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7화. 고향으로 돌아가세요
계연은 옥패의 이름에 무척 흥미를 보였다.
“해치라?”
만약 다른 이들이 이 이름을 들었다면, 어떻게 쓰는 글자인가 궁금해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계연은 지난 생에 들은 지식으로, 해치가 선악과 시비를 판별해주는 신수(神獸)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렇게 쓰는 글자입니다.”
교용이 공중에 대고 몇 획 써 내려가자, 계연은 자신이 아는 그 단어가 맞다는 것을 확신하고 손을 들어 제지했다.
“어떻게 쓰는지는 알아요. 이 옥패는 그 국사가 준 건가요?”
“그렇습니다!”
교용은 무척 공손한 태도로 대답했다.
“대수국 황실은 어디에 있나요?”
“선장께 아룁니다. 저희 대수국 황실은 북경(北境)의 항주(恒洲)에 있습니다. 항주 남쪽 연해(沿海)에 있습니다!”
계연은 간단한 몇 마디에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교용이 북경이며 항주며 하는 이름을 아는 걸 보니, 그 국사가 꽤 수완이 좋은 자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대수국은 만만치 않은 나라였다. 대정국이 있는 운주에 사는 많은 이들은 자신들이 사는 땅이 천하의 유일한 대륙이라고 알고 있었다.
계연은 해치에 관한 소식을 후에 좀 더 알아보고, 정 안되면 그 국사를 찾아가 물을 생각이었다. 일단은 할 일을 마쳐야 했다.
“선하도를 찾는다고 들었는데 선단을 구하시는 건가요?”
“예! 만약 아무런 수확이 없으면 평생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황명(皇命)이 지엄하여…….”
계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그럼 일단 돌아가서 국사에게 몇 년 후 구봉산에서 선유대회(仙游大會)가 열리는데, 저도 가고 선하도의 수선자들도 갈 것이라고 전하세요. 선단이 정말로 있다면, 그걸 얻도록 제가 도울 수 있을 거예요. 국사가 선하도를 아는 걸 보면, 분명 선유대회도 알고 있을 거예요. 그자를 통해 황제에게 알려주면 되겠네요.”
황명은 그들에게 어떤 수확이라도 가지고 돌아오라는 것이었지만, 사실상 계연의 말 자체가 그들에게는 엄청난 수확이었다. 그 국사가 이 이야기를 듣는다면 이 선원들에게 아무런 죄도 묻지 않을 것이다. 비록 황제가 얘기를 듣고 성을 낸다고 한들, 조금만 그럴 뿐 결코 벌을 내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는 편이 이 망망대해에서 떠돌다 객사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계연의 말을 듣고 교용과 주위의 수하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저…… 선장의 존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사람들은 저를 계 선생이라고 불러요. 제 말을 믿든 말든 그건 이제 당신들에게 달렸으니,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이렇게 말을 마친 계연은 뱃머리에서 뛰어내려, 구름을 밟고 공중으로 날아갔다. 뒤이어 그가 날아간 방향의 아래쪽 해수면에서 파문이 일더니, 거대한 고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위에는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 사람이 하나 서 있었다.
푸른 장포를 입은 사람이 고래의 등에 내려서자, 그 위에 서 있던 자가 계 선생을 향해 양손을 맞잡고 인사했다. 그 후 고래는 어느 곳을 향해 떠나갔고, 잠시 후 완전히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안개가 흩어져 가시거리가 넓어진 데다, 계연이 그리 높이 날아가지도 않았고 바닷속에서 나타난 고래도 무척 컸기 때문에 선단의 갑판 위에 있던 이들은 모두 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계연이 떠나자, 이제 막중한 선택의 시간이 그들에게 다가왔다. 교용은 아직 각 배의 책임자들을 부르지도 않았는데, 가까운 배에서는 이미 소리를 치거나 손짓을 이용해 상황을 묻고 있었다.
교용은 먼 곳을 향해 시선을 던지다가, 다시 좌우의 수하들을 향해 물었다.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으냐?”
그러자 그의 수하와 선원들은 감히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의 눈빛에는 이미 원하는 바가 명명백백히 드러나 있었다.
“좋다. 선위(船尉)들을 소집하라. 돌아갈 일에 대해 논의한다 전해라. 만약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면 내가 감당하겠다! 어서 전해라!”
“명을 받들겠습니다!”
수하들이 흥분한 기색으로 그의 명령에 따라 움직였다.
원래는 이렇게 그냥 돌아갔다면 모든 이들이 죄를 뒤집어쓰게 될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계 선장의 말이 있으니, 그것을 전하기만 하면 벌을 모면할 가능성이 컸다. 황제가 죄를 묻는다 해도, 적어도 모든 이들의 목숨이 위험해지진 않을 것이다.
