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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가기연-340화 (340/892)

340화. 신경 쓰지 않을 수 있다면 그게 제일 좋지

여의주는 그의 주인의 형태에 따라 크기가 줄어들었다 커졌다 하며 변했다. 하지만 이 여의주는 저 교룡이 원형으로 돌아온 뒤 거둬들인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 가장 큰 형태일 것이다. 하지만 수십 장(*丈: 10장은 약 30m)이 넘는 길이의 교룡에 비하면 무척 작은 것처럼 느껴졌다. 빛 둘레까지 합한 크기라면 봐줄 만할 것 같았다.

“계 숙부님, 이 정도면 결코 작은 게 아니에요. 저는 오히려 이 교룡이 이렇게 큰 여의주를 품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는걸요.”

응약리는 이렇게 말하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참, 숙부님. 이 교룡이 좀 전에 접대하던 손님이 있던 것 같았는데요. 그자도 묵영의 죽음에 관계가 있었어요. 왜 아직도 보이질 않죠?”

“이미 도망쳤거든.”

계연의 말에 응약리는 깜짝 놀랐다. 그녀는 계연이 옆에 있다면 누구도 결코 빠져나가지 못할 거라 여겼기 때문에 그다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곧 그녀는 무언가를 깨닫고 이렇게 물었다.

“일단 풀어주고 어디로 가는지 보려고 하시는 건가요?”

계연은 여의주를 잘 수습하고서, 열곡(*裂谷: 해양의 골짜기)의 위쪽을 바라보며 평온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 뜻은 아니었어. 원래는 크게 겁이라도 주려고 했거든.”

“예? 그럼 왜……?”

응약리가 이렇게 묻자 계연은 아무 말 없이 살짝 고개를 저었다.

“이제 가자. 일단 용암도로 돌아가는 게 좋겠다.”

용왕비는 잿가루가 된 교룡을 바라보았다. 그의 혼은 빠져나올 새도 없이 불길에 의해 사라졌다. 그 꼴을 보고 있자니 그간의 울분이 적지 않게 사라진 것 같았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거경 장군은 이렇게 대답한 후, 해수면을 향해 다급히 헤엄쳐 올라갔다. 이곳은 이제 수온이 너무 높아져서 그조차 더 머물지 못할 지경이었다. 주위에는 제때 도망치지 못해 뜨거운 물에 푹 삶아진 요괴들이 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입안이 데일까 봐 감히 입을 열어 그것들을 먹어 치울 엄두도 내지 못했다.

* * *

거경 장군은 용암도에 돌아오자마자 이 희소식을 용궁의 요괴들에게 떠벌렸다.

“그 무엄한 교룡 놈은 이미 목숨을 잃었다네! 앞으로는 용암도에 숨어있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야!”

거경의 쩌렁쩌렁한 목소리는 용암도 용궁에 있던 해양 생물 전체가 들을 수 있었다.

용왕비를 가까이에서 모시는 인어들과 거경 장군을 제외한 용궁의 물요괴들은 그제야 자신들의 군모(君母)에게 이렇게 대단한 가족들이 있었구나 하고 마음을 놓는 한편 무척 기뻐했다.

잠시 후, 용암도 용궁에서는 축하연을 마련했다. 손님들을 초대한 거창한 연회는 아니었고, 용궁의 물요괴들이 오늘의 일을 마음껏 축하하려는 목적에서 치러지는 연회였다.

용왕비와 응약리는 연회 자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방 안에서 그간 있었던 일을 나누며 회포를 풀었다.

계연은 연회가 열리는 대청에 앉아 용암도 용궁에서 준비한 음식을 맛보았다. 그의 곁에서는 인어와 정괴(精怪)들이 그를 공손히 접대하고 있었다. 거경 장군도 함께 있고 싶어 했으나, 커다란 몸집 때문에 이 연회장 안으로 들어올 수가 없어 밖으로 나가 따로 식사를 해결하러 갔다.

계연은 모든 요리를 한 입씩 맛본 후, 입맛에 맞는 것만 몇 번 더 먹었다.

그의 근처에 있던 인어는 맨 처음의 긴장이 누그러지자, 마침내 계연에게 몇 마디 말을 걸어볼 수 있었다.

“계 선생님께서는 운주에서 오셨지요? 무척 먼 길이셨을 텐데, 피곤하시겠어요.”

“가깝진 않았지요. 하지만 저보다는 거경 장군이 더 피곤했을 거예요. 내내 저희를 태우고 왔으니까요.”

“아, 그렇겠군요.”

또 다른 인어 하나가 계연에게 소라로 만든 술잔에 술을 따라 주었다.

“선생과 용왕님께서 막역한 친우시라고요. 용왕님께서는 무서운 분이신가요?”

계연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이렇게 대답했다.

“그건 때때로 달라요. 보통은 그저 눈이 높고 좀 까다로울 뿐, 같이 지내기 어려운 성격은 아니에요.”

