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305화 (305/892)

305화. 귀신의 환영

우패천, 고천명 그리고 연비 세 사람은 뒤에서 속닥속닥 한참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연비는 그나마 나았지만, 다른 두 사람은 이 화제에 대해 말할수록 더욱 흥이 돋았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계 선생님이 이런 이야기를 크게 떠벌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으므로, 은밀히 자기들끼리만 이야기를 주고받는 데에서 끝냈다.

그들은 어느새 성을 반 정도 가로지르는 거리를 걸어 귀성의 중심지에 도착했다. 그들의 눈앞에 보이는 것은 보기만 해도 기세가 등등한 성주의 저택이었다.

저택의 대문은 귀성의 성문보다 약간 작을 뿐이었고, 대문 위에는 거대한 편액이 걸려 있었다.

계연은 그 위에 적힌 글자를 천천히 읽어나갔다.

“유명(*幽冥: 깊숙하고 어두운 곳. 저승을 뜻함) 귀부(鬼府)?”

고천명은 어느새 다시 계연의 곁으로 다가와, 계연의 말을 듣고 이렇게 대답했다.

“맞습니다. 신무애 저 귀신 놈은 수행하는 귀신 중에서는 꽤 비범한 자입니다. 신도(神道)가 무너졌으니 대부분의 신령보다도 더욱 실력이 뛰어날 겁니다. 게다가 떠도는 넋이며 귀신들을 계속 받아들이며, 그들에게 수행을 닦을 기회를 주고 있지요. 그는 이곳을 귀도(鬼道)의 성지(聖地)로 만들려는 겁니다.”

이에 계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야망이 큰 자군요.”

그도 이 귀성의 특별한 점을 눈치챈 참이었다. 이곳은 수없이 많은 귀신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들의 음수(陰數)가 다해 사라지면, 귀성에 음기를 더해주는 역할을 한다. 게다가 음기가 강해질수록 귀성은 이곳에 사는 귀신들에게 무척 살기 좋은 환경이 된다. 대단한 술법을 얻지 못하더라도 수행을 하며 부딪히는 한계를 돌파하기가 더욱 쉬워지는 것이다.

이런 일은 성황신이 담당하는 저승에서도 일어났다. 저승에서는 때로 음수의 한계를 돌파하여 죽지 않는 귀신들이 생기곤 했다. 하지만 그런 귀신들은 대부분 원한과 집념이 강한 자들이었으므로, 저승에서는 매년 그런 자들을 찾아내기 위해 ‘호적’ 정리를 한다. 그렇게 음수를 넘어선 귀신들을 찾아낸 후 그들이 생전의 원한과 집념을 놓지 못한 것을 발견하면, 곧바로 그런 귀신들은 각 기관으로 압송되어 재판을 받은 후 진정한 의미로 죽게 된다.

이 무애귀성의 성주는 귀신들이 그런 한계를 돌파하는 것을 무척 즐기는 듯했다. 하지만 이곳은 성주의 허락을 받은 귀신이 아니면 성 밖을 나갈 수 없게 되어있었다.

그 순간 행렬의 앞쪽이 멈춰 섰고, 물요괴에 속한 한 정괴(精怪)가 커다란 목청으로 소리쳤다.

“천수호의 고 대인께서 도착하셨습니다!”

그러자 저택 밖을 지키던 귀졸(鬼卒)들이 그들을 쳐다보았다. 최근 며칠간은 성주께서 여는 연회에 참석하기 위해 대단한 이들이 차례로 도착한 참이었다. 천수호의 고 대인이라는 말을 듣고 귀졸들이 재빨리 앞으로 다가왔다.

“고 대인, 먼 길 오시느라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제가 별원으로 가서 쉬실 수 있게 모시겠습니다. 연회가 준비되면 후에 다른 시종이 대인께 알려드릴 겁니다.”

귀졸은 이렇게 말을 한 후 옆으로 비켜서서 길을 안내하려고 했다. 보아하니 행렬을 곧바로 저택 안으로 맞아들이지는 않을 모양이었다. 그때 고천명이 계연을 한번 바라본 다음 재빨리 앞으로 나섰다.

“잠깐!”

계연과 함께 걸을 때 고천명은 요기(妖氣)를 전부 안으로 수습하고 있었다. 이때 그는 다시 온몸의 요기를 뿜어내며 대문 앞으로 다가왔고, 이에 귀졸들은 온몸을 짓누르는 듯한 압박감을 느꼈다.

“고 대인, 무슨 특별한 분부라도 있으십니까? 명만 내리시면 무엇이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러자 고천명이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 특별히 내릴 분부는 없고, 신무애는 지금 어디 있는가? 내 할 말이 있어 일단 그를 좀 만나고 싶은데.”

그의 말에 귀졸이 유감스러운 듯 미소 지었다.

