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324화 (324/892)

324화. 몸만 크고 담은 작은 거경 장군

장부와 양평락의 일행도 덜덜 떨며 가는 길을 서두르고 있었는데, 저 소리를 듣자 돌연 무언가를 깨달았다.

“아 참! 계 선생님은?”

장부가 이렇게 소리치자, 양씨 집안과 장씨 집안의 사내들이 모두 발을 멈췄다.

“빨리 가서 찾아보세, 어디 계시는지!”

“그래그래, 어서 찾아보세!”

“계 선생님! 어디 계세요?”

“계 선생님!”

두 집안 사람들은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계연을 찾아다녔다. 그들 주위는 온통 몸을 한껏 움츠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마을 사람들뿐이었다. 얼마 남지 않은 횃불은 앞길을 밝히는 데에 쓰고 있었으므로, 사람들의 얼굴이 잘 분간이 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거의 모든 이들이 그들을 스쳐 지나갔다.

두 집안의 부자(父子) 네 사람은 서로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장부만이 아직 손에 횃불을 들고 있었는데, 그것은 겨우 그들 주변을 비출 정도의 밝기인 데다 이 순간에도 바닷바람에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들이 원래 있던 곳은 이때 칠흑 같은 어둠에 뒤덮여 있어, 그들은 저쪽에 맹수라도 숨어있는 것처럼 두려움을 느꼈다.

마을의 유명한 선장인 장부의 부친은 이를 꽉 물고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가세, 돌아가서 다시 찾아보세!”

그들은 잠시 주저하다가, 그를 따라 횃불 진을 쳤던 해안가 기슭으로 향했다.

장부는 들고 있는 횃불로 사방을 비춰 보았고, 주위에는 버려진 횃불로 가득했다. 바다에서는 계속 ‘촤아아……’ 하며 파도가 밀려오고 있었다.

먼 곳의 바다는 어둠에 덮여 새카맣게 보였다. 장부는 횃불로 기슭 아래쪽을 비춰 보았지만, 부딪혀 흩어지는 물거품 외에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만약 떨어진 거라면…….”

“계 선생님! 계 선생님, 여기 계세요? 어서 마을로 돌아갑시다!”

“계 선생님……!”

그들은 기슭과 해안가를 향해 몇 차례 소리쳤으나, 돌아오는 것은 바람 소리와 파도 소리뿐이었다. 장부가 손에 든 횃불이 이리저리 튀어 오르는 것을 보니, 그것도 얼마 안 가서 꺼질 것 같았다.

“어휴……. 추워라! 우리 다 몸이 젖어서 아무래도 계속 이렇게 바람을 맞으면 안 될 것 같아요!”

“어, 어쩌면 계 선생님은 저 앞쪽에서 사람들을 따라 이미 돌아가셨을지도 몰라요. 우리가 못 본 것일 수도 있잖아요?”

“그럴 수도 있지…….”

“음, 횃불도 얼마 못 버틸 것 같으니 어서 돌아가세. 어쩌면 계 선생님은 이미 마을에 도착해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실 수도 있어!”

“맞아요, 그분은 여러 곳을 돌아다니기도 하셨고 몸도 건강하시니, 아무 일도 없을 거예요.”

저 앞에 횃불을 든 마을 사람들이 점차 멀어지는 것을 보던 그들은 추위와 두려움에 떨다가 마침내 발을 옮겨 마을로 돌아갔다.

* * *

이때 계연은 파도를 밟으며 먼바다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는 서두르지 않고 걸음을 떼는 모습이었는데, 실은 무척 빠른 속도로 나아가고 있었다. 이는 육지에서 그가 내는 속도와도 얼마 차이 나지 않았다.

오기조원의 경지를 터득하기 전에도 그는 이런 식으로 바다 위를 걸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결코 지금처럼 가볍게는 걸어가지 못했을 것이고, 적지 않은 힘이 들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그때는 아예 하늘을 날아가거나 어수술로 파도를 타고 가는 편이 더 편리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계연은 수면에 발이 닿자마자 튕겨 나가듯이 가볍게 걸음을 뗐다. 수면의 기복은 그의 속도에 어떤 영향도 끼치지 못했고 법력의 소모도 무척 적었다. 그는 이 순간 마치 신선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먼 곳의 고래는 수면 아래에서 더욱 멀리, 더욱 깊이 온 힘을 다해 헤엄치고 있었다.

계연은 물에 들어가지는 않고 수십 리 정도를 뒤따라갔다.

