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308화 (308/892)

308화. 하마터면 귀성 전체가 사라질 뻔했군

신무애는 원래 한번 날카롭게 비웃어줄 생각이었으나, 계연의 말을 듣고 이유 없이 경계심이 들었다. 그래서 고천명과 우패천을 바라보자, 그들의 상태가 조금 전과는 다른 듯했다. 고천명은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을 무시하는 듯한 고압적인 태도를 버리고, 오로지 놀라움과 두려움이 섞인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저 교룡이 절대로 이곳에 있는 자들을 두려워할 리는 없었다.

우패천은 순박한 얼굴로 주위를 향해 조롱 섞인 시선을 던지며 남의 불행을 즐거워하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이들에게 당하게 생긴 것은 저들인데, 왜 좋은 구경이라도 하는 듯한 표정을 짓는 것인가?’

괴이함을 느낀 신무애는 불안함을 느끼고 자신을 둘러싼 귀기를 갈무리했다. 그는 계연의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주위의 귀신과 요괴들을 향해 말했다.

“우리 무애성에서는 결코 살아있는 자들로 그런 연회를 벌이지 않습니다. 게다가 손님 중에는 신령도 있니, 이 자리에 참석한 것만으로 제 체면을 세워주신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무애성의 요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 분들은, 성을 나간 다음 편한 대로 하십시오.”

이렇게 말한 신무애는 번뜩이는 눈빛으로 계연을 바라보았고, 동시에 그에게서 음산한 귀기가 솟구쳐 연회장을 뒤덮었다.

음기와 한기가 불어닥치자, 식탁 위에 있는 요리들에 서리가 생기더니 점차 얼음이 얼었다.

신무애는 귀기 서린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선장(仙長)께서 방금 하신 말은 저를 협박하는 것입니까? 이 자리에는 귀신, 요괴 신령 심지어 마귀도 있지만, 조금 전 울린 도음으로 미루어 보아 수선자는 오직 선생 한 분뿐입니다. 만약 제가 방금과 같은 태도를 보이지 않고 심지어 선장께 위협을 가했다면, 또 어떤 신묘한 수단이 있으십니까?”

그러나 계연이 원하던 것은 방금 신무애의 그 한마디였다. 이에 그는 속으로 한숨을 돌렸다. 이제 충돌이 일어날 것 같지는 않으니 저 뇌법을 거두어도 될 것 같았다.

“어쩐지 신 성주가 이렇게 많은 분을 초대할 수 있던 것을 보니, 무애성에는 확실히 규율이 있는 것 같군요. 만약 제 말이 조금 지나쳤다면 부디 너그러이 용서해 주십시오!”

계연은 그게 협박이었는지 아닌지는 대답하지 않았고, 신무애의 질문에도 대답할 생각이 없었다. 계연은 공수하며 웃는 얼굴로 이렇게 대답한 뒤, 다시 자리에 앉았다. 동시에 그들이 무슨 일을 일으킬까 봐서 우패천과 고천명을 향해 경고의 눈빛을 던졌다.

우패천과 고천명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특히 고천명은 아직도 조금 전의 놀라움과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이제 와 생각해보니, 자신은 방금 분명히 신무애가 계 선생님을 건드려 화를 입기를 바라는 듯한 태도였다. 득의양양해 남이 화를 입는 꼴을 즐거워하다니, 계 선생님께서 싫어하실 만했다.

신무애는 계연의 이런 태도에 공중에 대고 주먹질을 한 듯한 허탈감이 느껴졌다. 그러자 그의 곁에 있던 귀장(鬼將) 하나가 불만 어린 얼굴로 다가와 뭐라고 속삭였다.

고천명은 계 선생님의 모습을 보고는 다급히 온순한 표정을 짓고는 신무애에게 술법을 이용해 목소리를 전했다.

“신무애, 여기서 그만하시오!”

돌연 귓가에 들려오는 고천명의 목소리에 귀장이 하는 말을 듣고 있던 신무애가 조금 놀랐다. 이에 고천명을 바라보니 그는 제자리에 앉아 가만히 식탁을 바라볼 뿐 이쪽을 쳐다보지 않았다.

“보지 마시오, 나 고천명이니. 신무애, 내 한마디 경고하겠소. 당신은 이미 죽을 위기에서 한번 살아났소. 알아서 자중하는 게 좋을 것이오. 나는 지금 당신을 협박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 전 내가 체신 없이 행동해 계 선생님께 경고를 받았소. 계 선생님은 당신이 감히 건드릴 수 있는 인물이 아니오. 지금 저 구름 위에는 아직도 번개가 요동치고 있고, 저게 떨어지면 무애귀성이 사라지는 것은 순식간일 것이오. 믿든 말든 알아서 하시오!”

