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8화. 죽이 잘 맞는 한 쌍
거경 장군은 물 아래로 잠수해 용암도의 아래쪽을 향해 헤엄쳤다. 하지만 용암도에 채 가까워지기도 전에 괴상한 모습의 물요괴들이 나타나 길을 막았다. 우두머리에 선 자는 온몸이 비늘로 뒤덮인 사람의 모습을 했으며, 등 뒤에는 긴 꼬리가 달려 있었다. 횡골을 녹였는지 사람 말도 할 수 있었다.
“거기 서라! 이곳은 용암도다. 우리 어르신의 부인께서 머무시는 곳이지. 가까이 다가오지 마라!”
거경 장군이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응약리는 눈을 가늘게 뜨며 손을 쭉 뻗어 우두머리 요괴의 목덜미를 틀어쥐었다.
“너희 어르신? 이름이 뭐지? 어디에 살고?”
“억……. 너, 윽, 담도, 크구나……. 우리 어르신은, 화룡(花龍)…….”
계연은 응약리가 눈이 뒤집혀 상대를 목 졸라 죽이기 전에, 서둘러 손가락으로 넝쿨검을 두드려 검기(劍氣) 한 줄기를 뽑아내었다. 그런 뒤, 그 요괴의 목덜미에 날렸다. 그러자 그 요괴는 눈을 까뒤집으며 정신을 잃었다.
“길잡이를 하게 살려두자. 남은 자들은 전부 처리하고.”
계연의 말이 떨어지자 거경 장군은 헤헤 웃은 뒤 입을 크게 벌려 맹렬하게 주변의 것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도 어찌 된 일인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던 요괴들이 이리저리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거경 장군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곧이어 고래의 입안에서는 뼈가 산산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고, 그렇게 빨려 들어간 이들은 거경 장군의 좋은 양분이 되었다.
* * *
용암도 아래의 용궁(水府)은 면적 대부분이 섬 아래에 깊이 파인 석굴 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 거경 장군이 돌아온 것을 보고 용암도의 해양 생물들은 모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인어 두 명이 이 기쁜 소식을 전하러 군모가 있는 전각으로 달려갔다.
“군모께 아룁니다. 거경 장군께서 돌아오셨습니다!”
그 소식에 전각 안에 있던 짙푸른 빛깔의 장포를 입은 여인이 누워있다가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가 정말로 묵영을 데려왔느냐?”
“묵 어르신은 뵙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군모께서 나오시면 곧 알게 되실 겁니다!”
인어의 목소리에는 기쁜 기색이 가득해서, 여인은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꼈다.
‘설마 그 놈팡이가 온 건가?’
석굴 안쪽의 전각을 나와보니, 거경 장군의 거대한 형체가 해저에 가라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앞에는 남녀 한 쌍이 서 있었는데, 사내는 그녀가 모르는 자였고 여인은 그 외모나 자태가 자신과 무척 닮아있었다.
모녀는 그렇게 서로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너는…… 약리니?”
“어머니! 약리가 왔어요…….”
응약리는 꽉 막힌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하며, 주저하는 기색으로 어머니를 향해 다가갔다.
“어머니…… 200여 년 동안, 잘 지내셨어요?”
“많이 컸구나……. 네 오라비는? 너희는 어떻게 지냈느냐?”
응약리는 제 어미가 자신과 오라버니를 걱정하는 것을 보고, 정말로 연을 끊지는 않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녀는 기쁜 마음에 몇 걸음 달려가 어머니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용왕비는 무의식적으로 팔을 피했지만, 응약리는 전혀 개의치 않고 어머니를 포옹했다.
“저희는 잘 지냈어요. 하지만 어머니가 보고 싶었어요!”
용왕비는 늘어뜨린 손을 어찌할 바 모르더니, 마침내 응약리를 마주 안았다.
한쪽에 서 있던 계연은 비록 응약리가 고개를 숙이고 있긴 했지만, 무척 기쁘게 웃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응약리에게 있어서는 오랜 여정을 감내할 만한 가치가 있는 포옹이었다.
“어머니, 이제 안심하세요. 그 교룡 놈이 감히 나타나기만 하면 제가 바로 없애 버릴게요. 만약 나타나지 않는다면, 제가 직접 찾아가서 처리하고 올게요!”
용왕비가 막 입을 떼려 했으나, 응약리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저도 이제 그렇게 생각 없이 움직이지 않아요. 저 자신의 도행에 자신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도움이 될 분을 모시고 왔어요. 이분은 계 숙부님이신데, 아버지의 막역한 친우이자 법력이 높은 선인(仙人)이세요. 계 숙부님의 선검(仙劍)은 어떤 교룡도 당해내지 못할 거예요!”
“그의 친우라고?”
용왕비는 그제야 제대로 계연을 바라보았다.
계연은 그녀가 화를 낼까 봐 차마 부인이라고 부를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바로 이름을 부르는 것도 예가 아닌 듯하여 공수하며 이렇게 인사했다.
