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293화 (293/892)

293화. ‘순박하고 민심 좋은’ 고장

연비는 제자리에 서서 땅 위에 엎어진 시신들을 한번 훑었다.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던 그는 무릎을 굽혀 그들의 몸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홉 사람에게서 약간의 은전을 찾아낸 후 재빨리 계연의 뒤를 쫓았다.

앞서가던 계연이 흰 옷자락을 바람에 표표히 날리며 유유히 걷는 모습을 보던 연비는, 참지 못하고 한마디 감상을 털어놓았다.

“계 선생님, 예전보다 훨씬 말끔한 모습이시네요.”

연비가 마지막으로 계연을 보았을 때는 영안현의 한 객잔에서였다. 그때의 계연은 남루하고 더러운 거지 옷을 막 벗어버린 뒤였기 때문에, 무슨 조화로움이나 심미적인 아름다움을 고려한 행색은 아니었다.

게다가 그때는 지금과 같은 기품도 갖추지 못했다. 그 당시와 지금의 모습은 하늘과 땅 차이가 난다고 해도 과하지 않을 정도였다.

사람은 누구나 남에게 듣는 칭찬을 좋아하듯이 계연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마침 자신이 내심 생각해왔던 바를 긁어준 참이어서 계연은 기분이 좋았다.

“연 대협께서 이렇게 저를 띄워주시니, 오늘 술은 제가 사지요!”

두 사람은 무공이나 술법을 쓰지는 않았지만, 고작 5리(里) 정도의 거리였기 때문에 금방 남도현성 안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영원루(榮源樓)는 남도현에서 가장 유명한 주루로, 지금 계연과 연비가 향하는 곳이기도 했다.

주루 근처에 도착했을 때 하늘은 이미 황혼이 지고 있었다. 두 사람이 다가오는 것을 눈치챈 점원이 즉시 마중 나와 웃는 얼굴로 응대했다.

“아, 연 대협 아닙니까? 오랜만에 방문해 주셨군요! 이분은 누구십니까?”

“내 고향에서 온 지인이오. 계 선생님, 여기 영원루가 다른 큰 성에 있는 화려한 주루만큼은 못 되지만 그래도 남도현에서는 꽤 괜찮은 곳입니다. 최소한 다른 곳보다 술 안에 물을 덜 타거든요.”

연비는 점원의 물음에 간단하게 대답한 후 계연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그러자 곁에서 듣고 있던 점원의 웃는 얼굴에 약간의 어색함이 서렸다.

“아이고, 연 대협, 그게 무슨 말입니까? 물을 덜 탄다니요! 저희 영원루에서는 그런 양심 없는 짓은 결코 한 적이 없습니다! 어서 들어오세요!”

점원은 입구에서 손짓하며 두 사람을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그리고 두 사람에게 대청에 앉을 건지 별실을 원하는지 물은 후, 2층으로 올라가 바깥쪽에 있는 별실로 데리고 갔다.

계연과 연비는 남도현에서 생산된 술 한 단지와 채소 요리 네 접시, 고기 요리 네 접시에 탕을 하나 시켰다. 무척 풍성한 만찬일 듯했다.

점원은 그들이 주문한 것을 받아적은 후 바삐 내려갔다.

2층의 바깥쪽에 있는 이 별실은 창문도 없고 완전히 벽으로 가로막히지도 않았다. 앉으면 가슴 높이까지 올라오는 나무 칸막이가 벽의 전부였는데, 그마저도 나무 막대기를 세워 그사이에 짚으로 만든 발을 단 것이었다.

그러나 사실 2층의 사방에는 나무로 된 판자가 달려있어,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오면 이 판자를 위로 밀어 올렸다. 그렇게 되면 2층의 별실들은 완전히 벽으로 둘러싸여 바깥과 차단되었다.

이런 시설은 대정에서는 보기 드문 형태였기 때문에, 아무래도 이 지방의 특색인 듯했다.

지금은 점원이 이미 계연과 연비가 앉은 탁자 주변의 발을 말아 올린 상태였기 때문에, 탁 트인 풍경이 내다보였다. 마치 전망을 바라보며 난간 옆에 식탁을 놓고 식사하는 느낌이었다.

“계 선생님, 어떻게 조월국까지 오게 되신 겁니까? 계주에서 여기는 무척 먼데요.”

연비의 계연에 대한 인상은 아직도 12년 전에 머물러 있었다. 그래서 계연이 현묘한 고인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에게 정확히 어떤 능력이 있는지는 잘 알지 못했다.