그때 백 장(*약 300m) 깊이의 해저에 있던 고래는 천천히 수면으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뒤이어 그의 몸체를 따라 물방울이 흩어져 내리며, 거대한 등이 다시 한번 모습을 드러냈다.

고래는 저 멀리 해안가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꼬리를 이리저리 구부려 보았다. 그의 지느러미로는 아무리 해도 꼬리에 닿을 수가 없어, 고래는 이리저리 물살을 움직여 꼬리 부근으로 보냈다.

그 부근에는 아직도 통증이 가라앉지 않아 굉장히 아픈 곳이 있었다. 일격에 맞았던 순간에는, 너무 아파 심장이 멎는 것처럼 느껴졌었다.

사람이 손에 뭔가를 찔렸을 때 무의식적으로 손을 터는 것처럼, 고래도 그 순간 미친 듯이 몸을 뒤틀었다. 그때 고래는 그곳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뿐이었기 때문에 곧바로 바다로 도망쳐 나온 것이었다.

도망쳐 온 지 한참이 지난 데다, 주위에 어떤 특별한 기운도 느껴지지 않자 고래는 그제야 조심스럽게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먼 해안가는 어둠에 묻혀, 어떤 소리도 들려오지 않고 아무런 불빛도 없었다.

‘날 놓아준 건가?’

고래는 주위를 몇 바퀴 돌면서, 이곳을 떠나 다른 수역(水域)으로 가야 할지 망설이고 있었다.

‘범인(凡人)들을 위해 나설 정도면, 오지랖이 넓은 선인(仙人)이 분명해……. 휴, 어렵게 만난 선인인데, 나와 대화를 나누고 싶어 보이진 않았어.’

잠시 망설이던 그는 다시 배고픔을 느꼈고, 곧이어 물 밑으로 잠수해 거대한 입을 벌려 크게 빨아들였다.

수면 위의 물결에는 큰 변화가 없었지만, 그 아래에서는 물살이 요동치고 있었다. 무수한 물고기들이 물살을 이기지 못하고, 하수구에 빨려 들어가듯 고래의 입안으로 사라졌다.

고래의 입은 바닥없는 동굴처럼, 생선이며 새우, 게 등등을 가리지 않고 모두 빨아들였다. 몇 분이 지난 후에야 그는 마침내 성이 찼는지 거대한 입을 닫았다.

버스럭, 버스럭…….

무언가 서로 마찰하는 소리가 고래의 배 안쪽에서부터 들려왔다.

계연은 수면 위에서 그 아래의 상황을 정확히 볼 수는 없었지만, 고래가 입을 벌리던 순간의 기운과 무수한 해양 생물이 그의 입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운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어쩐지 근방의 어민들이 고기를 못 잡더라니, 이는 요괴에 놀라 흩어진 것이 아니고 이 ‘거경 장군’이 모두 먹어 치웠기 때문이었다. 들어오는 대로 먹어 치우니, 어부들이 잡을 생선이 남아 있겠는가?

거하게 배를 채운 고래는 그 이상 욕심을 부리지 않고 다시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낸 후 도망쳐 온 해안가를 바라보았다.

계연은 마침내 모습을 드러내고 입을 열었다.

“거경 장군, 저 해안가에 아직 미련이 남았나요?”

별안간 누군가의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려오자 고래는 깜짝 놀랐다.

“어이쿠! 깜짝이야…….”

고래는 몸을 움직여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누군가가 멀지 않은 수면 위에 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어수술을 이용해 파도를 밟고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바닷물의 기복에 따라 깃털처럼 위아래로 흔들리고 있었다.

“당, 당신이 조금 전에 저를 공격한 고인입니까?”

“무슨 그런 말을? 공격이라니, 그저 반격을 조금 했을 뿐이지요. 당신 정도의 요괴라면 어딜 가든 충분히 포식할 수 있을 텐데, 왜 이 해안가에 자리를 잡아 저 어민들을 못 살게 하는 건가요?”

계연은 그를 꾸짖듯 이렇게 물은 다음, 연달아 이렇게 질문했다.

“또, 자신을 거경 장군이라 칭했는데, 대체 어느 용궁의 장군이죠? 거느리는 병사들은요?”

이 수역은 수심이 깊은 곳이라, 고래는 조금 용기가 생겼다.

“당연히 제 군모(君母)께서 봉하신 직책이지요! 거느리는 병력은…… 흥, 별로 눈에 차는 것들이 없어 데려오지 않은 것뿐입니다. 제 해안가에 자리 잡은 데에는 당연히 제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그게 당신과 무슨 상관이죠?”