“그렇습니다. 저는 계연이라고 합니다!”
계연에게서는 선도(仙道)를 닦는 자의 기운이나, 요기(妖氣) 또는 마기(魔氣) 따위가 전혀 느껴지지 않아 그저 평범한 사람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 깊은 해저에 있다는 자체가 결코 보통 사람이 아니었으므로, 도행이 무척 깊은 수선자인 것이 분명했다.
“그가 보낸 건가요?”
계연은 웃으며 대답했다.
“당연히 응 선생님의 부탁을 받고 온 것이지요. 사실 그분도 오고 싶어 하셨는데, 부인께서 언짢아하실까 봐 오지 못한 거예요. 하지만 약리 혼자서는 당해내지 못할까 봐, 특별히 제게 도와달라 부탁하셨어요.”
그러자 응약리가 놀란 얼굴로 계연을 바라보았다. 계연은 그녀를 향해 눈썹 끝을 살짝 들어 보였다.
“네네, 맞아요! 계 숙부님은 도력이 높고 이곳저곳 유람하는 것을 좋아하시거든요. 제 부탁만으로 모셔올 수 있는 분이 아니세요. 당연히 아버지께서 직접 나서서 부탁하신 거죠.”
“흥!”
그 말에 용왕비는 코웃음을 쳤지만, 그 이상 무어라 말하지는 않았다.
거경 장군은 그들의 대화를 듣고 속으로 무척 기뻤다. 용왕님께서도 오길 원하셨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 교룡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거경 장군은 계속 입안에 머금고 있었던 요괴를 꺼억 토해냈다. 요괴는 그대로 쭉 계연의 바로 옆까지 굴러갔다.
용왕비는 눈썹을 찌푸리며 거경을 향해 물었다.
“저건 누구냐?”
“군모(君母)께 아룁니다. 저자는 그 무도한 교룡의 수하로, 용암도 바깥에서 수상한 짓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자의 일행들은 모두 제가 먹어 삼켰습니다!”
“그럼 왜 저놈은 마저 먹지 않은 것이냐?”
그러자 응약리가 웃으며 대답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어머니. 저자는 제가 특별히 남겨두었어요. 그 방자한 교룡 놈의 소굴로 우리를 데려다줄 거예요. 혹시 그 교룡이 누구와 가까운지, 어떤 자들과 왕래가 있는지 아시는 것 있으세요?”
용왕비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처음에 그자와 만났을 때는 곁에 무슨 대단한 요물은 없었어. 몇 년 전에 나에 대해 여기저기 알아본 다음부터 귀찮게 굴기 시작했지. 심지어 내 용궁에서 나온 시종들을 잡아먹기도 했어. 도대체 언제 내가 용암도에 산다는 걸 알아차렸는지 모르겠구나.”
그러자 거경 장군이 옆에서 거들었다.
“그놈은 황해에서 왔는데, 여기에 무슨 근거지 같은 게 있겠습니까? 사귀었다는 자들도 전부 쓸모없는 술친구 정도겠지요. 그가 건재할 때야 웃는 얼굴로 어울리겠지만, 죽고 나면 누가 진심으로 울어주겠습니까? 황해에서 같이 넘어온 자들이 있다 해도, 그쪽 놈들의 야만적인 성향으로 보아 아무도 제 일도 아닌 것에 깊이 관여하려 하지 않을 겁니다. 게다가…… 만약 용왕님의 신분을 꺼내 들기만 한다면, 흥! 사해(四海)의 진룡들은 서로를 잘 아는데, 누가 감히 우리 용왕님께 거스르는 짓을 하겠습니까? 그렇게만 되면 물의 족속들 가운데 그자를 돕겠다고 나설 이는 아무도 없을 겁니다!”
그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지만, 용왕비는 그 말에 언짢은 기색이었다. 응약리가 다급히 화제를 전환했다.
“그래, 알았다. 일단 그 교룡 먼저 처리하고 이야기하자. 계 숙부님, 이자를 어떻게 입을 열게 만들까요?”
그러자 계연이 이렇게 대답했다.
“그냥 놓아주면 알아서 우리를 데려다줄 거야.”
이렇게 말한 계연은 바닥에 엎어져 있던 요괴를 한 손으로 집어 든 다음, 멀리 위쪽을 향해 집어 던졌다. 요괴는 물속에서 기다란 궤적을 그리며 용암도 저 멀리까지 날아갔다.
집어 던져지던 중 무언가에 충격을 받은 듯, 얼마 지나지 않아 요괴는 정신을 차렸다.
그는 잠시 좌우를 두리번거리다가 주위의 형제들이 모두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 다시 용암도 쪽을 바라보니, 거대한 고래가 때때로 꼬리를 살랑살랑 움직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래서 요괴는 자신이 정신을 잃었기 때문에 아무도 이쪽에 관심을 두지 않는 거라고 생각했다.
‘어이쿠, 어서 가서 화룡(花龍) 어르신께 알려야 해!’
