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330화 (330/892)

330화. 붓을 씻고 수련을 쌓다

이것을 본 배에 탄 두 명의 진인들은 그제야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용의 진노를 불러일으키지 않았으니 된 것이다. 하지만 저 인사를 그대로 받고 서 있을 수는 없어, 그들은 또다시 고래가 있는 방향을 향해 읍했다. 이번에 올린 인사는 주로 계연을 향해서였다.

“고래 위에 책상을 놓고 글을 쓴 저 사람은 정체가 대체 뭘까요? 이교(螭蛟) 여인은 보아하니 저분 곁에서 시중을 드는 것 같죠?”

“잘 모르겠네. 용족인지 아닌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성격은 무척 온화한 것 같군.”

두 진인이 이렇게 대화를 나누던 때에도, 다른 수선자들이나 범인들은 먼 곳의 상황이 어찌 돌아가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방금 거대한 용을 목격하고 흥분에 찬 사람들은 저 아래에 거대한 무언가가 헤엄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하지만 그 위에 탄 사람들은 참깨처럼 작아 보여서, 어떤 동작을 하는지도 보이지 않았다.

“지(池) 진인, 이대로 바로 떠나야 할까요, 아니면 좀 더 가까이 가야 할까요? 배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저쪽으로 가까이 가고 싶어 합니다.”

배의 조종을 책임진 수사가 다가와 이렇게 물었다. 두 진인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더니, 다시 뱃전에 서서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모인 이들을 바라보았다. 아래층 창문가에도 사람들이 딱 붙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이에 그들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이렇게 대답했다.

“적당한 높이까지 하강했다가, 천천히 저분들을 스쳐 지나가도록 하지. 하지만 배 안의 승객들에게 반드시 조용히 해야 하며, 고래를 지날 때는 모두 인사를 올려야 한다고 알리게.”

한 사람은 이교이고, 또 한 사람은 고래 등 위에 책상을 놓고 글을 쓰는 사람이니 분명 범상치 않은 이들이 분명했다. 그러니 그들로서는 충분히 인사 올릴 만한 이유가 있었고, 동시에 승객들의 호기심도 충족시켜줄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계연과 응약리는 그 거대한 배가 천천히 하강하는 동시에 이쪽으로 가까워지는 것을 발견했다.

“계 숙부님, 제가 저들을 쫓아낼까요?”

응약리는 계 숙부님이 곧 술법을 쓸지도 모른다 여겨 이렇게 물었는데, 계연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냥 놔둬. 시간도 딱 좋고 저들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우리를 방해하지 않을 테니 말이야. 잠시 후 내가 술법을 운용하면 자세히 봐야 한다. 이후에 진룡으로 거듭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거야.”

오늘 밤, 그는 습관대로 넝쿨검이 맑은 기운을 모으도록 하는 것과 자신의 수행을 닦는 것 말고도, 낭호(*狼毫: 늑대 털로 만든 붓)를 강화할 예정이었다. 새해의 맑은 기운의 도움을 받아, 계연은 자신이 생각하던 바를 한번 시험해 볼 생각이었다. 어쩌면 이 과정을 응약리가 좀 더 또렷하게 관찰할 수 있게 하여, 응약리를 도울 수 있을지도 몰랐다.

둘의 발치에 있던 거경 장군이 돌연 불만을 토로했다.

“하늘에서 날아가기만 하면 몰라, 왜 굳이 바다로 내려와서 날 앞지르려 한담, 흥!”

그의 말과 함께 계연은 돌연 자신의 몸이 뒤로 기울어지는 것을 느꼈다. 거경 장군이 속도를 더욱 빨리 내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응약리가 발을 들어 세게 내리치자, 거경 장군은 ‘어이쿠!’ 하며 즉시 속도를 줄였다.

“섣달 그믐날 밤에 계 숙부님께서 내게 벼락과 비바람을 멈추라 하신 건 다 이유가 있어서야. 괜한 문제 일으키지 말아라.”

응약리가 엄하게 꾸짖자, 거경 장군은 당연히 말대꾸하지 못했다.

“예, 예. 약리마마의 말씀에 따르겠습니다.”

거경 장군은 더는 속도를 낼 엄두를 내지 못했고, 오히려 조금 전보다 느려지기까지 했다.

계연은 아래쪽의 소동을 신경 쓰지 않고, 머리 위 별이 뜬 밤하늘을 올려 보았다.

이 시각에는 하늘에 별과 달이 밝게 빛나고 구름은 한 점도 없었다. 자시(*子時: 밤 11시에서 오전 1시)까지는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그는 시간을 헤아릴 필요도 없이, 천지의 기운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만 있으면 되었다. 새해와 묵은해가 교차하는 것을 그는 이미 여러 번 봤었다. 하지만 환경이 다르면 또 다른 변화가 일어나기도 하니, 바다 위에서는 또 어떨지 그도 알 수 없었다.

