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299화 (299/892)

299화. 수상한 도시 (1)

그동안 계연과 우패천은 서로에 대해 좀 더 알게 되었는데, 계연의 예상대로 이 소 요괴는 예전에 가축으로 길러지던 밭을 가는 소였다.

가축으로 기르는 소들은 그 집안사람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재산이며 소중한 존재였다. 그래서 우패천은 항상 세심한 돌봄을 받았고, 영지를 얻어 요괴가 된 후에도 그 집안이 3대(代)째 이어질 동안 밭을 갈아 주었다. 그 후에는 그 집안사람이 그를 다른 이에게 팔았고, 그는 2주 후 스스로 줄을 끊고 우리를 탈출해 깊은 산으로 들어가 수행해왔다.

인간 세상에 오래 살며 그 영향을 받은 우패천은 바로 그 때문에 산짐승으로부터 요괴가 된 이들과 다른 본질적인 차이가 생긴 것이다.

물론 이 사실은 그가 몰래 계연에게만 따로 알려준 이야기였다. 그가 비록 연비와 형 동생 하는 사이가 되었지만, 수행에 관한 일은 아무에게나 쉽게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연비가 정말로 궁금해하며 귀찮게 캐묻는다면 알려줄 수도 있을 터였다.

우패천은 이제 계연이 무척 신묘하고 뛰어난 실력을 지녔으며, 요괴에 대한 어떤 편견도 없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반면 계연은 말로는 잘 설명할 수 없지만, 이 소 요괴의 영혼이 꽤 맑은 편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가끔은 이런 직감이 가장 영험하게 들어맞기도 한다.

이날 밤 달은 무척 밝았지만, 별빛은 희미해서 시야가 밝았다. 세 사람은 모닥불을 만들고서 주위에 둘러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우패천은 계연이 책을 읽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마침내 참지 못하고 슬그머니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우패천이 채 입을 떼기도 전에 계연이 먼저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 있나요?”

우패천은 양손을 비비적거리더니 곧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하하……. 선생님께서 이전에 제 목덜미에 걸린 사술(邪術)을 없앨 방법이 있다고 하셨지요, 그…….”

계연은 속으로 무척 즐거워하고 있었지만, 겉으로는 담담한 채였다. 계연은 고개를 들어 소 요괴를 향해 이렇게 물었다.

“네, 그랬지요. 이제는 제가 기회를 틈타 공격할까 봐 두렵지 않으세요?”

“아이고,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선생님께서 어찌 제게 그런 짓을 하시겠어요? 굳이 그런 틈을 노리지 않더라도 지금이라도 당장 제 목숨을 가져가실 수 있는데요. 어쨌든 저는 이제 결심이 섰습니다. 부디 저를 도와 이것을 없애 주세요!”

그러자 계연은 고개를 끄덕인 다음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이렇게 물었다.

“내가 이 사술을 없애주면 내게 어떻게 보답할 건가요?”

우패천은 그의 물음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는 한 번도 그 점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고, 계 선생님도 이전에는 그런 말을 꺼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저, 계 선생님, 이전에는 어떻게 보답할 건지 묻지 않으셨는데요…….”

우패천은 난감한 듯 이렇게 물었다.

“예, 그렇지만 당신도 제게 물어보신 적이 없잖아요.”

계연이 웃으며 이렇게 놀리자, 우패천의 표정이 무척 곤란해 보였다.

“하, 하지만 제게는 선생님께 보답해 드릴 만한 무언가가 없습니다……. 아니면 제가 선생님께 머리를 몇 번 조아리는 것으로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계연은 고개를 저으며 더는 그를 놀리지 않고 진지하게 대답했다.

“앉으세요, 저 털들은 당신의 정수(精髓)에까지 뿌리를 뻗고 있어서, 모두 없애려면 시간이 좀 들 거예요. 그동안 무언가 느껴지더라도 절대 움직이면 안 돼요. 그렇지 않으면 제가 진화의 기운을 세밀하게 조절할 수가 없어요.”

계연이 이렇게 대답하자 우패천은 기쁜 얼굴로 연달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계연을 등 뒤에 두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 옷깃을 풀어헤친 뒤 고개를 숙였다.

우패천은 눈앞의 모닥불을 바라보며, 계 선생님께서 쓰시는 삼매진화는 어떤 형태일까 하고 상상했다.

