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1화. 선주(仙舟)의 내부 전경
촤앗!
발밑의 바다에서 파도가 몰려와 거세게 부딪히는 바람에, 응약리와 계연은 순간적으로 몸의 균형을 잃을 뻔했다. 파도를 헤치고 바람처럼 순탄하게 앞으로 나아가던 거경 장군이 갑자기 멈춰 선 것이다.
응약리는 거경의 얼굴이 있는 쪽을 잠시 살펴보더니, 체념한 듯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계 숙부님, 아무래도 조금 전 붓끝에서 일어난 변화를 무리해서 보려다가 도행이 부족해 정신을 잃은 것 같습니다.”
계연은 웃으며 거경 장군이 조금 귀엽다고 생각했다. 거경이 이번에 조금의 수확이라도 얻었다면 그도 기쁠 것이다.
“하하, 그럼 좀 자게 놔두자. 이렇게 오래 헤엄쳤으니 아마 피곤할 거야. 마침 저 계역을 지나는 나룻배가 이쪽으로 다가오기도 했으니, 올라가서 구경이나 하는 게 어떨까?”
응약리는 별로 구경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으나, 계연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저 비행선에 호기심이 생긴 듯했다. 이왕 숙부님이 먼저 가고 싶다고 말을 꺼냈으니, 당연히 자신도 가고 싶다고 답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비행선이 천천히 이쪽을 향해 가까워졌다. 그 안에 타고 있던 승객들은 거의 전부 고래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갑판에 있던 이들은 저 고래가 고인(高人)을 등에 지고서 바다를 헤엄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비행선의 맨 위층 갑판에서는 몇몇 젊은이들이 선배들의 인도하에 점점 더 가까워지는 고래를 바라보고 있었다.
“와, 저 고래 엄청 크다. 거의 건물 하나랑 맞먹는 크기인걸.”
“사백(*師伯: 사부의 사형(師兄)), 저 고래 등 위에 탄 여인이 교룡이니, 다른 한 사람도 용일까요?”
그가 이렇게 질문한 사백은 약 6, 70살이 되어 보이는 노인이었다. 백발에 수염을 길게 길렀으며, 머리에는 작은 관(冠)을 써서 단정히 틀어 올리고 있었다. 그는 멀리 고래가 있는 쪽을 바라보며 탄식하듯 말했다.
“저분은 용족은 아니고 분명 선도를 닦는 고인일 것이다. 방금 저분이 공중에 붓을 휘두를 때가 정확히 신년으로 바뀌는 시점이었고, 또 우리 모두 주위가 흐릿해지는 걸 느꼈지.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니야. 저분은 도행이 높고 고묘(高妙)한 술법을 익히신 분이다!”
“어떤 고묘한 술법 말입니까, 사부님?”
그러자 노인은 제자를 째려보며 대꾸했다.
“내가 알면 나도 같이 가서 배웠지! 참, 저쪽에 가까워지면 꼭 공손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 경거망동하지 말고. 알겠느냐?”
“알겠습니다, 사백!”
“예, 사부님!”
젊은이들은 이렇게 대답하고는 다시 먼 곳의 고래를 바라보았다.
“이런 망망대해 위에서 고래를 밟고 책상에 엎드려 글을 쓰니, 얼마나 운치 있는 일일까? 나는 언제 저렇게 될 수 있으려나?”
“헛된 꿈 꾸지 마. 저만한 도행을 쌓지 못하면 당연히 저런 운치도 없지. 무슨 고래며 용녀(龍女)가 시중을 들어주겠어?”
그러자 그들의 대화를 들은 노인이 고개를 돌려 자신의 제자와 사질(師姪)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일리 있는 말이다. 그러니 수행을 닦는 것을 게을리하면 안 된다. 자신이 속세의 사람들과는 다르다고 여기며 자만하지 말란 말이다. 이 드넓은 천하에 고인(高人)이 얼마나 많은데, 그들 눈에는 나조차도 범인(凡人)들과 그리 다르게 보이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우리는 천하에 삿된 존재들이 얼마나 많고, 또 그들이 어느 정도의 능력을 지녔는지도 모르지 않느냐. 결국 도(道)를 깨우치지 못하면, 진정한 자유를 논할 수 없는 법이다.”
“이 사질이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사부님의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젊은 수선자 몇 명이 노인을 향해 양손을 맞잡고 인사했다.
비행선의 속도가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고, 그들은 고래가 멈춰 선 것을 발견했다. 그러자 비행선 위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당연히 저 고인이 고래를 멈춘 것이라 여겼다. 어쩌면 고인이 자신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뜻일 수도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점차 비행선의 속도를 줄이며 고도를 낮췄다.
