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머어!”313화. 머리와 뼈가 단단하면 뭘 하나
마차는 이리저리 길을 돌거나 하지 않고 거리낌 없이 목적지를 향해 달려갔다. 보아하니 이 성이 신령의 비호를 받고 있지 않다는 것을 잘 아는 듯했다.
녹평성의 성문은 밤이 되면 굳게 닫히기 때문에, 마차는 성 밖을 향해 가지 않고 성안 북쪽의 한 대저택 앞에 다다랐다.
뒤이어 마차에서 험상궂은 얼굴의 남자가 아이들과 여자들을 끌어내렸고, 저택 안에서 나온 하인들과 함께 그들을 안으로 데려갔다. ‘여섯째 어르신’은 그들보다 한발 늦게 마차 안에서 내려섰다.
계연과 우패천은 그들보다 조금 더 늦게 도착했다. 대저택의 대문은 무척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고 양쪽에 등롱 두 개가 나란히 걸려 있었다.
우패천은 대문 위의 편액을 바라보며 계연에게 말했다.
“계 선생님, ‘낭부(郞府)’라고 쓰여 있는 걸 보니, 저자는 아마 늑대(*狼: 郞과 발음이 같음)요괴인 듯합니다.”
“요괴가 성안에 저택을 세우다니, 담도 크군!”
계연은 싸늘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하하, 계 선생님, 저는 전부터 저놈이 영 마음에 안 들었습니다. 지난번에 고천명 부부에게 얻어맞을 때 저도 함께 손봐주고 싶었었지요. 그러니 이번에는 제게 맡겨 주세요!”
우패천은 계연이 손짓 하나로 저 요괴를 없애버릴까 봐 전전긍긍하며 말했다.
“어쨌든 사람으로 둔갑할 수 있는 수준의 요물이니, 방심하지 마세요.”
“예, 안심하세요! 저는 저런 질 떨어지는 놈이랑은 다릅니다!”
우패천은 홀로 수행하며 깨달음을 얻어 법체(法體)를 갖게 된 요괴였다. 그는 스스로 수행의 길을 닦아나가며 대요(大妖)가 되는 방향으로 발전해 나가는 중이었다. 그러니 저런 하급 요괴와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었다.
이렇게 말하며 우패천과 계연은 이미 저택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그들은 후원이 있는 방향으로 향했고, 그들이 유유히 지나가는 동안에도 저택의 하인들은 그들을 보지 못했다.
저택은 밖에서 보던 것보다 더 컸다. 계연이 보기에 덕승부 위씨 집안의 저택과도 맞먹을 정도였다.
저택 안의 한 곁채에서는 풍채 좋은 어멈과 험악한 인상의 하인들이 뜨거운 물이 든 통을 안으로 나르고 있었다. 방 안에서는 잡혀 온 이들이 두려움에 떨며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당장 울음을 그쳐라! 이게 얼마나 좋은 기회인 줄도 모르고!”
“어서 씻고 저 새 옷으로 갈아입어라. 그럼 내일 어르신께서 너희를 성 밖 좋은 곳으로 보내줄 터이니.”
어멈 몇이 하인들에게 목욕통을 들고 들어오라 이른 후, 물 온도를 가늠해보았다. 그러고는 겁에 질려 구석에서 무릎을 껴안고 있는 이들을 향해 소리쳤다.
“거기서 대체 뭐 하는 거야? 어서 와서 씻지 않고! 내가 너희들 시중이라도 들길 바라는 거야?”
결국, 체격이 크고 살집이 있는 어멈 네다섯 명이 공포에 질린 이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들을 끌어냈다.
“안돼! 씻기 싫어요! 여섯째 어르신이 데려간 사람 중에서 돌아온 사람이 하나도 없단 말이에요! 싫어요! 제발 저와 아이들을 놓아주세요, 부탁드려요! 지금 바로 친정에 가서 돈을 빌려올게요, 남편이 진 빚은 제가 꼭 갚을게요…….”
“전부 멀리 떠났으니 못 돌아온 거지, 아무것도 모르면서 함부로 입을 놀리기는! 흥, 그리고 돈이 있었으면 이런 지경까지 오지도 않았겠지. 어쨌든 여기가 기루로 팔려 가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고! 그러니 어서 와서 씻어라. 직접 오지 않으면 강제로라도 물에 담그겠다!”
“아악!”
“흐어엉……. 엄마…….”
계연은 멀리서 그 소리를 듣고 잡혀 온 사람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는 걸음을 쉬지 않고 요기가 도사리는 곳으로 향하면서, 가슴팍을 톡톡 두드렸다. 그러자 작은 종이학이 옷 사이로 머리를 빼꼼 내밀었다.
그것을 발견한 우패천은 시선을 떼지 못하고 쳐다보았다.