요괴는 몸을 한번 부르르 떨더니 즉시 몸을 내뺐다. 그는 재빨리 헤엄치며 어수술(御水術)까지 사용해 바닥에 거의 달라붙다시피 하여 서쪽으로 도망쳤다.
그가 떠나고 잠시 후, 계연과 응약리는 천천히 요괴의 뒤에 따라붙었다. 용왕비는 잠시 망설이다가 마침내 함께 따라가기로 했다. 그들은 모두 거경 장군의 등에 탔고, 응약리는 술법을 사용해 고래의 모습을 감췄다.
* * *
약 900리 밖의 해구(*海溝: 바다 밑바닥에 좁고 길게 움푹 들어간 곳) 안에는 암석과 산호 등으로 지어 올린 용궁(水府)이 있었다. 비록 조금 거칠고 조잡하게 지어졌지만, 그간 계속 손을 보고 관리하여 꽤 봐줄 만한 모습이 되었다.
그 요괴의 속도는 거경 장군보다 훨씬 더 느렸기 때문에, 900리를 헤엄쳐가는 데에 반나절이 넘게 걸렸다.
정전(正殿)이라고 봐줄 만한 건물의 상석에는 두 사람이 앉아 있었다. 하나는 연한 초록 대추색의 장포를 입고 높은 관(冠)으로 머리를 틀어 올린 남자였고, 다른 하나는 회갈색 피부에 웃통을 드러낸 차림의 대머리 남자였다. 그들 양옆으로는 기괴한 모습의 요괴들이 앉아 있었다. 어떤 자들은 좀 더 사람의 형태에 가까웠고, 어떤 자들은 각종 물고기의 모습에 가까웠다. 그들은 먹고 마시며 쾌활하게 떠들었다.
“자자, 사(*鯊: 상어) 형제, 오늘 이렇게 내 초대에 응해주어 고맙군. 제안에 대해서는 내가 생각을 좀 해본 다음 만족할 만한 답을 주지. 자, 일단 한 잔 마시세. 이건 내가 전에 북해의 항주 부근에서 배 열 몇 척을 침수시켜 가져온 인간들의 술이라네. 이런 것도 같이 가져왔지. 무슨 말린 과일이라고 하더군. 그 범인(凡人)들이 나보다도 더 풍족하게 누리고 살지 뭔가?”
초록색 장포를 입은 남자는 무척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는 껄껄 웃으며 자신이 가져온 물건들을 쉬지 않고 설명했다.
회색 피부의 상반신을 드러낸 남자는 술잔을 들어 올리며 미소 지었다. 술잔은 거품으로 감싸져 물에 닿지 않게 보호되고 있었다. 그는 술을 한입 입에 머금고는 이렇게 생각했다.
‘흥! 세상 물정도 모르는 촌놈!’
하지만 그는 겉으로는 하하 웃으며 화룡의 말을 받았다.
“정말 좋은 술이군. 다만 화 형이 기왕 배를 열 척이나 넘게 침수시키셨다면, 거기 있던 사람들은 어디 있소? 쩝쩝, 사람 고기가 참 맛있는데…….”
“아하하핫! 회(灰) 형 자네도 알지 않나. 내가 참을성이 좀 없다네. 게다가 물에 빠져 죽은 이들은 맛이 금방 변하지!”
“아, 하긴 그렇지. 내가 주제넘게 참견을 했군. 후에 화 형이 시간이 나면 내가 좋은 곳에 데려다주겠소. 길이 좀 멀긴 한데 절대 잊지 못할 경험을 하게 될 거요!”
녹색 장포의 남자는 즉시 흥미를 보였다.
“음? 거기가 어딘가?”
“당연히 흑(黑)…….”
회색 피부의 남자가 이렇게 입을 뗐을 때, 밖에서부터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르신! 어르신…… 일이 터졌습니다, 어르신!”
그러자 녹색 장포를 입은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후, 온몸이 비늘로 뒤덮인 요괴가 허둥지둥 뛰어 들어왔다.
“응? 내가 가서 미인을 잘 지켜보고 있으라 하지 않았느냐? 왜 혼자 돌아왔지?”
그 요괴는 녹색 장포를 입은 남자를 향해 먼저 예를 올렸다.
“소인이 직무를 내버려 두고 돌아온 것이 아니라, 그 흉악한 고래가 다시 돌아왔습니다! 게다가 이번에는 다른 이들을 함께 데려왔습니다. 아, 아무래도 어르신께 불리할 것 같습니다. 소인은 그들과 맞붙다가 어르신께 아뢰려 빠져나왔고, 다른 형제들은 모두 잡아먹혔습니다…….”
“하하하……!”
녹색 장포를 입은 남자는 큰 소리로 웃어젖혔다.
“네가 그자들과 맞붙어 싸울 수 있었다면, 왜 감히 나를 찾아와 귀찮게 하느냐? 비록 내가 미인의 하인들을 여럿 잡아먹긴 했지만, 그 고래에게는 한 번도 손을 대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나를 귀찮게 하다니, 이제 날 원망하지 못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