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294화 (294/892)

294화. 돌산에서의 만남

계연과 연비가 객잔 안으로 들어갔을 때는, 계산대 뒤쪽을 포함하여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이 부근에 사는 이들은 원제 객잔에서 이 시각쯤 들려오는 비명을 익숙하게 여기고 있었기 때문에, 아직 아무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는 모양이었다. 게다가 손님이 아무도 없었던 모양인지, 객잔 안이 썰렁하고 고요했다.

“계 선생님, 조심하세요. 너무 조용한 게 아무래도 수상합니다!”

이곳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던 연비는 이미 언제든 검을 꺼내 들 준비를 마친 뒤였다.

계연은 담담하게 대답한 후 먼저 2층을 향해 올라갔다. 이에 연비가 다급히 뒤쫓아가면서 계산대 뒤쪽을 바라보니, 주인장이 땅바닥에 쓰러진 모습이 보였다.

원제(元齊) 객잔은 중앙에 복도가 있고 양쪽에 방이 줄지어 있는 가장 보편적인 구조였다. 2층에 올라온 계연은 어디로 가야 할지 아는 것처럼, 복도 맨 끝 우측에 있는 방으로 향했다.

계연이 손으로 문을 살짝 밀어보니, 안에서 문을 잠그지 않았던 모양인지 문이 손쉽게 열렸다.

눈과 코를 바쁘게 움직이던 계연은 바닥에 떨어진 어두운 갈색의 머리카락 몇 가닥을 찾아냈다. 손으로 들어 올린 후 눈대중으로 짐작해보니 대략 손목에서 팔꿈치까지 오는 길이였다.

‘세상에 어떤 요물이 이렇게 아무렇게나 털을 떨어뜨리고 다니지?’

계연은 눈썹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겼다. 호운 같은 요괴도 아무 데나 털을 흘리지 않고, 육 산군 같은 수준에 이른 요괴들은 수행이 어느 정도에 다다르면 털이 빠지게 된다. 그래서 계연은 이 머리카락이 더욱 괴이하게 느껴졌다. 심지어 이건 한 가닥도 아니고 여러 가닥이었다.

연비는 언제든 검을 뽑을 수 있는 자세로, 검 끝으로 복도의 모든 방문을 열어보았다.

“계 선생님, 방 안에 있는 모든 이들이 정신을 잃은 상태입니다. 3층은 아직 둘러보지 못했습니다.”

“그럴 필요 없어요, 모두 혼미한 상태일 거예요.”

계연은 손안의 털을 바라보며 이렇게 대꾸했다. 그러자 연비도 자연스럽게 그가 쥐고 있는 것으로 시선이 쏠렸다.

“그 머리카락에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이건 사람의 머리카락이 아니라 털이에요.”

계연은 흘끗 연비를 한번 보더니, 손가락을 접어 무언가를 점쳐 보았다.

“저는 뒤쫓아 가볼 테니, 연 대협은 일단 관아에 신고해 주세요. 아니면 객잔에 있는 정신을 잃은 이들을 돌봐주세요.”

“예? 쫓아가신다고요? 어디로요?”

그러나 그렇게 물었을 때, 계연은 이미 방 안의 창문을 열고 날아간 뒤였다.

연비가 창가로 다가가 보니, 근처의 거리와 옥상 어디에도 계연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시선을 멀리 던져보니 저 멀리 점이 되어가는 계연이 보였다. 그는 홀로 동북쪽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사라졌다.

‘아니……. 어떻게 저렇게 빠를 수 있지?’

그는 곧 창가를 등진 후 객잔 내부를 바라보았다.

“관아에 신고하라니? 이런 동네에서 관아가 무슨 소용이 있겠어!”

이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린 연비는 계연을 따라 창문으로 뛰어내렸다. 그러고는 맞은편 옥상으로 가볍게 내려앉은 후, 계연의 모습이 마지막으로 보였던 곳을 향해 갔다.

다만 이때 계연의 모습은 이미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에, 연비는 그저 그가 떠난 동북쪽을 어림잡아 따라갈 뿐이었다.

남도현 밖 동북쪽에서 계연은 성벽을 뛰어넘은 후 유룡법(遊龍法)으로 땅을 접어가며 걷고 있었다.

성을 나선 후에도 느껴지는 요기는 여전히 희미했지만, 그래도 계연은 요괴가 이곳을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일부러 속도를 올리지 않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따라갔다.

어풍술을 이용해 바람을 타면서 유룡법을 운용하니 마치 바람처럼 빠른 보행이 가능했다.

휘이이…… 휘이잉……!

