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7화. 연 동생과 우 형님
“흠, 하하……. 자네 말이 맞소, 바로 그 여편네가 한 짓이지!”
소 요괴는 한 점 부끄러움도 없는 얼굴로 이렇게 단정 지었다. 그리고는 곁눈질로 계연을 살폈는데, 계연은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고 손에 여인의 갈색 털을 쥔 채로 무언가를 점쳐 보고 있었다. 그러자 소 요괴는 무척 친근한 태도로 연비에게 말을 걸었다.
“보아하니 자네는 무공을 익힌 범인(凡人)인 듯한데, 나도 창이나 곤봉 다루는 걸 무척 좋아하니, 이참에 친하게 지내는 게 어떻겠소? 내 이름은 우패천(牛霸天)이라고 한다오, 어떻소, 아주 패기 넘치는 이름이지? 자네는 이름이 어떻게 되는가?”
연비는 약간 부담을 느꼈지만 그래도 검을 쥔 손으로 공수하며 이렇게 대답했다.
“연비라 합니다.”
“오…….”
소 요괴는 이렇게 대답한 다음, 금갑 역사가 있는 방향을 향해 턱짓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럼 저자는? 저쪽은 보아하니 함부로 건드리면 안 될 것 같군. 지금까지 우리와는 말 한마디 섞지 않고 눈조차 깜빡이지 않는 걸 보니, 성격이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는군. 아까 그 여인과 마찬가지로 참 오만하기 짝이 없는 태도야.”
연비는 금갑 역사를 한번 바라본 다음, 조금 주저하는 태도로 이렇게 말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계 선생님께서 저자를 ‘역사(力士)’라고 부르신 것밖에는…….”
계연은 무언가를 곰곰이 점쳐 보았지만, 수준이 그리 높지 않아 아무런 결과도 얻지 못했다. 이에 계연은 여인에게서 거둬간 갈색 털을 다시 잘 갈무리했다.
그는 소 요괴와 연비가 대화를 나누는 것이 퍽 의외로 느껴졌다.
“다시 성으로 돌아갑시다. 오늘 있었던 일은 어쨌든 끝난 듯하군요.”
이렇게 말을 마친 계연이 손짓하자, 금갑 역사가 빛으로 변하여 사라졌다. 그것은 한 장의 노란 종이로 변하더니 계연의 소매 안으로 들어갔다.
우패천은 계연이 역사를 소환했던 과정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 장면을 보고서 깜짝 놀랐다. 그가 잠시 멍하니 서 있던 동안, 계연은 이미 발걸음 옮겨 떠나갔다.
계연은 어떤 술법도 쓰지 않고서 성큼성큼 걸어갔다. 연비는 넋이 나간 우패천을 향해 공수하며 작별 인사를 한 뒤 서둘러 계연을 뒤쫓아갔다.
소 요괴는 그 자리에 서서 잠시 망설이다가 그 뒤를 몇 걸음 따라가 보았다. 그러나 계연이 발걸음을 서두를 뿐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자, 다급히 뛰어가 연비를 따라잡았다.
우패천은 계연이 자신의 목덜미에 난 털을 제거해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비록 지금은 계연을 그다지 믿지 못했지만, 이 기회를 이대로 보내기에는 또 내키지 않았다. 그래서 그날 밤 세 사람은 함께 남도현성으로 돌아왔다.
이들은 우선 원제 객잔으로 돌아가 우패천이 납치한 의식 잃은 여인을 원래 있던 방에 돌려놓고, 식사할 만한 곳을 찾아갔다.
이전에 주문한 음식은 진작에 치워졌을 게 분명한 데다, 계연은 밥을 먹지 않아도 되지만 연비는 어쨌든 보통 사람에 불과했다. 한두 끼 거른다고 해서 연비가 버티지 못하는 건 아니어도, 배가 고픈 건 피할 수 없었다. 이왕 성에 들어와 돈이 없는 것도 아닌 상태에서 굳이 딱딱한 전병을 씹고 있을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이들이 성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대부분의 주루와 식당이 문을 닫은 시각이었다. 이에 이들은 다른 객잔으로 가서 그날 밤, 그 객잔에서 묵기로 한 다음, 주방에 말해 남은 음식을 모두 가져오게 했다.
이들이 객잔에서 입실 절차를 밟을 때 주인장은 조금 전 울렸던 ‘천둥소리’에 대해 떠벌렸다.
약 일각(*15분) 뒤 객잔 대청에 놓인 네모난 식탁 위에 식사가 차려지자, 계연은 조금 식사를 들다가 방으로 올라갔고 연비와 우패천만이 자리에 남았다.
