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3화. 북소리와 호응(呼應)
한참 후에야 통천강 물살이 점차 안정을 되찾았다. 혼란에 빠진 수족들은 서로 어찌 된 일인지 소식을 얻으려 했고, 직접 응약리의 수궁에 찾아오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용궁의 야차들은 당황한 얼굴로 하나둘 원래 자리로 돌아와, 긴장한 기색으로 조금 전 있었던 일에 대해 서로 묻기 시작했다.
“방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용담이 있는 곳에서 시작된 것 같았어!”
“뭐? 그럼 용왕님께서는 괜찮으신 건가?”
“아직은 몰라. 도통(都統) 대인께서 이미 용담에 상황을 알아보러 가셨어!”
야차들과 인어(魚娘)들은 모두 불안에 떨며 이리저리 오갔다. 어떤 이들은 무너진 궁전으로 가서 아직 온전한 집기들을 정리했고, 쓰러진 가구들을 일으켜 세우기도 했다.
조금 전 있었던 습격으로 의심되는 사건은 수백 년이래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일이었다. 아직 다치거나 죽은 이가 있는 지도 확실치 않았고, 이 일이 통천강 일대에 미친 영향이 작지 않다는 것만 파악할 수 있을 따름이었다.
얼마간 시간이 지난 후, 미늘창을 든 붉은 머리의 야차가 용담 입구에서 나와 궁금해하는 수족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자, 모두 돌아가라. 아무 일도 아니다. 용왕님께서 두어 번 재채기하신 것뿐이니. 용왕님께서 내게 용궁(水府)의 통제를 맡겼으니,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면 된다.”
“아……. 그랬군요!”
“용왕님께서 재채기하신 것뿐이라니…….”
“과연 용왕님이시군. 재채기 몇 번에 통천강 전체에 소동이 일었으니……. 재채기가 아니라 정말로 진노하신다면 훨씬 대단하겠지?”
“허억, 그런 일은 평생 겪고 싶지 않네.”
“나도 마찬가지일세!”
강신이 머무는 수궁의 야차들과 수족들도 마침내 어찌 된 일인지 알게 되었다. 곧이어 그들은 주변 수족들의 불안을 잠재우려 인원을 파견했고, 통천강에 있었던 작은 풍파는 마침내 가라앉을 수 있었다.
다만 늙은 용은 용담 안에서 아무리 해도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주위의 진주들은 휘황찬란한 빛을 내뿜었고, 사방에서는 영기가 모여들어 생겨난 물의 영물들이 그의 몸체를 휘감고 있었다. 용담 안에서는 한 쌍의 호박색의 거대한 눈이 여러 번 깜빡였다.
“이상한 일이군. 내가 재채기도 참지 못하다니, 술법에 걸린 것인가? 아니지, 감응력이 엄청난 수선자가 뒤에서 내 욕이라도 한 거 아냐? 대체 누가 그 정도의 능력이 있지?”
늙은 용은 눈을 가늘게 뜨며 최근 자신이 했던 일을 한번 돌이켜 보다가, 돌연 이렇게 혼잣말을 내뱉었다.
“설마 계연 그자가?”
* * *
“엣취!”
구봉산의 비행선 위에서 계연은 상점가의 한 주루에 앉아 있다가, 별안간 재채기를 터뜨렸다.
그러자 지귀와 임점을 비롯해 응약리마저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말을 잇지 못했다. 수선자들은 도행이 높을수록 감각 기관에 대한 통제를 더욱 자유롭게 다룰 수 있었다. 계연 정도의 수선자라면 고의가 아니고서야 절대 재채기를 하지 않았다.
“계 숙부님, 이 주루에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계 선장(仙長)님, 만약 이곳이 마음에 들지 않으신 거라면 다른 곳으로 가셔도 됩니다!”
“맞습니다! 이 거리 끝에 영기(靈氣)를 품은 채소들로 요리를 하는 주루를 제가 아는데요!”
이런 세 사람을 향해 계연은 한 손으로 코를 문지르고, 다른 한 손은 휘저으며 이렇게 말했다.
“아뇨, 아뇨. 아무 일도 아니에요. 그냥 재채기인데요. 누가 제 욕이라도 하나 봐요. 어서 식사나 하죠!”
