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6화. 찾아온 이유
응약리는 다급히 궁전 뒤쪽의 깊은 곳으로 들어가, 용담 입구의 동굴에 다다랐다. 그러자 야차 두 명이 손을 뻗어 그녀를 제지했다.
“강신마마, 용왕님께서 깊이 잠들어 계십니다.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응약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들을 가만히 노려보았다. 그러자 두 야차는 몹시 당황하여 결국 손을 거뒀고, 그녀는 안으로 성큼 들어섰다.
하지만 응약리는 단 두 걸음을 떼자마자 무언가 앞을 막아서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녀가 손을 뻗어 앞을 만져보니, 전방의 물결이 무척 두껍게 느껴졌다. 그 안으로 살짝 손을 넣어보니 그녀의 손을 밀어내는 반동이 더욱 커졌다. 동굴 입구는 그녀가 손 전체를 넣을 수도 없이 단단히 가로막혀 있었다.
‘금법(*禁法: 접근을 차단하는 술법)이야!’
“아버지! 들어가게 해주세요! 계 숙부님이 아버지를 찾아오셨다고요. 작년에도 계 숙부님이 또 사라졌다고 계속 투덜대셨잖아요! 삼매진화에 대해 알고 나서도 무척 궁금해하셨고요! 계 숙부님이 직접 오셨다니까요, 아버지!”
응약리가 안쪽을 향해 소리치자, 두 야차는 곤혹스러워하며 그녀를 향해 간청했다.
“강신마마, 소리를 조금 줄여주십시오. 용왕님께서 쉬고 계십니다.”
“강신마마, 계속 이렇게 소리치시면 저희 둘은 용왕님께 죽습니다!”
응약리는 더욱 눈썹을 찌푸리며, 약간 주저하다가 다시 이렇게 소리쳤다.
“아버지, 어쩌면 어머니가…….”
응약리는 별안간 누군가가 자신의 어깨에 손을 올리는 것을 느끼고 말을 뚝 멈췄다. 야차들은 감히 그녀에게 손을 대지 못했기 때문에, 그녀는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계연이 뒤에 와있었다.
“계 숙부님…….”
계연은 고개를 저으며 그녀만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자는 척하는 사람은 절대 깨울 수 없어요. 아니, 자는 척하는 용이라고 해야 정확하겠죠. 그냥 저희 둘만 거경 장군을 만나러 가는 게 좋겠어요.”
이렇게 말한 계연은 손을 거둬들인 후, 용담 안쪽을 향해 양손을 맞잡고 인사하며 인사했다.
“그럼 더는 응 선생님의 휴식을 방해하지 않고 가보겠습니다!”
이렇게 말한 계연은 응약리에게 눈짓을 한 뒤 돌아섰다. 응약리는 잠시 망설이며 다시 용담 입구를 살핀 뒤, 결국은 더 고집하지 않고 계연을 따라 떠났다.
얼마 후 두 사람은 용궁에서 나와 수면 위쪽을 향해 헤엄쳤고, 사람이 아무도 없는 강가에서 빠져나와 구름을 타고 높이 날아갔다.
그로부터 약 반 각 뒤, 통천강의 다른 쪽 강물에 다시 한번 파문이 일었다. 육안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 용의 형상을 닮은 모호한 기운이 그 위로 솟구쳤다.
* * *
다시 하루하고도 반나절이 지난 뒤, 계연은 응약리와 함께 조월국의 해안 지방에 도착했다. 응약리는 여정 내내 무언가 깊은 생각에 잠긴 듯 보였고, 지금에 와서는 조금 초조해 보였다.
“계 숙부님, 그 고래는 어디에 있나요?”
응약리는 자세히 해역을 살펴보았지만, 파도가 넘실대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심지어 모습을 드러내고 직접 바다로 들어가 찾아보기도 했다.
“잘 모르겠네요, 아마 숨었을 수도 있어요. 어차피 저를 그다지 믿을 수도 없을 테니…….”
계연은 응약리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괜찮아요. 지난번에 그자의 등뼈 부근에 검기(劍氣)가 조금 스며들었었거든요. 금방 찾을 수 있어요.”
우웅……!
계연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등 뒤의 넝쿨검이 검명(劍鳴)을 울리며 날아와 계연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가서 찾아오렴.”
우웅!
넝쿨검은 다시 한번 검명을 낸 후, 검신 전체를 번쩍이더니 순식간에 사라졌다. 동시에 아래쪽 바다에 약 1장(*약 3m) 길이의 골짜기가 파이더니, 넝쿨검이 그 사이로 날아갔다. 바닷물이 날카로운 검기에 의해 양쪽으로 찢어졌고, 선검이 지나간 곳에는 물길이 드러났다.