“용서하십시오, 대인. 성주께서는 중요한 일이 있어, 누구든 지금은 그분을 뵐 수 없습니다. 밤에 연회가 열리는 시각에는 분명 나타나실 겁니다.”

“오? 신무애가 그리 바쁜 일이 있다고? 내가 만나자 하는데도 안 된다는 것인가?”

“그러게 말입니다. 나와 부군이 천수호에서부터 천릿길을 마다하지 않고 무애성에 왔으니, 응당 성주를 먼저 만나야 하지 않겠는가? 또한, 주인 된 자로서 손님이 도착하면 응당 맞으러 나와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추가 남편에 뒤지지 않는 요기를 뿜어내며 앞으로 나왔다. 비록 그녀는 교룡은 아니었지만, 그녀도 쌓은 수행이 얕은 편은 아니었다. 오늘 계 선생님을 우연히 만난 것은 그들 부부에게 있어서는 엄청난 기연(機緣)이었다. 이에 그들은 어떻게든 좋은 인상을 남기고자 애를 썼다. 다만 하추는 고천명보다는 좀 더 은근한 태도일 뿐이었다.

그러자 귀졸이 잠시 망설이다가 고천명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혹시 소인에게 무슨 일로 성주님을 뵈려는 것인지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럼 소인이 성주께 말을 꺼내기가 더 쉬울 겁니다!”

귀졸은 겉보기에는 무척 젊어 보였으나, 실은 아주 오랜 세월을 살아온 귀신이었다. 그래서 고천명이 저렇게 당당하게 꾸짖는 듯한 태도로 나오자 분명 무슨 원인이 있을 거라고 짐작했다.

고천명이 고개를 돌려 계연을 바라보자, 계연이 그를 향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고천명이 다시 귀졸을 향해 말했다.

“내 친우들이 어젯밤 멋모르고 이 귀성에 들어왔다고 한다. 그들은 모두 살아있는 사람들인데, 이 성의 한 흑령사에게 잡혀 지금은 종적을 모르는 상태다. 듣기로는 연회 자리에 신무애에게 바치기로 되어있다 하니, 나는 그 사람들을 무사히 돌려받아야겠다!”

‘살아있는 사람? 게다가 천수호 교룡의 친우라고?’

그의 말을 들은 귀졸들이 모두 깜짝 놀랐다.

“그, 그럼 고 대인과 고 부인께서는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제가 바로 성주 대인께 가서 고하겠습니다!”

두 요괴가 뿜어내는 요기가 너무나 강력했기 때문에, 귀졸들은 압박감을 견디지 못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유명귀부는 면적이 무척 넓었기 때문에, 귀졸은 여러 개의 문과 복도를 지나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그리고는 마침내 새카맣고 거대한 건물 앞에 도착했다.

건물 앞의 칠흑처럼 검은 대문은 굳게 잠겨 있었는데, 그곳에서부터 실체화된 검은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그 차가운 음기는 귀신들이라도 견딜 수 없을 정도였다.

“성주님, 천수호의 고 대인께서 부인과 함께 오셨습니다. 성주님을 꼭 뵈어야겠답니다.”

그러나 귀졸이 한참을 기다려도 안에서는 어떤 반응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는 고천명이 말했던 내용을 다시 큰 소리로 고했다.

“천수호의 고 대인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분의 친우들이 살아있는 사람들인데 어젯밤 실수로 성으로 들어왔다 합니다. 그리고는 흑령사에게 잡혀갔고, 그 흑령사가 밤에 열릴 연회에 성주께 바치겠다는 말을 남겼다 합니다. 이에 고 대인께서는 성주께서 즉시 그자들을 풀어주시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그러자 주위에 음산한 귀기(鬼氣)가 모여들더니, 한 귀신의 환영이 나타났다. 그러자 귀졸은 더욱 긴장하기 시작했다.

“고천명의 친우라? 게다가 범인(凡人)?”

그와 동시에 건물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오자 귀졸은 조금 안심할 수 있었다.

“그렇습니다. 고 대인과 고 부인께서는 무척 화가 난 듯한 모습이셨습니다.”

“흥, 여기가 천수호도 아니고……. 연회가 열린 후 흑령사가 정말로 살아있는 사람들을 내게 바치면 그들을 풀어주겠다 전해라. 지금은 그를 만날 시간이 없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귀졸은 다급히 예를 올린 다음 즉시 건물을 떠났다.

잠시 후 고천명은 자신이 이렇게나 밖에 오래 서서 기다렸는데도 기다리라는 답을 듣자 일시에 분노가 솟구쳤다.

“신무애 그놈의 위세가 대단하구나! 왜 지금 당장 그 흑령사를 불러 사람을 내놓으라고 할 수 없단 말이냐?”

“고 대인, 부디 소인들을 난처하게 만들지 말아 주십시오. 성주께서 급한 일이 있어 지금은 누굴 만나기가 어렵다고 하셨으니, 밤에 흑령사가 사람들을 데려오면 반드시 놓아주라고 명하실 겁니다!”