그러고는 한쪽에서 조심스럽게 대기하고 있던 주인장에게 손짓했다. 그들이 점포에 들어설 때부터 그는 직접 계연 일행을 접대하고 있었고, 다만 이 순간에는 감히 끼어들 엄두를 내지 못했을 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지귀나 임점을 모를 수도 있겠지만, 조상 대대로 이 비행선에서 주루를 열어온 그는 구봉산의 두 진인(眞人)들을 몰라볼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주인장은 두 진인이 직접 데리고 온 이 남녀 한 쌍이 조금 전 비행선을 떠들썩하게 만든 고래를 타고 있던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계연이 자신을 향해 손짓하는 걸 보고, 주인장은 그를 향해 한 걸음 다가가며 물었다.
“예, 손님. 원하시는 게 있으십니까?”
“수선자들이 구름처럼 몰린 이 비행선에서 주루를 운영할 정도라면 분명 실력이 있겠죠? 여기서 가장 유명한 요리는 무엇인가요?”
“아하하! 과찬이십니다, 손님! 저희는 그저 가정식을 조금 더 정성 들여 요리할 뿐입니다. 하지만 조금 전 임 진인께서 말씀하셨던 영기를 품은 채소로 만든 요리는 저희 주루에도 있습니다.”
계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식탁을 두드려 구봉산 진인들과 응약리에게 앉으라 권했다.
“그럼 주인장께서 자신 있는 요리를 골라 가져다주세요. 요리 아홉 가지와 탕 하나 정도면 될 것 같네요. 참, 술도 좋은 거로 두 주전자 가져다주시고요.”
“예!”
주인장은 대답과 함께 직접 주방으로 가 주문을 전달했다. 그러고는 다시 이 특별한 손님들을 접대하러 돌아왔다.
계연은 그를 잠시 바라보다가 이렇게 물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계속 이곳에서 생활하나요?”
“어떤 이들은 온 지 얼마 안 됐고, 어떤 이들은 왔다 갔다 합니다. 저희 마씨 집안은 대대로 여기서 살았고요.”
계연이 궁금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챈 주인장은 웃는 얼굴로 이렇게 설명했다.
“이 배에서는 세금도 과도하게 걷지 않고, 천재지변이 일어날 일도 없습니다. 방문하는 손님들도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요. 게다가 다른 사람들은 결코 볼 수 없는 뛰어난 풍광도 볼 수 있지요. 저처럼 이곳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언젠가 좋은 연이 닿아 자손들이 선도(仙道)에 들 수 있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계연은 지귀를 향해 물었다.
“정말 그런 예가 있나요?”
“있습니다. 비행선 안의 영기가 바깥세상보다 훨씬 진하기 때문에, 오래 거주하면 좋은 점이 있지요. 하지만 그래도 시간을 두고 땅에 잠시 내렸다가 돌아오는 편이 좋습니다. 이곳에 계속 머물면 발이 흙을 디디지 않아, 오행(五行)에 부족함이 생기거든요.”
주루의 주인장은 그의 말을 들은 후, 그들을 향해 양손을 맞잡고 인사하며 감사 인사를 했다.
계연은 이전에 풍문으로 비슷한 말을 들었었지만, 그게 사실인지 확실치 않았다. 하지만 오늘 지귀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으니 틀림없는 사실일 것이다.
잠시 뒤, 보기에도 좋고 냄새도 좋은 요리들이 연달아 도착했다. 점원은 쟁반을 받쳐 들고 와서 식탁 옆에 멈춰 섰고, 주인장이 직접 음식을 날라 식탁에 내려놓았다. 술 두 주전자도 요리와 동시에 도착했다.
구봉산의 두 진인은 계연에게 맞춰주려 젓가락을 몇 번 움직였을 뿐, 사실상은 계연 혼자 식사하고 있었다. 응약리는 옆에 앉아 소매를 걷고 그에게 술을 따라 주었다.
계연은 그다지 어색함도 느끼지 않고 술과 요리를 마음껏 음미했다. 지귀와 임점은 때때로 대화를 나누거나 계연의 물음에 대답했고, 응약리는 계연의 잔이 마르지 않도록 신경 쓰고 있었다. 그녀의 용모는 무척 아름다워 어딜 가나 눈에 띄었기 때문에, 몇몇 젊은 점원들은 아예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이 모습은 무척 화기애애하고 풍류가 넘쳐서, 만약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던 그 저승 판관이 이곳에 있었다면 분명히 이 장면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술이 세 번 돌고 계연이 요리를 다섯 가지 정도 맛보았을 때, 비행선 아래쪽에서 별안간 누군가 울부짖는 엄청난 소리가 전해져 왔다.
