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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가기연-339화 (339/892)

339화. 맹렬한 불길에 타오르다

“화 형, 무슨 골치 아픈 일이라도 생겼소? 내 도움이 필요하시오?”

자리에 앉아 술을 음미하던 회색 피부의 남자가 이렇게 물었다. 일어나지도 않는 걸 보니 딱 봐도 예의상 묻는 말이었다.

“아니, 회 형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네. 그 고래가 힘은 세지만, 아직 둔갑하지도 못하는 미미한 요물에 불과하거든.”

“하지만 화 형의 수하가 방금 그 고래가 다른 이들을 이끌고 왔다 하지 않았소?”

회색 피부의 남자가 다시 한번 이렇게 물었다.

“하하하……. 회 형이 잊었나 보군. 예전에 자네들이 수행이 깊고 순수한 물요괴의 혼을 원한다 하지 않았는가. 내 성의를 보이기 위해 수하들을 소집하여 자네 형제 몇의 도움을 받아 동해에서 검은 교룡을 하나 죽인 적이 있었지!”

회색 피부의 남자가 눈썹을 찡그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이렇게 대답했다.

“아, 생각났소. 비록 나는 가지 않았지만, 듣자 하니 그 교룡의 도행이 높아 포위를 뚫고 도망쳤다지? 그래서 용의 혼이나 시신은 얻지도 못하고 힘줄만 얻었었지. 운주에는 신령이 많아 그자를 뒤쫓지 않고, 후에 다른 혼을 찾아야 했었지…… 설마 그 검은 교룡에게 뭔가 특이한 점이라도 있었소?”

“하하, 사실 내가 말하지 않은 일이 한 가지 있네. 일전에 내 미인의 하인들을 먹어 치우기 전에, 그들에게서 몇 가지 소식을 얻어냈었지. 그들에게는 뒷배가 있었는데 그게 바로 ‘묵 어르신’이라 불리는 검은 교룡이었소. 아무래도 그 미인과 일전에 특별한 사이였던 것 같았다네. 그 검은 교룡이 설령 죽지 않았다 해도, 이제는 전과 같지 않을 걸세. 무슨 구원병으로 올 일은 결코 없지.”

녹색 장포의 남자가 흡족한 듯이 이렇게 대답하자, 회색 피부의 남자는 그를 조금 다른 눈으로 보게 되었다.

‘이놈이 치밀하지도 않고 따로 계획도 없는 줄 알았더니 완전히 뇌가 없는 건 아니었군.’

“네 이놈! 네가 묵영을 죽인 놈이로구나!”

그때, 응약리의 차가운 목소리가 바깥에서 들려왔다.

뒤이어 ‘콰광!’하는 소리와 함께, 용궁의 바깥 건물이 돌진해온 거경 장군에 의해 와르르 무너졌다. 녹색 장포를 입은 남자와 회색 피부의 손님이 있는 정전도 땅이 이리저리 흔들렸고, 천장에서는 돌멩이와 산호 조각이 우수수 떨어졌다.

분노가 솟구친 녹색 장포의 남자에게서 용의 기운이 사방으로 뻗쳐 나갔다. 그는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정전 바깥으로 날아갔다.

“죽고 싶은 것이냐? 감히 화 어르신이 있는 곳에서 소동을 피우다니!”

이렇게 소리친 남자는 고래의 등 위에 탄 두 여인과 남자 한 명을 발견했다.

“미인? 자네, 여동생도 있었나? 잘됐군! 모두 안으로 들어오게!”

녹색 장포의 남자는 용왕비와 응약리의 아름다운 얼굴과 굴곡진 몸매를 한참 바라보았다. 두 여인은 싸늘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 후 그는 푸른 옷을 입은 남자를 바라보았다.

“네가 묵영인가? 아직 안 죽었군? 과연 이제 용기(龍氣)는 없군!”

계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입을 열어 대답해 주기도 귀찮을 정도였다. 이에 그가 왼손으로 앞으로 쭉 펴자, 넝쿨검이 자동으로 손안으로 날아왔다. 그는 오른손으로 가볍게 검신을 몇 번 쓰다듬은 후, 응약리에게 넝쿨검을 넘겨주었다.

용왕비는 시종일관 높이 쳐들고 있던 고개를 약간 내려, 고래의 머리 위에 서서 아래쪽의 녹색 장포를 입은 남자를 향해 말했다.

“화후(花侯), 이쪽은 내 딸이다. 나를 대신하여 한 가지 일을 하러 왔지!”

화후라는 이름의 교룡은 잠시 얼떨떨한 표정으로 서 있다가 응약리를 바라보았다.

“자네 딸이라고? 뭘 하러 왔는데?”

