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3화. 일격에 무너지다
꼬르륵……!
그들과 먼바다의 수면에 거품이 퐁퐁 솟아올랐다. 파도치는 수면 아래에 있어 잘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해저(海底)의 물길은 이미 어지럽게 뒤섞이며 혼탁해진 상태였다.
촤아아!
전방의 파도가 점점 더 커졌지만, 맨 앞에 선 법사는 그를 보고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횃불을 손에 들고 파도가 밀려오는 기슭으로 걸어갔고, 어민들도 그의 뒤를 따라갔다.
“천여 명 백성들의 불길이 용솟음치는구나! 인간과 요괴는 서로 범하지 않는 것이 규칙이로다. 이로써 진(陳)을 만들어 화룡(火龍)을 보내니, 세찬 양기(陽氣)가 휘몰아치는구나. 만약 이 기슭에 머무는 영물(靈物)이 있다면, 속히 물러가라!”
법사는 젖 먹던 힘을 다해 이렇게 고함쳤다. 그의 목소리는 대열의 모든 이들의 귀에 또렷하게 들릴 정도였다.
그는 이미 이 근방을 전부 조사해보았고, 1년 넘게 고기가 잡히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민 중 요괴를 보거나 괴이한 일을 겪은 자는 없었고, 먼 바다로 나간 이들에게서도 요괴를 만났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기껏해야 고기가 잡히지 않는 것뿐이었다.
이로 미루어 보아, 저 요괴는 대단찮은 놈인 것이 분명했다. 아마 저 바다에 사는 어떤 동물이 막 영지를 얻어 수련을 닦게 되면서, 근처 해역의 다른 생명체들이 놀라 달아난 것 같았다. 그런데 이제 인간들이 뿜어내는 불의 기운과 횃불로 만들어낸 거대한 용 형태의 진을 마주쳤으니, 식견이 짧은 요괴는 무척 겁을 집어먹었을 것이다.
이곳 기슭은 전부 암석으로 되어있었고 아래의 수심은 무척 깊었다. 물이 얕은 곳에서는 영물이나 요물이 거하지 않으니 가능성이 있는 곳은 이곳뿐이었다.
“속히 물러가라!”
“속히 물러가라!”
어민들이 다 함께 소리치자, 곧 거대한 파도가 이쪽 기슭을 향해 몰려왔다. 계연의 눈에는 인간들이 만들어낸 불의 기운이 용의 형태로 물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는데, 그 기세가 파도보다 맹렬했다.
횃불을 들고 진을 만들고 선 사람들은 더욱 기세등등해졌다. 그보다 더욱 중요한 요인은 그들 모두 저 법사의 법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믿고 있다는 점이었다. 별안간 거센 양기가 용솟음치더니 기슭을 한번 쓸고서, 거대한 파도처럼 일어나 해면(海面)에 부딪혔다.
바로 그때.
촤아…… 쫙!
오늘은 바람이 그다지 세지도 않았는데, 바다에 돌연 거대한 파도가 일더니 어민들을 향해 덮쳐왔다. 그들이 횃불을 들어 올려 자세히 상황을 파악하려던 순간, 파도는 이미 그들 눈앞에 닥쳐 있었다.
“이런! 피하시오!”
법사는 이렇게 소리치며 파도가 치는 가장 앞으로 다가갔다. 그는 손에 든 불진을 미친 듯이 휘두르며 자신의 가진 법력을 끌어내 어떻게든 막아내려 했다. 하지만 법사의 법광이 파도에 닿는 순간, 법사는 마치 자신의 몸 전체가 무언가에 거세게 부딪힌 것 같은 엄청난 고통을 느꼈다.
파도가 너무나 갑자기 밀려왔기 때문에, 사람들은 미처 피할 겨를도 없었다.
쿠웅!
하지만 파도는 마치 투명한 구체에 부딪힌 것처럼 무수한 물방울이 되어 튕겨 나왔다. 머리 위로 무언가에 부딪힌 물길이 위아래로 흘러내리는 것을 어민들은 멍하니 바라보았다.
촤아아……!
파도는 그들 뒤쪽의 기슭으로 떨어졌고, 어민들은 멍하니 그것을 보고 있다가 마침내 놀라워하며 흥분하기 시작했다.
“썩 물러가라!”
“썩 물러가라!”
곧이어 어민들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계속해서 구호를 소리쳤다. 이 순간, 흥분으로 인해 감정이 고조된 채로 소리치는 어민들의 목소리는 온통 쉬어있었다.
반면 법사는 불진을 손에 쥐고서 쉴새 없이 쿵쿵대는 가슴께를 부여잡고 있었다. 그는 눈으로는 무언가를 찾고 있는 것처럼 대열 앞뒤를 이리저리 살폈다.
