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2화. 살아있는 사람이다!
그들이 아래층으로 내려오자, 장부를 들춰 보던 주인장은 네 사람이 내려오는 걸 보더니 웃는 얼굴로 이렇게 물었다.
“손님, 어제 잠은 잘 주무셨습니까?”
“잠은 무슨, 온몸이 다 쑤시네!”
주인은 그의 말에도 대수롭지 않은 듯이 다시 이렇게 대답했다.
“원래는 여러분들이 하룻밤 주무시고 간다고 해서 저도 이상하게 여겼습니다. 밤에 누가 잠을 잔단 말입니까? 그러니 당연히 깊게 자지 못하셨겠지요!”
그의 말을 듣던 네 사람은 도통 그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밤에 안 자면 낮에 자란 소리요? 거, 주인장 말 한번 이상하게 하는군!”
“당연히 낮에 자야지요. 사실 안 주무시는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만, 그러고 보니 손님들은 정말…….”
객잔 주인이 네 사람을 유심히 살펴보는 와중에도, 네 사람은 더는 그를 상대하기가 귀찮았으므로 곧바로 객잔 문을 나섰다.
밖에 나서자 날씨가 어둑하게 가라앉은 것이 보기만 해도 답답했다. 게다가 거리에는 이상할 정도로 행인이 없었다.
“이상하네, 어젯밤은 인파가 그리 많더니 어째 낮에는 이리 사람이 없지? 설마 여기 사람들은 정말로 낮에 잠을 자나?”
주흥이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 이렇게 중얼거렸다.
“어쩌면 어젯밤이 이곳의 무슨 큰 명절이었나 보지. 그래서 늦게까지 놀다가 오늘은 다들 늦게 일어나는 게 아닐까?”
여인 중 한 명이 이렇게 추측했다.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다. 가자, 밥부터 먹어야겠어!”
곧이어 네 사람은 다른 일에 관심을 끄고서 성 중심을 향해 걷기 시작했고, 얼마 안 가 등원루(騰遠樓)라는 이름의 주루를 발견할 수 있었다.
주루는 외양이 썩 괜찮아 보였다. 안에는 손님도 별로 없었고 심지어 점원조차 몇 명 있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은 손님이 없으면 자신들의 요리가 더 빨리 나오겠거니 하고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요리에 상에 올라온 후, 가운동은 더는 참지 못하고 화가 폭발했다.
그들이 주문한 요리 여섯 접시는 무척 빨리 준비되었다. 거의 주문하자마자 가지고 온 듯한 속도였다. 하지만 요리들은 하나같이 전부 다 차마 씹어 삼킬 수가 없는 맛이었다.
‘탁!’ 하는 소리와 함께 가운동은 젓가락을 식탁에 세게 내던졌다.
“주인장, 지금 뭐 하자는 건가? 이게 대체 사람이 먹는 음식이란 말인가? 술은 물처럼 밍밍하고 요리는 전부 이상한 맛이 나니, 그야말로 먹다 버린 음식 찌꺼기가 아니고 무어란 말이오? 우리가 돈이 없어 보이는 것이오, 아니면 요리할 재료가 없는 것이오? 이따위 요리를 내놓으면서 가게 문을 열다니, 어쩐지 손님이 없다 했더니 이유가 있었군!”
그가 큰소리를 치며 화를 내자, 주위의 다른 손님들이 모두 이쪽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주인과 점소이가 그들 식탁에 다급히 다가왔다. 두 귀신은 가운동이 사용한 몇 가지 미심쩍은 단어들에 대해 그다지 깊이 생각하지 않고 넘겼다.
“손님, 진정하십시오. 이 요리는 정말로 사람이 하는 것과 큰 차이가 없는 겁니다. 다만 여기는 공물을 바치러 오는 사람도 없는 데다, 유명한 요리사들은 전부 성안의 귀인들을 위해 일하니 저희도 최선을 다한 겁니다. 그냥 참고 드시면 안 되겠습니까? 사실 맛은 그다지 나쁘지 않을 텐데요.”
주인장이 만면에 미소를 내걸고 공수한 채로 이렇게 설명했다.
그의 황당무계한 말을 들은 가운동은 더욱 화가 끓어올랐다.
“공물? 이 주루가 무슨 황성도 아니고, 그렇다고 여기가 무덤도 아니고 대체 무슨 공물을 말하는 것이오? 귀신을 속이지 그러시오?”
그의 말을 들은 주인장의 얼굴에 미소가 즉시 걷혔다. 심지어는 원래 그다지 이쪽을 신경 쓰지 않고 있던 다른 손님들도 모두 고개를 돌려 이쪽을 바라보았다. 점소이를 포함한 주루 안의 모든 ‘사람’들이 단번에 이쪽을 주시했다. 그들의 눈빛에 가운동을 비롯한 그의 일행들은 위기감에 털이 쭈뼛 섰다.
