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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가기연-306화 (306/892)

306화. 혼탁한 기운

그들은 잠시 후 귀졸의 안내 아래 유명귀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연회가 열리는 장소는 무척 컸는데, 저택 안에 있는 광장과 비슷한 빈 부지에 손님들을 위한 식탁과 의자들이 놓여 있었다. 연회에 참석한 이들 중에는 귀신들뿐만 아니라 신무애와 친밀한 관계인 요괴들도 여럿 있었다. 심지어는 신도(神道)를 수행하는 신령들도 적지 않았는데, 산신과 토지신, 강신(江神) 심지어 성황신조차 있었다.

웃음소리, 고함소리 심지어는 누군가 우는 소리까지 겹쳐 온 연회장이 떠들썩했다.

고천명과 계연의 일행이 도착했을 때, 손님들 대부분은 이미 자리에 앉은 뒤였다. 계연은 그들의 면면을 바라보며 눈썹을 한껏 찌푸렸다.

대정국에서는 신령들이 요물, 귀신들과 함께 앉아 있는 것 자체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중 몇 명이 겉으로만 어울리는 체하며 앉아 있는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계연이 법안을 열어 관찰한 결과 각종 기운이 뒤섞인 가운데 선량한 기운은 그다지 느껴지지 않았다. 연회장에 걸어 들어오는 내내 그는 이곳이 온통 혼탁하고 삿된 기운으로 뒤덮여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인세(人世)가 쇠퇴하니 더럽고 추악한 기운이 융성해지고, 천하가 혼란하니 요괴와 삿된 것들이 들고일어나는구나!’

이것은 계연이 조월국에 대해 받은 인상이었다.

그가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그들 일행은 이미 주인석과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고천명의 자리에 도착했다.

“계 선생님, 어서 앉으시지요!”

고천명은 계연을 먼저 자리에 앉힌 후 하추, 우패천, 연비와 함께 자리에 앉았다.

점점 더 많은 손님이 들어와 제자리를 찾아 앉았고 금, 비파, 징, 북 등의 악기들이 연주를 시작했다. 그것이 함께 어우러지자 괴이한 음악으로 변했는데, 계연이 느끼기에는 지금 눈앞의 광경과 무척 잘 어울렸다.

고천명과 우패천은 계 선생님이 언짢아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래서 두 요괴는 바른 자세로 조용히 앉아, 자신들이 이 연회장에 있는 다른 존재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보이려 했다. 그러나 이들이 서로 주고받는 눈빛 속에는, 곧 이 자들에게 일어날 불행을 기대하는 듯한 흥분감이 엿보였다.

그들이 자리에 앉자, 성주가 아직 오지 않았는데도 요리들이 하나둘 식탁 위로 올라왔다.

상상했던 것과는 달리 요리 대부분은 따뜻한 열기를 품고 있었고, 올라온 술도 술맛이 제대로 느껴지는 진짜 술이었다. 귀성 안에 있는 주루들과는 크게 다른 차림새였다.

보아하니 이번 연회는 유명귀부에서도 큰 심혈을 쏟아 마련한 자리인 듯했다.

계연은 차려진 음식들을 잠시 바라보더니, 젓가락을 들어 조금씩 맛보았다. 그가 전에 먹었던 수많은 미식(美食)들과는 비교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먹을 만한 정도였다.

계연이 젓가락을 들자, 이제나저제나 기다리고 있던 우패천도 다급히 젓가락을 들어 식사하며 연비에게도 어서 먹으라고 권했다. 고천명은 술 주전자를 들어 계연을 위해 잔을 채워 주었다.

“계 선생님, 이 귀성의 연회가 어떻습니까?”

계연은 잠시 고천명을 바라보더니 술잔을 들어 한 입 마신 다음 이렇게 대답했다.

“혼탁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군요!”

조월국의 사직(社稷)이 무너지고 속세가 어지러워지자, 천하의 삿된 기운이 모여들어 날로 퍼져나갔다. 그래서 조월국에서 태어난 요괴들의 천성은 모두 선량하지 못했다.

천하의 대세가 급변하는 이러한 시기에 협객이나 세외고인(世外高人)들이 나서 속세를 어지럽히는 악귀와 요괴들을 찾아 없앤들, 나날이 쇠퇴하는 조월국의 대세(大勢)에는 어떠한 결정적인 작용도 하지 못했다.

사람의 마음도 복잡하지만, 천하가 분열하고 합쳐지는 과정은 더욱 그러했다. 그런 과정에 휘말렸다간 변을 당하기 쉬웠고,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는다는 보장도 없었다. 이는 역사를 통틀어 여러 번 증명된 사실이었기 때문에, 속세가 스스로 흘러가도록 놔두다가 적당한 시기에 도움을 주는 것이 가장 좋았다.

