이 느껴졌다.

“내 질문에 대답만 해주면, 이 검에 한 번 베이거나 내가 내뿜는 불을 맞는 것 중에 선택할 수 있게 해주겠다. 그런 뒤에 순순히 놓아주지. 하지만 대답하지 않으면 즉시 혼백을 소멸시켜 주겠다. 이해했나?”

계연은 마치 당연하기 그지없는 말을 한다는 듯 침착한 어조였다.

이에 시체는 계연의 초점 없고 희끄무레한 두 눈을 바라보았다. 상대는 그 안에 어떤 파동도 감정도 없이, 그저 담담하게 자신을 바라볼 뿐이었다. 길가의 잡초를 바라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눈빛이었다.

빗방울은 그의 옷에 닿자마자 자연스럽게 떨어져 내렸고, 계연이 입은 옷은 물론이고 그의 머리카락은 조금도 물에 젖지 않았다.

“예, 하문하십시오!”

“꽤 영특하구나…….”

이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린 계연은 곧 시체를 향해 물었다.

“너는 어떤 종류의 사시(*邪尸: 사악한 본성의 시체)지? 강시의 일종인가? 네가 부리는 저 노복들은 총 몇 명이 있지?”

사시라는 명칭은 그에게 있어 무척 모욕적이었고, 다른 존재가 자신을 그렇게 불렀다면 한입에 먹어 치웠을 것이다. 하지만 계연이 이렇게 말하니 그는 차마 언짢은 기색조차 내보일 수 없어 바른대로 대답했다.

“정식 이름은 시요(*尸妖: 시체 요괴)이고, 선생께서 말씀하신 대로 강시의 일종입니다. 노복들은…….”

그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머리 없는 시체를 바라보았다.

“노복들은 제가 제 피를 이용해 퍼뜨린 이들로, 총 13명입니다. 아직 하나 살아있는 게 있을 텐데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계연은 자신의 오른손 소매를 흘끗 바라본 뒤 다시 한번 그에게 물었다.

“네가 만든 노복인데 어째서 어디에 있는지 모르지? 그들을 통제할 수 없는 건가?”

이에 시체들의 우두머리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그것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정말로 선생을 속이는 것이 아니라, 이전에는 저도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모두 알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저 생사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음.”

계연은 노복들의 상황을 듣고 고개를 끄덕인 뒤, 무언가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에게 거짓을 말할 가능성은 무척 낮았으니, 그는 저 시요를 한번 시험해볼 셈이었다.

그래서 짧은 침묵 후에, 계연은 돌연 두 눈을 크게 뜨고서 차가운 눈빛으로 시요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전과 달리 위협적인 기세를 담아 칙령음(勅令音)을 내뱉었다.

“네 주인은 어디에 있고, 왜 너를 이곳에 보냈지?”

그 목소리는 마치 봄날에 별안간 내려치는 벼락과 같이, 시체의 머릿속을 크게 울렸다.

“저…… 제게는 주인이 없습니다!”

시체의 대답이 약간 부자연스러웠으므로, 계연은 눈을 가늘게 뜨고서 법안을 열어 그를 살폈다.

“마지막 질문이다. 네 이름은 무엇이며, 영지도 혼백도 갖춘 것이 어찌 명혼(*命魂: 도교 사상에서 육신에는 세 가지 형태의 혼(魂)과 일곱 가지 형태의 백(魄)이 깃들어 있다고 봄. 명혼은 세 가지 혼 중 하나.)이 모자란 것이냐?”

그의 물음에 시체는 얼른 대답했다.

“제 이름은 무초(巫楚)이고, 시체 요괴입니다. 죽은 지 오래된 수많은 시체에서 모인 기운으로 인해 태어난 존재로, 천지의 미움을 받았기에 혼백에 모자란 부분이 있는 것이 정상이지요.”

“흐음…….”

계연은 길게 신음을 흘린 뒤,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

“수행계(修行界)에는 온갖 존재가 다 있고, 별의별 일이 다 일어나지. 어떤 사람들은 특히 남의 일에 관여하기를 좋아하는데, 나도 스스로 정해놓은 원칙에 따라 행동하려고는 하지만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오지랖이 넓다고 보일 수도 있겠지.”