마침내 비행선이 거대한 고래에게서 10장(*약 30m)도 안 되는 거리에 다다랐고, 비행선 위에 있던 사람 대부분이 고래가 있는 방향을 향해 양손을 맞잡고 인사하며 예를 표했다.
계연과 응약리도 겉치레로 다시 한번 그들을 향해 양손을 맞잡고 인사했고, 곧 바람을 몰고 비행선 쪽으로 날아왔다.
“어, 이쪽으로 온다! 저분들이 이리로 오고 계셔!”
“저 여인은 용이지?”
“쉬이, 목소리 좀 줄이게. 목숨이 중하지 않나?”
“어디로 내려오시려나? 뱃머리? 아니면 선미(船尾)?”
계연은 아직 비행선에서 꽤 떨어진 공중에 떠 있었지만,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다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아무런 말도 듣지 못한 것처럼, 응약리와 함께 뱃머리에 내려섰다.
그곳에는 이미 비슷한 옷차림을 한 수선자 두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계연과 응약리가 갑판으로 내려오자, 두 사람은 그들을 향해 장읍례(長揖禮)를 올렸다.
“구봉산(九峰山)의 지귀(池歸)라고 합니다.”
“구봉산의 임점(林漸)입니다.”
“두 분을 뵙습니다!”
지귀는 예를 올린 뒤 다시 고개를 들어 이렇게 물었다.
“두 분의 선향(仙鄕)은 어딥니까? 저희 구봉산에서 담당하는 계역의 비행선에 찾아오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그러자 응약리가 한 발 앞으로 나서 인사하며 대답했다.
“제 이름은 응약리라 하고, 이분은 저희 계 숙부님이십니다. 별다른 일은 없고 그저 우연히 이 배를 우연히 마주쳐, 궁금한 마음에 한 번 구경해보러 온 것입니다.”
지귀가 계연을 바라보자, 계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습니다. 사실 제가 좀처럼 밖으로 나오지 않아, 계역을 건너는 나룻배 같은 것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잘 몰랐거든요.”
지귀와 임점은 서로 한번 눈을 마주친 후 속으로 놀라워했다.
‘저런 고인이 계역을 건너는 나룻배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하지만 그들은 그런 의혹을 드러내놓고 묻지 않았다. 어쩌면 그저 이런 종류의 비행선을 한 번도 못 본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러자 지귀는 좀 더 친근한 태도로 물었다.
“정 그러하시다면, 제가 두 분을 모시고 안내해드리면 어떻겠습니까?”
“그럼 저야 좋지요. 감사합니다!”
계연은 이렇게 예의 있게 대답한 다음 자신들을 둘러싼 주위 사람들을 향해 양손을 맞잡고 인사하며 인사한 뒤, 지귀와 임점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이 배에 내려선 뒤에야 계연은 그 크기를 제대로 실감할 수 있었다. 이 배는 계연이 지난 생에 한번 봤었던 1만 톤급의 유람선보다도 컸으며, 그 구조도 완전히 달랐다.
이 배는 분명 어떤 특별한 진법(陣法)으로 구동되는 것이겠지만, 그 위에는 커다란 돛이 달려있었다. 갑판 위의 공간은 무척 넓었는데, 그 위에는 자그마한 상점가도 갖춰져 있었다.
지귀는 말로는 계연과 응약리에게 안내를 시켜준다고 말했지만, 실은 그 자신도 무슨 안내원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저 그들을 데리고 돌아다니는 정도였다. 그는 가끔가다 ‘이곳은 시장입니다’, ‘객실은 아래층에 있습니다’ 따위의 설명을 하는 것 빼고는, 거의 자신들의 선문인 구봉산에 관해 이야기했다.
계연은 구봉산이란 곳을 전에 들어보지 못했고, 그 선문(仙門)의 누구와도 알지 못했지만, 그래도 기억해 두기로 했다.
이때 갑판 위에는 계연과 응약리를 구경하러 몰려든 이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지귀와 임점은 그들을 이끌고 선창 안으로 들어갔다.
이 배는 여러 층으로 나누어졌으며, 그 내부는 각각의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안은 옛 형식의 건축물부터 원림(園林)까지 온갖 것으로 가득 차 있었고, 각 저택 안에는 침실을 비롯해 대청(大廳)까지 모든 부분이 빠지지 않고 지어져 있었다.
