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307화 (307/892)

307화. 이놈들이 죽고 싶어 발버둥을 치는구나

주인 자리에 앉은 신무애는 눈을 가늘게 뜨며 고천명을 노려보았다. 그리고는 네 사람을 막 풀어주려던 귀졸을 향해 손을 들어 올려 제지했다.

“고천명! 저자들이 당신의 친우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하하…….”

신무애는 황당함에 헛웃음이 나왔다. 그는 저 사람들이 어떻게 되든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누군가에게 농락당하는 것까지 참아줄 수는 없었다.

“친우라며 어찌 그들을 못 알아보는 것입니까? 게다가 그들의 일행이 몇 명인지도 모르다니요?”

고천명은 다시 한번 그를 향해 공수한 다음 이렇게 사과했다.

“제가 급한 마음에 거짓말을 했습니다. 사실 저 사람들과 저는 모르는 사이이지만, 곤경에 빠진 것을 알고는 일단 구해내는 것이 먼저였기 때문에 친우라고 둘러댄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귀성 안의 어느 걸신에게 잡아 먹힐지 알 수 없었으니까요.”

고천명이 이렇게 설명하며 사과하자 신무애는 화가 조금 풀렸다. 그러나 천수호 교룡이 아무 이유도 없이 고작 범인(凡人)들의 생사에 관심을 가지다니 아무래도 무언가 이상했다.

‘저들을 데려가 자신이 먹으려는 것은 아닐 것이고, 분명 저 네 사람의 신분이 특수하거나…….’

거기까지 생각한 그는 낮에 들은 수하의 보고를 떠올렸다. 신무애의 시선이 연비와 우패천을 지나 계연에게 고정됐다. 그리고는 손가락으로 계연을 가리키며 이렇게 물었다.

“고형, 저 선생께서는 대체 어떤 분입니까?”

고천명이 막 대답하려던 순간, 계연이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그러자 고천명은 즉시 입을 다물고는 계연의 옆에 가서 섰다.

사실 연회에 참석한 손님 중 몇몇은 이미 계연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이때 고천명이 계연에게 무척 공손한 태도를 보이자, 주위 손님들은 계연의 정체에 대해 더욱 호기심이 들었다.

계연은 자리에서 일어나 신무애를 향해 공수했다.

“제 이름은 계연이라 하고, 별 볼 일 없는 한객(閑人)입니다. 신 성주의 수행에 성과가 있었다 들었습니다. 정말 축하드립니다. 저들을 구해내는 건 제 생각이었는데, 마침 의로운 고 대인께서 도움을 주신 것뿐입니다. 이제 약속대로 저들을 풀어주시겠습니까?”

신무애의 귀기가 그의 몸을 감싸고 신무애의 두 눈에는 음산한 빛이 번뜩였다. 귀신들의 술법을 운용해 계연을 자세히 관찰해보니, 그에게서는 어떤 신령한 빛이나 법력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겉보기에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범인일 뿐이었는데, 상대가 뿜어내는 분위기는 결코 범인의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고천명이 저자의 곁에서 마치 하인처럼 공손한 태도를 보이지 않는가?

‘한객? 그게 아니라 선인(仙人)이겠지!’

그는 잠시 침묵한 다음 마침내 명령했다.

“풀어주어라!”

귀졸들은 네 사람을 데리고 아래로 내려가 고천명 일행의 앞에서 그들의 손을 풀어주었다.

네 사람은 풀려난 순간에도 두려움에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앞으로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 짐작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연비가 앞으로 나서 그들을 안심시켰다.

“걱정하지 마세요. 제 이름은 연비라 하는데, 여기 이 고인들과 함께 여러분을 구하러 왔습니다.”

“연, 연비라고요? 비검객(飛劍客) 연 대협 말입니까?”

주흥은 상대의 외모와 허리춤에 찬 검을 바라보더니 그가 연비 본인임을 거의 확신했다. 게다가 곤경에 빠진 사람은 조금의 희망이라도 발견하면 그것이 무엇이든 믿고 싶어지는 법이었다.

“예, 제가 그 연비입니다.”

“정말, 정말 잘되었습니다! 우린 이제 살았어! 이 분이 바로 연 대협이에요! 그 연 대협!”

“정말 다행이에요. 비검객의 명성은 저도 일찍이 들은 바가 있습니다!”

가운금이 흥분에 차 이렇게 대답하자 다른 두 사람의 얼굴에도 기쁨이 차올랐다.

“자, 어서 앉으세요. 여기 일은 저희에게 맡기면 됩니다. 반드시 여러분을 데리고 나가겠습니다!”

“예예!”

“네, 연 대협!”

계연은 이렇게 대화를 나누는 네 사람과 연비를 흘끗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그리고는 다시 신무애를 향해 공수했다.

“신 성주의 의로운 결정에 감사드립니다.”

“하! 하하…….”

