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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가기연-312화 (312/892)

312화.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

깊은 밤, 녹평성의 유명한 화류 거리에는 아직도 등불이 밝게 켜져 있었다. 길을 따라 늘어선 건물에는 웃고 떠드는 소리와 음악 소리가 가득했다.

“손님, 정말 대단하세요!”

“우 오라버니는 호방하고 말도 참 재미있게 하세요. 볼수록 멋있으신 것 같아요!”

“오늘 여기서 묵고 가세요!”

“맞아요, 어떻게 저희를 버리고 벌써 가실 수 있어요!”

네다섯 명의 아가씨들이 우패천을 둘러싸고 이렇게 떠들자, 우패천은 양팔로 그들을 감싼 채 얼굴 가득히 웃음을 드리우고 기루를 나섰다.

“안 돼, 안 돼. 내가, 꺼억! 내일 저 명문가인 위씨 가문에 갈 일이 있어서 말이오. 여기서 잤다간 내일 하인들이 나를 찾느라 걱정할 거야!”

우패천은 웃으며 그들에게 대답한 뒤, 속으로는 무척 아쉬워하며 그들의 요청을 일일이 거절했다.

“정말 바쁘신 모양이에요!”

“오라버니, 저희를 잊으면 안 돼요!”

“손님, 안녕히 가세요!”

“오라버니, 꼭 다시 오세요!”

“하하하……. 꼭 다시 오겠소! 다음에 봅시다!”

우패천은 얼굴 가득히 웃음을 드리우면서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억지로 떼어 기루를 벗어났다. 몇 걸음 걷다가 뒤를 돌아 방금 나온 기루에 높이 걸린 편액을 바라보았다. 그 안에 그려진 붉은 꽃송이마저 그렇게 아리따울 수가 없었다.

“연옥루(軟玉樓)…… 정말 좋은 곳이야. 하룻밤만 자고 갈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아깝군…….”

우패천은 품에서 이제는 홀쭉해진 돈주머니를 꺼내 탈탈 흔들었다. 그 안에 있던 동전 몇 개가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에잇, 다음에는 유명한 낭자들은 많이 부르지 말아야지……. 다른 낭자들도 무척 괜찮아 보이던데. 쯧쯧…….”

우패천은 몇 번 혀를 찬 후, 콧노래를 부르며 거리를 떠났다. 그는 시시때때로 아쉬운 듯 뒤를 돌아보다가, 밤 풍경을 가르며 객잔을 향해 걸어갔다.

보통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운 밤이었지만 우패천에게는 낮과 다름없이 또렷하게 보였다.

“온향연옥(*溫香軟玉: 여인의 자태가 따뜻하고 피부가 희고 부드러우며 향기가 난다는 뜻)에서 따온 온향각, 연옥루…… 이름도 참 잘 지었네요.”

온화하고 담담한 목소리가 별안간 건너편 골목에서 들려오자 우패천은 깜짝 놀랐다.

“아니, 계 선생님! 어찌 여기 계십니까? 깜짝 놀랐습니다!”

우패천은 놀란 가슴을 진정하며 목소리가 들려온 골목을 쳐다보았다. 흰 적삼을 입은 계연이 그곳에 서서 우패천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회백색의 두 눈은 깊이 가라앉아 어떤 감정도 읽을 수 없었다.

계연이 자신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우패천은 겸연쩍은 듯 씩 웃었다.

“제가 밤에 산책하는 것을 좋아해서요. 그, 그냥 걷고 있었습니다. 저, 저를 찾으러 나오신 겁니까?”

계연은 우패천이 얼른 숨긴 돈주머니를 바라보다가, 다시 그의 얼굴에 남은 입술 자국을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당신 때문에 나온 건 아니에요. 무얼 좋아하든 제가 관여할 일은 아니니 걱정하지 마세요. 일단 저를 좀 따라오세요.”

“무슨 일이 있습니까?”

우패천은 무슨 일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계연은 성 남쪽을 바라보며 이렇게 대답했다.

“이렇게 큰 성에, 한밤중인데 순찰하는 귀신이 아무도 없어요.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예?”

우패천은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어 이렇게 되물었다. 그는 한 번도 그런 문제에 신경을 쓴 적이 없었고, 요괴인 입장에서는 돌아다니는 저승 관리가 없다면 오히려 좋은 일이었다. 게다가 그는 지금까지 계속 기루에 있었으니 바깥의 상황이 어떤지 전혀 신경 쓸 새도 없었다.

