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1화. 천지가 뒤바뀌다
우패천은 눈을 반짝이더니 즉시 정의의 사도가 된 듯이 나섰다.
“계 선생님, 저 사람들은 상황을 전혀 모르고서 귀성 안에 들어간 겁니다. 아무래도 그들 스스로는 나오지 못할 거예요. 게다가 그들이 살아있는 사람이라는 걸 누군가 알아차리기라도 하면, 목숨이 위험해질 겁니다! 저희가 가서 그들을 빼 내와야 해요. 그러다 악귀를 마주치면 그 김에 처리도 하고요!”
계연도 마침 그에 대해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으므로, 우패천의 말을 듣고 웃으며 물었다.
“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정의감이 투철하셨습니까?”
“전부 연 동생에게서 배운 의협심입니다. 제가 비록 요괴이기는 하지만, 저는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계 선생님, 어찌 생각하십니까?”
“흠……. 연 대협은 어찌 생각하세요?”
계연은 검을 끌어안고 있는 연비를 바라보았다. 그는 마차를 바라보고 있다가 계연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만약 이곳에서 마차를 발견하지 않았다면, 저도 굳이 신경 쓰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어젯밤 저는 이 마차가 성을 향해 가는 것을 목격했으니, 오늘 이 일의 경과를 밝히는 것이 마치 제 책임처럼 느껴집니다. 만약 계 선생님과 형님께서 싫지 않으시다면, 부디 저를 데려가 주십시오!”
“아하하, 싫기는 무슨! 연 동생은 무공이 뛰어나니 보통 귀신은 자네에게 상대도 되지 못할걸세! 만약 대단한 것을 마주치면 그건 나나 계 선생님이 계시니 걱정하지 말고!”
우패천은 속으로 무척 기뻐했다. 지금 상황을 보아하니 계 선생님도 귀성에 들어가는 것을 동의할 듯했다.
과연 계연은 그의 예상대로 이렇게 대답했다.
“그렇다면 성에 들어가서 사람을 찾아보죠. 저승의 귀신들과 교분을 좀 쌓은 적이 있는데,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귀성 안의 귀신들은 보통 사람과 다를 바가 없을 거예요. 그리고 살아있는 사람이 저 안에 들어가면 원래 가진 양기와 불의 기운이 음기에 억눌리기 때문에, 쉽게 정체를 들키지 않을 거예요. 심지어 저 사람들은 아직도 자기들이 귀성 안에 들어왔다는 걸 모를 수도 있어요.”
“그럼…… 어두워진 다음에 성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까?”
우패천은 계연에게 분명 무언가 방법이 있을 것을 알고서 일부러 이렇게 물은 것이었다. 물론 뒷일을 생각하지 않고 요괴의 법력을 이용해 성을 공격해 들어가는 방법도 있지만, 그건 지금 상황에서는 최선책이 아니었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저 안의 사람들이 위험해질 거예요. 제게 방법이 있어요.”
계연은 시도해볼 만한 방법 두 가지를 떠올렸다. 하나는 선검을 이용해 귀성에 걸린 음양의 제재를 뚫는 것이었다. 어쨌든 이 귀성은 성황신이 다스리는 진정한 저승도 아니었으니, 넝쿨검만 있다면 못 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이 방법은 귀성 안의 뭇 귀신들을 놀라게 할 것이다.
다른 방법은 일시적으로 밤이 되도록 주위 환경을 조작하는 것이었다. 귀성에 걸린 술법은 선문에서 부리는 것처럼 정교하지 못했으므로, 바깥 세계의 영향을 더 쉽게 받을 것이다. 즉, 한마디로 말해 귀성 자체를 속이는 방법이었다.
계연은 망설이지 않고 천지화생(天地化生)의 술법을 펼쳐 자신의 의식 세계에 있는 산하(山河)를 바깥 세계와 결합했다.
우패천과 연비는 별안간 자신들을 둘러싼 세상이 변하는 것을 느꼈다. 이들의 몸이 원래 있던 곳에서 까마득히 멀어지더니, 이내 이들은 저 멀리 떨어진 산맥과 강을 굽어볼 수 있게 되었다.
이 강렬한 감각은 이들을 별세계에 온 것처럼 황홀하게 했다. 두 사람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동안, 계연은 의식 세계 안의 하늘을 검지로 툭 건드렸다.
그러자 형체가 모호하거나 혹은 또렷한 바둑알 여러 개가 떠올라 공중에서 별처럼 반짝거렸다. 동시에 하늘의 색도 천천히 낮에서 밤으로 바뀌어 갔다.