성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연비는 우패천과 꽤 가까워졌다. 계연은 이미 연비에게 저자가 비록 소 요괴지만 품성이 나쁘지 않고, 화를 돋우지만 않는다면 괜찮을 거라고 은밀한 목소리로 일러준 상태였다.
더욱 중요한 것은, 사람은 결국 언제나 외모를 보게 되어있다는 점이다. 우패천의 순박한 외양은 보는 이에게 조금의 위협도 주지 못했고, 이에 연비도 우패천을 그다지 두려워하지 않았다.
객잔의 대청에 앉은 연비와 우패천에게는 각자가 품은 목표가 있었다. 연비는 신선과 요괴에 대한 일들을 좀 더 알길 원했고, 우패천은 계연에 대해 알고 싶어했다.
조금 전 계연이 자리해 있었을 때 우패천은 계연에게 편히 질문할 엄두를 내지 못했고, 연비는 조용히 먹고 마시기만 했다. 이에 계연이 자리를 떠나자, 우패천은 즉시 눈을 반짝이더니 자리를 옮겨 연비 가까이 앉았다.
“연 동생, 보아하니 기분이 안 좋은 듯한데?”
연비는 깊이 탄식하더니 술잔을 비우고서 진지한 얼굴로 우패천을 바라보았다.
“우 선생님, 제 일신의 무공도 선생께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지요?”
“에이, 그런 딱딱한 호칭은 쓰지 말게. 그냥 형이라고 불러, 우 형.”
우패천은 연비의 호칭을 고치더니 웃는 얼굴로 그에게 술을 한잔 따라주었다. 다른 범인들에게는 절대 하지 않을 일이지만, 오늘 그는 연비와 어떻게든 친해지고 싶었다.
“연 동생, 사실 무공이 뛰어난 건 아주 대단한 자질이야. 요괴들도 그런 기술을 익히는 게 중요하거든. 다만 보통 사람들은 팔다리에 힘이 없어 요괴들에게 그리 큰 위협은 못 되지.”
이렇게 말한 우패천은 다급히 한마디 덧붙였다.
“하지만 자네는 달라! 계 선생님이 계시니 그분께 선술(仙術)을 배우면 되지 않나!”
연비는 피식 웃은 다음 고개를 저었다.
“계 선생님께서는 저를 가르쳐 주시지 않을 겁니다. 저도 왜 그런 생각이 드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분명히 알 수 있어요. 제가 선생님께 가르침을 청한다 해도 선생께서는 제가 선술을 전수해 주지 않으실 것이고, 오히려 제게 안 좋은 인상을 받게 되실 겁니다.”
우패천은 다시 한번 연비에게 술을 따라 주었다.
“그런 일도 한발 앞서 생각할 수 있다니, 연 동생은 역시 보통 사람이 아니야. 그, 내 한마디 묻겠네. 연 동생은 계 선생님과 어찌 알게 된 사이인가? 계 선생님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지? 자자, 같이 마시지, 건배!”
우패천은 술잔을 들어 연비와 부딪힌 후 연거푸 마셨다. 우패천은 안색이 조금도 변하지 않았지만, 연비는 이제 슬슬 취기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시간이 좀 지나서 자세한 사정은 저도 기억이 잘 안 나는군요…….”
“아이, 그러지 말고 한번 말이나 해보게. 내 오늘 연 동생을 만난 것이 마치 옛 친구를 만난 듯하구먼! 자네가 계 선생님을 무척 존경하는 듯하니 나도 이유를 알고 싶어 그러네!”
연비는 순박하고 사람 좋은 얼굴을 한 연패천을 바라보며, 아직도 그가 대단한 요괴라는 것이 잘 믿기지 않았다.
“예전에 요괴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때가 12년 전 초봄이었지요. 대정국의 계주에는 낙하 산장이라는 곳이 있는데, 그곳의 장주(莊主)가 강호에 명성을 널리 떨치던 분이었지요. 그래서 저도 어른들을 따라 거기서 열리는 중요한 모임에 참여했고, 거기서 뜻이 맞는 여덟 명의 동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영안현에 호랑이가 나타났다는 소식에 계주에 놀러 온 젊은 협사들은 그 자리에서 의기투합했다. 그리고 관아에서 써 붙인 방문(榜文)을 보고 호랑이 퇴치 의뢰를 수락해 백성들을 위해 호랑이를 잡으러 갔다.
그 결과 그들은 정괴(精怪)가 다 된 호랑이 요괴와 마주쳐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으나, 계연의 도움으로 구사일생하게 되었다.