하지만 그도 계연의 말에 드디어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그렇네요, 녹평성이 이렇게 큰데…….”

“어차피 여기서 만났으니 같이 갑시다. 번거로운 일이 생기면 저 대신 나서주세요.”

계연이 진지한 얼굴로 이렇게 말하자 우패천은 무척 기뻐했다.

“헤헤헤, 계 선생님 그게 무슨 말이세요? 저는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무슨 일이든 할 겁니다! 참, 연 동생은요?”

“그는 자도록 놔두죠.”

“예.”

우패천은 이렇게 대답한 후 계연이 걸음을 떼자 곧바로 따라나섰다.

* * *

성 남쪽은 번화가였기 때문에, 낮에는 마차가 줄을 잇고 인파가 북적이는 곳이었다. 하지만 밤이 되자 무척 고요했고, 그 중앙에는 성황당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때 성황당 안쪽의 장명등(長命燈)에는 여전히 불이 켜져 있었지만, 묘지기는 일찍이 잠을 자러 간 상태였다.

계연과 우패천은 마당 앞에 서서 성황당 내부를 바라보았다. 신도(神道)의 기운이 무척 옅었고, 원력(愿力)은 흩어지기만 할 뿐 모이지 못하고 있었다.

계연이 법안을 열어 관찰해보니, 성황당 상공에 희미한 하얀 연기가 솟아오르는 것이 보였다.

“들어가서 보죠.”

두 사람은 바람처럼 성황당 내부를 향해 스르르 미끄러져 들어왔다. 그들은 각각의 편전을 잠시 둘러본 뒤 바로 주전(主殿)으로 향했다.

끼익…….

주전의 대문을 열자 장명등이 주전 내부를 환히 비추고 있었다. 성황신의 신상은 여전히 위엄이 넘쳤지만 신령한 기운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헤헤, 정말 재밌게 됐네요. 저 같은 요괴가 성황당 주전 안에 들어오다니!”

우패천은 곁에 서서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반면 계연은 조금 암담한 기색이었다.

“신당의 불은 이미 꺼진 지 오래고, 귀문관도 모습을 감추고 사라졌네요. 이 성황당이 텅 빈 지 이미 몇 개월은 지난 듯하니, 당연히 아무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거예요. 녹평성마저 신령의 비호를 받고 있지 않을 줄은 몰랐군요…….”

이것은 계연의 완전히 예상을 벗어난 일이었다. 녹평성의 규모로 보아, 만약 성황신이 아직 있었다면, 그 도행이 대단한 수준일 것이다.

우패천도 이미 성황당의 기운을 느끼고 있었지만, 조용히 계연의 판단을 기다렸다.

“그럼, 이곳의 성황신은 이미 신운(*神隕: 신령의 자리를 잃은 것)된 겁니까?”

“신운일 수도 있고, 스스로 신도를 끊어버린 걸 수도 있어요. 성황신이 자리를 비웠으니, 그 밑의 귀신들도 제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됐을 거예요. 저승에 몸을 피하고 귀문관을 닫아걸고서 성황신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겠군요.”

“돌아온다고요?”

계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신도는 무척 현묘하므로, 중생들이 기도만 하면 신령은 절대 사라지지 않아요. 녹평성 성황신이 신운되었다고 해도, 성안의 백성들이 계속 그를 향해 기도한다면 수십 년이 걸릴지라도 그의 혼이 다시 나타나 신위(神位)를 회복할 거예요.”

우패천은 도행이 얕지 않은 요괴였으나 이런 사정에 관해서는 알지 못했다. 이는 그에게 있어 미신이나 다름없이 들렸다.

“그럼 신령들은 모두 죽지 않습니까?”

“하하, 그들은 다시 돌아올 때마다 새로운 시작인 거예요. 자신이 생전에 살아있을 때의 일은 기억하지만, 신령으로서 지난번에 있었던 일은 기억하지 못하죠. 수행으로 만들어내야 하는 금신(金身), 도행과 법력 모두 처음부터 시작해야 해요. 그게 죽는 것과 뭐가 다르겠어요? 하지만 만약 성황당이 무너지거나 황제가 새로운 성황신을 책봉하거나, 또는 마을 사람들이 덕을 가진 누군가를 성황으로 추존해 다른 이에게 기도를 올리면 더는 살아나지 못해요.”

