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1화. 꺼리기는요!
다음 해 여름, 계연은 마침내 수행을 마쳤다. 그는 천천히 눈을 뜨고 호흡을 길게 내뱉었다. 그 호흡에는 미세한 오행의 기운이 섞여 있어, 그것만 봐도 무척 비범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5년 만에, 계연은 마침내 앉아 있던 산봉우리 위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그의 두 눈에 신광(神光)이 번뜩이며 눈동자의 모양이 사각형으로 변했고, 회백색의 두 눈은 청록색으로 빛났다. 다만 계연이 다시 눈을 깜빡이자 아무 일도 없던 듯 두 눈은 원래대로 돌아갔다.
“벽안(*碧眼: 푸른 눈)과 방동(*方瞳: 네모난 눈동자)?”
계연은 천천히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지난 생 인터넷에서 읽었던 옛 기록에 쓰여있던 신선에 대한 묘사를 떠올렸다. 영화나 문학에서 흔히 묘사되는 신선의 형상과 달리, 그 기록에는 신선들은 청록색의 눈과 네모난 눈동자를 가지고 있다고 적혀있었다.
지난 생의 계연은 당연히 아무것도 몰랐지만, 이제 그는 그 연유를 알 수 있었다. 옛 의학서에서 눈은 간(肝)의 구멍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간은 오행 중 목(木)에 속한다. 그리하여 눈이 맑다는 것은 이른바 푸른 나무의 기운이 충만한 것으로, 눈동자는 그에 따라 푸르고 네모난 모양을 하게 된다. 일반 백성들이 이런 형상을 본다면 요괴를 봤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사실 이는 높은 수행의 경지에 이른 이들이 가진 특징이었다.
계연은 잠시 시간을 계산해보더니 곧 임진년(壬辰年)이 끝나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사실 그의 수행은 무척 짧은 편에 속했다. 일반적인 수사들이 계연의 현재 경지에 다다르려면 몇 년을 수행해야 할지 짐작도 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또한 수행을 닦으며 각종 외부의 문제에 부딪히거나 막히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는데, 계연은 무척 원만히 채 20년도 안 되어 현재의 경지에 이른 것이다.
‘<운중유몽>이 날 크게 도왔으니, 후에 중평휴를 만나게 되면 꼭 보답해야지!’
진선의 반열에 오른 이라 해도 불로장생을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계연이 생각할 때는 그가 아직 살아있을 가능성이 훨씬 컸다.
곧이어 계연은 주위의 망망대해를 한번 둘러보더니, 구름을 타고 맑은 바람을 몰고서 서쪽을 향해 날아갔다.
* * *
전항촌과 편만촌은 동해 연안에 자리한 수많은 어촌 중 하나였다. 두 마을은 비교적 가깝게 자리해 있어 두 마을 사이에 혼례가 잦았기 때문에, 서로 무척 친밀한 관계였다.
산 가까이에 살면 산에 기대 살고, 바다 가까이에 살면 바다에 기대어 산다는 말처럼, 이곳의 어민들은 모두 근해에 나가 생선을 잡으며 생계를 꾸려갔다.
하지만 최근 1, 2년간 근해에서는 어획량이 충분치 않았다. 이에 두 마을 사람들과 부근의 다른 어촌들에서는 생계를 잇기 위해 먼 해역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충분한 고기를 잡을 만큼 가려면 먼 해역까지 나가야 했고, 그러려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당연히 위험한 상황을 마주치기도 쉬웠다. 일전에도 전항촌과 편만촌의 어선들은 폭풍을 만나 하마터면 전부 다 목숨을 잃을 뻔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 두 마을의 어선들은 기적처럼 목숨을 건졌고, 뒤이어 먼바다로 향하는 다른 마을의 어선들도 천천히 한 신기한 섬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날 날씨가 어떻든지 간에, 그 섬 부근에서만은 비바람이 몹시 약해졌다. 갑작스럽게 비가 오고 폭풍이 불어닥친다 해도, 제때 그 섬 근처로 피하기만 하면 무사히 고비를 넘길 수가 있었다.
그러자 어민들은 그 섬이 신인(神人)의 비호를 받고 있다고 여겨, 섬에 정풍도(定風島)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그런 일들이 퍼져나갈수록 정풍도 근처를 지나는 어선들은 모두 배 위에 제사상을 마련하고 복을 기원하게 되었다.
그 섬의 존재로 인해 먼바다로 나온 어선들은 모두 그 부근에서 생선을 잡게 되었다. 하지만 그 부근의 생선은 곧 씨가 마를 것이고, 그러면 그들은 더욱 먼 해역으로 나아가야 했다.
