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314화 (314/892)

314화. 범인(凡人)들은 정말 이렇게나 무력하단 말인가?

“한마디 묻지도 않고 죽여 버리면 어떻게 합니까!”

계연은 구름에서 내려서 우패천의 득의양양한 모습을 보며 일부러 이렇게 핀잔을 줬다. 그러자 우패천은 그의 말을 듣고 멍하니 되물었다.

“예? 죽이려는 게 아니었습니까?”

계연은 다시 옆에 있는 늑대의 사체를 바라보았다. 머리통이 깔끔히 떨어져 전혀 소생의 여지가 없었다. 요혼(妖魂)조차 그의 살기 가득한 일격에 흩어진 상태였다.

하지만 우패천은 곧 계연의 얼굴에서 희미한 미소를 발견하고는 머리를 긁적였다.

“계 선생님 농담도 할 줄 아시는군요…….”

계연은 웃음기를 거두고 고개를 저었다.

“완전히 농담은 아니었어요. 여섯째 어르신이라 불린 것을 보니, 어쩌면 넷째 다섯째도 있을 수 있잖아요. 하지만 조금 전에 점을 쳐보니, 그들은 그저 이 일에 연루된 범인(凡人)들이었어요.”

계연은 이렇게 말하며 땅 위에 쓰러진 거대한 늑대 사체를 바라보았다. 여기에 이렇게 내버려 두면 살기가 퍼져 더러운 기운을 만들어내고, 그 결과 다른 흉악한 요괴가 탄생할지도 몰랐다. 그게 아니어도 누군가 지나가던 이가 요괴의 사체를 발견하면 놀라 쓰러질 것이다.

“이 사체는 남기면 안 되겠어요. 참, 이것 먹어 삼킬 건가요?”

계연은 어떤 요괴들은 상대를 죽인 후 삼켜버리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우패천을 향해 이렇게 물었다. 그러자 우패천은 깜짝 놀라 이 참혹한 형상의 늑대 요괴를 바라보았다.

‘계 선생님이 방금, 나한테 이걸 먹을 거냐고 물어보신 건가?’

“계 선생님, 저는 그런 괴벽(怪癖)은 없습니다. 게다가 이놈은 요기가 무척 더럽고, 몸 안에 무슨 귀중한 것을 품고 있지도 않아서요.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납니다. 제가 이놈을 먹어서 무엇합니까?”

계연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 친우 하나가 삿된 것들을 죽일 때마다 삼켜버리는 걸 좋아해서요. 그래서 당신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요.”

“누군데요? 요괴입니까?”

우패천이 호기심에 찬 얼굴로 이렇게 묻자 계연도 숨기지 않고 대답했다.

“그렇게 보는 게 맞겠죠. 대정국 통천강의 늙은 용이에요. 고천명이 말하던 용왕(龍王)이요.”

그러자 소 요괴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원래는 몇 마디 더 물어보려 했는데 그만 목구멍이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요괴들에게 있어 진룡(眞龍)의 존재는 너무나 신비롭고 동시에 두려운 것이라, 계 선생님이 저렇게 격의 없이 칭하자 그는 감히 진룡을 입에 담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안 먹겠다니 그럼 태울게요.”

삼매진화는 이런 일을 처리할 때 무척 용이했다.

계연이 이렇게 말하자, 우패천은 남도현 밖에서 그가 연기를 불어내 시체를 태워버리던 광경이 떠올랐다.

“잠깐! 잠시만요!”

우패천이 다급히 소리치자, 계연은 의혹 어린 눈길로 그를 쳐다보았다. 곧 우패천이 늑대 요괴에게 다가가 그의 주변을 뒤적였다.

그는 떨어져 나간 천 조각과 끈 하나를 찾아내더니, 한참 후에 ‘헤헤헤’ 하는 웃음소리와 함께 깨진 옥패 조각과 늑대 도안이 그려진 돈주머니를 찾아냈다.

우패천은 돈주머니를 들어 무게를 가늠해보다가 안쪽을 열어 백은과 금덩이가 들어있는 것을 보았다.

“헤헤헤, 이제 됐습니다. 처리하십시오!”

계연은 우패천의 행동을 보고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늑대 요괴의 시체 곁에 다가가 손을 한번 휘둘렀다. 그러자 시체가 기울어지더니 목과 배 부근이 드러났다.

계연은 바닥의 핏물을 꺼리지도 않고 더 가까이 다가가 늑대의 목 부근에서 털을 한 움큼 뽑아냈다.

털은 손가락 하나 정도의 길이의 연한 회백색이었으며, 부드럽고 튼튼했다. 게다가 은은한 빛이 털 전체를 휘감고 있었다.

우패천은 계연이 뽑아낸 늑대 털을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제가 잘못 본 듯합니다. 이 들개가 그래도 꽤 수행을 쌓았나 보군요. 진귀한 것을 알아보는 선생님의 혜안이 없었더라면 지나칠 뻔했습니다…….”

우패천은 계연이 손에 든 늑대 털을 바라보다가 곧이어 계연의 발치로 눈을 돌렸다. 계연은 늑대 요괴의 더러운 핏물을 밟고 서 있었는데, 핏물은 저절로 계 선생님의 발에서 멀어져 조금도 그를 더럽히지 않았다.