“그저 새로운 곳을 유람하는 것뿐이에요. 그 김에 새로운 벗들도 사귀고요.”

“그렇다고 해도 무척 멀리 오셨네요!”

“아마도요.”

계연은 이 주제에 대해 더 할 말이 없었으므로 연비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저는 오히려 연 대협을 여기서 만난 게 더 놀라운데요. 당시 영안현에서 헤어진 후로 아홉 명의 소협 중에 딱 세 사람만 다시 만났는데, 연 대협이 세 번째예요.”

“그러십니까? 다른 두 명은 누구인가요?”

음식이 아직 올라오지 않아 연비는 찻잔 두 개를 뒤집어 계연과 자신에게 각각 차를 한 잔씩 따랐다. 비록 모든 것을 내려놓고 멀리 떠나왔지만, 계연의 말을 듣자 그는 자신도 모르게 호기심이 일었다.

계연은 차를 한입 마시고는 이렇게 대답했다.

“처음으로 다시 본 사람은 두형 대협이에요. 두 번째는 육승풍 대협이고요. 그 두 사람 모두 나름의 고난을 겪고 깨달음도 얻었지요. 아마 그 두 사람은 미래에 대협(大俠)이라고 떳떳하게 불릴 수 있을 거예요. 참, 연 대협은 여기까지 무슨 일로 오신 건가요?”

연비는 차를 마시며 계연의 말을 조용히 듣고 있다가, 그가 이렇게 묻자 찻잔을 내려놓고 대답했다.

“저는 그저 검을 연마하는 것뿐입니다.”

그는 자신이 의로운 일을 행한다거나 하는 말 없이, 그저 간단히 이렇게 대답했다. 계연이 보기에 연비가 비록 모든 사정을 말한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검을 연마한다는 말은 사실인 듯했다.

그리고 연비가 말한 대로, 그에게서는 세월의 풍파를 견딘 느낌이 났다. 게다가 다른 이들은 느끼지 못할 수도 있지만, 계연은 그에게서 잘 벼린 칼이 풍기는 날카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연 대협, 그리고 계 선생님. 여기 주문하신 음식이 준비되었습니다. 이건 신선한 말고기 회소(*燴燒: 재료를 함께 볶은 다음 전분물을 넣어 뭉근히 끓인 요리)인데, 이렇게 금방 나왔을 때 드시는 게 제일 맛있습니다.”

점원이 든 쟁반 위에는 김이 폴폴 나는 고기와 채소 요리, 술 한 단지가 놓여 있었다. 그는 요리들을 우선 내려놓은 다음, 술을 내려놓을 때 이렇게 덧붙였다.

“자, 진양(*陳釀: 오래 묵힌 술) 한 단지입니다. 연 대협, 잘 보십시오. 봉니(*封泥: 진흙을 굳혀 술을 밀봉하는 것)는 건드리지도 않았습니다. 절대 물을 섞은 게 아닙니다! 그럼 맛있게 드세요, 다른 요리도 곧 가져오겠습니다!”

말은 가장 열등한 종자여도 절대로 쉽게 도살할 수 없었기 때문에, 어느 곳에서나 비싼 고기였다. 이에 계연은 맛있는 향기가 풀풀 나는 말고기 요리를 쳐다보았는데, 이는 신선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도대체 어떤 불운한 사람이 말을 잃어버렸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점원이 떠나자마자 연비는 술 단지 위의 봉니를 열어, 방금 마신 찻잔에다가 각각 한 잔씩 따랐다.

“선생님께서 두형과 육승풍을 모두 만나셨다고 하셨는데, 제 무공이 그 두 사람과 비교해서 어떻습니까?”

계연은 천천히 술맛을 음미하더니 거리낌이나 망설임 없이 이렇게 대답했다.

“무공으로 논하자면, 육 대협이 연 대협보다는 뒤처집니다. 하지만 두 대협과 비교하자면 저도 두 분 중에 누가 더 강한지는 잘 모르겠군요.”

두형은 당시에 팔을 한쪽 잃었었는데도 현재 육승풍보다 실력이 뛰어나다니, 연비는 계연의 말을 듣고 무척 놀랐다.

곧이어 다른 요리들이 상에 올라왔고 두 사람은 식사를 들면서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알고 보니 연비는 8년 전에 이미 대정을 떠나 조월국에 온 상태였다. 게다가 이곳에서 그는 꽤 이름을 날려, ‘비검객(飛劍客)’이라는 일종의 별호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계연과의 대화를 통해 연비는 대정의 황제가 붕어했다는 등의 여러 소식을 알게 되었다.

