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8화. 진선(眞仙)이 남긴 서책
계연이 저도 모르게 내뱉은 찬탄을 모든 이들이 들었지만, 특히 연비와 우패천은 계 선생님이 그토록 높이 평가했다는 데에 경악했다.
특히나 우패천은 계 선생님이 어느 정도의 인물인지 알고 있어서, 더욱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계 선생님은 진룡과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며, 천하의 중생에게 가르침을 내리는 신선이었다.
‘계 선생님이 이 정도의 평가를 내리는 천록서라면, 대체 얼마나 대단한 서책이란 말인가?’
계연은 지금 기분이 무척 좋았다. 이 <운중유몽> 안의 자유로움과 초탈함은 마치 또 다른 <소요유(*逍遙遊: <장자(莊子)> 내편(內篇)의 첫 편)>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다만 계연이 <소요유>를 가르칠 때는 자신의 술법을 이용해 그 안에 담긴 이치를 드러내 보였지만, 이 천록서는 계연으로 하여금 저자의 마음과 뜻을 진정으로 느낄 수 있게 했다. 계연은 문득 거대한 충격을 받은 것처럼 깨달음이 스쳐 지나갔다.
‘이 책을 쓴 사람은 최소한 진선(眞仙)의 반열에 오른 인물이야!’
계연은 이 순간 그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중평휴는 분명히 진선의 수준에 다다른 이였고, 어쩌면 그보다 더 대단한 사람일 수도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이 정도로 진수(*眞髓: 사물의 가장 본질적이고 중요한 부분)를 담아낸 글을 쓸 수 없었을 것이다.
실내에 다시 희미한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지만 그것은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아니라, 계연에게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우르릉…… 쿠궁……!
실내의 모든 이들이 경악하는 가운데, 계연이 가볍게 손을 들어 몸 안의 기운을 억누르자 소리가 뚝 끊겼다. 계연은 다른 것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고개를 돌려 위헌을 바라보았다.
“이 <운중유몽>을 제게 양보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아니면 제가 얼마간 볼 수 있도록 빌려주세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보답을 하겠습니다!”
“그건…….”
위씨 집안 사람들은 모두 망설였다. 이 책은 선조가 남긴 신묘한 서책으로, 방금 계 선생님이 책을 읽을 때도 책에서부터 신비로운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이것은 선서(仙書)가 분명하니, 이를 다른 사람에게 빌려준다면 자신들이 어찌 마음을 놓을 수 있겠는가?
게다가 비록 이 계 선생님이 책 위의 글자를 읽을 수 있는 것으로 보아 절대 평범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저토록 대단한 사람도 이 책을 이렇게나 갖길 원하지 않는가?
“선생님, 이것은 위씨 집안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가보입니다. 비록 원하시는 모든 분께 보여드리고는 있지만, 한 번도 빌려드린 적은 없는 책입니다. 다른 분들도 한 번도 그런 요구를 꺼낸 적은 없습니다. 선생님께서 이 책의 내용을 적어주신 것은 당연히 무척 감사한 일입니다만, 선생님의 말씀은 저희로서는 정말 난처한 요구입니다…….”
계연이 비록 조금 전까지 책 안의 내용에 빠져있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주위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르는 지경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이 위씨 집안 사람들은 여전히 그를 믿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서책은 어쨌거나 그들의 소유였고, 이렇게 단번에 거절을 당하니 계연도 방금의 흥분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계연의 표정이 조금 굳어졌지만, 그저 위씨 집안 사람들을 한번 쳐다보기만 할 뿐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하긴 그렇지요. 위씨 집안의 물건이니까요. 그럼 저는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계연의 발밑에 이미 구름이 뭉게뭉게 솟아올랐다. 뒤이어 한 줄기 맑은 바람이 불어왔고, 그는 순식간에 구름을 타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비록 <운중유몽>을 빌려 여러 번 탐독해보고 싶긴 했지만,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처음 읽었을 때 느낀 그 감각이었다. 책이 없다면 없는 대로 수행하면 된다.
우패천과 연비는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어, 다급히 문을 나서 계연이 떠난 하늘을 향해 소리쳤다.
“계 선생님! 어디로 가십니까?”
“마음에 깨달은 바가 있어, 그 현기(*玄機: 깊고 오묘한 이치)를 탐구해보려 합니다. 동행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죠. 연이 닿으면 또 만납시다!”
