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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가기연-327화 (327/892)

327화. 걸출한 필치의 뛰어난 글씨

늙은 용은 수면에 깔린 안개 중에 형체를 숨기고서 초조한 마음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저 어리석은 것, 넝쿨검이 계연의 손에서는 물론 뜻대로 움직여 주겠지. 하지만 그놈이 선검을 당해낼 수 있는지와는 별개로, 네가 그걸 휘두를 수나 있겠느냐?’

계연은 넝쿨검이 미세하게 진동하는 것을 느꼈다. 응약리의 의견을 그다지 내켜 하는 것 같지 않았다.

“됐어요, 제가 같이 가는 것으로 하죠. 그 요물을 만난 후 마마께서 그자를 꼭 제거해야겠다는 생각이 드신다면, 그때 가서 넝쿨검을 빌려드릴게요. 제가 옆에 있으면 그래도 한 번 휘두를 수 있게는 해줄 거예요.”

선기는 모두 자존심이 무척 셌다. 계연을 무척 의지하는 넝쿨검조차 그러했다.

비록 계연이 넝쿨검에게 응약리를 근처에서 지키라는 명령을 내리거나, 그녀가 누군가를 공격하려 한다면 가서 베어버리라는 명령을 내릴 수도 있었지만, 그다지 안심이 되지는 않았다.

그러자 응약리도 고집을 피우지 않고 바로 예를 올리며 감사를 표했다.

“계 숙부님이 같이 가 주신다면 저야 감지덕지하죠! 그럼, 지금 바로 갈까요?”

계연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고개를 돌려 육지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저기 어촌에 한번 갔다 올게요. 그 후에 출발하죠.”

이렇게 말을 하자마자 계연은 내륙 쪽을 향해 날아갔다.

응약리는 그것을 잠시 바라보다가 고래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기서 가만히 기다려라. 아무 데도 가지 말고.”

그 후 응약리도 계연의 뒤를 따라갔다.

조월국 해안 지방의 편만촌에서는 집집마다 모두 경사스러운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다. 곧 새해가 다가오는 데다가, 바다에 있던 요괴를 내쫓아 내년에는 생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었다.

이는 법사의 말뿐만이 아니라, 많은 어민이 직접 보고 말해준 결과였다. 누군가 시험 삼아 그물을 쳐봤더니, 이미 조금씩 고기가 잡히기 시작했다고도 했다. 비록 많지는 않았지만, 이전과 비교하면 무척 긍정적인 변화였다.

하지만 장씨 집안사람들은 최근 며칠간 근심에 잠겨있었다. 전항촌의 양씨 집안사람들도 그러했다.

바로 얼마 전 요괴를 쫓아내려 횃불 진을 만들었던 밤에 계 선생님이 실종되었기 때문이었다.

낯선 곳에서 아는 이도 별로 없는 타지인이 그런 어두운 밤에, 인사도 하지 않고 떠났을 가능성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계 선생님이 사라진 이튿날, 그들은 사람들을 꾸려 다시 그 기슭으로 돌아가 보았으나 아무런 소득도 없었다. 그래서 장씨, 양씨 집안사람들은 물론이고 인근 이웃들은 모두 계연이 바다에 떨어져 목숨을 잃었을 것이라고 여겼다.

두 집안 사람들이 보기에 이는 그야말로 타지에서 객사(客死)한 것이었다. 그들은 두렵기도 하고 양심에 찔리기도 해서,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 지전(*紙錢: 돈 모양으로 오린 종이. 죽은 사람이 저승으로 갈 때 쓰라는 목적)을 두 번이나 태우고 왔다.

하지만 어쨌든 곧 새해이기도 하고 내년 어획량에 대해 낙관적인 상태가 되자, 그들은 조금씩 근심을 잊고 새해를 맞을 준비를 시작했다.

계연이 편만촌에 도착했을 때는 마침 이른 아침이었다. 장부와 그의 아내는 함께 나무통과 걸레를 들고 문과 창문을 닦고 있었다. 장부의 아버지는 집 앞 공터에 앉아 어망(漁網)을 정리하는 중이었다.

어촌 마을의 집들은 어망이며 생선을 말리는 지지대를 죽 벌려 놓았기 때문에, 집 사이의 간격이 비교적 떨어져 있는 편이었다.

계연은 천천히 마을을 향해 걸어갔고, 응약리는 몇 걸음 떨어져 따라오고 있었다. 주위의 마을 사람들은 그 두 사람이 마을로 들어오는 것을 보지도 못한 듯했다. 하지만 장부는 대문을 깨끗이 닦고 막 몸을 돌렸을 때, 계연이 문가에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어이쿠!”

콰당……!

장부는 자신이 귀신을 본 줄 알고 깜짝 놀라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가 넘어지던 순간 물통도 바닥에 넘어져 사방에 구정물이 튀었다.