‘저건 또 뭐지?’
종이학은 곧이어 주머니 안에서 스스로 나오더니 날개를 펼쳐 계연의 어깨 위로 날아갔다.
“종이학이 날다니?”
우패천이 경악한 목소리로 이렇게 소리쳤다. 종이학에서는 요기를 비롯한 어떤 특수한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고 해야 맞았다. 하지만 그런데도 스스로 날 수 있고 약간의 영지도 지닌 듯하니, 간단한 술법으로 움직이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계연은 우패천에게 어떤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 어깨 위를 향해 뭐라고 몇 마디 속삭였다. 그러자 종이학은 날개를 펴고 어딘가로 날아갔다.
‘계 선생님의 명령을 따를 수 있다니? 정말 살아있는 존재인가?’
우패천은 무척 궁금했지만,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더는 묻지 않았다.
담장에 난 작은 문 세 개를 지나자, 계연과 우패천은 마침내 저택의 한 침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안에서 누군가 코를 고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보아하니, 늑대 요괴는 돌아오자마자 깊은 잠이 든 듯했다.
계연과 우패천이 점차 가까이 다가가자, 코 고는 소리는 멈추지 않았지만 침상에 누운 사람의 귀가 약간 움직였다.
비록 어떤 괴이한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어도 수상한 기척을 포착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늑대 요괴가 채 잠에서 깨기도 전에 무언가 폭발하는 소리가 들렸다.
주변의 공기조차 미세하게 진동할 정도였다.
쾅!
침실의 문이 별안간 산산이 부서지더니 하얀 기운이 몸을 휘감은 검은 그림자 하나가 늑대 요괴에게 다가갔다. 그자의 몸에는 방문이 부서질 때 생긴 부스러기들이 이곳저곳에 붙어 있었다.
“음메!”
소의 울음소리와 함께 사람의 주먹처럼 보이는 환영이 방 안에 나타났다. 늑대 요괴가 눈을 뜨고 막 대응하려던 순간, 그것이 코앞 지척에 다가왔다.
쿠웅……!
주먹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며 거대한 늑대의 얼굴을 가격했다. 그 속도와 부딪치는 충격에 공기 중에는 파문이 일고, 늑대의 얼굴에 난 털들이 사방으로 날렸다.
쿠당탕!
쾅……!
뒤이어 늑대가 누워있던 침상 전체가 무너졌고, 늑대의 몸도 지면으로 푹 가라앉았다.
바닥에 깔린 돌이 산산이 부서지면서 나무 부스러기가 사방으로 튀어 나갔고 뿌연 먼지가 공기 중으로 떠올랐다.
“크헝!”
늑대 요괴는 피를 뚝뚝 흘리는 입을 열고 동물의 본능에 따라 우패천의 팔을 콱 물어뜯으려 했다. 그러자 우패천은 뒤로 한발 물러난 다음, 천장을 향해 튀어 올랐다.
콰광!
투두둑……!
기왓조각들이 방안으로 떨어지며 천장에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그 구멍을 통해 늑대 요괴는 요풍(妖風)을 일으키며 하늘을 향해 솟구쳤다.
“늑대는 머리와 뼈는 강철처럼 두껍지만 대신 허리가 약점이에요. 다음번에는 허리를 노리세요.”
“흥, 일부러 성 밖으로 도망치도록 그렇게 한 거예요.”
우패천은 이 한마디를 남긴 뒤 몸을 공중으로 솟구쳤다. 그는 늑대 요괴가 도망친 천장의 구멍을 통해 요풍을 일으키며 요괴를 뒤쫓아갔다.
뒤이어 계연의 귓가에 저택의 하인들이 놀라 소리치는 것이 들려왔다.
이에 계연은 이곳에 더 머무르지 않고, 어풍술을 이용해 바람을 타고 우패천이 떠난 방향을 따라갔다.
세 사람 모두 속도가 무척 빨랐기 때문에, 잠시 후 그들은 모두 녹평성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들을 뒤쫓던 계연은 곧 우패천의 기세등등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하하하하……. 상갓집 개처럼 도망치는 꼴이란! 이제 도망치긴 늦었으니 나와 한번 맞붙는 게 어떠냐? 죽더라도 정정당당하게 죽어야지! 음머어-!”
소 울음소리가 하늘을 쩌렁쩌렁 울렸고, 요풍 안에 휘감긴 우패천의 몸에 희미한 윤곽이 덧입혀졌다. 그의 몸은 여전히 사람의 형체 그대로였지만, 어깨 위 머리에는 구부러진 장각(長角)이 돋아난 모습이었다.
뒤이어 그의 모호한 형체가 점점 더 커지더니, 그의 울음소리가 잦아들던 찰나 단번에 우패천의 원래 크기대로 줄어들며 빛을 발했다.