“우리도 따라가죠.”
계연과 응약리는 다시 공중을 날아 넝쿨검의 뒤를 쫓아갔다.
“휴, 아버지도 참! 왜 안 오신 건지!”
응약리는 여전히 응굉의 반응을 답답해하고 있었다. 계연은 공중을 날아가는 동시에 가까운 상공과 해역을 살펴보았다. 그러던 중 계연의 눈빛이 약간 반짝였다. 계연은 가벼운 어조로 이렇게 대답했다.
“왔을 수도 있어요.”
이는 계연이 정말로 늙은 용의 존재를 느낀 것이 아니라, 단순한 추측일 뿐이었다. 처지를 바꿔 자신이 응굉이었더라도 몰래 따라왔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멀리 하늘에서는 안개로 변한 용의 형체가 다시 조심스럽게 구름 속으로 숨어들었다.
‘계연 저자는 정말 예민하다니까! 신형대법(*蜃形大法: 신(蜃)은 기운을 토하여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보이게 할 수 있는 교룡. 신기루를 만드는 술법)을 이용해 분신(分神)해서 따라왔는데도 느낄 수 있단 말이야?’
약 일각이 지난 뒤, 멀리 해수면 위로 ‘쿠웅!’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고, 상공을 향해 물보라가 솟구쳤다.
“죽이지 마세요……! 선장님, 살려 주세요!”
거대한 고래 하나가 해수면을 뚫고 튀어 오르더니, 10장(*약 30m) 높이의 고공까지 치솟은 뒤 낙하했다.
철퍽!
큰 소리와 함께 해수면에 무언가 거대한 것에 뚫린 듯 깊은 구멍이 생기며 사방으로 물이 튀었다.
고래로 인해 한쪽에서는 높은 파도가 일어, 이쪽을 향해 밀려왔다. 하늘에서는 마치 비가 내리는 것처럼 계연이 일으킨 바닷물이 투두둑 떨어져 내렸다. 넝쿨검은 이 빗속에서 검광을 한번 번쩍이더니 다시 계연의 뒤쪽으로 돌아왔다.
“기다리고 있으라 했는데 왜 숨었죠?”
구름을 타고 해수면 가까이 떠 있던 계연은 평온하게 물었다. 그러고는 고래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곧바로 옆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분이 누구신지 당연히 알고 있겠죠? 응 선생님은 깊이 잠들어서 깨우지 못했어요.”
계연은 뒷말을 일부러 길게 늘어뜨리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고래는 당연히 큰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사실 그는 온 정신을 응약리를 향해 집중한 상태였다.
“이, 이분께서 약리마마이시군요, 군모와 무척 닮으셨습니다…….”
고래는 비록 처음 그녀를 만나는 것이었지만, 곧바로 그녀가 진짜 응약리임을 알아보았다. 그의 정중한 태도는 계연을 대할 때보다 훨씬 더했다.
응약리는 원래의 담담하고 위엄있는 모습을 회복한 상태로 고래를 향해 물었다.
“네가 나의 모친께서 책봉한 거경 장군이라지? 모친께서 너를 보내셨느냐?”
고래는 수면 위를 한 바퀴 돌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실은 아닙니다. 군모께서 어찌 이런 일을 입에 담으시겠습니까? 제가 몰래 묵 어르신을 찾아 나온 것입니다. 군모의 명을 거역할 수 없어서 원래는 용왕님과 두 분 전하께 말을 전하지 않으려 했지만, 묵 어르신께서…….”
응약리의 눈빛이 조금 어두워졌다.
‘모친께서 보내신 것이 아니었다니.’
“그럼 여기는 무슨 일로 왔지?”
그러자 고래는 아무런 숨김없이 사실대로 고했다.
“실은 백 년 전쯤부터 황해(荒海) 밖에서 물요괴들이 자주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약 2, 30년 전에 도행이 깊은 교룡 하나가 나타났는데, 군모께 집요하게 달라붙어서……. 군모께서는 언짢음에 용암도(龍岩島) 밑으로 피하셨고, 이미 10년이 넘도록 나오지 않고 계십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화가 나서, 묵 어르신을 찾아 그놈을 혼내달라고 청하고자 했습니다……. 그 뒤의 일은 선장께서 알고 계시고요.”