“흥!”

고천명은 코웃음을 친 다음 두 발짝 정도 물러나 계연에게 다가섰다.

“계 선생님, 이대로 곧장 유명귀부에 쳐들어가서 신무애 놈을 끌고 오는 게 어떻겠습니까?”

계연은 음산한 귀기에 뒤덮인 저택을 바라본 후, 다시 성 중심 부근의 하늘을 뒤덮은 음기와 귀기를 바라보았다. 지금 그런 행동을 하면 수많은 귀신이 즉각 달려들 것이다. 게다가 너무 강압적인 태도를 보이면 자신이 바라는 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었기 때문에, 결국 계연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어쨌든 저자가 여는 연회이고, 사람을 놓아주겠다고 약속했으니 일을 크게 만들 필요는 없지요.”

“예, 그럼 알겠습니다!”

고천명은 공손한 태도로 대답한 후 다시 귀졸을 향해 돌아섰다.

“그럼 좋다. 신무애가 사람들을 풀어줄 때까지 기다리도록 하지. 하지만 너희는 내 말을 그자에게 반드시 전해라. 만약 내 친우들이 조금의 상해라도 입은 채 나타난다면, 그 후에 일어날 일은 상상도 하지 못할 수준일 것이다. 나는 분명히 미리 경고했으니, 나중에 후회하지 마라! 그럼 이제 우리가 쉴 곳으로 앞장서라.”

“예예, 고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

천수호의 행렬이 떠난 후, 귀졸 하나가 다시 저택 안으로 들어가 방금 있었던 일을 성주에게 고했다. 고천명이 계연을 대하는 공손한 태도가 아무래도 범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저택 깊은 곳에서 귀졸의 보고를 들은 신무애는 눈썹을 찡그리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가서 항중(項重)을 찾아라. 만약 그가 정말 사람들을 데리고 있다면 함께 데려와라.”

“예! 명을 받들겠습니다!”

* * *

하늘이 어두워지자 성안의 등불이 점점 더 밝게 타올랐다. 사람이 사는 성에서는 모두 집으로 돌아갈 시각이었지만, 무애귀성은 오히려 더욱 시끌벅적해져 마치 도시 전체가 살아나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자 유명귀부에서는 귀졸들을 보내 고천명을 모시러 왔고, 이에 계연의 일행들도 함께 연회가 열리는 곳으로 갈 준비를 했다.

이때가 되자 계연은 이 귀성의 진정한 깊이를 엿본 듯한 느낌이었다. 뜰 안에 서서 성안의 풍경을 바라보니, 이곳을 뒤덮은 귀기가 그야말로 하늘을 덮고 해를 가릴 정도였다. 거리며 골목마다 온통 시끌벅적했고, 성안에 사는 귀신들이 족히 10만은 될 듯했다. 그중에서 어느 정도 수행에 진전을 이룬 자들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을 것이다.

이 풍경을 보니 어젯밤 자신들이 밖에서 바라본 모습은 무언가 금술(禁術)에 가려진 광경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귀성의 규모가 이토록 클 줄은 몰랐네요!”

그러자 고천명도 옆에서 눈썹을 찌푸린 채 대답했다.

“저도 몰랐습니다. 보아하니 제가 신무애 그놈을 얕잡아 본 것 같습니다. 무애귀성이 황야에 세워진 지 어느덧 백 년이라던데, 처음의 궁벽한 마을에서 소리 소문도 없이 이 정도의 발전을 이뤘을 줄은 몰랐습니다.”

우패천은 검을 쥔 채 결연한 얼굴을 한 연비를 보고는 다시 밖을 쳐다보며 말했다.

“저는 이렇게 많은 귀신은 태어나 처음 봅니다. 계 선생님, 조월국에서 그동안 죽은 자들이 전부 이곳으로 온 게 아닐까요?”

그러자 계연은 탄식하며 대답했다.

“그렇지는 않을 거예요. 조월국 전체에서 1년에 죽는 이들이 최소한 20만 명은 될 테니까요.”

“그렇게나 많습니까?”

우패천은 그 숫자에 조금 놀란 듯 보였다.

“그것도 적게 잡아 말한 거예요.”

비록 정확한 통계는 없었지만, 지난 생에 자신이 살던 나라의 환경과 의료 조건 아래에서는 1년에 약 수백만 명이 죽었다. 조월국의 인구는 그곳보다 훨씬 적었지만, 대신 사회 환경과 의료의 질이 너무나 떨어졌기 때문에, 1년에 수십만 명이 죽는다는 것도 실은 무척 적게 잡은 것이었다.

“계 선생님, 우형 그리고 연형, 이제 출발하는 게 좋겠습니다. 신무애에게 어서 사람들을 돌려받아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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