이렇게 나아가면 어느 마을의 사람들도 견뎌내지 못할 터였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근해의 널따란 해역에서 생선이 잡히지 않는다는 데에 있었다. 이에 주위의 어촌 몇몇은 모두 밑천을 탈탈 털어 돈을 모았다.
그리고 바로 그날, 계연은 바람을 몰고 내륙으로 돌아왔다.
습관적으로 아래의 마을들을 살피던 그는 그중 한 곳에 많은 이들이 모여 악기를 두드리며 떠들썩한 분위기인 것을 발견했다. 그들은 얼핏 보아도 한 마을의 인구를 뛰어넘는 수였고, 지금도 마을 바깥에서 사람들이 계속 모여들고 있었다.
‘내가 모르는 새해 풍속인가?’
계연은 이렇게 생각하며 땅으로 내려왔다. 그는 아주 오랫동안 이런 떠들썩한 분위기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가서 한번 구경해보고 싶었다. 어쩌면 인파에 섞여 잔치밥을 얻어먹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회색 장포를 입은 계연이 작은 언덕 뒤에 내려섰을 때, 어부로 보이는 젊은이 하나가 솜옷을 입은 채 추운지 두 손을 비비며 지나갔다. 이에 계연도 원래 지나가던 행인처럼 자연스럽게 길에 들어서서 그를 불렀다.
“그쪽 아우님, 잠시만요!”
그가 이렇게 소리치자, 아직 앳된 티가 나는 젊은이가 걸음을 멈췄다. 그간 계연의 경험으로 볼 때, 시골의 젊은이들은 모두 순진하고 경계심이 없었다. 만약 누군가 도움을 청하면 기꺼이 나서 도움을 주기도 했다.
젊은이는 계연의 외모와 그가 넓은 소매의 장포를 입은 것을 보고 서생이라고 여기며 공손하게 물었다.
“선생께서 저를 부르신 건가요?”
“예, 맞습니다. 제 이름은 계연으로, 먼 곳에서부터 유람하다 여기까지 오게 되었어요. 이 부근에서 길을 잃었는데, 보아하니 많은 이들이 저쪽 마을로 향하더라고요. 게다가 악기 소리도 들리고 떠들썩하던데, 이 마을의 중요한 신년 풍습인가요?”
계연은 양손을 맞잡고 인사하며 친근한 태도로 이렇게 물으며, 자연스럽게 청년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자 남자도 모범적인 인사는 아니었지만, 서툴게 양손을 맞잡고 인사를 해 보이며 대답했다.
“아, 저 마을 말씀이시군요, 신년 풍습이 아니라, 며칠 후면 섣달그믐이고 송구영신(送舊迎新)하는 때가 아닙니까? 다름이 아니라 근처 마을 몇몇이 함께 돈을 걷어, 삿된 것을 몰아내 내년에는 근해에서 생선을 잡을 수 있도록 유명한 법사(法師)를 초청해 왔답니다. 저렇게 떠들썩한 것은, 법사께서 그렇게 하도록 요구하셨기 때문이고요. 사람들의 기운이 왕성해야 한다고 해서 주변 어촌의 사람들이 모두 모인 거예요. 내일은 큰 잔치도 열고 횃불로 진(陳)도 만들 거라고 하더라고요!”
“아하……. 신기하네요.”
계연은 무척 신기한 듯이 이렇게 대답하며 무언가 생각에 잠겼다. 그는 이 젊은이의 말에서 근해에 어획량이 충분치 않다는 등의 몇 가지 정보를 알아낼 수 있었다.
재빨리 생각을 갈무리한 그는 실망한 듯한 기색으로 이렇게 말했다.
“실은 저는 새해를 맞아 무슨 잔치라도 여는 줄 알고, 구경도 하고 맛있는 것도 얻어먹으려 했거든요. 하지만 삿된 것을 내쫓는 의식이라니, 휴우. 아무래도 저 같은 외지인은 참여할 수 없겠죠. 일행과 헤어져 시골 마을을 돌아다닌 지 꽤 되어서 배도 고프고 피곤했거든요…….”
그러자 젊은이가 머리를 긁적이며 잠시 망설이다가 이렇게 말했다.
“저, 실은 삿된 것을 쫓을 때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하더라고요. 만약 선생께서 이런 법회를 꺼리지만 않으신다면, 저희로서는 함께 잔치에 참여해도 상관은 없어요…….”
그러자 계연은 기쁜 듯 웃으며 몇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갔다.