그 순간, 주위의 풍경이 바뀌며 도로, 건물, 행인들이 차례로 나타나 실체를 갖춰가기 시작했다.
연비는 이게 어찌 된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한 얼굴이었고, 우패천은 너무 놀라 숨조차 쉬지 못할 지경이었다.
‘뭇별들이 자리를 옮기고, 해가 지고 달이 뜨는구나!’
도시의 풍경이 점차 실체를 갖춰가던 순간, 계연은 천지화생의 술법을 즉시 거둬들였다. 의식 세계에 펼쳐진 산과 강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 모든 과정이 눈 깜짝할 사이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방금 목격한 현상은 연비에게 있어 무척 신비롭기 그지없는 경험이었다. 그에 비해 우패천에게 있어서는 온몸에 전율이 이는 듯한 광경이었다.
한순간에 환한 아침이 밤이 되는 것을 목격한 일은 결코 잊을 수 없을 강렬한 느낌을 선사했다.
뒤이어 소 요괴는 어떤 장면을 떠올렸다. 그날 밤 남도현 밖에서 마주친 그 요괴 여인은 계 선생님을 보자마자 요기(妖氣)가 흐트러지며 꼼짝하지도 못했었다.
이제 우패천은 그때 그 요괴가 느꼈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심지어 그 요괴는 계 선생님이 어느 정도의 능력을 지녔는지 자기만큼 잘 알지 못하면서도 계연을 보고 그렇게 놀란 것이었다.
그는 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도, 계 선생님께 질문하기에 지금은 적합하지 않은 때라고 결론지었다.
뒤이어 셋은 모두 그들 주위에 펼쳐진 도시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이때 성안은 먹구름이 낀 듯한 한낮처럼 보였고, 계연 일행이 서 있는 곳은 어느 후원에 있는 마구간이었다. 건축 양식이나 도시의 풍경이 모두 일반 도시와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다만 그 사람들이 성안으로 타고 들어온 마차만 이곳에 남아있지 않을 뿐이었다.
“정말 이상하네요, 음기가 무척 왕성하다는 점만 빼면 전혀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우패천이 이렇게 감탄을 내뱉었고, 연비는 당연히 별달리 할 말이 없었다.
잠시 무언가 생각에 잠겨 있던 계연이 이렇게 말했다.
“어떤 점에서 보자면 이것이야말로 진짜라고도 볼 수 있을 거예요. 자, 일단 그 사람들을 먼저 찾아야 해요. 귀성 안에 들어온 살아있는 사람들이니, 분명 찾기 어렵지 않을 거예요. 그들이 아직 아무런 일도 당하지 않았다면 말이죠.”
계연은 이렇게 말하며 법안을 뜬 후, 법력을 이용해 자신의 시력을 더욱 끌어올린 다음 성안에 무겁게 내려앉은 음기를 관찰했다.
계연의 일행이 후원을 돌아 나가니 벌써 대낮의 소음이 들려왔다. 그들의 눈 앞에 펼쳐진 것은 그다지 오가는 이가 많지 않은 거리였다. 계연은 행인들의 죽었을 때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반면 연비의 눈에 성의 행인들은 일반 백성들처럼 보였다.
이때 연비는 우패천의 도움 없이도 거리의 풍경과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성안의 음기에 연비의 양기와 불의 기운이 눌려 있었기 때문이다.
“계 선생님……. 저들이 우리에게서 어떤 이상한 점이라도 발견하면 어쩌죠?”
연비가 조심스럽게 묻자 계연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이미 대협께 술법을 씌워 놓았어요. 일반적인 귀신들은 꿰뚫어 보지 못할 거예요.”
연비는 고개를 끄덕였으나, 그래도 긴장을 감출 길이 없었는지 손아귀에 쥔 검을 꼭 쥐었다. 사실 담이 아무리 크더라도 성의 모든 사람이 전부 귀신이라면 긴장을 안 할 수가 없을 것이다.
계연은 연비가 든 검을 슬쩍 살펴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연 대협의 검에 감춰진 살기를 보니 그간 묻힌 피가 적지 않은 모양이네요. 정말로 예리한 검이군요. 귀신이라도 이 검에 당하면 무척 고통스럽겠어요. 검객 두욱천이 술을 마신 후 귀신을 베었다는 이야기는 연 대협도 들어보셨겠죠?”