교용의 두 눈은 멀리 서남쪽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이미 먼 길을 항해해 왔고, 나침반도 있는 데다 시시때때로 해도(*海圖: 항해용 지도)를 기록했다. 그래서 최소한 돌아가야 할 대략적인 방향은 잡을 수 있었다. 저 서남쪽은, 분명 전설에 나오는 동토 운주일 것이다. 하지만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 * *
고래의 등 위에서 응약리는 여전히 고개를 돌려 멀리 선단이 있는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계 숙부님, 저들이 이렇게 쉽게 믿을까요? 평범한 사람들의 염원은 무척이나 강하잖아요. 비록 저들의 염원은 아니지만, 저들은 황제를 두려워하니까요.”
응약리는 당연히 계연의 신용도에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다만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8년간 이어온 여정을, 선인을 만났다 해서 그리 쉽게 포기하고 돌아갈 것인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계연은 뒤돌아보지 않고 담담한 어조로 대답했다.
“내가 막 돌아가던 순간 이미 5할을 믿었을 것이고, 중요한 관직에 있는 이들을 소집해 상의할 때는 7할, 그들이 각기 배로 돌아가 소식을 전할 때는 이미 모든 이들이 믿게 될 것이다. 그 후의 일에 대해서는 사실 추측하기 어렵지 않지. 만약 그 황제가 아직 죽지 않았다면, 이 소식을 들고 온 이들을 어떻게 하지는 않을 거야. 만약 그가 죽고 새 황제가 등극했다면, 바다를 떠돌던 이들에게 최소한의 자비는 베풀어주겠지. 게다가 그 국사가 아직 건재하다면 더더욱 그럴 거야.”
응약리는 그의 말을 잠시 생각해 본 다음, 웃으며 동의했다. 그러고는 발로 거경 장군의 등을 툭툭 치며 물었다.
“거의 두 달을 헤엄쳤는데, 아직도 멀었느냐?”
“약리 마마, 조급해하지 마세요. 곧 동해를 나가게 될 겁니다. 하지만 황해(荒海) 부근을 우회할 때는 바다가 더욱 광포해집니다. 그곳에 사는 해양 생물들은 사해(四海) 진룡의 구속을 받지 않아 제멋대로 날뛰지요. 마마와 계 선생님 모두 주의하세요.”
그러자 응약리가 담담한 어조로 대답했다.
“나도 황해에 가본 적 있으니 걱정하지 마라. 계 숙부님은 더더욱 네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예, 예!”
거경 장군이 더욱 힘을 내 헤엄치자, 속도가 전보다 더 빨라졌다.
* * *
다시 십여 일이 지나자, 바닷물의 색깔에 미묘한 변화가 생겼다. 색이 좀 더 혼탁해졌고 물살도 사납게 넘실거렸다. 심지어 하늘에서는 세찬 바람이 불어닥쳐 안 그래도 거친 물살을 높은 파도로 만들어 용솟음치게끔 했다.
반면 저 아래 해저(海底)는 겉으로 보기에 잠잠해 보였고 물고기 떼들도 번성한 생태계를 이루었다. 그러나 바닷물 속 수령(*水靈: 물의 영물)들의 기운에는 무언가 변화가 있었다. 몰아치는 급류에 해저에는 마치 거센 바람이 휘몰아치는 듯했다. 만약 물살이 평온한 곳을 찾지 못하면, 이런 곳에서는 수행을 닦기 어려울 것이다.
거경 장군도 이곳에서는 꽤 애를 먹는 듯했다. 높이 치솟은 파도가 넘실대는 곳에는 거의 항상 강풍이 함께 불어닥쳤다. 그때마다 거경 장군은 수면 아래 깊은 곳으로 잠수한 다음 그 구간을 지났다.
그간의 여정은 꽤 평탄한 편이었으나, 이곳에서는 거친 물살을 견디고 피하느라 계연 일행은 이리저리 흔들리고 오르락내리락했다. 만약 보통 사람들이 고래의 등에 탔다면, 심한 멀미로 인하여 구토를 했을지도 몰랐다.
바람이 잔잔하고 물살이 평온한 곳이 황해에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거경 장군의 말에 따르면 그런 곳에는 황해의 요괴들이 많이 머물고 있다고 했다. 그러니 혹시 발생할지 모를 충돌을 피하고자 일부러 험한 길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이는 계연과 응약리도 동의한 바였다. 그래서 계연과 응약리를 태운 거경 장군은 황해를 우회하는 수역(水域)을 며칠 만에 무사히 빠져나온 뒤, 평온하기로 네 손가락 안에 꼽히는 북해로 마침내 들어섰다.