고천명의 말은 신무애의 판단에 커다란 작용을 했다.

신무애는 그들이 앉은 자리를 한번 바라본 다음, 슬쩍 하늘을 바라보았지만 구름 위에 무엇이 있는지는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재빨리 자신의 귀기를 가느다란 선처럼 뽑아내어, 고공을 향해 길게 쏘아 올렸다.

그리고 잠시 후, ‘지이익!’하는 소리가 났다.

신무애의 몸이 일순간 굳어지더니 심장이 덜컹했다. 그는 고개를 돌려 계연의 일행을 죽이자며 끈질기게 설득하고 있는 귀장을 바라보았다.

“아직 안 끝났나?”

“성주, 여기는 천수호에서 무척 멉니다. 게다가 저 수선자도…….”

“꺼져라!”

신무애가 노한 얼굴로 소리치자 귀장은 겁을 먹고 한쪽으로 물러섰다.

“과연 선생께서는 교묘한 수단을 가진 수선자이시군요. 기왕 선생께서 제 축하연에 참석해주신 데다, 저도 무엇이 중요한지는 아는 귀신입니다. 일전에 있던 일은 한바탕 오해인 것으로 합시다!”

이렇게 말한 신무애는 원래의 태도로 돌아가 손님들에게 다시 먹고 마시자며 권유했다.

손님들과 주인은 다시 처음의 분위기를 되찾았고, 연회장에는 다시 음악 소리가 울려 퍼지며 곧이어 시끌벅적해졌다.

연회라지만, 실은 무애귀성의 성주가 수행에 큰 진전이 있었다는 것을 선포하는 자리나 마찬가지였다. 이 자리를 이용해 신무애는 귀성 주위의 귀신과 요괴, 신령들에게 무애귀성의 영향력을 넓히려는 것이었다.

귀신들은 대부분 고천명이 앉은 자리를 완전히 무시했고, 요물들은 고천명과 교분이 있는 자들 몇몇만이 다가왔을 뿐이었다. 반면에 오히려 신령들은 고천명과 계연이 앉은 식탁에 다가와 술을 나눠 마셨다.

인시(*寅時: 오전 3시부터 5시)가 지나자 연회 자리의 분위기가 점차 가라앉았고, 계연도 함께 있던 이들을 데리고 떠났다.

천수호에서 온 행렬은 하룻밤도 더 머물지 않고서, 연회가 끝나자마자 떠들썩한 성안의 대로를 지나쳐 성문을 나갔다.

무애성의 소란스러움이 점차 잦아들고 마침내 주위가 온통 고요해졌다. 연비를 비롯한 다섯 명의 사람들은 마침내 완전히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새벽바람에는 찬 기운이 가득했으나, 귀성 안보다는 훨씬 따뜻하게 느껴졌다.

이곳까지 오도록 참고 있던 우패천이 마침내 이렇게 물었다.

“계 선생님, 이 귀성은 이대로 놔두시는 겁니까?”

“음? 어떻게 하고 싶은 건데요?”

“선생님의 법력과 신통함이라면 이 귀성 전체를 지워버릴 수 있을 텐데요!”

우패천은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이렇게 대답했다. 그러자 계연은 그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에게는 확실히 그런 능력이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편이 가장 좋았다.

고천명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하마터면 귀성 전체가 사라질 뻔했군…….“

계연이 막 대답하려던 순간, 고 부인 하추가 이렇게 입을 열었다.

“우 서방님께서는 계 선생님의 고심을 모르셔서 그래요. 선생님께서 무애귀성을 없애는 건 어렵지 않지만, 성의 무수한 악귀들을 전부 다 처리할 수는 없을 거예요. 무애귀성이 없어지면 온갖 악귀들을 속박했던 것도 사라지는 거예요. 지금 조월국을 비롯한 다른 북쪽 다른 지방 전체가 온통 엉망인 상황인데, 병마(兵馬)가 들고일어나 민심이 소란한 와중에 악귀들마저 풀려나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에 더해 지금 신도(神道)마저 쇠락해졌으니, 속세가 더욱 혼란스러워질 거예요.”

“부인의 말이 맞소. 저도 연회 자리에서 그런 깨달음을 얻었지요. 우형께서는 이제 이해하시겠습니까?”

고천명은 감탄하는 눈빛으로 하추를 바라본 다음, 우패천의 어깨를 두드리며 이렇게 물었다.

그러자 계연도 하추를 향해 고개를 끄덕인 뒤 대답했다.

“고 부인께서 생각이 깊으시군요. 그 신 성주는 수행하는 귀신 중에서는 아마 가장 실력이 뛰어난 자일 거예요.”