가벼운 바람 소리와 함께 낙엽이 공기 중에 휘날렸다. 그러나 계연의 몸에는 어떤 속세의 때도 묻지 못했으므로, 바람에 흩날리는 먼지는 그의 몸에 닿지 못하고 떨어졌다. 그는 맑은 바람을 몰고서 더욱 빨리 전방을 향해 갔다.

그렇게 계연은 맑은 바람이 불어오는 남도현 동북쪽의 어느 돌 언덕 위에 도착했다. 그는 그곳에 서서 멀리 서남쪽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마침내 연기 같은 뿌연 요기가 점점 가까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사람의 모습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법안을 열고 이쪽을 향해 날아오는 ‘연기’를 바라보니, 마치 물결이 치는 듯 모호한 사람의 인영(人影)이 나타났다. 자세히 보니 저 요괴는 누군가를 짊어지고 오고 있었다.

‘장안법?’

인간의 형체를 유지하며 장안법을 펼치는 동시에 요기를 무척 희미하게 억누르는 것을 보니, 도행이 얕지 않은 요괴임이 분명했다. 별것 아닌 요괴일 거라고 여겼던 계연은 이제 목숨을 노리지 않으면 오히려 처리하기가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계연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마치 정신을 수양하는 사람처럼 돌무더기 위에 앉아 눈을 감았다. 무척 평온하고 무언가에 집중한 모습처럼 보였지만, 사실 그는 주변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온 신경을 쏟고 있었다.

이런 황량한 교외에서 흰 장포를 입은 서생이 홀로 돌산 위에 앉아 있으니, 보기만 해도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은 일반 사람들의 시각일 뿐, 요괴는 누가 봐도 범인(凡人)일 뿐인 계연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게다가 요괴는 지금 다른 이들에게 모습을 숨긴 상황이었다.

모호한 형체가 점점 가까워져 돌산 근처에 이르렀을 때 계연은 마침내 법안을 떴다. 그는 왼쪽 전방의 요괴가 이동하는 것을 계속 눈으로 좇고 있었다.

이 괴이한 시선은 당연히 요괴도 느낄 수 있었으므로, 그는 누군가를 짊어지고 가는 와중에도 저도 모르게 계연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에 회백색의 두 눈과 마주친 요괴는 저 사람이 자신을 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법안을 열어 본 계연은 당연히 상대방의 요기가 모여 만들어낸 형상을 명확하게 볼 수 있었다. 이 요괴는 다름 아닌 기다랗게 휘어있는 모양의 뿔이 달린 소였다.

“소 요괴는 무척 보기 드문데.”

그의 담담한 혼잣말을 듣고, 돌산을 지나치려던 요괴는 저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췄다.

‘장안법을 꿰뚫어 봤을 뿐만 아니라, 내 원래 모습까지도 볼 수 있단 말인가?’

저도 모르게 나온 반응에 요괴는 이왕 멈춰 섰으니 제대로 물어봐야겠다 싶었다.

계연은 초연한 얼굴로 제 자리에 앉아 고개를 돌린 채 요괴를 바라보고 있었다. 요괴는 체격이 특별히 건장하거나 우람하지는 않았고, 오히려 보통의 농사꾼처럼 보였다.

“당신은 어디서 온 선인입니까? 설마 여기서 저를 기다리신 겁니까?”

남자는 정중한 태도로 계연을 향해 물었다.

계연은 곧장 대답하지 않고 그를 위아래로 훑어본 다음 오히려 이렇게 반문했다.

“눈속임 기술이 꽤 괜찮군요. 하지만 여기는 신령도 없는데 왜 모습을 숨기는 건가요? 짊어지고 있는 저 여인은 또 누구고요?”

‘신령은 없지만, 그쪽이 여기 있잖아!’

속으로 이렇게 생각한 소 요괴는 차가운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했다.

“보아하니 수선자이시군요? 어찌, 요괴라도 처단하러 오셨습니까?”

자신만만한 태도와 달리 요괴는 이미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이자는 갑자기 이 돌산 위에 나타난 데다가, 어떤 특이한 기운도 느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보아도 일개 범인에 불과한데, 이런 자가 보통 사람일 리는 없었다.

계연은 여전히 그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서, 손안의 털을 내보이며 이렇게 반문했다.

“이건 소털이 아니죠? 원제 객잔에는 왜 갔었던 건가요? 해를 끼칠 의도는 없고 그저 궁금할 뿐입니다.”

계연이 손에 든 털을 보자마자 소 요괴의 동공이 수축했다. 그는 심지어 좌우를 두리번거리기까지 했다.

“당신! 방금 그 객잔에 갔었군?”