“약리마마! 계 선생님! 어디 가셨습니까? 이 괴상한 비행선이 감히 그분들을 납치한 것이냐? 어서 계 선생님과 약리마마를 내놓아라! 어흥! 우어어!”
괴이한 고래의 포효가 울려 퍼지자, 이를 듣는 이들은 모두 귀가 따가웠다. 비행선 안에 있다 해도 그 엄청난 소리를 피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범인(凡人)이나 수선자 할 것 없이 모두 귀를 틀어막았다.
계연의 식탁 위에 놓인 그릇들이 ‘덜덜덜……’ 하는 소리를 내며 진동했다.
지귀는 두 손으로 결인(*結印: 수행자가 손가락을 여러 모양으로 구부려 힘이나 깨달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을 맺더니, 공중에 술법을 펼쳤다. 그러자 삽시간에 고래의 포효가 뚝 끊겼다. 보아하니 비행선에 걸린 금제(禁制)를 발동시켜 외부 세계와 단절시킨 것 같았다.
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
쿠궁……!
식탁 위의 요리들이 옆으로 살짝 밀려나며, 비행선 전체가 기우뚱하고 흔들렸다. 주루 안에 있던 범인들은 모두 중심을 잡으려 애썼고, 어떤 이들은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기도 했다.
그러자 계연이 입을 열었다.
“저 어리석은 것이 그래도 충심은 있구나. 약리 네가 가서 진정시켜주렴.”
“예!”
응약리는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난 후 곧바로 주루 밖으로 날아갔다. 그녀가 배에서 나가야 해서 지귀는 다시 금제를 열었고, 귀를 찌르는 고래의 비명이 ‘우오오!’ 하고 다시 한번 들려왔다.
“거경 장군, 소란 피우지 마라! 나와 계 숙부님은 지금 비행선 위에서 식사 중이다!”
약리의 차가운 목소리는 그다지 크지 않았지만, 고래의 비명은 뚝 끊겼다. 그러더니 고래는 기쁘기도 하고 당황하기도 한 듯한 소리를 내었다.
소란은 삽시간에 잦아들었고 응약리도 곧 자리로 되돌아왔다. 하지만 거경 장군은 비행선 아래에서 이리저리 방황하며 헤엄쳤고, 적지 않은 이들이 뱃전에 붙어 그것을 구경했다.
어두운 밤하늘에 가득 떠 있는 별빛과 비행선에서 내뿜는 빛에 의해 승객들은 어느 정도 주위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오늘 밤은 그리 평온하지 못할 예정인 듯했다. 계연이 몇 년 만에 제대로 된 식사를 이어가려던 순간, 북소리처럼 들리는 소리가 바깥에서 울려 퍼졌다. 그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는 것처럼 들렸다.
쿵…… 쿵…… 쿵……!
아득한 북소리는 고요한 바다 위에서 유달리 또렷하게 들려왔다. 그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는 것을 느낀 계연은 마침내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계연은 지귀와 임점이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응약리에게 시선을 던졌으나, 그녀도 마찬가지로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하지만 응약리는 계연이 의아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자 이렇게 물었다.
“계 숙부님, 왜 그러세요?”
그러자 계연은 눈썹을 찡그리며 구봉산 진인들과 응약리를 향해 물었다.
“약리, 그리고 두 분, 이 북소리가 들리지 않으세요?”
응약리는 두 진인의 표정을 읽고는 그들이 자신과 마찬가지로 아무런 소리도 못 들었다는 것을 알았다. 이에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듣지 못했어요.”
쿵…… 쿵…… 쿵……!
북소리가 점점 더 커지자, 계연은 더는 소리를 무시할 수 없어 자리에서 일어난 뒤 밖으로 나갔다. 뱃전까지 걸어간 그는 북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새까만 밤하늘에는 별빛만이 반짝이고 있었다. 계연은 법안을 열고 온몸의 법력을 끌어올렸다. 그러자 하늘 저편에서 특이한 붉은빛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보일 듯 말 듯 흔들리며, 마치 불길이 내는 빛같이 보이기도 했다.
하늘에는 구름도 없고 다른 특이한 사물은 보이지 않았다. 오직 그 빛만이 먼 곳에서부터 가까워졌고 북소리도 점점 크게 울렸다.
쿵…… 쿵…… 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