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5화. 공처가(恐妻家)
두 야차는 물속에 있는데도 식은땀이 흐르는 것 같았다. 그들은 응풍의 말에 고개를 깊이 숙이고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응풍이 다시 추궁했다.
“그럼 숙부님과 약리는 어디로 간 것이냐? 나도 얼른 따라가야겠구나!”
“듣자 하니 동해 저 끝, 북해와 맞닿은 곳으로 가신다는 것 같았습니다. 거경 장군이라 불리는 고래 요괴가 곤경에 빠진 군모를 도와달라고 계 선생님께 부탁했다 합니다.”
“내 어머니를 도와달라고 했다는 말이냐!”
이렇게 소리치는 응풍의 얼굴에 한 줄기 당황스러움이 스쳐 지나갔다.
“도대체 무슨 일이라더냐? 어머니께 무슨 일이 생겼느냐? 어찌 통천강으로 바로 오지 않고 계 숙부님을 찾아간 것이지? 되었다, 어찌 가는지나 말해보아라. 내 직접 가겠다!”
“진정하십시오, 전하. 계 선생님과 강신마마께서는 이미 떠나신 지 오래입니다. 저희도 정확한 길은 모르고, 어느 방향으로 따라가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다른 야차 하나가 그의 말을 거들었다.
“그렇습니다, 전하.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계 선생님께서 함께 가셨으니 용왕님께서 직접 가신 것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니 아무 일도 없을 것입니다!”
응풍은 좌우를 두리번거리더니 별안간 손뼉을 쳤다.
“아버지께 가봐야겠다!”
응풍은 서둘러 용담으로 향했다. 조급하고 화나 보이는 그의 모습을 본 야차들은 차마 그를 막아서지 못했다. 그러나 곧바로 용담 안으로 들어서려던 응풍은 앞을 가로막은 얇은 물살에 튕겨 나왔다.
“아버지! 그만 자는 척하시고, 어서 들어가게 해주세요! 그것도 싫으시면 어머니가 어디에 계신지만이라도 알려주세요! 아버지! 정말 너무하십니다!”
응풍은 열이 올라 용담 입구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그러자 용담 입구를 막고 있는 물살에 깊은 홈이 패였다가 다시 원래 모양으로 되돌아갔다.
“아버지! 이, 이…… 공처가!”
“쿠릉-! 네 이놈!”
늙은 용은 포효하며 아들을 향해 분노를 표출했다.
촤앗!
용담 안쪽에서부터 물살이 파도처럼 솟구치더니 응풍을 향해 덮쳐왔다. 통천강 유역은 다시 한번 땅과 건물이 흔들렸고, 용궁 전체는 다시 한번 재난을 맞닥뜨렸다.
급류에 의해 응풍과 야차들은 전부 쓸려나갔고, 용담과 가까운 용궁 뒤쪽의 궁전들은 위태롭게 흔들거렸다.
다행히 이번에 응굉은 자신의 힘을 제어했기 때문에, 궁전이 무너지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물에 사는 생명체들은 너무 놀라 간담이 서늘해졌다. 특히 분노한 진룡(眞龍)이 뿜어내는 용의 기운이 무수한 물속 생명체들을 벌벌 떨게끔 했다.
용궁 밖까지 밀려난 응풍 옆에는 물살에 함께 휩쓸려 엎어진 정신을 못 차리는 야차들과 다른 수족들이 있었다.
응풍은 정신을 차리려고 고개를 몇 번 흔든 뒤, 약간 두려워하는 표정으로 용궁 뒤쪽 용담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에는 아무래도 자신이 너무 흥분한 것 같았다.
‘아버지를 그렇게 자극할 필요는 없었는데.’
급류는 빠르게 가라앉았고, 야차 하나가 응풍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전하, 용왕님께서는……?”
“너희는 전부 못 들은 척해라. 오늘 있었던 일은 결코 입에 담으면 안 된다! 아니면 아버지께서 너희를 전부 잡아먹을 것이다!”
“예, 예!”
“저희는 아무것도 듣지 못했습니다!”
물살이 완전히 가라앉은 다음 응풍은 다시 용궁로 돌아갔다. 아직 용담에 다다르기도 전에,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안에서 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응굉의 얼굴에는 아직 노기가 채 가시지 않은 채였다.
응풍은 서둘러 그에게 다가가 예를 차리며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 마치 조금 전 자신이 했던 말은 기억도 하지 못하는 듯했다.
“아버지!”