요괴의 반응에 계연은 잠시 의아함을 느꼈다.

요괴의 속도가 느리지는 않았지만, 요괴는 특별한 술법을 쓰지도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니 누군가 그를 쫓아오고자 했다면 수많은 방도가 있었을 것이다. 아마 계연이 이곳에서 그를 기다렸던 것이 어떤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 같았다.

“성안의 원제 객잔이라면 갔었지요.”

계연이 순순히 수긍하자 요괴는 남몰래 한숨을 돌린 뒤, 이렇게 물었다.

“그 털은 어디서 주워온 것입니까? 객잔입니까?”

이를 들은 계연은 약간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털이 객잔에 떨어진 걸 몰랐나요?”

계연의 물음에 요괴는 오히려 이렇게 반문했다.

“아, 객잔에서 주운 것이라면 다행이군요, 나는 또…… 흐음, 정말로 이 털이 누구 것인지 모르십니까?”

두 사람은 서로를 주시하며 잠시 침묵했다.

요괴는 계연의 침착한 얼굴과 흔들림이 없는 두 눈을 보며 속으로 안심했다.

“휴우……. 당신처럼 침착한 기운의 수행자라면 이런 일로 거짓을 말하지는 않겠지요. 보아하니, 그년을 보지도 못했을뿐더러 알지도 못하는 모양이군요!”

계연은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상황인지 알 수 없어 의혹만 더욱 깊어졌다. 계연은 눈썹을 찡그리며 이렇게 물었다.

“그게 무슨 뜻인가요? 당신이 꺼리는 상대가 누구길래요?”

이렇게 물은 계연은 별안간 무언가를 깨달았다. 이 소 요괴는 바람을 몰거나 속도를 높이는 술법을 쓰지도 않고, 장안법으로 모습만 숨긴 뒤 땅에 발을 붙이고 질주했다.

계연은 손안의 털을 바라보다가 이렇게 물었다.

“그런 방식으로 이동한 게 그 상대를 피하기 위함입니까?”

“그게 아니면 제가 당신을 피해 다녔겠습니까?”

소 요괴는 이렇게 비꼬더니 계연을 위아래로 살펴보며 말했다.

“제가 한마디 충고해드리자면, 그 빌어먹을 털은 어서 버리십시오. 함부로 건드릴 만한 게 아닙니다. 그 털은 마치 살아있는 것과 같아서, 길이가 길어질수록 그년이 가까워졌다는 뜻이거든요. 그럼 저는 먼저 가보겠습니다!”

소 요괴는 자신의 목덜미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한 뒤 떠나려 했다. 계연은 소 요괴가 자신을 지나쳐갈 때 그의 목덜미 부근을 자세히 살폈다. 그러자 그 자기에 자신의 손에 들린 것과 비슷한 진한 갈색의 가는 털들이 자라있는 것이 보였다.

보아하니, 자신이 들고 있던 털은 소 요괴가 다른 요괴의 목덜미에서 뜯어낸 것 같았다.

“내가 보기에 당신은 사악한 기운을 가진 요괴가 아닌 듯한데, 왜 그 여인을 어깨에 짊어지고 가시는 건가요? 이왕 위험한 자를 피해 도망칠 거라면, 그 여인을 데리고 가봤자 피곤하기만 할 텐데요.”

계연이 이리 말하며 몸을 일으킨 다음 한 발짝 내딛자, 어디에선가 바람이 불어와 그를 감쌌다. 계연은 곧 소 요괴의 앞길을 막아섰다.

소 요괴는 방향을 바꿔 계속 앞으로 가려 했으나, 계연은 끊임없이 그를 막아섰다. 이에 요괴는 이리저리 방향을 바꾸다가 이렇게 소리쳤다.

“도대체 제게 왜 이러시는 겁니까? 도행이 조금 높다고 이렇게 요괴를 괴롭히다니요! 당신 같은 수선자가 범인들이 쓰는 미인계 수법을 압니까? 이왕 그들이 나를 홀랑 속여먹을 속셈으로 먼저 수작을 걸었으니, 죽더라도 자신을 원망해야지요. 하지만 저는 이 여인을 잡아먹을 것도 아니고 죽이려는 것도 아닙니다! 때가 되면 놓아줄 겁니다.”

“그럼 도대체 왜 데리고 가는 건가요?”

계연은 더욱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이렇게 물었다.

“내…… 내 교훈을 좀 가르쳐 주려고 그럽니다! 나야말로 함정에 빠진 피해자인데, 몇 마디 겁도 못 줍니까? 그러니 계속 제 앞길 막지 마시고, 얼른 비키십시오! 안 그러면 더는 참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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