다만 이런 시기마다 속세에서 수행하던 이들이 사건에 휘말리곤 했다. 대의(大儀)를 위해서건 사익(私益)을 좇아서건 각각의 이유가 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다.

고천명은 계연이 다른 생각에 잠긴 듯이 넋을 놓은 것을 보고서, 선생님의 기분이 무척 나쁜 것이 틀림없다고 짐작하고는 감히 말을 걸지 못했다.

바로 그때 웃음기를 띈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그들이 앉아 있는 자리에 들려왔다.

“하하하하……. 천수호의 고 대인 아니십니까! 무애귀성의 유명귀부에 친히 발걸음을 해주셨군요. 자자, 제가 대인께 한 잔 올리겠습니다! 이 연회가 끝나면 제 처소로 가서 한 잔 더 하시지요. 제가 특별히 고 대인을 위해 어린 남자아이와 여자아이 한 쌍을 준비했습니다. 아, 그 맛이란! 여러 번 먹어도 절대 질리지 않지요. 하하하하…….”

흉악한 요기를 뿜어내는 요괴 하나가 술주전자와 술잔을 들고서 고천명 곁에 다가와 큰 소리로 웃으며 떠들었다.

고천명이 비록 물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교룡이라지만, 이 순간 그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곁눈질로 슬쩍 쳐다만 보아도, 지금 계 선생님이 자신을 차가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쾅!

고천명은 두 손으로 식탁을 세게 치며 자리에서 일어나, 음산하고 차가운 눈빛으로 그에게 다가온 자를 노려보았다.

“너는 누구냐? 내가 언제 너같이 흉악한 것과 교분을 나누었단 말이냐? 게다가, 아이를 먹어?”

고천명의 소매 안에서 날카로운 손톱이 달린 손이 튀어나오더니 순식간에 상대방의 목을 틀어쥐었다. 그자는 고천명보다 덩치가 몇 배는 더 컸는데, 지금의 형세는 그들의 체격과는 정반대였다.

꽈아악……!

요괴의 목에서 뼈와 근육이 꽉 졸리는 소리를 내었고, 그의 피부에 피가 점점이 솟구쳐 나올 정도였다.

“어흑……. 고, 고 대인…… 제, 제가 무슨 잘못을 하였는지……. 소인, 깊이 사죄드립니다…… 헉…….”

그 순간 계연의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신의 행동에 부끄러움이 없고 마음에 거슬리는 일이 없다면, 일부러 제게 증명해 보일 필요는 없어요.”

고천명은 그 말을 듣고 속으로 크게 안심했다. 하지만 한번 솟구친 노기는 가라앉지 않는지라, 그는 목을 틀어쥐었던 요괴를 한쪽으로 던졌다. 그 바람에 요괴의 목에서 피부가 너덜너덜하게 떨어져 나갔다. 그러자 한쪽에 있던 하추가 그의 부군이 요괴를 던지는 순간 몸을 일으켜 소매를 한번 휘둘렀다.

휘익!

요괴는 6, 7장(丈)의 거리를 날아가 쿠당탕 소리를 내며 다른 식탁에 부딪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식탁에 앉아 있던 요괴들은 황망히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고천명 부부가 서 있는 방향을 향해 감히 화를 내지도 못했다.

“조금 과했지만, 잘하셨어요!”

계연이 이렇게 칭찬하자 고천명은 기쁜 마음에 슬그머니 웃음이 나올 뻔하였지만 억지로 참아 누른 후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그저 저런 삿된 요괴들을 보면 무척 화가 납니다. 저런 것이 감히 제 눈과 귀를 더럽히다니, 만약 천수호였다면 물고기 밥이 되도록 던져버렸을 것입니다!”

주위 요괴와 귀신들이 시선이 모두 이쪽으로 쏠렸으나, 고천명의 요기와 흉악한 기운에 짓눌려 누구도 얻어맞은 요괴를 위해 나서지 않았다. 그러자 자연스럽게도 연회장의 분위기가 무척 고요해졌다.

고천명은 몸을 일으키려 바르작대는 요괴를 향해 코웃음을 친 뒤, 주위의 손님들을 향해 공수한 후 이렇게 말했다.

“제가 하필 기분이 안 좋을 때 저자가 제 발로 찾아와 화를 입었군요. 하지만 제가 여러분의 흥취를 깬 점에 대해서는 사과드리겠습니다. 자, 다시 먹고 마셔도 됩니다!”