계연이 이렇게 말을 늘어놓자 무초는 점차 긴장하기 시작했다가, 계연의 마지막 말에 약간 마음을 놓았다.

“그러나 어쨌든 수선자(修仙者)로서 결코 식언(食言)을 뱉을 수는 없지. 검을 선택하든 불을 선택하든 네 결정에 따르겠다. 생각하는 시간은 마찬가지로 3초 주마.”

계연은 이렇게 말을 마친 뒤 가만히 서서 기다렸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이미 정신을 집중해 삼매진화를 끌어 올리는 중이었다.

넝쿨검은 그의 손안에서 어떤 날카로운 기운도 드러내지 않았지만, 검집에 쓰인 글자는 그대로였다. 특히 계연이 넝쿨검을 손에 쥔 순간, 정말로 저 시체를 베어버리려 했기 때문에 그도 그것을 느끼고 결국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그래서 무초는 이미 저것이 선검(仙劍)임을 눈치채고 있었다.

바보가 아니라면 무초는 분명 불을 맞는 것을 선택할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세간에 신령한 불길이 있긴 하지만, 자신은 음기와 한기(寒氣)를 머금은 시체의 기운을 갖고 있었다. 만약 불길이 꺼지지 않는 다른 술법을 부리지만 않는다면, 그는 어떤 불이든 견뎌낼 자신이 있었고 오늘은 특히나 비가 오기까지 했다.

계연은 무초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훤히 꿰뚫고 있었으므로, 그에게 깜짝 선물을 해 줄 준비를 했다.

“불에 몸이 타오르는 것을 선택하겠습니다. 부디 선생께서는 약속을 지켜, 그 후에는 저를 놓아주시길 바랍니다!”

혹시나 계연의 미움을 살까 봐, 무초는 온몸의 기운을 체내에 묶은 뒤 마치 사람처럼 허리를 구부리며 정중하게 읍했다.

“하하, 안심해도 좋다! 나는 내가 한 말을 반드시 지키니까. 가만히 서 있기만 하면 된다. 불길 한 번뿐이니까!”

이렇게 말한 계연은 숨을 깊게 들이마신 뒤 다시 입을 열었다.

계연이 이때 뱉어낸 것은 진화(眞火)의 연기가 아니라, 불그스름한 잿빛을 띤 화염이었다. 실제로 화염 주위의 온도는 그다지 변하지 않았지만, 화염이 지나는 부분은 잠시 일그러진 것처럼 보였다.

예를 올린 무초가 고개를 들자, 동그란 화염이 바로 눈앞까지 와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도망치고 싶은 충동을 꾹 누르고 약속대로 그 자리에 가만히 섰다.

화염은 그의 가슴 언저리에 살짝 닿았을 뿐이지만, 불길이 삽시간에 그의 온몸을 뒤덮었다.

“아아악!”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그의 온몸이 빨갛게 달아오르더니 입, 눈, 코, 귀를 비롯한 구멍에서 회백색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쿵…… 쿵…… 쿵……!

타오르는 불길에 무초는 억지로 세 걸음을 겨우 떼었다. 그리고 몇 초 만에 그의 동작이 뻣뻣하게 굳으며 비명 지르는 소리가 뚝 끊겼다.

시체가 쓰러진 곳에는 잿더미만이 남아있었다.

진정한 삼매진화의 위력은 역시 계연을 실망하게 하지 않았다. 사실 저 시체들의 우두머리는 도행만 놓고 보자면 그리 뛰어나다고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저 강시들은 특이한 존재여서, 쌓은 도행과는 상관없이 실력이 그것을 뛰어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만약 그에 대항할 만한 수단이 없는 보통 수선자들이 저 강시를 만났다면, 머리가 잘렸을 것이다.

‘내가 저것을 만나서 다행이야.’