신무애는 단지 코웃음을 칠뿐, 계연의 인사에 같은 예로 답하기는커녕 대답도 하지 않았다.

신무애의 기분이 좋지 않음을 알아본 요괴며 귀신들이 그를 향해 알랑거렸다.

“바깥에 널린 게 저런 범인들이니, 만약 성주께서 먹고 싶다고 말만 하시면 저희가 언제든 신선한 것들을 잡아 오겠습니다!”

“헤헤헤……. 맞습니다! 천수호 고 대인의 위세가 범상치 않으니 저분의 눈을 더럽혀서는 안 되겠지요. 오늘 말고, 다른 날 다시 살아있는 사람들을 잡아 와 연회를 엽시다! 무척 즐거운 자리가 될 것입니다!”

“하하하하…… 맞는 말이오!”

“허허! 그렇게 합시다!”

“으허허허…….”

성주인 신무애가 나타난 데다 그들의 숫자가 더 많으니, 일순간 연회장에는 그들의 의견에 찬동하는 이들로 떠들썩해졌다. 날카로운 웃음소리와 비웃음, 풍자 섞인 조롱이 들려왔다. 비록 고천명이 대단한 도행을 쌓은 교룡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그들 일행은 요괴 한두 명에 불과했다. 그리고 이곳에는 고천명에게 그다지 뒤지지 않는 실력의 귀신이며 요괴들이 이 자리에 적지 않았다.

흉악한 요괴며 악귀들이 하나둘씩 분위기에 거들며 연회 자리가 더욱 소란해졌다. 심지어 당장 이 연회 자리에서 살아있는 사람을 잡아 와 어떻게 하겠다는 둥 이야기가 이어졌다. 반면 신령들은 대부분 침묵을 유지한 채 가만히 앉아 있었다.

계연은 주인 자리에 앉은 신무애를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그때 우패천, 고천명 부부, 연비를 비롯하여 목숨을 구한 네 사람은 가벼운 이명(耳鳴)을 들었다. 동시에 그들은 원인 모르게 온몸을 뒤덮는 한기(寒氣)를 느꼈다.

‘이놈들이 죽고 싶어 발버둥을 치는구나!’

그 순간, 목숨을 구한 네 사람을 제외한 계연의 일행들은 모두 이런 생각을 했다.

계연은 주위의 소란에 대해 무척 기분이 나쁘다 못해 혐오감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지금 음기가 왕성한 귀성에 들어와 있었고, 이렇게 많은 귀신과 요물들을 한 번에 처리할 방법도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계연이 그들을 두려워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무애귀성의 성주인 신무애를 비롯한 이 자리의 모든 이들 중, 넝쿨검이 가진 온 힘을 개방한다면 그 검기를 막아낼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단번에 이 일을 처리할 방법이 없었으므로, 계연은 일단 본보기를 보이기로 했다. 이곳 손님 대부분은 모두 오합지졸에 불과했고, 아주 소수의 실력 있는 자들은 모두 몸을 사리는 이들이었다. 저들 중 신무애를 위해 목숨을 걸 자들은 몇 없을 것이다.

계연이 넝쿨검으로 신무애를 단번에 죽이기만 하면, 저 소란스러운 무리는 단번에 조용해질 터였다. 아주 소수의 이들이 자신에게 반격하려 든다 해도, 그 정도쯤이야 계연에게 처리할 방법은 넘쳤다.

계연은 눈을 가늘게 뜬 채 성을 뒤덮은 귀기(鬼氣)를 바라보았다. 그가 단 하나 꺼리는 것이 있다면, 바로 이 귀성의 성주가 사라지면 이곳의 오래된 악귀들이 얌전히 성에 남아있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하하하……. 고천명! 당신이 아무리 천수호 교룡이라지만, 이곳은 무애귀성이야! 신 성주만이 모든 결정을 내리시는 곳이지!”

“헤헤헤헤……. 손님은 마땅히 주인의 뜻을 따라야 한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지금 성주께서 생각을 바꿔 연회 자리를 새로 꾸민다고 해도, 고 대인께서는 분명 이견이 없으시겠지요?”

그들의 주위에는 간교한 웃음소리와 조롱이 그치지 않았다. 고천명은 이때 아무런 말 없이 가만히 앉아 있기만 했기 때문에, 저런 악귀와 요물들이 더욱 오만방자한 말을 쏟아내는 것이었다.

그러자 수행을 좀 쌓았다는 점잖은 귀신과 요물들도 점차 고천명이 겁먹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이 상황을 참지 못한 신령들은 주위에 앉은 자들에게 언행을 좀 삼가라는 눈빛을 보냈다.

조롱과 비웃음의 중심에 있는 계연과 고천명의 일행은 이때 모든 이들의 주목을 받고 있었다. 심지어 성주인 신무애조차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서 그들을 쳐다보았다.

