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2화. 그다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없다
설명을 들은 계연은, ‘120cm 이하의 어린이들은 무료입니다’란 공지를 내걸었던 지난 생의 어느 놀이공원을 떠올렸다. 그 사례와 이것이 비슷하게 느껴졌다.
이런 기초적인 지식에 대해 계연은 잘 알지 못했다. 누구도 이런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귀는 계연을 이끌고 걷는 동안 여러 설명을 해주었고, 곁에서 듣던 응약리도 가끔 끼어들어 한두 마디 설명을 얹었다.
계연은 비교적 담담한 태도를 보였으나, 가끔 보이는 호기심에 찬 반응은 지귀를 비롯한 이들의 눈에 고스란히 담겼다. 지귀와 임점은 도통 어찌 된 일인지 알 수 없어 했지만, 응약리는 이때 따로 떠올리는 바가 있었다.
응약리는 아버지가 일전에 그녀에게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계 숙부님은 수행계에서 보편적으로 쓰이는 사물을 잘 알지 못하고 무척 궁금해한다고 말이다.
그래서 당시에 응약리는 이렇게 물었었다.
“계 숙부님 같은 분이 어찌하여 그런 것을 모르시는 건가요?”
아버지는 그때 이렇게 대답했다.
“두문불출한 지 너무 오래되어 그간 일어났던 일을 모르는 거야.”
응약리가 이렇게 물었었다.
“그게 얼마나 오래인데요?”
그러자 아버지는 뜻을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아주 아주 오래”라고 대답한 뒤 더는 말을 잇지 않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무척 의미심장한 대답이었다.
* * *
계연과 응약리가 선창 내부를 둘러본 뒤 갑판으로 나왔을 때는 이미 반 시진(*1시간)정도가 지난 후였다. 그래서 배에 올라탄 계연과 응약리를 구경하기 위해 모여든 인파는 거의 다 흩어진 뒤였다.
뱃전에 기대 서서 아래쪽에 가만히 떠 있는 고래를 바라보는 이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이들은 자신의 할 일을 하러 떠난 상태였다.
그래서 이때 지귀는 계연과 응약리를 이끌고 순조롭게 상점가로 들어섰다. 아주 소수의 눈치가 빠른 이들이나, 지귀와 임점을 알아보는 이들만이 그들 일행을 힐끗힐끗 바라보았다. 하지만 사람들 대부분은 계연과 응약리가 고래 위에 타고 있던 이들이라는 것을 알아보지 못했다.
선창 안의 비교적 한산했던 내부와 달리, 갑판 위에 난 기다란 대로 양쪽에는 건물이 늘어서 있었다. 단층 건물도 있었고 2, 3층짜리 건물도 있었으며, 그 크기도 제각각 다양했다.
건물 대부분은 간판이 걸린 점포였고, 그중 적지 않은 상점들은 평범한 사람들이 운영하는 것이었다. 식당부터 생활용품까지 파는 품목도 다양했다.
물론 ‘비범한 물건’들을 파는 점포도 있었다. 어떤 곳은 상점처럼 꾸며놓고 팔기도 했고, 어떤 이들은 상점 주인과 합의하여 적당한 위치에 노점을 펴놓고 팔기도 했다.
계연은 걸음을 멈추지 않고 슬쩍 구경만 했는데도 무척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는 이토록 많은 수선자가 밀집한 곳에 와본 적이 없었다. 비록 그들이 가진 기운은 천차만별이었지만, 대부분이 정도(正道)를 걷는 수선자들이었다.
예전에 대정국의 원덕 황제가 주관했던 수륙법회에는 적지 않은 옥회산 수사들이 왔었지만, 그들은 도성 전체에 흩어져 있었다. 게다가 온갖 요괴며 삿된 무리를 재빨리 처리했기 때문에, 그들도 곧 옥회산으로 돌아가 버렸다. 지금 이 ‘수사(修士) 집회’ 같은 떠들썩한 분위기는 결코 아니었다.
“하하, 이 계역을 건너는 비행선은 이동 수단일 뿐만 아니라, 수행하는 이들에게 있어서는 이동 시장 역할도 하고 있답니다. 때때로 뭍에 정박하면 수행이 얕거나 편리함을 찾는 수선자들부터, 요괴며 귀신, 심지어는 신령들까지 찾아오기도 합니다.”
지귀의 말을 들은 계연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한쪽에 있던 임점이 말을 받았다.
“수행하는 이들도 온갖 감정을 느끼는 중생으로, 당연히 보통 사람처럼 칠정육욕(七情六慾)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정욕(情慾)이 범인(凡人)들보다 적다는 정도일 겁니다. 수선자들에게도 갖고 싶은 것이나 도달하고 싶은 경지는 있습니다. 범인들은 수선자라고 하면 그들이 아무런 욕구나 원하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속세의 것에 흥미가 없는 것일 뿐이지요. 보통 사람들이 금덩이가 땅에 떨어져 있는 것을 본다면 냉큼 집어 들겠지만, 저와 같은 이들에게는 돌멩이처럼 아무런 가치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산신석(山神石)이 땅에 떨어져 있다면, 보통 사람들은 돌멩이라고 여기겠지만 저는 그것을 보물처럼 여기겠지요.”