늙은 용은 눈을 가늘게 뜨며 응풍을 바라본 뒤 ‘흥’하고 코웃음을 쳤다. 그러고는 정전이 있는 방향으로 걸어갔고, 응풍은 다급히 그의 뒤를 쫓아갔다.
정전 안에서는 인어들이 땅에 떨어진 물건들을 정리하며, 엎어진 의자나 탁자들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응굉은 별달리 꺼리는 기색도 없이 자신의 보좌(寶座)에 앉았다.
“너 방금 뭐라 했느냐? 내가 깨어난 지 얼마 안 되어 잘 듣지 못했는데, 다시 한번 말해보아라.”
응풍은 심장이 쿵쿵 뛰는 것을 느꼈다. 조금 전에는 자신이 너무 흥분하여 감히 그런 말을 입에 담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저는 그저 약리와 계 숙부님께서 어디로 가셨는지 물어보려 했던 것뿐입니다. 아버지께서 가지 않으셨으니 저라도 따라가야지요.”
이렇게 대답하며 응풍은 곁에 서 있던 인어에게서 찻잔과 주전자를 넘겨받아, 아버지에게 뜨거운 차를 한잔 따랐다.
늙은 용은 다시 코웃음을 치며 찻잔을 받아들었다. 그러고는 물에 닿지 않게 거품에 싸인 찻잔의 표면을 바라보았다. 아무런 말이 없는 그의 모습은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했다.
“네 누이의 도행이 너보다 높은 데다, 계 선생도 함께 갔으니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다. 당장 뒤쫓아 간다고 해도 그들이 지금 어디에 있을지 어떻게 안단 말이냐.”
“그래도, 그런…….”
응풍은 초조한지 몸을 가만히 두지 못하고 제자리를 왔다 갔다 하더니 입을 열었다.
“아버지, 조금도 걱정이 되지 않으세요? 아버지께서 정말로 그렇게 둘만 보냈다니 저는 못 믿겠습니다! 대략 위치라도 아시면 방향이라도 가르쳐 주세요!”
응굉은 찻잔을 들어 가볍게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정말 모른다. 가만히 앉아서 소식이나 기다려라. 계연이 갔는데도 상대하기 어렵다면, 너 같은 녀석은 백 명이 간들 아무런 소용이 없다.”
응굉은 이렇게 말한 것과 달리, 실은 신형대법(蜃形大法)으로 고래의 뒤를 멀리서부터 쫓고 있었다. 날씨가 맑으면 물속에 숨었다가, 바람이 불고 구름이 끼면 안개로 변하며 따라갔다. 그러면서도 응굉은 계연이 기척을 민감하게 알아채는 것이 무척 꺼려졌기 때문에, 계연을 간신히 놓치지 않을 정도의 거리만을 유지했다.
* * *
비록 나침반은 일찍이 발명된 상태였지만, 그런데도 먼 바다로 항해하는 배들은 많지 않았다. 며칠 전 구봉산의 비행선을 마주친 후로, 약 한 달 동안 그들은 어떤 ‘인공적인 것’도 마주치지 않았다.
거경 장군은 몸집이 조금 크기는 했지만, 물속에서는 아무런 구애 없이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다. 괴이한 급류가 흐르는 수역(水域)에서도 흔들림 없이 헤엄쳤고, 사방에 안개가 두껍게 내려앉은 곳에서도 그는 방향감각을 잃지 않았다.
이런 망망대해에 사는 물속 요괴들도 물론 있었지만, 이들은 너무나 광활한 대양(大洋)에 고르게 퍼져있었기 때문에 이들과 마주칠 확률은 낮았다.
하지만 거경 장군이 계연과 응약리를 데리고 가는 길목에는 가끔 물요괴들의 근거지가 있기도 했다. 어떤 이들은 나와서 계연 일행을 쳐다보기도 했지만, 어떤 이들은 계연 일행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이런 이들은 인사를 나눌 생각도 없어 보였기에, 계연 일행은 누구와도 충돌하지 않고 물요괴들의 근거지를 지나칠 수 있었다.
계연이 보기에, 바다에 사는 이러한 요괴들은 육지에 사는 요괴들보다 훨씬 유유자적하고 담담한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 어쩌면 사람과 마주칠 기회가 별로 없었는지도 몰랐다.
어느 날 이른 아침, 바다 위에는 두꺼운 안개가 끼기 시작했다. 하지만 안개는 거경 장군에게 있어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기 때문에, 거경 장군은 방향을 잃지 않고 계속 헤엄쳤다.