우패천은 계 선생님과 자신의 도행에 큰 차이가 있어 확실히 단언할 수는 없었지만, 계 선생님이 어떤 술법도 쓰지 않았다고 확신했다.

우패천이 아직 생각에 잠겨있을 때, 계연은 이미 입으로 연기를 내뿜었다. 붉은빛이 나는 회색 연기는 늑대 요괴에게 닿자, 단번에 늑대의 사체 전체를 뒤덮었다. 하지만 사체에서는 어떤 불길이나 연기도 치솟지 않았고, 사체는 마치 목탄으로 변한 것처럼 타들어 가기만 했다.

요물이 죽으면 죽은 몸뚱이에 남은 영기나 다른 기운들은 뿌리 없는 풀처럼 변한다. 그것은 진화의 불길을 이기지 못할뿐더러, 오히려 불이 더욱 잘 붙도록 하는 좋은 재료가 된다. 그래서 눈 깜짝할 사이에 늑대의 사체는 잿더미로 변했다. 조금 전의 전투가 남긴 땅 위의 흔적을 빼고는 어떤 것도 알아볼 수 없었다.

“갑시다.”

계연은 이렇게 말한 뒤 바람을 몰고 녹평성을 향해 날아갔다. 우패천은 팔을 몇 번 이리저리 돌린 다음, 까만 잿더미를 잠시 바라보다가 계연을 따라갔다.

“계 선생님, 저놈의 저택은 어찌합니까?”

녹평성에 가까워지자 우패천이 이렇게 물었다.

그러자 계연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저택에 남은 이들은 전부 보통 사람들이에요. 늑대 요괴가 죽었으니 얼마간은 하인들이 그를 찾아 헤매겠지만, 곧 늑대 요괴의 이익과 관련된 자들이 와서 저택에 남은 것을 이리저리 떼어내 가겠죠. 한동안 무척 소란스러울 거예요. 서신이나 한 통 남기고 우리는 신경 쓰지 않는 게 좋겠어요.”

시정(市井)에서 조정에 이르기까지, 속세의 일은 언제나 간단하지 않았다. ‘여섯째 어르신’이 사라져 사람을 잡아먹는 요괴는 더는 없겠지만, 권력을 가진 다른 자들은 또 다른 방식으로 ‘사람을 잡아먹을’ 것이다.

* * *

낭부의 하인들은 주인의 침실에서 울려 퍼진 굉음을 듣고 놀란 마음에 분분히 뛰어왔다.

낭부의 주인은 휴식을 취할 때 누구도 후원에 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 이런 소동이 있었으니, 하인들은 규칙을 어기고 모두 뛰어 들어왔다.

방문이 있던 벽 전체가 가루로 부서진 상태였고, 그 잔해가 방 안에 널려있는 것을 보니, 무언가 거대한 것이 방 안으로 뛰어들어간 것 같았다.

가구들은 전부 부서지고 침상도 무너져, 죄다 엉망이었다. 바닥도 금이 가 깨져 있었고, 머리 위 천장에는 커다란 구멍이 나 있었다.

“이게 무슨……. 어르신은 어디 계시지?”

“몰라. 강호인이 들어왔나?”

“아까 아무래도 소가 우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아…….”

“나도 들었어!”

“관아에 신고해야 하나?”

“하지만 어르신께서는 우리 저택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절대 관아에 알리지 말라고 하셨어.”

“하지만 어르신이 사라졌잖아?”

하인들은 명령을 내리는 이가 없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이때 관사가 다급히 달려와 상황을 살피고는, 곧바로 자기 주인과 관계가 막역한 도박장 주인들에게 사정을 알렸다. 그들은 여섯째 어르신과 원한 관계에 있는 누군가가 찾아온 것이 아닌가 추측하고 있었다.

그때, 저택 다른 쪽 울음소리가 가득한 곁채는 밖에서 자물쇠로 문이 잠겨있었다. 게다가 밖에는 원래 하인들이 지키고 서 있는 상태였는데, 지금 그 두 사람은 정신을 잃고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곧이어 종이학 한 마리가 곁채 자물쇠 위에 내려앉더니 부리로 자물쇠를 콕콕 찍었다.

딩, 딩딩!

찰칵!

자물쇠가 열리며 땅으로 떨어져 ‘쿵’하는 소리를 냈다.

끼익-.

문이 스르르 열리자 안에 있던 여인과 아이들이 울음을 뚝 그쳤다. 그들은 잔뜩 긴장한 얼굴로 문밖을 바라보았으나,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한 가운데 한 여인이 용기를 내 문가로 다가가 밖을 바라보았다. 자물쇠는 땅에 떨어져 있었고, 망을 보던 이들은 바닥에 쓰러진 채였다. 그보다 더 먼 곳에는 또 다른 하인이 바닥에 쓰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종이학은 이때 뜰 안의 한 나무 위에 앉아, 곁채 안에 있는 사람들을 진지하게 관찰하고 있었다. 여인과 아이들은 이내 전전긍긍하며 문가로 다가와 쓰러진 하인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들은 아무도 지키는 자가 없는 문을 나올 엄두를 내지 못했다.