그 순간 신무애는 벌벌 떨며 잔뜩 움츠린 네 사람을 제외하고, 고천명과 우패천이 차가운 눈빛으로 좌중을 가만히 바라보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의 표정에서는 어떤 분노의 감정도 찾을 수 없었고, 오히려 그 비웃음에는 다른 자들을 조롱하는 듯한 눈빛이 담겨있었다.

계연은 다른 이들이 무슨 말을 하건 대꾸는커녕 쳐다도 보지 않고, 오직 신무애만을 바라보았다. 회백색의 두 눈에는 어떤 움직임도 없었고,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왜인지 신무애는 그의 두 눈과 마주치자 마음이 선뜩해졌다. 계연을 비롯한 그의 일행이 이토록 평정을 유지하는 것이 아무래도 이상했다. 그들은 다른 이들을 향해 위협적인 감정을 드러내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두려워하는 기색을 드러내지도 않았다.

계연은 그렇게 신무애를 바라보다가 돌연 소매를 떨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신 성주, 초대받고 오지 않았으니 손님이라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한마디 여쭙겠습니다. 귀성의 이렇게 혼탁하고 더러운 풍조가 성주께서 원하시는 바인가요?”

계연이 칙령을 입에 머금고 이렇게 묻자, 그의 담담한 도음(道音)이 널리 퍼져나가 연회에 자리한 모든 이들의 귀에 더없이 또렷하게 들려왔다.

그의 목소리는 절대 크지 않았는데, 기이하게도 연회의 웃음소리와 조롱을 뒤덮을 정도였다. 연회장 전체가 괴이한 침묵에 빠져들었다.

뒤이어 모든 이들의 시선이 계연과 성주를 향했다.

신무애가 언짢은지 가늘게 뜬 눈으로 무어라 입을 열려 하자, 계연은 손을 들어 그를 제지한 다음 눈을 조금 더 크게 뜨고서 다시 이렇게 말했다.

“성주께서는 부디 신중히 대답하시길 바랍니다. 무례하거나 제가 화를 낼 만한 말을 하지 마세요. 대답이 무엇이든 전부 진심으로 받아들일 테니까요.”

그러자 우패천과 고 천명 부부의 귀에 조금 전의 이명이 점차 멀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온몸에 느껴지는 한기는 더욱 짙어지고 있었다.

이에 우패천과 고천명은 서로를 바라보았고, 그들은 상대의 눈빛에서 무언가를 알아챘다.

하늘로 솟구쳐 올라간 넝쿨검에서 번개 같은 빛무리가 천천히 새어 나와, 음기가 뭉친 먹구름이 모여 있는 고공으로 올라갔다.

우르릉……!

먹구름이 수십 리를 가로질러 넓게 퍼지기 시작했다. 원래 음기가 모여들어 만들어진 구름 속에서는 언뜻언뜻 번개가 비쳐 보였고, 그 안에 금빛으로 이루어진 주문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했다.

만약 누군가 지금 구름 위로 올라갈 수 있다면, 금빛을 발하는 커다란 네 글자를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구사박매(*驅邪縛魅: 삿된 것을 물리치고 결박하다)’.

계연의 어뢰술(御雷術)은 그가 하는 술법 중에 가장 뒤떨어지는 술법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무척 강력하기도 했다.

이는 예전에 계연이 현황의 기운(*玄黃之氣: 검은 하늘과 누른 땅의 기운. 즉, 천지(天地)의 기운)을 부릴 수 있게 되었을 때 어뢰술을 배운 후, 교룡 묵영이 죽기 전에 그에게서 새어 나온 뇌원(雷元)의 정기를 흡수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묵영의 몸에 붙은 삿된 술법을 떼어낼 때 이 어뢰술을 사용한 후로, 끝없이 수련해오고 있었다.

이 번개는 음기를 가진 삿된 존재에게 가장 상극이었다. 잠시 후 계연의 주문이 먹구름과 동화되자, 이것은 엄청난 힘을 가진 뇌성벽력이 되었다.

고천명은 교룡답게 자연히 물의 기운과 천둥 번개에 무척 민감했다. 이제 그는 날카로운 한기뿐만 아니라 자신의 머리카락이 천천히 공중에 흩날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동시에 그의 마음이 마비라도 된 듯 저릿저릿해졌다.

이에 고천명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니 높이 치솟은 음기와 먹구름으로 온통 뒤덮인 하늘이 보였다. 먹구름 위에는 음을 양으로 뒤바꾸는 강력한 번개가 요동치고 있었다.

‘누가 뇌법(*雷法: 천둥 번개를 부리는 술법)을 펼쳤지? 이렇게나 엄청난 위압감이라니……. 계 선생님이구나!’

이를 깨달은 고천명은 흥분감에 호흡이 빨라져 침을 꿀꺽 삼켰다. 뒤이어 하추의 어리둥절한 모습을 보고 그는 소리 없이 입 모양으로만 이렇게 말했다.

‘신무애 놈의 생사(生死)를 결정하는 순간이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