계연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그를 향해 웃으며 물었다.

“맞는 말이네요. 하지만 제가 꼭 알고 싶다면요?”

“왜죠? 당신이 알고 싶다고 해서 제가 알려줄 이유가 있습니까?”

계연은 엄숙한 얼굴로 공중을 향해 손을 뻗어, 모습을 드러낸 넝쿨검을 잡았다.

“이 검은 만 장(丈)의 예리함이 숨겨져 있어 선검(仙劍)이라 불리지요. 당신 같은 요괴를 베어 버리는 데에는 검집에서 검을 빼낼 필요도 없을 정도죠. 왜 나한테 알려줘야 하나고요? 당연히 목숨의 위협을 받아서겠죠!”

이렇게 말하며 계연은 넝쿨검을 삼 분의 일 정도 검집에서 뽑아냈다. 그러자 얼음처럼 하얗고 차가운 기운이 주변 해역에 퍼지며 하늘의 별빛마저 어둡게 느껴질 정도였다. 동시에 수많은 바늘로 뼈를 찌르는 듯한 한기가 몰려와 고래의 거대한 몸체가 뻣뻣하게 굳었다.

이것은 그가 생애 처음으로 맞닥뜨린 선검의 위세였다. 아주 일부분만이 검집에서 나왔는데도, 그의 머릿속에는 자신도 모르게 갖가지 장면이 떠올랐다.

은빛이 떨어지는 동시에 자신의 몸이 산산이 조각나는 장면, 검이 날아오르며 자신을 휘감아 돌아 뼈를 도륙하는 장면, 얼음처럼 차가운 기운이 솟구쳐 나와 자신을 통째로 얼려버리는 장면, 검광(劍光)이 무겁게 내리누르며 자신의 몸이 가루가 되는 장면……

계연은 고래를 조금 놀라게 해줄 목적이었지만, 고래는 그 정도의 두려움도 견뎌내지 못했다. 그야말로 몸집에 걸맞지 않은 담력이었다. 고래는 벌벌 떨며 이렇게 소리쳤다.

“죽이지 마세요, 죽이지 마세요! 절 죽이면 후회하실 거예요! 저는 연안에서 묵 어르신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정말 묵 어르신을 기다릴 뿐이었어요!”

계연은 넝쿨검을 다시 검집에 넣고, 눈썹을 찌푸리며 이렇게 물었다.

“묵 어르신? 어떤 묵 어르신? 어디서 온 자죠? 혹시 내륙의 수족(水族)인가요?”

“예예예! 묵 어르신은 도행이 무척 높으신 검은 교룡이세요. 매년 이곳을 지나가시는데, 이번에 저도 멀리서부터 와서 지키고 있던 거예요. 하지만 1년이 넘게 지났는데도 아직 오지 않으셨어요! 저는 사람을 해코지하는 요괴가 아니에요! 정말입니다!”

‘묵영(墨榮)!’

계연은 그의 말을 듣자마자 묵영을 떠올렸다. 대정국으로 겨우 도망쳐 온 뒤 끝내 목숨을 잃었던 그 교룡이었다.

이에 고래가 일컫는 묵 어르신이 묵영이라고 거의 확신한 계연은 빙빙 돌리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당신이 말하는 묵 어르신의 이름이 혹 묵영인가요?”

그의 물음에 쉬지 않고 말을 잇던 고래가 별안간 말을 뚝 그쳤다. 고래는 한쪽 눈으로 조심스럽게 계연을 관찰하며 불안해했다.

‘저자에게 사실대로 말해도 될까? 만약 어르신께서 저자와 사이가 좋지 않다면 어쩌지?’

그러나 계연은 고래의 반응만 보고도 자신의 추측이 맞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곧바로 이어 말했다.

“만약 그가 대정국 완주에서 수행하는 검은 교룡이라면, 기다릴 필요 없어요. 묵영은 이제 오지 않을 테니까요.”

계연의 머릿속에 묵영이 죽던 순간이 다시 떠올랐다. 이렇게 시간이 지났어도 그의 혼백이 사라지던 모습이 떠오르자 다시 마음이 씁쓸해졌다. 동시에 그 늙은 용의 분노도 생생히 기억났다.

계연은 멀리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그의 혼백이 다시 ‘물길을 탔는’지, 아니면 무념무상의 영혼만이 남아 있는지, 혹은 묵영이 다시 수행을 쌓을 기회를 얻었는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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