“수행도 얕은 데다 도망도 제대로 못 치는 들개 주제에! 내 벼락같은 발굽 맛을 보여주마!”
솨앗!
우패천을 둘러싼 요풍이 순식간에 빨라지면서, 늑대 요괴가 채 반응하기도 전에 우패천이 그의 머리 위로 날아올랐다. 우패천은 하늘을 향해 손바닥을 뒤집은 다음 눈앞의 담장을 무너뜨리듯 세게 때렸다.
그러자 쿠르릉 하는 천둥소리가 울리더니, 한 줄기 노란빛이 늑대 요괴의 머리 위에서 빛났다. 우패천은 몸을 휘감은 요풍을 잦아들게 만든 후, 바람을 가르며 아래로 내려왔다. 그가 발을 들어 올려 늑대 요괴를 차려던 순간, 그의 발끝에 소의 발굽 모양의 환영이 덧입혀졌다.
계연이 도착했을 때 목격한 것이 바로 이 장면이었다.
쾅!
거대한 소리와 함께 늑대 요괴를 둘러싼 요풍이 산산이 흩어졌고, 늑대 요괴는 구름을 뚫고 솟아올랐다가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지면에 떨어졌다.
“우우우…….”
그가 떨어진 곳에 있던 작은 돌들이 가루가 되어 사방으로 뿌옇게 흩날렸다.
“아우우~!”
계연은 늑대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고 요괴가 뿜어내는 요기가 더욱 짙어진 것을 느꼈다. 뒤이어 피처럼 붉은 두 눈이 먼지 속에서 빛났고, 거대한 꼬리가 먼지를 가르며 모습을 드러냈다. 그 안에는 몸체 길이만 족히 2, 3장(丈)은 될 듯한 거대한 늑대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우고 있었다.
“아하하핫!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서 덤벼 보려고? 하하하……. 그냥 얌전히 죽어라, 들개야!”
우패천의 웃음소리가 공중에서 울려 퍼진 뒤, 우패천이 구름을 가르며 지면으로 내려왔다. 그의 머리 위에는 노란빛이 반짝이는 뿔이 돋아나 있었고, 체격이 전보다 훨씬 거대해진 모습이었다.
“죽더라도 알 건 알아야 하니, 내 이름을 꼭 기억해라! 네 목숨을 끊은 것은 우패천이다! 음머어-!”
소의 울음소리와 함께 하늘의 커다란 구름층이 폭발했고, 늑대 요괴가 서 있는 곳을 중심으로 동그랗게 노란 연기가 일어났다. 그 후 마치 소리 없는 파도처럼 땅이 늑대 요괴가 있는 곳을 향해 움직이더니, 곧 늑대 요괴의 온몸을 꼼짝도 하지 못하게 둘러쌌다.
늑대 요괴는 자신의 가진 모든 법력을 끌어올려 발버둥 쳤으나, 깊은 늪에 빠진 듯 도무지 벗어날 수가 없었다.
구름을 밟고 서 있던 계연은 속으로 깜짝 놀랐다. 그것이 저번에 그 요괴에게 우패천이 사용했던 공격이기 때문이었다. 다만 이번 공격의 위력은 그 당시보다 훨씬 위력이 컸다.
“아우우-! 나는 너를 알지도 못하고, 우리는 둘 다 요괴인데 어째서……?”
“죽어라!”
하늘의 구름이 우패천의 손안에 모여 거대한 도끼의 형상이 되더니, 엄청난 속도로 지면을 향해 내리꽂혔다.
쿠르릉!
지면에 흙먼지가 뿌옇게 일었고, 모래와 돌들이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후우…… 후우…….”
우패천은 공중에서 내려온 뒤 법력을 많이 소모한 듯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계, 계 선생님. 머리와 뼈가 단단하면 뭘 합니까? 위력만 충분하면 강철로 만든 머리통이라도 잘려 나가는데요!”
공중에 떠 있던 계연이 아래를 바라보니, 지면의 먼지가 점차 가라앉고 있었다. 거대한 늑대 옆에 선 우패천은 그야말로 아이처럼 작아 보였다. 하지만 거대한 늑대는 머리통 전체가 몸체에서 잘려 나갔고, 뭔지 모를 것들이 주변에 낭자하게 널려있었다.
“헤헤헤, 이 늑대 요괴는 담이 작은 놈인가 봅니다. 연이어 공격을 날리니 실력도 발휘해보지 못하고 저렇게 죽어버리네요. 정말 통쾌합니다! 으하하하……!”
우패천은 시원하게 웃다가 잠시 몸이 기우뚱하며 기울어졌다. 이에 그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법력과 요기를 진정시키더니 이렇게 중얼거렸다.
“연옥루의 낭자들 때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