“어, 어찌 그러오? 여기 설마 흑점(*黑店: 옛날, 길손을 해치고 돈을 빼앗을 목적으로 악당들이 열고 있는 객잔)인가? 설마 이런 대낮에 문을 열고 손님을 기만하기라도 하려 그러나? 내가 관아에 신고할지도 모르는데 두렵지도 않은가 보군! 주흥, 넷째야!”
“걱정하지 마, 내가 있으니!”
주흥은 주먹을 말아 쥐고서 인상을 쓴 채 주위를 둘러보았다. 가씨 집안 넷째인 가운금(柯韻琴)도 언제든 공격할 수 있게 온몸에 힘을 주었다. 그들 두 사람은 무공을 익혔기 때문에, 이런 일을 만나면 다른 두 사람을 대신해 나섰다.
주인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대뜸 식탁 앞으로 다가와 가운동의 젓가락을 코앞에 대고서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는 음산한 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하하하…… 정말로 사람이군!”
“사람이라고?”
“저자들 전부 사람이야?”
“사람이 여긴 어떻게 들어왔지?”
“방금 저자가 하는 말을 들으니, 사실인 듯하군!”
“하하하, 살아있는 사람이라니…….”
“산 사람을 본 지가 꽤 오래되었는데…….”
주위 손님들의 이야기를 들은 네 사람은 모골이 송연해졌다. 이미 적지 않은 손님들이 자리에서 일어난 상태였다.
“정, 정말 웃기는군! 설, 설마하니 자네들은 다 죽은 사람이란 말인가?”
가운동이 더듬더듬 이런 말을 내뱉자마자, 그 자신을 포함한 네 사람의 안색이 단번에 창백해졌다.
주인장은 1척(*尺: 약 30cm) 길이의 혀를 쭉 빼고서 입술을 핥은 다음 웃으며 대답했다.
“손님의 말이 맞습니다. 우리는, 전부 죽은 사람이거든요.”
“헤헤헤헤…….”
“하하하……!”
“살아있는 사람의 양기!”
“살아있는 사람의 피도 맛있지!”
“심장이랑 오장육부도 있다고!”
“나도 맛보고 싶어!”
대낮에 주루에 와서 밥을 먹는 이들은 전부 걸귀(*乞鬼: 다른 말로는 걸신(乞神)이라고도 함)들이었다. 이때 걸귀들은 모두 끔찍한 진면목을 드러내놓고 있었다. 입이 쭉 찢어지거나 혀가 길게 튀어나와 있기도 했고, 비쩍 마른 몰골에 까만 손톱이 무시무시하게 긴 자도 있었다.
“자네들 왜 전부 귀신 얼굴을 드러내놓고 있는가? 설마 이 성의 법도를 무시하겠다는 뜻인가?”
그때 검은 장포를 입은 남자가 주루로 들어오며 이렇게 소리쳤다.
그러자 주인장이 다급히 그에게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사정을 설명했다. 때때로 손을 뻗어 안색이 창백해진 네 사람을 가리키기도 했다. 그러자 검은 장포를 입은 남자의 두 눈에 단번에 소름 돋는 빛이 스쳐 지나갔다.
“정말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잘됐군. 제 발로 이 성에 들어온 자들이니, 우리를 탓할 수도 없겠지. 이 네 사람은 내가 데리고 가겠다. 오늘 밤 연회에 저자들을 성주(城主)에게 바치면 딱 좋겠군!”
“도망쳐!”
쿵!
그 순간 주흥이 돌연 이렇게 소리치며 식탁을 뒤엎었다.
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검은 장포를 입은 사람이 검은 연기로 변해 주흥의 몸을 칭칭 감았다. 동시에 길고 뾰족한 손톱으로 주홍의 목을 죄어 옴짝달싹도 못 하게 만들었다. 그의 다른 한 손은 몇 척이나 길게 늘어나 가운금의 목을 틀어쥐었다.
“하하하하……. 잘됐군, 잘됐어! 이 체온, 이 기운, 과연 살아있는 사람이구나. 게다가 둘 다 무공을 익힌 몸이야. 하하하……!”
그가 입을 활짝 찢으며 껄껄 웃자, 그 안의 치아와 창백한 뼈가 들여다보였다.
가운동과 가운흔은 이미 다리가 풀려 땅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그들은 반항은커녕 두 발로 걷지도 못하는 상태였다.
검은 장포를 입은 사람이 진심으로 기쁜 듯이 껄껄 웃었다. 이 살아있는 사람들 덕분에 난처했던 일 하나를 처리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때 주흥과 가운금은 귀신에게 목이 졸려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그는 고개를 돌려 바닥에 쓰러진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두려움에 놀란 이들은 이미 옷에 소변을 지리다가, 자신들을 둘러싼 귀신들에 의해 놀라 기절한 상태였다. 그런데도 검은 장포의 사내는 이들을 꺼리는 기색이 없었다.
“하하, 최소한 이 두 사람보단 살이 연하겠지!”