계연의 목소리와 함께 그의 모습이 저 멀리 구름 사이로 사라졌다. 우패천은 한순간 그를 쫓아가고 싶었으나, 계연의 말을 떠올리며 걸음을 뚝 멈췄다. 그러고는 위씨 집안 사람들을 원망에 찬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에잇!”
우패천은 결국 이렇게 된 상황에 무척 짜증이 나고 답답해졌다. 이에 위씨 집안 사람들을 바라보는 그의 안구에는 마치 불길을 품고 있는 것처럼 새빨간 핏줄이 차올랐다. 그와 눈이 마주친 모든 사람들은 마음에 공포심이 생겨났다.
만약 우패천이 예전 그대로의 성질 같았다면, 결코 사정을 봐주지 않고 크게 화를 내는 바람에 이미 몇 사람은 죽어 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계연과 함께했던 지난날들이 헛된 시간은 아니었던 듯, 그는 단 몇 초 만에 차오르는 분노를 억누를 수 있었다. 물론 그의 성질이 좋아진 것이 아니라, 그저 계 선생님이 후에 알게 되고 화를 낼까 꺼리는 것뿐이었지만 말이다. 그렇다 해도 그는 몇 마디 욕지거리는 참을 수가 없었다.
“어찌 이리 재수가 없지! 내 선인지로(仙人指路)는 물 건너갔군……. 에잇! 제기랄…….”
연비도 실망한 듯 당황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우패천에 비해서는 이 상황을 훨씬 잘 받아들이고 있었다. 왜냐하면 계 선생님이 이미 그에게 무척 진귀한 <검의첩>을 전수해주었고, 그로 인해 무도(武道)에 대한 신념을 되찾았기 때문이었다.
위씨 집안 사람들은 아직도 완전히 평정을 회복하지 못하고, 여전히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우패천이 격노하며 내뱉은 몇 마디에 그들은 즉시 긴장하여 눈이 시뻘게진 우패천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 한순간, 이 순박한 얼굴의 남자는 깜짝 놀랄만한 흉악한 기운을 내뿜었고 모든 이들이 그 기운에 짓눌렸다. 이에 위씨 가문 사람들은 은밀히 경계하기 시작했고, 속으로 저자는 대단한 고수가 분명하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있어 가장 충격적인 일은 여전히 계연이 구름을 타고 떠나간 것이었다.
그 장면을 다시 떠올려보던 위헌의 심장이 점차 빨리 뛰었다. 곧 위헌의 마음에는 흥분된 감정이 차올랐다. 그는 우패천에게서 시선을 돌려 연비를 향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연 대협, 저분, 방금…… 방금 구름을 타고 떠나신 선생님 말입니다. 저분은 신선입니까?”
연비는 팔짱을 끼며 검을 팔 사이에 고정했다. 그러고는 위헌과 위명을 향해 웃으며 대답했다.
“여러분도 눈이 있으니 보셨을 텐데, 뭐 하러 제게 묻습니까? 오늘 제가 방문한 것은 계 선생님을 모시고 위씨 집안의 무자천서를 보러 오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그 일도 이제 끝난 듯하니 저는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연비는 말을 마치고 우패천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우 형님, 이제 가시죠.”
연비는 더는 조금도 이곳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 우패천도 이곳에 있다가는 더욱 화가 날 것 같아 그의 말에 동의했다.
“하하, 좋지. 계 선생님도 떠나신 마당에 여기 있어봤자 뭘 하겠는가.”
위헌은 긴장한 얼굴로 제 아들을 향해 눈짓했다. 그러자 위명이 고개를 끄덕인 뒤 앞으로 나서서 이렇게 말했다.
“연 대협, 우 대협, 잠시만 기다리시지요. 조금 전에는 저희가 사정을 잘 몰라 신선께 우를 범했습니다. 혹 그분이 다시 돌아오실지 두 분께서는 아시는지요? 부디 저희가 주인으로서의 예를 다하게 조금만 더 머물러 주십시오. 그 선생께서는 연 대협과 가까운 사이이니, 분명…….”
“필요 없습니다!”
듣고 있던 연비는 짜증이 나서 손을 들어 위명의 말을 막았다.
그는 고개를 돌려 정당 안의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이때 그들은 마침 그 무자천서를 다시 상자 안에 넣고 있었다.