우패천은 이야기를 무척 집중해서 들으며 연비의 말을 끊지 않았고, 그 와중에도 연비에게 술을 따라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연비가 그해 영안현에서 있었던 일에 관해 이야기를 마치자, 우패천은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했다.
“그리고서 오늘 낮에, 성 밖 오리정에서 다시 계 선생님을 만나게 된 겁니다. 하하, 겁도 없는 멍청한 강도들이 감히 계 선생님을 해치려고 하더군요…….”
연비는 오늘 밤 있었던 일은 말하지 않고 그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이미 한 덩이로 딱딱히 굳어버린 양고기를 입에 밀어 넣어 씹었다.
“계 선생님께서 그때 정말로 그 호랑이 요괴를 놓아주었단 말인가? 그리고 그 요괴는 계 선생님께 제자의 예를 올렸고?”
“예, 그 장면이 무척 인상 깊었기 때문에, 결코 잊을 리는 없습니다.”
우패천의 눈이 반짝이더니 술잔을 들어 한 입 마신 뒤 이렇게 중얼거렸다.
“선인지로(仙人指路)구나…….”
“우, 끅……. 우 형, 뭐라고 하셨습니까?”
“아아, 아무것도 아닐세. 연 동생, 어서 마시게. 주인장, 여기 술 좀 더 가져오시오! 또 떨어졌으니. 설마 술에 물을 탄 것은 아니겠지?”
계산대 뒤에서 졸고 있던 주인장은 우패천의 엄청난 목청에 깜짝 놀라 잠이 다 달아났다. 그는 유일하게 자리에 남아 아직도 식사와 술을 즐기는 그들을 바라보았다. 식탁 위에는 작은 술 단지 두 개가 놓여 있었고, 식탁 아래에는 술 단지 두 개가 쓰러져 있었는데 네 개 다 텅 비어있었다.
“그렇게 많이 마시고서 오줌도 안 싸나……?”
“뭐라고 했소?”
“아, 아닙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얼른 가져다드리겠습니다!”
객잔 주인은 재빨리 대답한 뒤 점원을 불러 술을 가져오게 했다. 저들이 얼마나 많이 마시다가 죽든 말든, 대금만 받으면 상관없는 일이었다.
자정이 되자, 연비는 우패천의 등에 업혀 방으로 돌아갔다. 그는 우패천에 의해 완전히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취했기 때문에, 자신이 아주 어릴 적의 일까지 몽땅 털어놓은 상태였다.
연비의 방에 도착한 우패천은 그를 침상에 눕힌 뒤 이불을 잘 덮어 주었다.
그도 당연히 오늘 연비가 오늘 고심하던 바에 대해 알고 있었다. 연비는 지금까지 쌓아온 자신감이나 긍지에 큰 충격을 받은 것이다. 우패천은 연비가 술에 취해 침상에 누워있는 상태에서도 검을 꼭 쥐고 놓지 않는 것을 보고 속으로 이렇게 감탄했다.
‘과연 계 선생님의 눈에 든 자답군.’
연비는 술에 취해 곯아떨어진 상태였지만, 우패천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침상 곁에 서서 이렇게 말했다.
“연 동생, 그 해에 호랑이 요괴와 맹세한 일은 자네 생각처럼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네. 계 선생님은 자네들을 시험해 본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호랑이를 시험한 거야. 지금 자네의 실력이 그 호랑이에게 먹힐 실력인지 아닌지 나도 알 수 없군…….”
말을 마친 우패천은 몸을 돌렸고, 침상 위에 있던 연비는 무슨 꿈을 꾸는지 이렇게 중얼거렸다.
“마셔……. 형, 계속 마십시다…….”
그러자 우패천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하하하…… 하지만 안심해도 좋아. 동생이 나를 이왕 우 형이라고 부르니, 내 당연히 자네를 지켜 줘야지! 설령 그 호랑이 요괴가 자네를 찾아온다 해도, 내가 나서서 물리쳐 주겠네!”
이때 세 사람이 잡은 방은 서로 붙어 있지 않았고, 계연의 방은 여기서 7, 8칸은 떨어져 있었다.
이 시각 계연은 수행을 닦는 듯 침상에 누워있었고, 넝쿨검은 조용히 침상 곁에 기대어 있었다. 하지만 사실 계연은 잠이 들지도 수행을 닦지도 않는 상태였기 때문에, 뛰어난 청각으로 이 고요한 밤에 나누는 두 사람의 대화를 모두 들을 수 있었다.
우패천과 연비가 아래층 대청에서 나눈 대화부터, 우패천이 연비를 방으로 데리고 와 한 말까지 전부 들은 계연은 피식 미소 지으며 이렇게 혼잣말했다.
“재미있게 됐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