조금 전의 파도는 그의 능력으로 결코 막을 수 없는 것이었고, 횃불 진도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게다가 그 파도에서 아주 짙은 비린내가 풍겼던 것으로 보아, 무언가 대단한 존재가 파도를 만들어낸 것이 분명했다. 법사는 본능적으로 법력을 끌어내어 막아섰으나, 사실 불진의 법광이 파도에 닿은 순간 바로 후회했다.
한편 그의 그런 사정을 포효하는 어민들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법사는 조금 전 벌어진 일에 무척 놀란 상태였다.
‘어느 고인이 나를 돕는 거지?’
“법사님, 더 안 갑니까?”
어민들의 고함치는 소리가 점차 약해지자, 한 마을의 촌장이 멍한 얼굴의 법사를 보고 이렇게 물었다.
그러자 법사가 마침내 정신을 부여잡고 불진을 털었다.
“다른 곳으로 갈 필요 없습니다. 여기면 돼요. 모두 이쪽으로 붙어 서세요. 이제 바닷가를 향해 발을 구르며 크게 소리치세요! 박자가 맞아야 합니다!”
법사는 자신을 도운 고인이 누군지 찾으려 하지 않았다. 어느 고인이 자신을 도운 것을 알게 되었으니, 이때 더욱 힘을 내서 저것을 상대해야 했다.
천여 명의 사람들이 모두 바닷가 기슭에 붙어섰다. 불이 꺼진 이들은 준비해 온 다른 횃불을 들었고, 점점 더 많은 이들이 법사를 따라 발을 굴렀다.
쿵! 쿵! 쿵!
사람들이 다 함께 발을 구르자 엄청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게다가 방금 바닷물이 갈라지던 장면을 생각한 사람들은 더욱 기세등등해졌다.
계연은 이것을 보자마자 예전에 산에서 여우 요괴를 만났을 때 들었던 도자가(刀子歌) 생각이 났다. 이것들은 군대에서 기세를 올릴 때 자주 사용되는 방법이었다.
우오오!
수면 아래에서 무언가 포효하는 소리와 함께 거품이 연달아 솟아 올라왔다. 뒤이어 바다 생물의 비린내가 사방에 퍼지며 바닷물 한 줄기가 위로 솟구쳤다. 그것이 다시 아래로 떨어지던 순간, 까맣고 거대한 등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촤르르……!
그러자 어민들의 발소리가 점차 잦아들며, 어민들은 무의식적으로 뒤로 물러났다. 심지어 법사마저도 그것을 보고 뒤로 물러날 정도였다.
“요, 요괴? 법사님, 요괴가 나타났습니다!”
“법사님! 정말 요괴가 있었군요!”
“저게 뭐지? 고래인가?”
“그래 보이는군!”
“법, 법사님, 이제 어쩌면 좋습니까? 저 요괴를 어찌 처리하면 되나요?”
“법사님?”
“법사님, 어서 이 앞으로 오세요!”
어민들은 놀라 두려워하며, 뒤로 몸을 사린 법사를 제일 앞쪽으로 밀어냈다.
바다에서 솟아올라온 것은 거대한 고래 한 마리였다. 그것은 어민들이 그간 바다에서 마주친 고래보다 훨씬 더 컸는데, 마치 작은 언덕과 비슷한 크기였다.
꿀꺽…….
법사는 저도 모르게 한번 침을 삼킨 뒤, 긴장한 기색을 숨기며 앞으로 나섰다. 언제든 자신을 때려죽일 수 있을 정도의 크기인 고래 요괴를 보고 그는 속으로 전전긍긍했다.
“너, 너는 어디에서 온 요괴냐? 이, 이 해역은 주위 어민들이 생계를 잇는 곳이다. 네가 여기서 어류들을 죄다 쫓아내니, 근방의 어민들이 살아갈 수가 없을 지경이다. 이것이 얼마나 큰 악업(惡業)인 줄 아느냐?”
법사는 요물이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억지로 용기를 끌어 올려 상대를 꾸짖었다. 그러나 그의 어조는 비교적 조심스러웠고, 동시에 눈으로는 계속해서 사방을 살피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돕는 고인이 근처에 있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부디 그분이 아직 자리를 뜨지 않고, 끝까지 그들을 돕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고래는 한쪽 눈을 굴려 법사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 법사는 간담이 서늘해져, 온몸의 근육이 뻣뻣하게 긴장했다.
“꺼져라!”
촤아악!
거대한 파도가 갑자기 솟아오르더니 사방을 향해 후두두 떨어졌다. 마치 하늘에서 비가 쏟아져 내린 것처럼, 어민들이 들고 있던 횃불 대부분이 물에 젖어 꺼졌다.