응약리는 온몸의 법력을 끌어올려 손에 쥔 넝쿨검으로 주입했다.

“널 죽이러!”

입을 연 동시에 응약리는 검을 뽑아 들었다. 하지만 검 손잡이를 쥐고 검을 뽑던 순간, 응약리는 천근에 달하는 듯한 무게를 느꼈다.

‘무거워!’

오른팔이 미세하게 떨렸지만, 응약리는 젖 먹던 힘까지 끌어올려 마침내 선검을 검집에서 뽑아냈다.

챙!

날카로운 검명(劍鳴)이 울려 퍼졌다.

스윽!

은백색의 빛줄기가 그들이 서 있는 해구에 스쳐 지나갔다. 이를 본 화후의 동공이 수축했다. 화후는 재빨리 피해 보려 했지만, 선검이 눈앞으로 비스듬히 떨어졌다.

쿠르릉……!

해구에 세워진 암석들이 붕괴하며 용궁 대부분이 완전히 무너졌다. 해구 바닥에는 깊은 검흔(劍痕)이 한 줄기 남았다.

응약리는 검을 휘두르는 동시에 상대를 죽이지 못했다는 걸 알았다. 그녀로서는 선검을 제대로 다룰 수 없었기 때문에, 옆으로 살짝 빗겨나간 것이다. 화후는 한쪽 팔과 한쪽 다리를 잃었다.

“어흥……!”

화후의 고통에 찬 비명이 울려 퍼지며, 혼탁한 땅바닥에 핏물이 섞여들었다. 뒤이어 화려한 무늬의 교룡이 원래 모습을 드러냈고, 그는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해구에서 이리저리 굴렀다. 그 모습이 막 진흙에서 뽑아낸 지렁이 같았다.

“어흥…… 음머-! 음메에…… 어흥!”

계연은 응약리가 다시 한번 검을 휘두르려는 것을 보고 손을 뻗어 말렸다.

“죽지는 않았지만, 상처가 깊이 났으니 법력을 더 낭비할 필요는 없어.”

물론 더욱 중요한 것은 넝쿨검의 검기를 더는 낭비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비록 응약리의 법력이 소모된 검기를 얼마간 보충해주긴 했지만, 넝쿨검의 검기가 없었다면 누구도 필적할 수 없는 날카로움은 펼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계연은 당연히 모든 이들을 이렇게 세워둘 계획은 없었다. 그는 오른손 엄지를 살짝 구부리고 나머지 네 손가락을 가슴 앞에서 부채 부치듯 두어 번 흔들었다. 동시에 계연의 입으로부터 붉은빛을 띤 회색 화염이 뿜어져 나와 고통에 몸을 구르는 교룡에게로 날아갔다.

응약리와 용왕비, 거경 장군을 비롯하여 도망치던 용궁의 요괴들, 막 정전에서 나온 회색 피부의 남자도 그 장면을 목격했다.

괴이한 색깔의 불길은 해저를 가로지르면서도 전혀 꺼지지 않았고, 마침내 화려한 무늬의 비늘로 뒤덮인 교룡의 몸 위에 내려앉았다.

화르르!

흙먼지와 핏물로 뒤덮인 교룡의 몸에 삽시간에 불길이 붙더니, 회색과 붉은색이 섞인 불길 속에서 맹렬하게 타들어 갔다.

“아윽……!”

교룡의 비명이 전보다 몇 단계나 더 높이 올라갔다.

‘저게 무슨! 어화술(御火術)인가? 바닷속에서 교룡을 태운다고?’

회색 피부의 남자는 응약리가 선검을 휘두르는 것을 보고 이미 상황이 좋지 않게 돌아간다는 걸 깨달았다. 뒤이어 괴이한 어화술을 목격한 그는 이제 두려움에 온몸이 떨려왔다.

그는 막 도망치려다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어 고래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모든 이들이 놀라거나 멍한 얼굴로 타오르는 불길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단 한 사람, 선검을 손에 쥐고 불길을 일으킨 사람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순간, 남자는 온몸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다행히 그건 아주 짧은 순간일 뿐이었다. 뒤이어 치솟은 불길과 주위의 흙먼지가 서로의 시야를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회색 피부의 남자는 잠시 주저하다가, 조심스럽게 몸을 굽히고는 팔 길이 정도의 짤막한 상어로 변신했다. 작은 상어는 혼탁한 물속에서 열곡(*裂谷: 해양의 골짜기) 뒤쪽으로 도망쳤다.

다른 요괴들은 모두 온 힘을 다해 일단 수면 밖으로 얼굴이라도 내밀려고 했다. 작은 상어는 그들 무리에 뒤섞여 무사히 빠져나왔다. 이때 해구 아래쪽의 수온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었으므로, 일반적인 해양 생물들은 모두 그 열기를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다.