계연은 이렇게 말하며 전방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마침 그곳에 귀신의 형체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며 신무애가 나타났다. 그의 옆에는 남색의 도포를 입고 고관(*高冠: 예복, 관복을 입을 때 망건 위에 쓰던 물건)을 쓴 신령이 서 있었다.

그들 행렬이 다가오자 신령이 먼저 허리를 굽히며 읍했다.

“월경도(月境道) 작류성(雀留城)의 성황신이 계 선생님을 뵙습니다!”

그러자 천수호 일행의 행렬이 자연스럽게 멈춰 섰고, 계연을 비롯한 이들은 행렬의 앞으로 나아가 신무애와 작류성의 성황신을 바라보았다.

이 성황신의 법력에서 우러나오는 휘광은 대정국에 속한 대도시의 성황신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중간 정도 규모의 현성(懸城)에 있는 신령 정도의 밝기였다. 하지만 신을 모시는 조월국의 풍속이 무너진 상황에서, 이 정도의 도행(道行)이면 출중한 편에 속할 것이다.

조월국의 형세가 아무리 나쁘다 해도, 성황신은 성황신이었다. 작류성 성황신이 무애귀성의 연회에 온 것도 신무애에게 몇 마디 축하 인사를 하기 위해서였을 뿐이었다. 이때 그가 허리 굽혀 인사한 대상은 요괴들이 아니었다. 그는 오직 계연 한 사람을 향해서 허리를 굽혔다.

계연을 향해 정중하게 예를 올린 작류성 성황신은 고천명을 비롯한 이들에게는 간단히 양손을 맞잡으며 인사했다.

“고 대인, 고 부인을 뵙습니다. 여러분 안녕하신지요.”

“성황신을 뵙습니다!”

그러자 계연도 성황신을 향해 간단히 양손을 맞잡고 인사했고, 고천명 부부와 우패천 등도 상대를 ‘성황신’이라 칭하며 공손하게 인사했다.

뒤이어 계연을 비롯한 사람들은 모두 무애귀성의 성주인 신무애를 쳐다보았다.

“아니, 신 성주 아닙니까. 여기서 지금 저희를 막고 계시는 겁니까?”

고천명은 이렇게 웃는 얼굴로 물었지만, 실은 상대가 온 목적이 무엇인지 어느 정도 추측하고 있었다.

작류성 성황신의 공손한 태도와 달리, 신무애는 귀성 밖에 나와서도 계연의 일행을 향해 양손을 맞잡고 인사하며 읍할 뿐, 한마디 정중한 인사조차 하지 않았다.

“계 선생님, 실은 고형이 조금 전 선생께서 제 목숨을 살려주셨고 무애귀성이 하마터면 사라질 뻔했다고 했었습니다. 제가 고형의 말을 못 믿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어서 이렇게 왔습니다. 만약 선생께서 정말 그 정도의 능력이 있었다면 왜 그 귀신들의 조롱을 듣고만 있었으며, 저희 무애성을 건드리지도 않으신 겁니까?”

그렇게 묻는 신무애의 말과 태도는 그리 정중하다고 볼 수 없었다. 그들이 돌아간 후 다시 한번 생각해보니, 만약 자신이었다면 상대방을 가볍게 제압할 수 있는 상황에서 절대 사정을 봐주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아무래도 의심을 떨칠 수가 없었다.

성 밖에서 계연을 기다리다가 신무애와 우연히 마주치는 바람에 그와 함께 계연을 기다리던 작류성 성황신은, 이미 먼저 정중하게 계연에게 인사를 올린 후였다. 그래서 그는 기꺼이 신무애가 먼저 입을 열도록 양보했다.

신무애의 말을 들은 고천명의 얼굴에 일순간 비웃음이 스쳐 지나갔다.

과연 세상 물정 모르는 귀신이라 그런지, 누가 자기 체면을 조금 세워줬다고 해서 정말 스스로가 저승을 다스리는 줄로 착각하고 있었다. 진정한 고인(高人)이 생각하는 바를 저런 귀신이 어찌 이해할 수 있겠는가? 신무애는 당장 눈앞의 생과 죽음, 은원(恩怨)만을 보겠지만 계 선생님 같은 고인은 이 세계의 창생(*蒼生: 세상의 모든 존재)을 모두 굽어보는 사람이었다.

사실, 고천명도 그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 연회에 참석한 것이 맞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신무애를 인정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다만 그들이 모두 조월국에 근거지를 두고 있고, 이러나저러나 함께 공생하는 사이였으므로 표면적으로 예의만 지키는 정도였다.

고천명의 비웃음은 순식간이었지만, 그는 그것을 숨길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래서 신무애와 성황신 모두 그가 찰나에 지은 표정을 볼 수 있었다. 이에 신무애는 속으로 무척 화가 났지만, 성황신은 오히려 더욱 깊은 생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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