그러자 사람들은 겁에 질린 얼굴로 당황하여 뒤로 물러났고, 법사는 다리가 풀려 바닥에 주저앉았다.
고래는 경멸하는 듯한 눈빛으로 주저앉은 법사를 바라보더니, 곧 겁에 질려 움츠러든 어민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어민들에게서 조금 전의 위풍당당한 기세는 모두 사라졌고 어민들이 만들어내던 불의 기운도 흩어졌다.
이때, 고래가 입을 열었다.
“이곳에, 고인이, 계십니까? 모습을, 드러내 주십시오.”
그러나 아무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어민들은 서로를 멀뚱히 쳐다보다가 결국 막 몸을 일으킨 법사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법사도 몸을 움츠리며 뒤쪽으로 피했고, 다시는 해안가 가까이 다가서려 하지 않았다.
“한 번만, 만나 뵐 수 있겠습니까?”
고래가 커다란 목소리로 다시 한번 이렇게 물으며 해안가를 향해 가까이 다가오자, 어민들은 모두 놀라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계연은 여전히 앞으로 나서지 않았다.
이 요물은 기세가 범상치 않긴 하지만, 그렇다고 살기가 느껴지지는 않았다.
“나는 거경(*巨鯨: 거대한 고래) 장군이라 한다. 고인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네놈들이 나를 건드렸으니 전부 죽여 버리겠다! 후오오……!”
고래는 야수와 같은 포효를 내지르더니, 거대한 꼬리를 높이 들어 올렸다.
바로 그때 계연은 넝쿨검을 손에 쥐고 3촌(*약 9cm) 정도만 뽑아낸 다음, 검신(檢身) 위를 한번 툭 튕겼다.
딩……!
그러자 무형의 검기(劍氣)가 선검에서 솟구쳐 나와 고래의 꼬리를 향해 날아갔다.
“으윽!”
풍덩……!
수면에 부딪힌 고래의 꼬리는 그리 큰 파도를 불러일으키지 못했고, 고래는 이리저리 몸을 뒤틀리며 고통스러워했다.
촤르르……!
뒤이어 고래는 물거품을 사방에 튕기며 몸을 돌려 바닷물을 가르고 헤엄쳤다. 고래는 엄청난 거품을 뿜어내며 점점 더 깊은 물 속으로 숨어들더니 바다 멀리 도망쳤다.
‘하, 거경 장군이라니…….’
계연은 고래가 사라진 방향을 웃으며 쳐다보았다. 곧이어 계연의 모습이 점차 희미해지더니, 계연은 물보라를 밟으며 고래를 뒤쫓아갔다.
반면 주위의 어민들과 법사는 너무 놀라 멍하니 고래가 떠난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민들이 손에 든 횃불은 태반이 이미 불이 꺼진 상태였다. 게다가 많은 이들이 물에 빠진 것처럼 흠뻑 젖은 상태였는데, 위험이 지나가자 사람들은 그제야 한기가 몸에 스며드는 것이 느껴졌다.
“어휴…… 추워라. 법사님, 이제 가도 됩니까?”
“법사님, 저 요괴가 놀라 도망간 겁니까?”
“얼어 죽겠네! 에고!”
법사는 연신 손을 비비고 옷깃을 단단히 부여잡았다. 하지만 그래도 수행하는 이답게 영기가 그의 몸을 보호해주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어민들처럼 추위에 몸을 떨지는 않았다.
“자, 어서 갑시다. 요괴는 놀라 도망쳤으니, 우리도 어서 떠납시다!”
“자자, 어서 가세…….”
“어서 집으로 가자! 추워 죽겠구먼!”
“법사님, 방금 그 요괴가 고인께 모습을 드러내 달라고 청했는데, 다른 법사님이 이 근처에 계십니까?”
“우리 사문(*師門: 스승의 문하)에 있는 고인이십니다. 제가 일찍이 이쪽의 요괴가 쉽지 않은 놈이라는 걸 알아채고, 일부러 제 사조(*師祖: 스승님의 스승) 격의 고인께 하산해달라 청했었지요. 요괴가 도망쳤으니, 사조께서도 그것을 추격하러 가셨을 겁니다. 이제 마음 놓으십시오!”
긴장이 풀린 이들은 대화를 주고받으며 마을을 향해 걸어갔다. 올 때는 기세가 등등한 모습이었으나, 돌아갈 때는 물에 흠뻑 젖어 추위에 떨고 있었다. 그들은 불이 꺼진 쓸모없는 횃불을 모두 버린 상태였다.
“발밑 조심하시오! 넘어지지 않게! 바닷가 쪽으로 너무 가까이 붙지 마시고!”
“각자 가족과 친우들 챙기시오, 누가 낙오되면 안 되니까!”
마을 어른들이 때때로 이렇게 소리치며 사람들을 일깨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