삼매진화는 때로 아무런 온도가 없는 것 같다가도, 때로는 뜨겁기 그지없었다. 오늘은 교룡을 태웠으니, 양기가 흘러넘쳐 삼매진화의 열기에 영향을 주는 것 같았다.

커다란 골짜기 안에서 서두르지 않고 십여 리를 헤엄친 상어는 절벽에 딱 붙어 해저에서 빠져나왔다. 그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최대한 기운을 숨긴 채였다. 그러고는 때마침 지나가는 주위의 물고기 떼와 뒤섞여 더욱 멀리 도망쳤다.

도망치던 상어가 뒤를 돌아 해구 쪽을 바라보니, 골짜기 안의 회색 잿가루가 물살을 타고 이리저리 퍼지고 있었다. 불빛은 이미 꺼져있었는데, 그게 바닷물에 의해 불이 꺼진 것인지 아니면…… 본명은 화후이고 자칭 화룡후(花龍侯)라 일컫는 그 재수 없는 교룡이 완전히 타버려서인지는 알 수 없었다.

상어는 더 머물 엄두가 나지 않아 몸을 한 차례 부르르 떤 다음, 꼬리를 힘차게 휘저어 속도를 올렸다.

* * *

해구 깊은 곳에서 응약리와 용왕비(龍母)는 화후가 맹렬한 불길에 타들어 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더는 탈 것이 남아있지 않자, 화염의 기세가 천천히 누그러졌다.

그곳은 해저 깊은 곳의 골짜기 안에 있어 수압도 강한 데다, 차가운 북해의 바닷물은 이 불길에 조금의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

이제 주위에는 온통 거품이 가득 떠올라 있었다. 바닷물의 온도가 갑작스럽게 올라가자 바닷속에 용해되어 있던 물질이 기화하려고 하며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이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이 주변의 수온은 이미 생선탕을 끓여 먹을 수 있을 정도였다.

거경 장군은 열기와 두려움을 꾹 참고 애써 도망치지 않고 있었다. 만약 요괴가 아닌 보통의 고래였다면, 이미 3할 정도는 이 온도에 푹 익었을 것이다.

용왕비는 계연을 슬쩍 살폈다.

‘그 놈팡이와 친한 사이라더니, 과연 보통의 수선자가 아니군.’

그녀는 이렇게 불을 다루는 자는 듣도 보도 못했었다.

“계 숙부님, 조금 전 그게 삼매진화였지요?”

응약리는 처음으로 계연이 불을 다루는 것을 본 것이지만, 단번에 그게 무엇인지 알아볼 수 있었다.

계연은 응약리를 흘끗 바라보았다가 다시 열곡 위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고천명이 말했구나?”

“네. 오라버니가 먼저 듣고, 그다음에 저와 아버지께도 알려 줬어요.”

계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삼매진화는 형성되는 순간부터 위력이 엄청나지. 저 교룡도 만약 상처를 먼저 입지 않았다면, 자신의 법력으로 어느 정도 맞설 수 있었을 거야. 하지만 검상으로 인한 고통 때문에 심신이 불안정하여 그대로 진화(眞火)에 타버린 거야.”

이렇게 말하며 계연은 손을 뻗어 잿더미에 남은 잔불을 다시 소매 안으로 끌어왔다. 그 안에는 삼매진화에 휩싸인 여의주가 있었다.

바로 이 여의주 때문에 진화가 꺼지지 않고 계속 타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여의주는 용족들의 보배였다. 도행을 충분히 닦지 않으면 결코 여의주를 만들어낼 수 없었다. 그것은 그들이 수련을 닦는 데에 있어 근본이 되는 것 중의 하나였고, 여의주를 잃는다면 도행의 반이 날아가기 때문에 목숨의 반이 날아가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이 교룡이 여의주를 품고 있다니 정말 뜻밖이었다.

여의주를 감싼 삼매진화는 계연의 소매 근처에서 저절로 불씨가 꺼졌고, 오리알 크기의 여의주만이 남았다.

이전에 계연이 삼매진화를 불러냈을 때는 그 불길이 계연 자신을 다치게 하지 않도록 무척 신중해야 했다. 하지만 계연이 오기조원의 경지에 이른 후에는 그럴 걱정 없이 자유자재로 부릴 수 있었다.

오리알만 한 여의주는 2척(*약 60cm) 둘레의 찬란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그 아름다움을 감상하며 계연은 저도 모르게 순수한 감상을 내뱉었다.

“예쁘긴 예쁘네. 생각보다 크지는 않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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