잠시 후, 계연은 법안으로 하늘과 땅 사이에 은은한 빛무리가 나타난 것을 보았다. 원래 계연은 모든 것이 흐릿하게 보였는데, 조금 전 짧은 찰나에는 세상이 무척 또렷하게 보였다.

점차 희뿌연 기운이 하늘과 땅 사이에 솟아올랐다. 그 속에서 두 가지 기운이 모여들고 있었다. 이렇게 뒤바뀌는 기운은 계연의 눈에 더없이 또렷하게 보였다.

아득한 동해 위, 어떤 사람의 기운도 없는 곳에서 새해로의 뒤바뀜은 여전히 계연을 전율하게 했다.

천지 간에 모인 희뿌연 기운은 천천히 맑은 기운과 혼탁한 기운 두 가지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맑은 기운은 점차 쌓이며 위로 상승했고, 혼탁한 기운은 아래로 내려가며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두 가지 기운이 ‘뜯어지며’ 중간에 새로운 공간이 나타났다.

마치 하늘에 걸린 장막이 스르르 걷히는 것처럼, 그 중앙에서 새해의 기운이 드러났다.

새해와 묵은해가 교차하는 순간, 응약리는 천시(天時)의 변화를 미세하게만 감지할 수 있었다. 이교인 그녀가 이 정도이니, 거경 장군과 저 멀리 배에 탄 사람들은 논할 가치도 없었다.

하지만 이 세상의 변화는, 계연의 눈에는 매번 볼 때마다 전율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무의식인 상태에 빠져있을 때를 제외하면, 계연은 매해 이 순간을 되도록 놓치지 않으려 했다. 이때도 마찬가지여서, 계연이 손을 한번 휘두르자 넝쿨검이 즉시 상공으로 솟아올라 새롭게 펼쳐진 새해의 맑은 기운 안으로 향했다.

챙……!

넝쿨검의 맑은소리가 멀리까지 퍼져나갔다.

사위는 여전히 어두웠으나, 영각(靈覺)이 민감한 이들은 한순간 은백색의 빛이 스쳐 지나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넝쿨검은 능숙하게 새해의 맑은 기운을 잘라내, 그것을 가지고 해수면 위로 돌아왔다. 계연은 그 순간 붓을 잡고 하늘을 향해 몇 번 붓을 휘둘렀다. 그러자 넝쿨검의 검신(檢身)에 구름처럼 휘감긴 기운이 붓끝으로 흘러들어왔고, 뒤이어 그의 몸 안으로까지 밀려왔다.

이것은 다른 이들에게는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으나, 계연에게는 적당히 길고 만족스러운 수행이었다.

계연은 별안간 붓을 쥔 자세를 바꾸며 상공에 대고 빠른 속도로 무언가를 써 내려갔다. 이런 방식을 통해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맑은 기운이 붓끝에 휘감기도록 했다.

“정신을 붓끝에 집중하고, 하늘과 땅 사이에서 두 가지 기운이 갈라지는 것을 관찰해보렴.”

응약리는 그의 말에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다급히 심신을 가라앉히고 모든 주의력을 계연이 든 붓끝에 쏟았다. 동시에 조용히 헤엄치던 아래의 거경 장군도 어떻게든 눈알을 뒤로 돌려 조금이라도 그의 가르침을 받으려고 했다.

붓끝에서는 꽃이 피어나듯, 맑은 기운이 한 줄기씩 모여들어 먹물과 같은 역할을 했다. 그것은 반짝였다 사라지는 문자를 형성했고, 이는 마치 책으로 남지 않는 천록서와 같았다.

응약리 정도의 도행을 가졌다더라도 겨우 스쳐 지나가는 짧은 순간만 이를 포착해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충격적인 변화를 직접 두 눈으로 보게 되었다. 세상에 서린 맑은 기운과 혼탁한 기운이 서로 분리되더니, 새해의 장막이 열린 순간을 말이다.

“이게 무슨…….”

응약리는 정신이 나간 것처럼 이렇게 혼잣말을 했다. 그녀는 계연이 든 붓끝을 유심히 관찰해보았으나, 이때 계연은 이미 손을 멈춘 뒤였다.

거경 장군은 응약리처럼 찰나에 스쳐 지나간 장면을 목격하지는 못했으나, 두 가지 기운이 갈라지는 것을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이제 혼곤한 상태에 빠져 이리저리 기우뚱대며 헤엄치고 있었다.

배 위에 탄 이들은, 수선자든 범인이든, 혹은 소수의 요괴든 모두 계연이 본 기적적인 장면을 목격한 자는 없었다. 또한, 응약리처럼 붓끝에서 펼쳐진 변화를 감지한 자도 없었다. 거경 장군은 가까이에 있어 어느 정도 깨달음을 얻었긴 했으나, 이쪽에 있던 이들은 아예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그들은 세상의 변화를 볼 수는 없었지만, 사람의 변화는 관찰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더욱 황당하고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느낌을 받았다.