계연은 우패천이 생각에 잠긴 모습을 보고 복잡한 기분으로 이렇게 말을 이었다.

“그들은 속세에 기대어 살아가고 속세의 일에 영향을 받아요. 그러니 모든 성황신이 속세가 어지러워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거예요. 아무리 성황신이라지만 자신의 존망이 달려있으니까요.”

하지만 이때 우패천은 다른 일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계 선생님, 성황신을 잃은 데다 저승이 문을 닫아걸었으니, 이곳의 범인(凡人)들은 죽으면 모두 떠도는 넋이 되나요?”

우패천은 끔찍한 상상이 떠올랐다. 성안의 인구가 이렇게 많은데, 죽는 이들이 저승에 들지 못하고 모두 유령이 된다면, 이곳도 무애귀성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

계연은 이미 몸을 돌려 떠난 뒤라, 우패천은 다급히 그의 뒤를 따라갔다. 그러면서도 성황당 주전의 대문을 닫는 것을 잊지 않았다.

“신령이 없어도 규칙은 있어요. 가족들이 제사를 지내면 떠도는 귀신이 되지 않고, 발인할 때 가족들이 초혼번(*招魂幡: 상갓집에 세우는 조기(弔旗))을 들고 따라가면 무덤의 음택(*陰宅: 죽은 이가 저승에서 머무는 저택)에 들어가게 돼요. 게다가 이곳이 토지신도 조금은 돌봐줄 거예요. 가족들의 혼백끼리는 서로 이어져 있기도 하고요. 다만 저승과 관련이 없을 뿐이죠.”

계연은 바로 객잔으로 돌아가지 않고 우패천을 데리고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는 별다른 목적이 없는 듯 성 남쪽에서부터 길을 따라 북쪽을 향해 쭉 걸었다.

적막한 밤거리에는 멀리서 야경꾼이 시간을 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골목을 지날 때는 닭이 울거나 개가 짖는 소리가 들려왔고, 때때로 담장을 넘는 도둑들도 목격할 수 있었다.

반 시진(*1시간)이 지나자 우패천이 마침내 궁금함을 이기지 못하고 이렇게 물었다.

“계 선생님, 저희가 지금 무얼 하는 건가요?”

계연은 걸음을 멈추지 않고 전방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제가 따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야간 순시관을 대신해 녹평성을 순찰하는 거예요.”

우패천은 머리를 긁적이며 속으로 계 선생님은 참 오지랖도 넓다고 생각했다.

도박장이 모여있는 거리에 들어선 순간, 그들은 동시에 걸음을 멈추었다. 아주 희미한 요기(妖氣)가 거리를 뒤덮고 있었다.

“정말 있군요? 계 선생님, 제게 맡겨 주십시오.”

“기다리세요.”

계연은 손을 들어 곧장 튀어 나가려는 우패천을 제지한 후, 거리에 서서 잠시 기다렸다. 그러자 마차 한 대가 천천히 건물을 빠져나왔는데, 그 위에 요기가 도사린 것이 보였다.

그와 동시에 계연의 귓가에 희미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마차 안에서는 험악한 인상의 남자 둘이 서너 명의 아이들과 두 여인을 도망치지 못하게 감시하고 있었다. 아이들과 여인들은 모두 두려운 얼굴로 눈물을 뚝뚝 흘렸다.

“너희 집 사내가 너희를 팔아넘겼는데 왜 여기서 우는 거야!”

“질질 짜지 말고 조용히 해! 죽여서 개 먹이로 던져 버릴라!”

그중 한 남자가 손안에 뜬 채찍을 들어 보이며 위협한 뒤, 마차 한쪽을 향해 아부하는 기색으로 물었다.

“하하, 여섯째 어르신, 시끄럽게 해 죄송합니다. 이자들이 마음에 드십니까?”

“하하하……. 당연히 마음에 들지!”

‘여섯째 어르신’은 이렇게 대답하며 혀로 입술을 핥았다. 그의 음산한 눈빛을 마주친 아이들은 놀라 울음을 뚝 그칠 정도였다.

* * *

도박장 바깥의 거리에서 계연은 마차 안의 소리를 유심히 듣고 있었다.

“하!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무애귀성에서 고천명에게 어린아이들을 먹자고 초청했던 그 요괴가 아닙니까? 저 마차 안에 있으니 어서 쫓아갑시다!”

우패천의 콧구멍에서 하얀 콧김이 뿜어나오더니 우패천의 얼굴이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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