응약리는 고래의 등 위에 방석을 놓고, 그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수행하는 중이었다. 계연도 마찬가지로 자리에 앉아 무릎 위에 책을 얹어 놓고서, 한 손에는 책을, 다른 한 손에는 붓을 들고 있었다. 그는 현재 자신의 몇 가지 술법을 발전시키려고 여러 가지 변화를 가해 보고 있었다.
계연도 거경과 마찬가지로 안개에 그다지 큰 영향을 받지 않았다. 계연은 평소에도 시야가 또렷하게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히려 안개가 끼면 그는 보통 사람보다 더 사물을 또렷하게 분간할 수 있었다.
주위에는 파도치는 소리가 들려왔고, 계연은 여러 가지 변수를 머릿속에서 추론해보며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둥…… 둥…… 둥…….
돌연 먼 곳에서부터 북소리가 들려왔다.
계연은 그동안 북소리에 무척 예민해져 있었기 때문에, 이 소리를 듣자마자 몸을 벌떡 일으켰다.
“계 숙부님, 왜 그러세요?”
응약리가 눈을 뜨더니 일어선 계연을 향해 물었다.
“북소리가 들리는구나!”
“북소리요? 저번에 들었던 그 소리인가요?”
계연은 눈썹을 찡그리며 조용히 소리를 듣고 있다가, 그다지 확신이 없는 듯 이렇게 입을 열었다.
“북이 하나가 아니군……. 거경 장군, 저 앞으로 가 주세요.”
계연은 손가락을 뻗어 대략적인 방향을 가리켰다. 그러자 거경은 그의 말을 따라 방향을 바꿔 헤엄쳤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북소리가 점차 또렷하게 들려왔다. 이번에는 응약리도 들을 수 있었다.
“정말 북소리가 들려요!”
응약리의 말에 계연은 이번의 북소리가 정월 초하룻날에 들었던 것과는 다른 종류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자신이 너무 예민해져 있었던 것 같았다.
그들에게서 대략 몇 리 정도 떨어진 곳에 대규모의 선단이 항해하고 있었다.
가장 큰 배들은 약 4, 50장(*약 120~150m)의 길이에 달했고, 그 주위로 백여 척의 크고 작은 배들이 떠 있었다. 계연이 들은 북소리는 바로 이 선단에서 들려오는 것이었다.
가장 중앙에 있는 거대한 선상에는 커다란 양면 북이 세워졌고, 누군가 온 힘을 다해 북채로 북을 두드리고 있었다.
둥…… 둥…… 둥…….
“북소리가 끊기면 안 된다! 계속 쳐라! 안개 속에서는 북소리를 따라 방향을 잡는다! 고수(*鼓手: 북 치는 사람)는 오백 번을 칠 때마다 내려와 쉬어라! 북소리가 끊기지 않게 해라!”
대창(*大氅: 두꺼운 외투)을 걸친 남자가 선미(船尾)의 높은 곳에 서서 큰 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주위의 모든 배에서는 고수가 북을 쳤고, 이로써 한 척도 낙오되지 않고 모든 배가 같은 방향을 향해 항해할 수 있었다. 게다가 북소리가 들려오는 세기에 따라 항해사들이 배 사이의 간격을 조절하였기에, 이는 배가 서로 부딪치지 않는 데도 도움이 되었다.
거경 장군이 도착한 곳에서는 북소리가 더없이 또렷하게 들려왔다. 비록 짙은 안개가 선단과 그들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지만, 계연과 응약리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규모가 무척 큰 선단이네요!”
응약리는 저도 모르게 이렇게 감탄을 내뱉었다. 바다에 나온 후로 이렇게 많은 배가 함께 운항하는 것은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정말 그렇구나. 범인(凡人)이 이렇게 큰 규모의 선단을 이끌고 먼 동해까지 나오다니. 어딜 가려는 걸까?”
“계 선생님, 제가 조금 더 다가가 보겠습니다!”
거경 장군은 그 자신도 호기심을 느끼던 중 응약리와 계연이 흥미가 생긴 듯 보이자, 먼저 나서서 이렇게 제안했다. 아무도 반대하지 않자 그는 속도를 높여 선단 가까이 헤엄쳤다.
선단 전체의 속도는 무척 느릿느릿했다. 거의 모든 배가 돛을 내리고 있었다.
보통 사람들에게 이런 해무(海霧)는 무척 큰 영향을 끼쳤다. 무공을 어느 정도 닦은 사람일지라도 시력에 엄청난 제한을 받았기 때문이다. 거경 장군은 선단의 변두리에 있는 중형급의 배 부근에 다다랐고, 배 위에 있던 사람들은 아무도 고래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