몇 초 전, 그들은 새해를 맞이했다.

멀리 고래의 등 위에서 한 사람이 붓을 휘두르자, 그 사이로 묘연한 ‘무언가’가 나타났다. 그것은 사라질 듯 희미하며 아득히 먼 동시에, 무척 또렷하여 손을 대면 닿을 듯 느껴지기도 했다.

범인들조차 고래 등 위에서 펼쳐진 모든 일을 마치 지척에서 본 것처럼 또렷하게 볼 수 있었다.

그보다 분명할 수 없고, 또렷하고, 동시에 무겁고 혼탁한 기운이 고래 위로 모여들었는데, 그 부분을 뺀 주위는 온통 흐릿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단 몇 초 만에, 주위의 모든 모호하고 흐릿한 기운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청색 장포를 입은 남자가 든 붓끝에는 푸른 빛이 오래도록 서려 사라지지 않았다.

“방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배 위에 있던 한 진인이 멍하니 자신의 사형을 향해 이렇게 물었다. 그는 방금 무언가 엄청난 일이 일어난 것을 알았지만, 정확히 그것이 무슨 일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러자 그의 곁에 있던 황색 장포를 입은 진인 또한 멍하니 그곳을 쳐다보며 천천히 중얼거렸다.

“방금 우리는 세상의 때가 한순간에 씻겨 내려가는 것을 느낀 거야. 그건 모두 저분의 붓끝에서 시작되었어. 선경(仙經)에 이르기를, 새해와 묵은해가 교차할 때는 혼탁하고 맑은 기운이 천지에 깔리고, 만 가지 신묘한 변화가 그 안에 깃들어있다 했지. 모든 생명력의 근본이 저 안에 있는 거야. 저 사람은…….”

그는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이렇게 말을 이었다.

“붓을 씻어 묵은해의 때를 벗겨내고, 붓을 휘둘러 새해의 맑은 기운을 불러일으킨 거야. 저 고인은 세상의 맑은 기운으로 붓을 씻고 수련했어!”

계연은 천천히 손을 거둬들인 다음, 공중에 뜬 붓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붓끝의 푸른 빛은 점차 잠잠해졌고, 붓의 몸통 부분은 원래 갈색에 가까운 대나무였는데 이 순간 비취처럼 또렷한 푸른빛으로 변해 있었다.

잠시 후, 붓의 모든 변화가 천천히 사라지며 보통의 모습처럼 돌아왔다.

계연은 속으로 무척 만족했다. 그러고는 지난 생 펜으로 했듯이 손으로 붓을 한번 휙 돌렸다. 그러자 붓끝에 남아 있던 먹물이 날아가 공중에 긴 호선을 그렸다.

“좋아, 생각한 대로 됐네.”

계연은 기분이 무척 좋았기 때문에 흡족해하는 얼굴로 이렇게 혼잣말을 했다.

응약리는 이때 정신을 차리고는 호기심 어린 얼굴로 계연이 들고 있던 붓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저 붓이 비록 선기(仙器)는 아니지만, 분명 범상치 않은 물건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계 숙부님, 방금 제가 본 것이 무엇인가요? 숙부님께서 만들어내신 건가요?”

그녀의 물음에 계연은 고개를 저었다.

“나도 그 정도의 능력은 없단다. 그건 새해와 묵은해가 서로 교체될 때 나타나는 현상이야. 매년 새해의 첫날 자시(子時)가 되면 꼭 일어나는 일이지. 보통 사람들은 절대 볼 수 없고, 도행이 깊은 자라 하더라도 보기 쉽지 않아. 천지 만물의 생명력이 그때를 기준으로 전환하는 모습이라 할 수 있어.”

이렇게 말한 계연은 응약리를 향해 물었다.

“방금 무엇을 봤지?”

“계 숙부님 덕분에 저도 맑은 기운과 혼탁한 기운이 위아래로 나뉘는 것을 볼 수 있었어요. 그건 마치 하늘과 땅 사이의 장막이 서로 끌어당겨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또 마음이 세례(洗禮)를 받은 것처럼 깨끗해졌고, 후에 진룡으로 탈바꿈할 때 무척 도움이 될 만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응약리는 진룡의 딸로 무척 존귀한 존재였지만, 늙은 용은 교육적인 방면에 있어 그리 뛰어난 자질을 지니고 있지 못했다. 이는 아마 그 스스로가 현묘한 수행의 경지에 이르고 그것을 닦는 데에 있어 정통적인 선도(仙道)를 따라 배운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응약리는 자신의 아버지에게서 무언가 특별한 가르침이나 깨달음을 얻은 경험이 몇 번 되지 않았다.

하지만 계연과는 만날 때마다 거의 항상 용(龍)으로 거듭나는 중요한 요소에 대해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런 연유로 응약리는 계연을 무척 존경하는 동시에 깊이 신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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