이 소리를 듣고 그의 아버지가 몸을 돌려 문가를 바라보았고, 계연을 발견한 그도 심장이 덜컹 멈추는 듯했다.

“어르신, 장 동생, 무서워하지 마세요. 저는 귀신이 아니에요. 지금은 태양도 떠 있고, 저는 이렇게 햇빛 아래 서 있잖아요. 또 발밑에 이렇게 그림자도 있고요!”

장씨 부자는 놀란 마음을 다스리며 조심스럽게 땅바닥의 그림자를 확인했다. 게다가 이렇게 해가 환히 뜬 시각이니, 아무리 생각해도 계연은 귀신이 아닌 듯했다.

이런 구분 방식은 민간에서 가장 흔히 퍼져있는 것이지만, 사실 그다지 정확한 것은 아니었다. 대단한 귀신들은 이런 식으로 구분해낼 수 없었다. 하지만 귀신과 사람을 구분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기는 했다.

“계, 계 선생님! 괜찮으셨어요?”

“괜찮아요. 아무 일도 없었어요. 실은 좀 부끄럽지만, 그날 밤에 요괴가 나타나자마자 몸을 피했었거든요. 그러고는 마을을 벗어나서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쳤었어요…….”

계연은 무척 미안한 듯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그 법사가 요괴를 쫓아 보냈다는 말을 듣고, 부끄럽기도 하고 그래도 인사는 해야 할 것 같아서 이렇게 돌아왔어요. 참, 양씨 집안 가족들은 모두 괜찮죠?”

“괜, 괜찮습니다…….”

장부는 약간 얼떨떨한 얼굴로 이렇게 대답했다.

그의 말을 듣자 계연은 그제야 미소를 지으며, 두 사람을 향해 읍했다.

“여러분 모두 아무 일도 없는 걸 확인하니 저도 마음이 놓이네요. 며칠 전 베풀어주신 환대와 그 후에 저를 찾으러 기슭에 가주신 것도 정말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당연한 일인데요…….”

“맞아요. 선생님께서 괜찮으시다니 저희도 이제 안심이 되네요!”

계연이 실종되었던 이유가 이치에도 맞고 이해도 되었기 때문에, 부자는 그제야 정말로 마음을 내려놓고 이렇게 대답했다.

“곧 떠나야 하지만, 이왕 여기까지 온 데다 감사한 일도 있으니 제가 여러분께 보답으로 선물을 하나 드릴게요.”

계연이 생각에 잠긴 얼굴로 이렇게 말하자, 장부와 그의 아버지는 연달아 사양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선생님은 멀리서 온 손님이시니 저희가 접대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요. 게다가 저희 마을을 도와 함께 횃불도 들었었고…….”

이때 집안에서 장부의 부인과 아이가 나왔다. 그러자 장부가 그들을 향해 조금 전 일을 설명하며 계 선생님은 무탈하시다는 말을 전했다.

그 순간 계연은 방금 무언가 생각난 듯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참! 집을 청소하시는 걸 보니 새해를 맞을 준비를 하시는 거죠?”

계연은 장부가 들고 있던 물통과 걸레를 본 다음, 뜰 여기저기를 살폈다.

“그럼 이렇게 하죠. 저는 그리 값나가는 물건도 없고, 곧 새해이기도 하니, 여러분과 양씨 집안 분들을 위해 ‘복(福)’자 두 장을 써드릴게요. 제가 이래 봬도 글을 괜찮게 쓰거든요.”

“그, 그래도 될까요?”

“그 정도면 받아도 괜찮은 것 같구나…….”

장씨 일가는 조금 마음이 동했다. 만약 계연이 글을 써준다면, 나중에 시장에 가서 새해를 기복하는 글을 따로 장만하지 않아도 되었다.

“괜찮고 말고요! 붓이랑 먹은 제가 가지고 있으니, 정사각형 모양의 붉은 종이 두 장만 구해다 주세요!”

“아아, 있습니다, 있어요! 부인, 어서 가서 봉투 접으려던 붉은 종이 좀 찾아와 주시오!”

장부가 부인을 향해 이렇게 말하자, 그녀가 서둘러 종이를 찾으러 들어갔다.

그 후 장씨 부자는 차를 마시고 가라며 계연을 안으로 초대했다.

약 반 각 후, 집 안의 네모난 탁자 위에 붉은 종이 두 장이 놓였다. 그 옆에는 벼루에 잘 갈아놓은 먹물이 준비되어 있었고, 계연은 막 굵은 붓 한 자루를 손에 쥐고 있었다.

그 붓은 진짜 늑대 털로 만든 붓이었다. 계연이 섬에서 수행하던 동안 깨달음을 떠올리며 직접 만든 것으로, 오늘 처음 사용하는 것이었다.

먹물에 붓을 적신 뒤, 계연은 종이 위에 소매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기세가 범상치 않은 커다란 ‘복’ 자가 종이 위에 드러났다. 이때 근처에서 그가 쓰는 글씨를 바라보고 있던 응약리는 순간적으로 계연의 붓끝에서 붉은 꽃이 피어나는 것을 보았다.