종이학은 연유를 알 수 없어 계속 바라보기만 했다.

다시 한참이 지난 후, 문가에 서 있던 여자와 아이들의 귓가에 온화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대저택의 주인은 악행을 저지르고 잔인하게 사람을 죽여, 나를 비롯한 강호 협객들의 손에 죽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어서 이 틈에 도망치세요.”

계연의 목소리에 종이학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종이학은 날아오르지 않고 계속해서 방 안의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하나둘 조심스럽게 문을 나오더니, 곧 다급히 도망쳤다.

* * *

그 시각 낭부 대문 밖 상공에 서 있는 계연의 소매에서는 종이 한 장과 먹이 묻은 붓 한 자루가 나타났다.

계연이 손으로 종이를 한번 두드리자, 공중에서 종이가 펼쳐지며 고정되었다. 뒤이어 그는 손에 붓을 쥐고 글을 써내려 갔다.

우패천은 곁에서 자세히 지켜보고 있다가 천천히 읽어내렸다.

“녹평성 낭씨 가문의 여섯째는 도박장과 손을 잡고 사람들을 잡아 와 악행을 행하고, 즐거움을 위해 수많은 사람을 죽였다……. 그 잔인함이 이루 말할 수 없어 이 몸이 친히 나서 악을 처단했다!”

계연의 글씨는 평소의 글자가 아니라, 그의 지난 생에서 인쇄물에 자주 쓰였던 해서체(楷書體)였다. 글씨 하나하나가 정사각형에 모양으로 무척 반듯했다. 종이 한 장을 꽈가 채운 내용은 대부분 그가 행한 악행을 서술하는 것이었고, 이에 협객이 나서 그를 처단했다는 결론이었다.

계연은 붓을 뗀 후 종이를 손에 든 다음 입김을 불어 먹물을 말렸다. 종이는 하늘에서 천천히 떨어져 낭부 대문 앞까지 날아갔다. 계연은 땅바닥에 있던 나뭇가지를 손짓 하나로 들어 올려 휙 던졌다.

슈욱-!

푹!

나뭇가지는 종이를 뚫고 낭부 편액 위에 단단히 고정되었다. 나뭇가지가 꽂힌 주변으로는 충격으로 인해 균열이 생겼다.

“이제 가서 쉬는 게 좋겠군요.”

우패천은 낭부의 외관을 잠시 바라보며 잡혀 왔던 여인과 아이들이 조심스럽게 대문을 열고 도망쳐 나오는 것을 확인했다. 그 후 우패천은 땅으로 내려와 계연과 함께 객잔을 향해 걸어갔다.

잠시 후, 종이학이 그들의 뒤쪽에서부터 날아와 계연의 어깨 위에 앉았다. 그것은 부리로 두 번 계연을 쪼아대고는 스스로 계연의 품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원래 있던 비단 주머니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고, 고개만 삐죽 내밀어 우패천을 바라보았다.

“계 선생님, 이 종이학은 대체 무슨 기이한 술법인가요? 지금 쟤가 절 관찰하는 거죠?”

우패천은 종이학이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자 무척 재미있다는 듯이 물었다.

“기이한 술법이랄 것은 없고, 예전에 소식을 전하려고 만들어본 별 볼 일 없는 재주예요. 원래는 그다지 쓸 일이 없을 것 같았는데, 써보니 유용한 구석이 있더라고요. 음, 또 말도 잘 듣고요.”

계연은 이렇게 말하며 뿌듯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마치 지난 생에 길렀던 반려 동물을 이야기하는 느낌이었다. 어렸을 때 잠깐 키워 보았지만, 그 당시 자신의 나이가 어려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 몰랐었기 때문에 끝이 좋지 않았다.

두 사람은 이야기를 나누며 점차 성 북쪽의 낭부에서 멀어졌다. 곧이어 계연의 귓가에는 낭부에서 생긴 소란이 들려왔다. 정신을 잃은 하인들은 물론이고 자신이 편액 위에 남긴 글도 발견한 모양이었다.

* * *

천랑객잔에 있던 연비는 줄곧 잠을 이루지 못하고 최근에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남도현, 무애귀성, 오늘 밤 우패천과 있었던 짧은 대결까지.

‘이 옷은 아끼느라 몇 번 입지도 못했는데, 하마터면 동생 때문에 찢어질 뻔했다고!’

우패천의 말이 다시 연비의 뇌리에 떠올랐고, 이에 그는 자신도 모르게 이불을 손에 꽉 쥐었다. 그는 이리저리 자세를 바꾸며 한참을 뒤척이다가, 결국 침상에서 일어나 앉았다.

그는 침상 머리맡에 가로 놓인 자신의 패검(*佩劍: 차는 칼)을 잠시 바라보다가, 검집에서 열 치(*十寸: 약 30cm) 정도 꺼내 보았다. 어두운 밤에도 칼날에는 차가운 빛이 어렸다.

“범인(凡人)들은 정말 이렇게나 무력하단 말인가? 무도(武道)는 정말로 무력한 것인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