고천명이 이렇게 말하자, 연회장 전체, 특히 그와 가까운 곳에 앉은 요괴들은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잔을 들어 올릴 뿐이었다.

우패천은 내던져진 요괴가 이쪽을 무섭게 노려보기만 할 뿐 한마디도 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연비를 향해 속삭였다.

“연 동생, 저 고천명은 정말 대단하고 흉포한 요괴로군. 아까워라, 나도 같이 저놈을 팰 기회였는데…….”

연비는 입꼬리가 들썩였으나 웃음을 가리기 위해 잔을 들어 술을 한입 마시고는, 우패천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고천명은 다른 손님들의 반응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자신에 대한 계연의 인상이 좋아졌다는 것에 만족했다. 하지만 그가 다시 자리에 앉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위쪽에서부터 커다란 목청을 가진 자가 담담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천수호의 고 대인은 그 성품과 마찬가지로 위세도 범상치 않으시군요!”

이 목소리는 주인 자리에 놓인 병풍의 뒤쪽에서 들려왔다. 그는 바로 이 무애귀성의 성주였다.

계연이 그쪽을 올려다보니 마침 귀성의 성주가 병풍을 돌아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검은 도포를 입고서 머리에는 소관(*小冠: 고대 남성들이 머리를 틀어 올려 고정할 때 쓰던 물건)을 쓰고 있었다. 그는 귀신 본래의 모습은 아니었으나 주위에는 정체 모를 검은 기운이 여러 갈래로 그를 휘감고 있었고, 그 안에는 귀신들의 환영이 떠올라 보기만 해도 그 위세가 대단했다.

계연이 법안을 열어 관찰해보니 그의 기운에 서로 충돌하는 듯한 형상이 보였다. 지금 이 모습이 비록 귀기(鬼氣)가 솟구쳐 위엄이 넘쳐 보이긴 하지만, 원래 모습대로 보이는 편이 스스로에게 더 좋을 듯했다.

고천명은 신무애가 등장하자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향해 공수했다.

“신 성주, 수행에 큰 진전이 있었다 들었습니다. 일단 그에 대해 먼저 축하드리겠습니다. 낮에 제게 약속해주셨던 일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당연히 잊지 않았습니다!”

신무애는 이렇게 말하며 자리에 앉은 다음, 뒤에 선 하인들을 향해 이렇게 명령했다.

“데려와라.”

그의 말이 떨어지자 귀졸 몇몇이 뒤쪽에 있던 건물 안에서 안색이 창백한 네 사람을 데리고 왔다.

이 네 사람은 바로 일전에 잡혀 온 가씨 집안 오누이들과 주흥이었다. 이들은 큰 충격을 받은 뒤로 죽 두려움에 떨어왔기 때문에, 지금 걸음조차 제대로 떼지 못했다. 특히 바깥으로 끌려 나온 뒤 온갖 귀신과 요괴들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더욱 겁에 질려있었다. 비록 방금 누군가 와서 자신들을 풀어주겠다 했지만, 이들은 이 순간 죽음을 눈앞에 둔 듯하여 공포에 질려있었다.

네 사람은 신무애의 앞까지 곧장 끌려왔고, 신무애는 그들을 한번 훑어본 다음 고천명을 향해 물었다.

“고형의 친우들이 바로 이자들입니까?”

“고형이라니! 우리가 언제부터 친했다고!”

고천명은 작게 코웃음 친 다음, 살짝 허리를 굽혀 계연에게 가까이 다가가 물었다.

“계 선생님, 저 네 사람이 맞습니까?”

계연이 그들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저도 잘 몰라요. 어쩌면 빠진 사람이 있을 수도 있어요.”

“아, 그건 별문제도 아닙니다.”

고천명은 다시 허리를 세우고는 주흥을 비롯한 네 사람을 향해 이렇게 물었다.

“어젯밤 당신들이 마차를 몰고 무애귀성에 들어온 자들이오? 혹시 마차에 당신들 말고 다른 사람도 있었소?”

주흥 일행은 긴장한 얼굴로 서로 시선을 나누었다. 곧이어 가운동이 떨리는 호흡을 진정시킨 후 대답했다.

“네, 네. 저희가 맞습니다. 마차에는 저희 네 사람뿐이었습니다!”

“하하하……. 그럼 정확하군. 신 성주, 내 친우들이 바로 이자들입니다. 제게 보내주시지요!”

그의 말은 옆에서 듣던 계연마저 황당함을 느낄 정도였다. 주위의 손님들은 더욱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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