계연이 이렇게 묻자 연비의 눈에 날카로운 빛이 스쳐 지나갔다. 그가 요즘 가장 두려워하고 심란해하는 것이 바로 자신의 검술이 귀신과 요괴들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마치 결코 이길 수 없는 적을 상대하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이때 계 선생님이 먼저 자신에게 귀신을 벨 수 있다는 말을 꺼내자, 연비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우패천은 행인들을 바라보다가 다시 성 곳곳의 풍경을 관찰했다. 대낮이라 해도, 여전히 어젯밤의 등롱이 빼곡히 걸려 있었다. 어느 곳을 보든 무척 경사스러운 풍경이었다.
“이런 거리가 왜 이렇게 조용한 걸까요?”
“지금은 해가 뜬 시각이잖아요!”
계연이 이렇게 짚어주자 우패천은 그제야 깨달은 듯한 얼굴이었다.
* * *
그때 성의 한 객잔 안에서는 네 사람이 막 잠에서 깬 참이었다. 그들 일행은 사내 둘, 여인 둘이었으나 객잔에는 빈방이 많이 없던지라 객잔에서는 이들에게 방 두 개를 내어주었다.
일행 중 한 남자가 침상에서 힘겹게 몸을 일으키더니, 이마를 문지르며 다른 한쪽 침상에 잠들었던 자신의 친우를 바라보았다. 친우도 자신처럼 정신이 없어 맥을 못 추는 듯한 모습이었다.
어젯밤 이들은 허리가 쑤시고 등이 아파 좀처럼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게다가 아침에 눈을 떴더니 눈앞이 어지럽고 정신이 혼미했고, 일어난 지 한참 후에야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휴우……. 무슨 객잔이 이따위야, 잠을 통 못 잤네. 이럴 거면 마차 안에서 자는 게 더 나았겠어.”
“나는 나만 못 잔 줄 알았지. 너도 그래?”
“일단 나가서 좀 괜찮은 주루를 찾은 다음 밥부터 먹자. 내내 아무것도 없는 산길만 따라왔더니 이제 제대로 된 음식을 먹고 싶어.”
두 사람은 옷차림을 말끔히 정돈한 후, 자신들과 동행한 여인들의 방 앞에 가서 문을 두드렸다.
똑똑똑……!
“셋째, 넷째야. 너희 일어났니? 밥 먹으러 가자!”
똑똑똑!
“어서 밥 먹으러 가게 일어나. 좀 이따 말도 몇 필 사러 가야 해.”
오랫동안 아무것도 없는 황야를 여행한 몇 사람은 어젯밤에 이 등불이 환한 성을 발견하고서 무척 기뻐했다. 서둘러 마차를 몰아 성에 혹시 들어갈 수 있는지 보았더니, 이 성은 늦은 밤에도 문이 열려 있었다.
게다가 성에 들어왔더니 도시 전체가 무척 시끌벅적했다. 인파가 너무 많아 마차로는 앞으로 나아가기가 힘들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말 몇 필이 성에 들어오자마자 무언가에 놀란 듯이 발을 동동 구르며 이리저리 튀어 나가려 했다. 그래서 그들은 도저히 정상적으로 마차를 몰 수가 없었다.
이에 그들은 마차를 성문 가까이 있는 마구간에 잠시 보관하기로 했는데, 고삐를 푼 순간 내내 온순하던 말들이 그들이 채 잡을 새도 없이 미친 것처럼 뛰쳐나갔다.
그러나 이런 것은 애초부터 그들이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뛰쳐나간 말들이 사람과 충돌한 것에 비하면 이 정도는 재물을 좀 손해 본 것에 불과했다. 그래서 너무나 피곤했던 그들은 그저 재수 없는 일을 당한 셈 치고, 객잔을 찾아 바로 잠이 들었던 것이다.
놀라 도망친 말들을 다시 찾을 가능성은 무척 희박했기 때문에, 오늘 이들은 말을 사러 가야 했다.
두 남자가 밖에서 잠시 기다린 끝에 마침내 방 안에서 여인 둘이 나왔다. 그들은 남자 둘을 향해 공손히 인사했다.
“둘째 오라버니, 주 공자님, 좋은 아침이에요.”
“두 분 소저께서도 안녕하십니까!”
이에 주흥(周興)도 그들을 향해 인사했다
“아이고, 뭐 하느라 이렇게 꾸물대. 인사는 그만하고 어서 가자. 나가서 괜찮은 주루를 찾아보자.”
가운동(柯韻東)이라는 이름의 남자는 연이어 일행을 재촉하며 세 사람을 이끌고 객잔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