계연은 그의 말을 듣고 웃으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대답했다.
“제가 만약 금덩이를 본다면 주울 텐데요.”
응약리는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아버지에게서 들은 이야기와 자신이 본 바에 의하면, 계 숙부님은 정말로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소탈한 분이었고 속세에 머무는 것을 좋아했다. 그가 줍겠다고 말했다면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그런 뜻이었다.
지귀와 임점은 그가 우스갯소리를 하는 것으로 여기고 계속 그들을 이끌고 앞으로 향했다.
앞으로 쭉 뻗은 대로의 중심에는 거대한 돛대가 솟아 있었다. 이 주위가 바로 수선자들이 가장 많이 모여있는 곳이었다.
“어서 가요, 들어가 보고 싶네요!”
계연은 흥이 올라 걸음을 서둘렀다. 돛대 근처에서 멈춰선 그는 ‘화물루(化物樓)’라는 간판을 단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 안은 무척 조용했는데, 가끔 누군가 이야기 나누는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수선자들이 열고 찾는 좌판이니 큰 소리가 오갈 일이 없었다.
안에는 그리 손님이 많지 않았고, 좌판을 연 사람도 별로 없었다. 작은 책상 뒤에 가부좌를 틀고서 가지각색의 옷을 입은 수선자들이 보였다. 계연 일행이 들어서자 자연히 많은 이들의 시선을 끌었으나, 소리 내서 호객행위를 하는 사람은 없었다.
자리에 앉은 이들 앞에는 그들이 파는 ‘상품’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부적이나 갖가지 기이한 물건들이 바로 그것이었다. 계연은 그중 한 좌판에서 분재 화분처럼 보이는 것 두 개를 발견했다.
호기심이 든 그는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살펴보았다. 두 화분에 심은 것은 같은 종류의 식물로, 굵고 튼튼한 넝쿨들이 서로를 감싸며 위로 솟은 모양이었다. 높이는 1척(*30cm)정도에 잎은 작고 가시가 돋아 있었다. 잎과 가시는 모두 보라색이었다.
계연이 발걸음을 멈추자, 좌판에 앉아 눈을 감고 정신을 수행하던 수선자가 눈을 뜨더니 그 식물에 관해 설명했다.
“이것은 자형등(紫荊藤)이라는 식물로, 화분은 일반 도자기 화분입니다. 하지만 이 흙은 영천(*靈泉: 영험한 샘) 근처의 현토(玄土)로, 자형등이 죽지 않도록 보호해줍니다. 잘 돌보면 꽃이 피고 열매를 맺기도 하는데, 그 열매에는 정신을 안정시키고 원기를 보해주는 효능이 있습니다.”
“그럼 얼마나 돌봐야 꽃이 피고 열매를 맺나요?”
계연이 이렇게 묻자 그 수선자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건 손님의 연이 닿느냐 아니냐에 달렸지요. 자형등은 보기 드문 식물이기도 하고, 일정한 수행에 이르지 못하면 식물이 영지를 얻기 힘듭니다. 만약 영지를 얻는다 해도 그 순간 도망치려 하니, 과일을 손에 넣기가 쉽지 않습니다. 제가 이 두 그루를 돌본 지 30년이 되었는데, 그동안 한 번도 꽃이 피거나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럴 바에야 다른 물건으로 바꿀까 하여 이렇게 나온 겁니다.”
그러자 계연이 조금 놀라워하며 이렇게 대답했다.
“무척 솔직하시네요!”
그러고는 고개를 저으며 다른 곳으로 향했다. 자형등을 팔던 수선자도 그를 잡지 않고 다시 눈을 감고 정신을 수양했다.
도행이 높은 수선자일수록 자신만의 생각이 굳건했다. 그러므로 어떤 물건을 원하는지 아닌지에 대해 내리는 판단이 분명했다. 원하면 자연히 남을 것이고, 원하지 않으면 입씨름할 필요 없이 떠난다. 그래서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주인이 만류하며 상품의 장점을 늘어놓고, 손님은 살지 말지 망설이는 상황은 잘 일어나지 않았다.
가볍게 건물 안을 한 바퀴 돌아본 계연은 특별히 갖고 싶은 물건을 발견하지 못했다. 조금 특이한 상품이 있어도 그저 흥미에 그치는 수준이었다.
게다가 그에게는 적당한 ‘화폐’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무엇을 파는지 구경만 하고는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
그 점포를 나와 다른 수선자들이 운영하는 곳에도 가보았지만, 계연은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
“계 숙부님, 사고 싶은 게 없으신 건가요? 만약 가격을 치를 적당한 물건이 없어서 그런 거라면 제게 있습니다. 응축된 수령(*水靈: 물의 영물) 수백 근(斤)과 심해취령주를 얼마쯤 갖고 있어요.”