“이제 할게요, 절대로 움직이시면 안 돼요! 삼매진화는 그냥 불이 아니에요!”

계연의 진지한 경고에 우패천은 다급히 잡생각을 물리치고 집중했다. 맞은편에 있던 연비는 검을 품에 안고 나무에 기대앉아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계연은 우패천의 거친 피부와 목덜미 부근에 난 동떨어진 색깔의 털을 바라보며 천천히 법안을 열었다.

법안을 열면 정상적인 사물은 형태가 모호해 보이지만, 특수한 기운이나 술법 또는 신령한 것에 관해서는 형태가 무척 명료해졌다.

우패천의 요기(妖氣)와 이 털이 가진 요기는 서로 무척 다른 속성을 띠고 있었다. 그 기운을 따라 계연의 시선이 우패천의 정수 깊은 곳까지 내려갔다. 그러자 그곳에 이 사악한 기운의 근원이 자리해 있었고, 이 순간에도 그 기운은 우패천의 정기와 법력을 흡수했다. 게다가 끊임없이 사악한 기운은 자신의 영역을 늘리려는 듯 요동쳤는데, 무언가 법광을 내뿜는 근막(筋膜)처럼 보이는 것이 그것을 저지하고 있었다.

“없애기 쉽지 않았겠어요.”

계연은 이렇게 한마디 하더니 법력을 운용해 몸 안의 금교를 열어, 진화 한 줄기를 그 위로 통과시켰다. 그 후 입을 열어 붉은빛이 어른거리는 회색 연기를 우패천의 목덜미에 뿜었다.

연기가 가까워지던 순간, 우패천은 자신의 다리를 온 힘을 다해 틀어쥐었다.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바지가 뜯어졌으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번에는 자신의 생살을 쥐어뜯었다.

분명 아무런 온도 변화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우패천의 영혼은 하늘을 뒤덮는 불바다가 밀려오는 듯한 착각을 느끼고 있었다. 게다가 무수히 많은 기다란 바늘이 콕콕 찔러오는 듯한 정신적 고통이 느껴졌다.

‘위험해! 이건 목숨이 위험한 수준이야! 빨리 피해야 해!’

우패천은 그 모든 두려움과 당장 도망치고픈 충동을 참고 이를 꽉 깨물었고, 곧 우패천의 온몸에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는 모닥불은 조금 전 느낀 불바다가 몰려오는 듯한 위세에 비하면 성냥개비만도 못한 위력이었다.

가벼운 호흡 소리조차 이런 긴장된 순간에는 수십 배는 크게 들렸다. 모닥불을 노려보던 우패천의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수축했다. 하늘을 뒤덮는 기세의 불바다가 이미 자신의 지척에 와있는 것이 느껴졌다.

붉은빛을 띤 회색 연기가 날아와, 계연의 세밀한 조절 아래 우패천의 목덜미에 난 갈색 털에 닿았다.

이때 연기는 털을 한 번에 태우지 않고, 털끝에서부터 시작해 조금씩 우패천의 표피 아래로 파고 들어가 아래로 내려갔다. 이때 계연이 조절하는 진화의 기운은 마치 실처럼 가늘었다.

이 과정은 고도의 집중력과 세심한 조절이 필요했으므로, 계연의 심신을 무척 피곤하게 했다. 그와 동시에 우패천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움직이지 말고 참으세요! 진화의 연기가 이미 몸 안으로 들어갔으니, 근원에 닿을 때까지 참아야 해요. 만약 그게 잘못되면 혼백까지 타버릴 거예요. 마음을 다잡고 입정(入靜)한 다음, 등 뒤의 진화를 보지 않도록 하세요. 안 그러면 견디기 더욱 힘들어질 거예요.”

계연은 다시 한번 그를 일깨운 다음 소매 안에서 노란 종이를 꺼냈다. 그리고는 다시 정신을 집중해 진화를 조절하는 데에 집중했다. 우패천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조용히 앉아 침착한 상태를 유지하려 애썼다.

노란 종이는 채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이미 은은한 빛을 내뿜으며 거대한 체격의 금갑 역사로 변했다.

금갑 역사는 계연을 향해 공손한 태도로 읍했다.