“원덕제가 이미 붕어했군요. 그럼 새로 등극한 황제의 제호(帝號)는 무엇입니까?”

연비도 어쨌든 대정 사람이었기 때문에, 황제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조금 놀란 듯했다.

“그건 저도 몰라요. 제가 대정을 떠날 때, 진왕 전하께서는 아직 등극하지 않으셨거든요. 하지만 국장(國葬)은 무척 성대했어요.”

“죽은 후에 아무리 장례를 성대하게 치러봤자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연 대협의 말이 옳습니다. 황제라고 해도 임종이 다가올 때는 일반 백성들과 다를 바가 없더군요. 그가 진왕의 목을 끌어 잡고서 조정의 일에 대해 몇 마디 당부할 때는, 어쩔 수 없이 생에 대한 갈망과 죽음에 대한 공포가 엿보였어요.”

연비는 말고기를 씹어 삼키면서 의아한 얼굴로 이렇게 물었다.

“그 일을 선생님께서 어찌 그리 잘 아십니까?”

“제가 거기 있었거든요.”

계연이 이렇게 대꾸하자 연비는 잠시 할 말을 잃은 듯하더니, 곧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두 사람이 먹고 마시던 중 어느새 하늘은 어두워져 있었다. 그때 먼 곳에서 여인의 날카로운 비명이 들려왔다.

계연이 듣기에 그 날카로운 비명에는 고의로 낸 듯한 어색함이 느껴졌다. 이에 소리가 들려온 먼 곳을 바라보자, 연비가 이렇게 입을 열었다.

“원제(元齊) 객잔이에요. 미인계에 당한 거지요.”

계연은 조금 할 말을 잃었다. 정말로 ‘순박하고 민심 좋은’ 고장이군.

비명이 다시 한번 울리자 계연은 눈썹을 찡그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 선생님, 신경 쓰실 것 없습니다. 이런 일은 여기서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에요. 저 색욕에 눈먼 사람들에게도 좋은 교훈이 될 겁니다.”

“이번 비명은 달라요.”

계연은 이렇게 한 마디를 남긴 후, 난간을 뛰어넘어 처마를 밟아 도약한 뒤 마치 새처럼 가볍게 날아갔다.

“대단한 경공(*輕功: 몸을 날리는 무공으로 나무에서 나무 위로, 먼 거리를 바람처럼 빨리 달리는 무예)이군!”

연비는 멍하니 계연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이렇게 감탄한 후 마침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식탁 위에 은자를 한 덩이 내려놓은 후, 재빨리 경공을 사용해 계연을 뒤쫓아갔다.

계연은 지붕을 가볍게 밟아가며 먼 곳을 향해 재빨리 날아갔다.

연비도 가볍게 몸을 날려 지붕을 이용해 도약했는데, 계연만큼 빠르지는 못해서 그를 따라잡지 못했다.

비록 원제 객잔이 주루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해도, 둘 다 그리 크기가 크지 않은 남도현성 안에 있었기 때문에 계연은 곧 객잔 근처의 건물 지붕 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뒤이어 연비도 겨우 그를 따라왔다.

두 사람이 지붕에 내려앉을 때 계연은 어떤 소리도 내지 않았던 데에 반해, 연비는 비록 경공이 뛰어나기는 했지만 완벽히 기척을 감출 수는 없었다.

“계 선생님, 도대체 무슨……?”

계연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손을 들어 연비의 말을 막고는 법안을 열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맞은편 객잔에 희미한 요기(妖氣)가 남아있는 동시에 피비린내가 나는 것을 알아챘다.

“앞에서 요기가 느껴져요. 연 대협의 무공이 뛰어나기는 하나, 요물과 붙으면 어찌 될지 알 수 없으니 함부로 나서지 마세요.”

“요괴가 있단 말입니까?”

연비는 계연이 진지한 얼굴로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하지만 곧 예전에 마주쳤던 호랑이 요괴를 떠올렸다.

그는 지금의 무공으로도 예전의 그 호랑이 요괴를 마주친다면 결코 승산이 없을 거라는 것을 알았다.

연비가 놀란 얼굴로 이렇게 묻자, 계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대답했다.

“요물은 이미 떠났어요. 객잔에 들어가서 한번 보죠.”

이렇게 말한 계연은 먼저 원제 객잔을 향해 날아갔고, 연비도 정신을 차린 뒤 다급히 뒤쫓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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