“뭐라? 그런 일이 있었단 말이냐? 그놈이 죽고 싶은가 보구나!”
응약리는 듣자마자 얼굴을 확 구겼고, 진노한 용의 기운 때문에 그녀의 머리카락이 사방으로 둥둥 떠올랐다. 그와 동시에 무형의 기운이 그녀에게서부터 솟구쳐 나와 주위를 뒤덮었다.
응약리가 크게 분노하자, 주위의 바닷바람은 물론이고 파도마저 더욱 거세게 불어 닥쳤다.
수면 부근에는 안개가 자욱하게 끼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마치 이리저리 꿈틀대는 것처럼 보였다. 이때 늙은 용의 분신(分神)이 바로 이 안개 안에 신기루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현재 응약리와 비슷한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사이가 어떻든 간에 그녀는 아직도 자신의 부인이었다. 그들은 게다가 진룡(眞龍)이 되기 전에 응약리와 응풍을 가졌던 터라, 당시의 깊은 정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고래는 주위에 거센 파도가 일자, 때때로 해수면 안으로 사라졌다 나타났다 했다. 그는 응약리의 반응에 자신도 더욱 비분강개하며 대답했다.
“마마의 말씀대로입니다. 그 요괴가 정말이지 사는 게 지겨워졌나 봅니다. 감히 저희 군모를 귀찮게 하다니요. 제 도행이 그자보다 얕지만 않았더라면, 그 자리에서 바로 죽여버렸을 것입니다!”
“흥, 묵영은 없어도 아직 내가 있지 않으냐? 그놈은 대체 어디서 온 자이냐? 거느리는 요물이 몇이나 있지? 아니, 됐다. 얼른 길을 이끌어라. 내 목숨을 걸어서라도 그자를 처단할 것이다!”
응약리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지만, 실은 그 와중에도 계산을 끝낸 뒤였다. 비록 아버지는 오지 않았지만, 계 숙부님이 옆에 계시니 숙부님이 자신이 이렇게 말을 하면 반드시 도와줄 터였다.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나 계 숙부님 둘 중 한 분만이라도 나서준다면, 상대가 어떤 자이든지 간에 상대도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계 숙부님을 자신의 집안일에 끌어들이고 싶지는 않았지만, 만약 정 안 된다면 숙부님께 물건 하나만 빌려 달라고 부탁을 할 생각이었다. 숙부님은 그 정도는 들어줄 터였다.
그리고 과연 응약리가 ‘목숨을 건다’고 하자, 듣고 있던 계연은 마음이 놓이지 않아 이대로 두고 볼 수가 없었다. 그의 생각에 응풍은 비교적 어디로 튈지 모르는 성격이었고, 응약리는 훨씬 더 침착한 성격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응약리처럼 화가 난 이들은 이런 상황에서 대부분 실수를 하곤 한다. 평소의 위엄있는 태도를 내려놓을 정도인 것을 보니, 계연은 차마 관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강신마마, 침착하세요. 상대는 황해 밖에서 온 교룡이고, 영당(*令堂: 상대의 어머니를 정중하게 부르는 말)께 그리 귀찮게 구는 것을 보니 분명 실력이 있는 자일 거예요.”
응약리는 깊이 심호흡하여 냉정함을 조금 되찾은 뒤 계연에게 대답했다.
“계 숙부님. 저도 이 일이 쉽지 않을 거라는 것은 알지만, 자식으로서 그런 이야기를 듣고 어찌 마음 편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약리가 숙부께 어려운 청이 하나 있습니다. 물론, 숙부님의 손에 피를 묻히게 하지는 않겠습니다!”
응약리가 저 수선자를 ‘숙부님’이라 부르는 것을 보자 고래는 속으로 무척 놀랐다.
계연은 눈썹을 찡그리며 수면에 떠 있는 고래를 잠시 보다가 다시 응약리를 향해 물었다.
“무슨 청인가요?”
그러자 응약리는 계연 등 뒤의 선검에 시선을 던지며 이렇게 말했다.
“무례를 무릅쓰고 부탁드립니다. 계 숙부님의 넝쿨 선검을 한 번만 빌려주세요. 아버지께서는 일전에 모든 선기(仙器)에는 영험함이 깃들어있다 하셨습니다. 게다가 넝쿨검은 살생의 기운이 강한 선검으로서, 그 날카로움과 영험함이 무척 비범하여 아버지조차 조금 꺼려진다고도 하셨었지요. 그 비늘 달린 짐승 놈이 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선검을 당해낼 수는 없을 겁니다. 그래서 숙부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