이때 계연은 그에게 신경 쓸 여력이 없었으므로, 금갑 역사는 인사를 마친 뒤 잠시 계연에게 시선을 두었다가 모닥불 곁에 가만히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연비는 긴장한 기색으로 그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비록 그는 도술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지만, 지금이 매우 중요한 순간이라는 것쯤은 알았다. 게다가 그간 우패천은 연비에게 자신이 당했던 사술에 대해 한두 번 불평한 게 아니었다. 우패천의 말에 따르면, 그것은 그의 근원을 갉아먹는 음험한 사술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제 금갑 역사가 있으니 연비가 나서서 주변을 경계할 필요는 없게 되었다.

보통 사람의 집중력은 그리 길지 못하다지만, 연비와 같이 무공의 수준이 높은 이라 해도 반 시진(*1시간) 넘게 온통 한 곳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으니 마침내 좀이 쑤셨다.

이에 연비는 눈을 비비며 금갑 역사를 바라보았다. 이 거대한 역사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눈조차 깜빡이지 않았다.

“휴우……. 역사께서 저 대신 계 선생님과 우 형님을 좀 지켜봐 주십시오. 저는 잠시 볼일 좀 보고 오겠습니다.”

연비는 술에 취했을 때 이미 우패천을 형이라고 부른 적이 있지만, 그 호칭은 너무 친밀해 아무래도 적응이 되지 않았다. 이에 그동안 연비는 우패천을 우 형님이라고 불러 왔다.

연비는 모닥불에 장작 몇 개를 더 넣은 후, 무릎을 짚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숲에서는 가끔 ‘휘이잉’하는 바람 소리가 들려왔고, 아무리 4월이라고 하더라도 밤이 되니 조금 쌀쌀했다. 연비는 몇 걸음 걷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 모닥불 근처를 바라보았다.

‘좀 더 멀리 가는 게 좋겠지.’

연비는 호흡을 조절한 다음, 경공으로 바람처럼 이동해 수풀 깊은 곳에 이르렀다.

때는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이라, 밤이라도 해도 그다지 적막하지 않았다. 각종 곤충과 개구리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것을 보니, 근처에 수원(水源)이 있는 듯했다.

연비는 모닥불이 보이지 않는 곳까지 온 다음에야 바지를 풀었다. 이 정도 거리라면 계 선생님이 있는 곳까지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다.

연비는 바닥에 떨어진 낙엽들을 보며 볼일을 보다가, 무의식적으로 앞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자신이 지나오느라 벌어진 수풀 틈새로 멀리 떨어진 곳이 보였다.

“불빛인가?”

그의 시야가 닿는 먼 곳에서 불빛이 어른거렸다.

이 근처에는 도시나 마을이 없으니, 아마 이 산길에 자신들 일행 말고도 다른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었다.

연비는 볼일을 끝낸 후 허리끈을 묶고서 계연과 우패천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불빛이 보이는 먼 곳을 쳐다본 다음, 경공을 이용해 좀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곳에서 연비는 높이가 꽤 되는 나무를 찾았고, 그는 몸을 날려 높은 가지 위로 올라가 멀리 불빛을 바라보았다.

‘정말 불빛이네. 게다가 수가 적지 않고…….’

나뭇가지 위에 앉은 연비는 먼 곳의 불빛이 모닥불 같은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것은 마치 황야에 일어난 불길처럼 보였다.

연비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별은 적고 달빛은 밝은 가운데, 구름조차 없는 날씨였는데 공중에는 어떤 연기도 보이지 않았다.

‘풍향은 내 쪽으로 불고 있어. 만약 들판에 불이 난 거라면 연기가 있어야 해. 설마…… 그럼 성에서 쓰는 등불인가? 하지만 이 근방 백 리(*里: 약 40km) 안에는 마을조차 없는데……. 도시가 있을 리는 없어.’

연비는 잠시 이런 생각을 떠올렸다가 곧 고개를 저었다. 번거로운 일은 적으면 적을수록 좋았다. 그가 가지에서 내려가려는 순간, 멀리 황야에서 마차 한 대가 움직이는 것이 연비의 눈에 보였다.

그 마차는 연비가 있는 곳에서 조금 떨어진 동쪽에서 나타나 서쪽을 향해 가고 있었다. 보아하니 연비가 발견한 불빛이 있는 곳을 향해 가는 듯했다. 연비는 눈썹을 찡그리며 잠시 마차를 살피다가, 가지 아래로 내려와 일행이 있는 곳을 향해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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