지귀는 계연을 데리고 아래층 복도로 내려가 한 바퀴 거닐었다. 어떤 거주지역은 굳게 닫혀 있었는데 모두 진법이 걸려 있었다. 서로 다른 환경을 가진 구역 안에는 각기 다른 기후의 식물을 심겨 있었다. 저택들도 서로 판이하게 다른 양식으로 지어졌다. 그 안에는 진법을 이용해 햇빛을 끌어다 놓았기 때문에, 조금도 어둡지 않아 무척 신기했다.
선창 내부를 둘러본 계연은 이 비행선에 대한 인상이 완전히 바뀌었다. 북적거리고 낙후되었을 거라는 자신의 예상과 달리, 지난 생의 대형 유람선보다도 더욱 잘 꾸며져 있었다. 신통한 진법을 이용해 여러 특수한 환경들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었다.
“계 선생님, 이쪽으로 오십시오!”
한 바퀴 둘러보고 난 뒤, 지귀는 계연을 이끌고 선미에 난 문으로 빠져나왔다. 그렇게 그들은 갑판 위로 다시 올라왔고, 뱃머리를 향해 바라보자 그 중앙에는 높은 건물이 줄지어 늘어선 상점가가 자리하고 있었다.
계연은 그곳에 서서 상점가를 바라보며 이렇게 감탄을 내뱉었다.
“오늘 와서 직접 보게 되니 정말 눈이 번쩍 뜨이는 것 같네요. 계역을 건너는 이 비행선은 과연 비범한 물건이군요! 구봉산에서 스스로 이런 영물을 만들어내다니, 분명 대단한 분들일 테지요.”
계연과 같은 인물에게서 이런 칭찬을 받자, 속한 선문에서는 진인이라 불리는 지귀와 임점도 가슴 깊숙한 곳에서 뿌듯함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과찬이십니다, 계 선생님. 계역을 건너는 배들은 모두 대륙이나 망망대해를 지나기 때문에 여행길이 무척 요원하지요. 그렇기에 더욱 배 내부를 모자람 없이 꾸며야 합니다. 이제 가서 저 상점가를 한번 둘러보시지요. 범인들이 운영하는 가게도 있고, 수행하는 이들이 연 곳도 있습니다.”
“수선자들이 장사도 하나요?”
계연은 조금 놀라워하며 물었다. 수선자들은 모두 수행을 근본으로 삼고, 그 외의 일은 잘 하지 않는다.
지귀는 계연이 이렇게 ‘기초적인’ 질문을 하는 것에도 이미 익숙해졌기 때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물론 수선자 중에는 상업에 종사하는 이들이 거의 없습니다만, 그렇다고 모두 그에 만족하는 것은 아닙니다. 종종 어떤 물건을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과 교환하는 일은 무척 흔하거든요. 예를 들어 부적을 만들 수 있는 이들은 거의 모든 수선자의 환영을 받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만든 부적과 다른 물건을 교환하기도 하고, 누군가의 도움이나 약속 같은 무형의 것을 교환하기도 합니다.”
“그렇군요!”
계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지귀의 뒤를 따라 상점가로 향했다.
수선계에서는 당연히 정식으로 통용되는 화폐가 있을 리 없었다. 화폐를 발행할 만한 능력이 있는 인물도 없었다. 이에 수선자들은 물물교환으로 거래를 하는 편이었는데, 그것이 얼마나 신묘하고 어느 정도의 영기를 담고 있느냐에 따라 가치가 결정된다.
비록 화폐는 없지만, 대부분의 수선자는 모두 어디서나 통용되는 물건을 좋아했다. 예를 들면 선초(仙草)나 영약(靈藥), 오행(五行)이나 음양의 영(靈), 각종 신기한 부적, 심해취영주(*深海聚靈珠: 깊은 바다의 영기 어린 진주) 같은 보물들 말이다. 사실 마지막 것은 늙은 용이 자는 곳에 가면 도처에 널려있었고 크기도 무척 컸다.
그중에서도 오행 또는 음양의 영물(靈物)은 어느 수선자나 조금은 부릴 수 있는 술법이었기 때문에 가장 통용이 잘 되는 물건이었다. 그것은 대부분 손톱만 한 크기로 응축되어 옥을 비롯한 돌에 담겨있었다. 또한, 그 중량에 따라 영물의 가치가 결정되었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이 비행선에 타려면 수행자들은 일정한 영물을 내야 배에 오를 수 있었지만, 보통 사람들이나 막 수행길에 들어선 이들은 연이 닿아 이 배가 정착한 곳에 찾아오게 되면 누구나 무료로 탈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럴 담력만 있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