지금은 따로 신경 써야 할 목표나 일도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더없이 적절한 시기였다. 계연은 땅 위에 쌓인 잿가루가 빗물에 의해 진흙과 섞여 들어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혼(魂)은 하늘로, 백(魄)은 땅으로 돌아가라.”

이렇게 말한 계연은 몸을 돌려 가옥을 향해 걸어갔다. 금갑 역사는 입구에 가만히 서서 계연을 따라오지 않았다. 계연이 안쪽으로 들어서자, 역사의 몸에 유광(流光)이 흐르더니 다시 역사는 노란 종이로 변해 계연의 손아귀로 날아왔다.

계연은 종이를 다시 소매 안에 넣고서 대들보 위쪽을 슬쩍 바라보았다. 실내에 있던 사람들은 아직도 긴장한 듯한 기색으로 조용히 서 있었다.

“이제 다 끝났어요.”

계연의 한마디에 그들은 그제야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계 선생님!”

“계 선생님, 저희를 구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실내의 모든 이들이 계연을 향해 공수하며 읍했고, 일행에 있던 여자아이조차 어른들의 동작을 따라 하며 그에게 예를 올렸다.

이에 계연도 모든 이들의 인사를 받고서 구멍이 숭숭 난 문을 다시 닫았다.

“해가 뜨려면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모두 쉬는 게 좋겠어요. 우리 모두 내일 일찍 길을 떠나야 하니까요. 걱정하지 마세요, 오늘 밤에는 아무 일도 없을 거예요.”

이렇게 말한 뒤 계연은 한쪽 벽으로 가서 광풍에 뒤집힌 걸상을 다시 뒤집어 그 위에 앉았다. 그러고는 <외도전>을 꺼내 다시 읽기 시작했는데, 누가 보아도 더는 대화를 이어가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그러자 한명과 황지선이 각각 뜨거운 물과 주전부리를 갖다 주었다. 그러나 계연은 그들에게 호의는 고맙지만, 자신은 필요 없다는 뜻을 밝혔다.

그들은 모두 묻고 싶은 것도 많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호기심을 느꼈지만, 계연의 저런 모습을 보고 감히 귀찮게 굴 엄두를 내지 못했다.

문가에 놓인 모닥불은 이미 완전히 꺼진 데다 물기에 젖어있었다. 하지만 계연은 그들이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이미 실내의 모든 물기를 말려버린 뒤였다. 이에 황지선이 안쪽에 피운 모닥불에서 장작을 꺼내와 그곳에 다시 불을 붙였을 때 단번에 불길이 타오를 수 있었다.

사람들은 두 모닥불을 동그랗게 둘러싸고 앉아 불을 쬐었다. 마침내 조금 전의 긴장과 공포가 사라지자, 사람들은 다시 호기심과 흥분된 감정이 일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공포로 인한 흥분이 아니라 순수한 의미의 흥분이었다.

호기심과 욕망은 모든 이들이 가진 특성이었다. 게다가 지금은 ‘신선’이 자기들과 함께 있으니 보통 사람들이라 해도 이미 궁금함에 몸이 달았을 것이다. 하지만 계연은 현재 무척 집중하여 책을 읽는 기색이어서 말을 걸기가 쉽지 않았다. 이에 그들은 일단 한발 물러나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에 대해 그들이 캐낼 수 있는 사람이 한 명이 더 있었기 때문이다.

황지선은 문가 구석에 쭈그리고 앉은 비적을 바라보았다. 이곳에 있는 모든 이들은 흥분한 얼굴로 목숨의 위협이 사라진 것을 기뻐하고 있었다. 한명 일행이 끌고 온 늙은 말 두 필도 모두 안온했다. 하지만 파자는 아니었다. 비록 운이 좋게 살아남긴 했지만, 그것도 언제 끝날지 모를 일이었다. 다른 이들은 전병을 먹고 따뜻한 물을 마시는 동안에도 그는 구석에 홀로 앉아 있었다.

만약 입고 있는 옷이 계연에 의해 바싹 건조되지 않았더라면, 파자는 이미 온몸이 차게 식어 덜덜 떨고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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