“헉…….”
그러자 지귀와 임점이 저도 모르게 살짝 숨을 들이마셨다. 응약리가 말하는 태도를 보면 그런 물건들을 그리 가치 있다 여기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계연도 그녀의 말을 듣고 속으로 혀를 찼다. 그는 좌판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오행이 응축된 영물의 가치에 대해 조금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저 조금 전의 자형등은 수령 1근이면 교환해올 수 있었다. 수령은 누에콩 정도 되는 크기의 투명한 돌처럼 생겼는데, 그게 수백 근이나 있다니 응약리는 엄청난 부자였다.
“되었다. 이 물건들이 신기하고 재미있긴 했지만, 그다지 눈에 들어오는 건 없었어. 사봤자 쓸 데도 없을 거야.”
계연은 내심 예전에 한번 보았던 체명부(*替命符: 목숨을 한번 대신해주는 부적)를 찾고 싶었었는데 결국 발견하지 못했다. 그 외에 약재, 부적, 영성(*靈性: 신령한 성질)을 지닌 법기(法器)들은 그에게 있어 있으나 없으나 큰 의미가 없었다.
법기를 논하자면, 계연은 선검(仙劍), 늑대 털로 된 붓 한 자루, 낚싯대로 족했다. 오행의 기운을 띤 영물은 오기조원의 깨달음을 얻기 전이라면 계연에게 유용했겠지만, 오기조원의 경지에 이른 후의 계연에게는 큰 쓸모가 없었다. 물론 오행에 관련된 술법을 펼칠 때 미미한 도움이 되기는 할 것이다.
선검에는 오행의 영물이 필요가 없었고, 붓으로는 대부분 칙령을 쓰니 마찬가지로 필요가 없었다. 어뢰술을 쓸 때는 뇌주(雷咒)가 있었고, 목령(*木靈: 나무의 영물)은 쓸모가 없었다.
물을 다루는 술법을 쓸 때야 파도를 일으키는 수준은 되지 못하니, 분명 쓸모가 있겠지만, 대신 필요한 물의 영물이 무척 많을 터였다. 그리고 계연은 토행(土行)에 관련된 술법은 아예 하지 못했다. 불을 다루는 술법이야 보통의 불길을 다루는 것은 어수술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삼매진화라면 이미 대단한 기세를 갖췄으니 불의 영물이 무슨 도움이 될지 확신할 수도 없었고, 만약 불을 다루는 술법을 쓸 때 불의 영물을 쓰게 된다더라도 엄청나게 많은 영물이 소모될 것이다.
게다가 계연은 단술(*丹術: 단약을 만드는 술법)이나 중의학에 대해 아무런 지식이 없었다. 그러니 영험한 약초들도 계연에게는 마찬가지로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최소한 이 구봉산의 비행선에서는 계연에게 필요한 것을 찾을 수 없었다.
이렇게 생각한 계연은 전방의 한 점포에서 음식 냄새가 솔솔 풍겨오자, 그쪽을 가리키며 성큼성큼 걸음을 뗐다.
“어서 가죠. 괜찮은 식당을 찾아 제대로 된 끼니를 좀 먹어야겠어요. 그간 거의 아무것도 못 먹었거든요.”
임귀와 임점은 서로 눈짓을 교환하더니 그의 뒤를 따라갔다.
응약리는 그의 뒤에서 소매로 입을 가리고 웃으며 말했다.
“약리가 방금 계 숙부님께 필요한 게 무엇일지 생각났어요!”
“음? 나도 모르는데 네가 안단 말이야?”
계연은 곁눈질로 그녀를 보며 호기심에 차 물었다.
“당연히 알죠. 계 숙부님은 선주(仙酒) 한 단지 받을 게 있으시잖아요!”
계연은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그제야 무언가 떠오른 듯 손뼉을 마주쳤다.
“네 말이 옳다, 나도 이제야 생각났어! 네 아버지가 내게 용연향 한 단지를 빚졌지. 얼마 전에 갔을 때도 부끄러움도 모르고 용담에 틀어박혀 자는 척을 하더니, 아무래도 이자까지 받아내야겠다!”
* * *
그때, 수만 리 떨어진 용담에서는 거대한 용 한 마리는 돌연 콧속이 무척 간지러워지는 것을 느꼈다. 아무리 참으려 해도 결코 참을 수 없는 수준이었다.
“에에에…… 엣취! ……엣취!”
쿠르릉……!
용담 밖에 있던 수많은 물의 족속들은 모두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용담 입구를 지키던 야차들은 안쪽에서 폭발하듯 떠밀려오는 급류에 휩쓸려갔다.
물의 족속들은 너무 놀라 혼이 나갈 지경이었다. 용궁(水府) 곳곳의 누각들이 무너져 내렸고, 바닥에 쏟아져 깨진 물건들은 부지기수였다. 용궁이 있는 통천강 수십 리 유역에는 물살이 요동치며 파도가 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