“비록 제가 계 선생님을 존경하며 가까이 모시고 있기는 하지만, 선인과 범인은 유별한 법입니다. 지난번에 헤어진 후로, 다시 선생님을 만나기까지 10년이 넘게 걸렸습니다. 제가 살아있는 동안 다시 연이 닿아 그분을 뵐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게다가 우 형님은 성격이 약간 다혈질이신 데다, 무공도 저에 비해 열 배는 뛰어난 분입니다. 저희가 이곳에 머무르면 여러분이 정말로 안심하실 수 있겠습니까?”
연비의 말에 위헌과 위명은 말문이 막혔다. 그들이 뭐라고 입을 떼기도 전에, 연비와 우패천은 서로를 향해 웃어 보인 다음 장원 밖으로 나갔다.
“연 대협! 연 대협,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위명이 서둘러 그들을 쫓아갔지만, 위헌은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뒤쫓지 않았다.
두 사람이 떠나자, 주변에 있던 집안사람들은 아쉬움에 한숨지었다.
“아이고, 조금 전에 책을 빌려드렸으면 우리도 신선에게 가르침을 받을 수 있었던 것 아닌가?”
“내 말이!”
“이 무자천서가 정말로 신묘한 서책이었다니…….”
이때 위헌이 차갑게 코웃음 치자, 속닥거리는 소리가 즉시 끊어졌다. 아쉽기야 위헌 자신도 당연히 아쉽지만, 자신이 위씨 집안의 가주라고 해서 그 책임을 다 뒤집어써야 한단 말인가?
“이미 끝난 일을 이야기해봐야 무슨 소용이오? 만약 저 선인께서 다시 돌아오신다면, 나도 당연히 두 손으로 공손히 저 서책을 바칠 것이오. 어쨌든 지금 우리에게는 최소한 선인께서 직접 쓰신 무자천서의 필사본이 있소!”
위헌은 그 말을 통해 성공적으로 사람들의 주의를 돌릴 수 있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아쉬움과 원망을 뒤로 제쳐두고 조금씩 흥분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조급한 걸음으로 하나둘 정당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정당 안의 한 탁자 위에는 열 몇 장의 선지가 쌓여있었고, 모든 장마다 깨알같이 작은 글씨들이 가득히 적혀있었다.
이것은 이미 그들이 보기에 일반 무공비적의 범위를 초월한 일이었다. 선인이 남긴 신비한 술법이라니, 이것을 깨우치기만 하면 신선이 되는 것도 불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다.
이때 위명은 어떻게든 두 사람을 붙잡아 보고자 연비와 우패천을 뒤쫓고 있었다. 오늘 일은 결코 이대로 마무리 지어서는 안 되었다. 하지만 연비와 우패천은 뒤쫓아오는 그를 완전히 무시하고 앞만 보며 걸어갔다.
그러나 그들이 위씨 장원에서 조금 멀어진 후, 연비가 마침내 걸음을 멈췄다. 그러고는 멀리 정당이 있는 위치를 한번 바라본 다음, 뒤쫓아온 위명을 향해 말했다.
“위명, 제가 마지막으로 몇 마디 남기겠습니다. 오늘 일이 만약 밖으로 새어 나간다면, 위씨 집안에는 절대 좋지 않을 겁니다. 무자천서가 이전에는 그저 강호에 떠도는 소문일 뿐이었다면, 이제 선인이 읽고 남긴 필사본이 있으니 근거 없는 헛소문이 아니게 된 것입니다.”
“연 대협, 혹시…….”
그의 말을 듣고 위명이 즉시 긴장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비록 의협심이 뛰어난 자라고 칭할 수는 없지만, 그런 일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 무자천서에도 아무런 흥미가 없고요. 그러니 밖으로 말을 전하지도 않을 겁니다.”
그의 곁에 서 있던 우패천은 이미 짜증이 날 대로 난 상태여서, 연비를 팔을 잡아끌고는 다시 성큼성큼 떠나갔다.
“어서 가세, 어서. 연 동생, 저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든 대체 우리와 무슨 상관인가? 만약 동생이 후에 계 선생님을 만나지 못하거든, 내가 자네보다는 오래 살 테니 선생님을 데리고 꼭 자네의 무덤에 찾아가 향을 한 대 피워주겠네.”
이를 들은 연비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라 입을 삐죽댔다.
“하하하, 그러니 우리도 어서 가세. 녹평성 연옥루로 가는 게 어떤가? 어제 내가 많은 홍안지기(*紅顔知己: 남자가 마음을 터놓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여성 친구)를 사귀었는데, 동생한테도 소개하지!”
우패천은 음흉하게 웃으며 연비를 끌고 성으로 향했고, 마침내 위명의 시야에서 이들은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