‘그야말로 묘필생화(*妙筆生花: 걸출한 필치, 뛰어난 글재주. 이백(李白)이 소년 시절에 붓끝에 꽃이 피는 꿈을 꾸고 나서 문사(文思)가 크게 진보하여 세상에 이름을 떨쳤다고 한데서 유래함)로구나!’

계연은 정신을 집중해 정성스럽게 복 자를 썼고, 마침내 두 장이 완성되었다.

장씨 가족들은 비록 글을 모르지만, 계연이 쓴 글자는 보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하고 눈이 즐거운 비범한 솜씨였다. 그가 글을 쓰는 모습도 그러했고, 글자 자체도 그렇게 느껴졌다.

그가 붓을 내려놓자 은은한 빛이 글자 위로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찰나에 불과해, 아무도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계연은 딱 두 장만 쓰고 멈췄다.

장부는 탁자 위에 아직 많이 남은 종이를 보고, 머리를 긁적이며 이렇게 요청했다.

“계 선생님, 아직 종이가 많이 있는데 몇 장만 더 써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이웃분들께도 좀 나눠드리려고요.”

하지만 계연은 이미 붓을 갈무리하여 벼루를 밀어버린 뒤였다. 그러고는 천천히 말라가는 글자를 보며 장씨 일가를 향해 웃으며 대답했다.

“글자를 남기는 것은 천금(千金)의 가치가 있다 하는데, 어찌 쉽게 글을 쓰겠어요? 한 장은 여기 대문에 붙이시고, 다른 하나는 전항촌의 양씨 집안에 전해 주세요!”

계연은 이렇게 말한 뒤, 벼루와 붓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문밖에서는 응약리가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

장씨 가족들은 여전히 그의 글씨를 감상하고 있었고, 장부와 그의 아버지만이 계연이 가려는 듯이 보이자 따라 나와 만류했다.

“계 선생님, 우리 집에서 식사라도 하고 가세요. 며칠 묵고 가셔도 좋고요!”

“아니에요, 사실 급한 일이 생겨서요. 누가 기다리고 있거든요,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계연이 문을 나서자 두 사람도 그를 배웅하러 따라 나왔다. 마을 밖을 봐도 기다리고 있다는 이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그들은 계 선생님이 폐 끼치기 미안하여 둘러댄 말이라고 여겼다.

장 노인이 계연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계 선생님, 며칠 전의 일은 너무 신경 쓰지 마십시오. 선생님께 아무 일도 없었다는 걸 알았으니, 저희는 모두 마음 놓고 새해를 맞이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그리고 이렇게 좋은 글자도 남겨 주셨고요. 선생님 고향은 여기서 무척 멀기도 하고, 곧 새해이기도 하니 아무리 서둘러도 시간 맞춰 도착하지 못하실 겁니다. 그러니 서두르지 마시고, 우리 집에 머물다 가시지요…….”

계연은 그의 말에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특히나 이렇게 세태가 어지러운 조월국에서 호의를 받으니 더욱 그러했다. 그는 몸을 돌려 노인을 향해 다시 한번 양손을 맞잡고 인사했다.

“그런 이유로 이러는 것은 아니에요. 어르신께서는 잘 모르시겠지만, 저는 꽤 얼굴이 두꺼워서 신세 지는 걸 꺼리지 않거든요. 정말로 더는 머물 수 없는 이유가 있어서 그래요. 참, 저 글자를 만약 누가 사고 싶다고 하거든…….”

계연은 웃음기를 거두고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게 누구든, 얼마를 내든, 절대 팔면 안 돼요! 양씨 집안에도 꼭 전달해 주세요. 아셨죠?”

계연의 표정이 무척 엄숙한 것을 보고, 장씨 부자는 서로 잠시 시선을 맞춘 뒤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네, 그럼 저는 이만 가볼게요. 더 나오실 필요 없어요.”

이렇게 인사한 계연은 성큼성큼 떠나갔다. 열 걸음 정도 후에는 계연의 손안에 있던 벼루와 붓이 어느새 사라졌다.

그리고 단 몇 분 만에 계연의 모습의 그들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두 사람은 그의 만류에도 골목까지 따라 나왔는데, 계연이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빨리 사라지셨다고?”

장 노인이 의아해하며 아들을 향해 묻자, 장부도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되었다, 그만 가자. 춘란(春蘭)이 곧 친정에 가니, 그때 계 선생님이 써주신 글자를 가지고 가면 되겠구나. 방금 절대 팔지 말라고 하신 말씀도 잊지 말고 전해야 한다.”

“예, 알겠어요. 저와 춘란과 함께 장인어른 댁에 갈 거예요.”

부자(父子)는 이렇게 말을 주고받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들은 마저 대청소를 끝내고 깨끗한 기분으로 새해를 맞이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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