“꺼리기는요, 저야 감사하죠! 제대로 된 밥을 먹은 지가 언젠데 그런 걸 신경 쓸 리가 있나요. 자자, 갑시다, 아우님. 만약 누가 물어보면 저 대신 말 좀 잘 해주세요!”
계연이 스스럼없이 행동하는 것을 보고 오히려 젊은이는 약간 어색해했다. 눈앞의 사람은 딱 봐도 책을 읽은 서생이었고, 머리에도 옥으로 된 비녀를 꽂고 있었다.
“그, 그럼 저와 함께 가시지요. 사실 그리 걱정할 건 없답니다. 최근에 살기가 좀 어려워지기는 했지만, 이 부근의 어촌 사람들은 모두 손님들을 반기거든요. 선생께서는 학문을 닦은 분이시죠?”
계연은 젊은이를 따라 걸음을 옮겨 마을로 향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예, 글을 읽고 있어요.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마음이 놓이는군요. 참, 그러고 보니 아직 아우님의 존함을 모르네요.”
누군가 이렇게 공손하게 이름을 물어오는 것은 난생처음이라, 젊은이는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선생님, 제 이름이 무슨 존함씩이나 되겠습니까! 저는 양평락(梁平樂)이라고 합니다.”
“아, 양 동생! 평안(平安)상락(*常樂: 언제나 괴로움 없이 즐거움)에서 따온 이름이네요! 집안 어르신께서 무척 좋은 뜻을 지닌 이름을 지어주셨군요!”
계연이 웃으며 이렇게 말하자, 양평락도 멋쩍은 듯 미소 지었다. 그의 이름은 조부가 지어준 것이었는데, 학문을 닦는 서생에게 이런 칭찬을 받자 그도 무척 기뻤다.
짧은 소개가 오가고, 계연은 양평락에 대해 좀 더 알게 되었다. 그 후 계연은 시선을 멀리 마을로 던지며 물었다.
“양 동생, 저 사악한 것을 쫓아낸다는 것 말입니다, 도대체 어떤 사악한 게 있길래 그런 건가요? 저도 나름대로 여러 곳을 돌아다녀 봤고, 이런 기이한 소문을 듣는 것도 좋아하거든요.”
양평락은 이야기를 나눌수록 점차 긴장을 내려놓았다. 심지어는 학문을 닦는 서생과 이렇게 말을 섞게 되어 약간 영광스러운 느낌도 받을 정도였다. 그는 계연의 질문에 대해 어차피 비밀이랄 것도 없었으므로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선생께서는 모르시겠지만, 바다 근처 마을에 사는 이들은 전부 다 어민들이거든요. 우리는 전부 생선을 잡고 살지요. 한 가지 좋은 점은 세금이 농사짓는 이들보다 적다는 점이에요. 그래서 이쪽 어민들은 원래 그럭저럭 살아갈 만했는데, 작년 연말부터 인근 해역에서 고기가 잘 안 잡히기 시작했어요.”
“어째서요? 씨가 마른 건가요?”
양평락의 설명에 계연이 이렇게 물었다.
“이렇게 끝도 없이 넓은 바다에, 생선이며 게며 무궁무진한데 어떻게 씨가 마르겠어요? 가끔 산란기에 포획량에 많아지면 후에 잘 잡히지 않긴 하는데, 이렇게 쭉 계속되는 경우는 없었어요.”
“그렇겠네요.”
계연이 그의 말에 동의를 표했다. 인근 어촌의 인구와 그들의 기술력으로 볼 때, 해산물이 씨가 마를 가능성은 없었다.
“그럼 저 바다에 무언가 삿된 것이 있다고 의심하시는 거죠?”
“예, 선생님 말씀대로입니다. 바다 근처 어촌의 모든 이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법사(法師)를 청해 오기도 했었는데, 몇 명이나 불러봤지만 아무도 무언가를 발견해내진 못했어요. 하늘과 땅에 제사도 지내보고 신령들에게도 해봤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어요.”
계연은 걸음을 멈추지는 않았지만, 고개를 돌려 양평락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무런 소용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그럼 왜 부른 건가요?”
“문제가 계속 해결이 안 되고 있으니까요. 관아에서도 신경을 안 쓰니, 각 마을의 어른들이 모여 이번에는 실력이 대단한 법사를 모셔 와야겠다고 결정하신 거예요. 정풍도가 있기는 하지만, 거기까지 가는 것도 사실 무척 먼 길이거든요. 또 연말이기도 하니, 모두 허리띠를 졸라매고 조금씩 돈을 낸 거죠. 그래서 이번에는 실력이 대단하다는 법사님을 모셔 왔어요. 전에 왔던 이들과는 비교도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