검은 장포를 입은 귀신은 무척 만족해하며 네 사람을 데리고 떠나려 했다.
“대인, 이 자들은 제 주루에서 식사하던 이들입니다. 제가 제일 먼저 발견했지요. 그러니 바닥에 있는 저 두 사람이라도 제게 남겨 주십시오. 이렇게 전부 다 데리고 가실 수는…….”
주루의 주인장은 결국 참지 못하고 이렇게 나섰다. 그러나 그가 미처 말을 끝맺기도 전에 검은 장포의 남자가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감히 나와 다투겠다고? 혼백이 다 흩어질 것이 두렵지도 않으냐!”
이렇게 말한 남자는 더는 주인장과 말을 섞지도, 자신을 둘러싼 주변인들에게 경고를 남기지도 않고서 양팔을 뱀처럼 길게 늘어뜨려 네 사람을 꽁꽁 묶었다. 그리고는 그대로 주루를 나섰다.
주루 안에서는 주인장과 점원, 손님들 모두가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은 보기만 해도 소름이 돋을 정도로 괴기스러웠다.
검은 장포를 입은 남자가 거리낄 것 없이 산 사람들을 데리고 나가자, 주루의 주인장은 노기를 참지 못해 결국 폭발했다. 그는 머리를 풀어헤친 푸른 낯빛에 뾰족한 송곳니의 악귀로 변신해서 소리쳤다.
“네가 아무리 흑령사(黑令使)라지만, 이렇게 건방져도 되느냐?!”
귀신의 포효성이 객잔 안의 찻잔을 덜덜 떨리게 했다.
그 순간, 멀리 길가를 걷던 검은 장포의 남자가 차갑게 웃으며 객잔에 모여선 귀신들을 바라보았다.
“알았다. 네게 기회를 주지. 와서 빼앗아 봐라.”
그러자 객잔 안의 귀신들이 저마다 원래의 모습을 드러내고 음산한 눈빛으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이 성에 들어올 수만 있을 뿐, 마음대로 나가지 못하는 이들이었다. 그래서 산 사람 네 명은 그들에게 있어 너무나 큰 유혹이었다.
검은 장포를 입은 남자는 네 사람을 길가에 던져둔 채, 차가운 눈빛으로 다른 귀신들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다만 시간이 지나도 누구도 감히 앞으로 나서지 못했다. 왜냐면 남자가 걷어 젖힌 장포의 허리춤에는 새까만 구혼삭(*勾魂索: 저승사자가 들고 다니는 무기, 영혼을 끄집어내는 밧줄)이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흥, 쓸모도 없는 것들이 입만 살아서는!”
그는 이렇게 코웃음을 친 뒤, 한 손에 각각 두 사람을 잡고서 유령처럼 변한 다음 길가에서 사라졌다.
그러자 귀신들은 분을 참지 못해 투덜댔고, 주인장은 시퍼런 얼굴을 하늘로 치켜들고서 포효했다.
“으아아! 흑령사 네 이놈, 어찌 이리 오만하단 말이냐!”
* * *
귀성 안 어느 곳에서 계연은 우패천과 연비를 데리고 한 객잔을 나서고 있었다. 계연은 마구간에서 가장 가까운 두 객잔 중 하나에 그들이 묵었을 거라고 짐작했고, 이때 그들은 마침 다른 객잔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 순간 계연은 메아리치는 포효성을 들었다.
“아아-! 흑령사 네 이놈, 어찌 이리 오만하단 말이냐……! 하단 말이냐……!”
그 목소리를 들은 순간 계연의 맑은 거울 같던 마음에 물결이 일었다. 이에 그는 발걸음을 멈추고 손가락을 접으며 무언가를 점쳐 본 다음, 눈썹을 찌푸렸다.
“계 선생님, 왜 그러십니까?”
“이쪽으로 갑시다, 저 사람들, 이미 정체를 들켰어요!”
이렇게 말한 계연은 바람을 밟고 걷는 듯이 다른 방향을 향해 재빨리 나아갔다. 우패천과 연비도 다급히 그의 뒤를 따라갔다.
이 귀성은 그들이 상상했던 것보다 커서, 남도현보다도 훨씬 큰 듯했다. 이곳에는 오래 묵은 귀신들이 셀 수 없이 많으니, 분명 수행의 깊이를 알 수 없는 귀신들도 많을 것이다. 계연은 이곳이 전에 갔던 어느 저승보다 더욱 강력하게 느껴졌다. 그러니 이 귀성은 귀도(鬼道)를 닦는 귀신들에게 있어서는 성지(聖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쌓은 도행이 꽤 대단한 소 요괴를 데리고 있음에도, 계연은 비거술(飛擧術) 같은 것을 쓸 엄두를 내지 못했다.
단독으로 맞붙자면 계연은 신선, 요괴, 신령, 마귀 누구도 두렵지 않았다. 다만 그들의 수가 자신이 대응할 수 있는 수를 뛰어넘게 되면, 오히려 상황은 계연에게 무척 위험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