동해와 북해가 맞닿은 위치는 아주 일부분이고, 나머지는 전부 황해에 가로막혀 있었다. 그래도 거리가 아주 멀지는 않았기 때문에, 북해에 도착하게 된 거경 장군은 마침내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저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던 거경 장군은 흥분한 기색으로 이렇게 말했다.
“동북쪽으로 2, 3일만 더 가면 군모(君母)가 계시는 용암도입니다!”
이를 들은 응약리는 여러 감정이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계연은 그녀가 무의식적으로 치맛자락을 꼭 쥐어 잡는 것을 발견했다.
“이제 그 교룡을 어찌 처리할 건지 생각해봐야겠군요. 거경 당신도 그 교룡이 황해에서 왔다는 것만 알 뿐, 그자가 누구와 가깝고 수하에 어떤 자들이 있는지 아무것도 모르잖아요. 그러니 이 일은 먼저 군모께 물어보고 움직이는 게 낫겠어요.”
“예, 계 선생님 말씀이 옳습니다.”
거경 장군은 착실하게 대답했으나 속으로는 무척 흥분에 찬 상태였다. 어쨌든 그 교룡은 이제 죽은 목숨이었다!
비록 그는 진작부터 피로한 상태였지만, 다시 속도를 올려 미친 듯이 용암도를 향해 헤엄쳐갔다.
* * *
이틀 후, 지치고 피곤했던 거경 장군은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 해저로 깊이 잠수한 후 입을 쩍 벌렸다. 그러자 주위의 온갖 물고기 떼들이 그의 입안으로 빨려 들어왔다.
거경 장군은 그렇게 잠시 체력을 보충한 후, 계연과 응약리를 태우고 다시 반나절을 헤엄쳤다. 그러자 마침내 그들의 시야에 먹구름에 뒤덮인 섬 하나가 나타났는데, 그 섬 위에는 때때로 벼락이 내리치고 있었다.
“용암도구나! 왜 뇌운(*雷雲: 번개, 천둥, 뇌우 따위를 몰고 오는 구름)이 저 위에 도사리고 있지?”
응약리는 흥분과 의혹이 뒤섞인 얼굴로 이렇게 물었다.
“아, 별일 아닙니다. 걱정할 필요 없어요, 마마. 저 먹구름이 있다는 건 아무 일도 없었다는 거예요. 군모께서는 그간 너무 시달려 항상 짜증이 난 상태이시거든요. 그분이 언짢으시면 용암도 위에 저렇게 뇌운이 모여든답니다. 하지만 벼락만 칠 뿐 비가 내리진 않아요!”
계연은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거경 장군을 보며 이렇게 생각했다.
‘화가 났다고 벼락이 내리치다니, 그 정도면 용족 사이에서 그리 약한 편은 아닐 텐데?’
“군모께서는 무척 대단한 실력을 지닌 것 같은데, 왜 스스로 그 교룡을 처리하지 않는 건가요?”
“계 선생님, 군모께서는 물론 대단한 분이십니다. 하지만 그 교룡도 마찬가지입니다. 용족의 규율에 따르면, 만약…….”
응약리는 계연이 이런 일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얼굴을 약간 붉히며 이렇게 말을 이었다.
“오랜 옛날부터 내려오는 규율이에요. 이렇게 한쪽이 구애하는 상황에서는, 어머니가 그자와 맞붙어 이기면 상관없지만, 만약 지게 된다면…….”
계연은 손을 들어 올려 응약리가 더 말하지 않아도 되도록 제지했다.
“아, 이해했어요. 아니지…… 그럼 약리 네가 싸우면?”
응약리는 다급히 손을 내저으며 머리를 발랑고(*拔浪敲: 작은 북 모양으로 양옆의 끈에 작은 구슬이 달린 장난감)처럼 좌우로 흔들었다.
“아뇨, 아뇨! 저는 달라요. 저는 원한을 갚기 위해 온 것이니, 오래된 규율과는 서로 상관없는 일이에요. 아무리 크게 지더라도 목숨을 잃을 뿐이지요. 게다가 저는 지지 않을 거니까요. 계 숙부님의 넝쿨검이 없더라도, 제 도행으로도 충분해요!”
응약리는 차츰 냉정함을 되찾았다. 그녀의 대답에서는 자신감이 느껴졌고, 사실 그럴 만한 능력도 충분했다.
“일단 어머니를 먼저 뵈어야겠다!”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