“아, 그럼 정말 다행이네요.”

“그러게 말이에요.”

“약리 아가씨께서 저리 성격이 좋으시고, 계 선생님께서도 온화하시니, 용왕님의 성격도 분명 좋으실 거예요.”

그들이 또 다른 질문을 하려 할 때 계연이 별안간 몸을 일으켰다.

“누가 절 찾거든, 어딜 좀 갔다 오겠다 했다고 전해 주세요.”

계연은 아무런 위화감도 없이 물살을 밟으며 용궁을 빠져나온 뒤, 해수면 위로 올라갔다.

뒤이어 용암도 부근의 해수면에 물보라가 생기더니, 계연이 그 안에서 날아올라 공중에 발을 디디며 섬으로 내려왔다.

“어떻게 됐나요?”

계연은 뜬금없이 이렇게 물었다.

희미한 안개가 섬 위에 모여들더니, 잠시 후 그 안에서 투명한 용의 형상이 나타났다. 뒤이어 늙은 용의 아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참 따라갔는데, 그놈이 도망친 경로를 보니 표면적으로는 북해의 진룡들과 아무런 관계가 없어 보이더군. 그자의 몸에 신기(*蜃氣: 신기루를 만드는 교룡의 기운)를 심어 놓느라, 이 형체가 가진 대부분의 원기(元氣)를 소모했다네. 길게는 머무를 수 없게 되었군.”

계연은 그의 말을 듣고는 정면으로 용을 바라보았다.

“그럼 왜 저를 부르신 거예요? 어서 가서 부인을 만나지 않고요!”

늙은 용은 아무 말 없이 계연을 바라보았다. 만약 그런 말을 한 게 계연이 아니라 응풍이나 약리였다면, 그는 그들을 꾸짖었을 것이다. 하지만 계연에게는 그렇게 할 수 없었으므로 그는 화제를 바꿨다.

“계 선생의 삼매진화는 과연 대단하더군. 때로 나는 선생이 도대체 수선자들조차 본 적 없고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수단을 몇 가지나 가지고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네.”

계연은 공손하게 대답했다.

“저도 마찬가지예요. 응 선생님의 신형대법(*蜃形大法: 신(蜃)은 기운을 토하여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보이게 할 수 있는 교룡. 신기루를 만드는 술법)은 무척 신비로워서 저도 눈치채지 못했는걸요.”

“정말로 눈치채지 못했소?”

안개로 이루어진 용의 형체가 계연에게 가까이 다가와 계연의 표정을 자세하게 살폈다. 그러자 계연은 ‘하하’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로 몰랐어요. 그냥 추측해 본 거였어요.”

늙은 용은 서쪽을 바라보며 이렇게 탄식했다.

“묵영의 죽음에는 과연 흑황(*黑荒: 흑몽영주(黑夢靈洲))이 관련되어 있었군. 다만 대정국 주변에서 온 게 아니라 북해에서부터 온 이들일 줄은 몰랐지. 흥, 내가 전에 죽인 요괴들은 억울하게 목숨을 잃었군.”

그러자 계연이 담담하게 대꾸했다.

“그중 무고한 이들은 몇 없었을 거예요.”

“그건 그렇지!”

늙은 용은 다시 계연을 향해 앞발을 모아 맞잡고 인사했다.

“계 선생, 이번에 또 큰 빚을 졌군. 묵영을 대신해 원한을 갚아줘서 고맙소. 이후의 일은 선생께서 더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오.”

늙은 용은 무척 체면을 중시하는 자였으므로, 계연은 응굉을 향해 양손을 맞잡고 인사하며 이렇게 대답했다.

“네, 그럼 저는 이제 손을 떼겠습니다.”

마침내 안개로 된 용의 형체가 완전히 흩어졌다. 그가 정말로 사라진 것인지 형체만 사라진 것인지 계연은 알 수 없었다.

계연은 시선을 돌려 동쪽을 바라보았다. 운주에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있으니, 그저 선유 대회 이전에 해결되기만을 바랐다.

계연은 서둘러 돌아가지 않고 용암도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섬은 그리 작다고 할 수 없었고, 잎이 무성한 식물들이 곳곳에 자라고 있었다. 하지만 적지 않은 곳에 벼락이 떨어져 그을린 흔적이 남아있었다. 물론 지금은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고 온화한 바람이 부는 날씨였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계연은 이 섬이 대체 왜 용암도라고 불리는지 알 수 없었다. 아마도 되는 대로 갖다 붙인 이름인 것 같았다. 계연은 손가락을 구부려 허공에 대고 몇 번 툭툭 쳤다.

그러자 저쪽에 있던 야자수에서 초록색 야자(*椰子: 코코넛)가 하나씩 땅으로 떨어졌다. 그러고는 도르륵 계연의 발치에까지 굴러왔다. 북해 바다는 동해보다 훨씬 차가웠기 때문에, 용암도에 야쟈수가 자랄 줄은 몰랐다. 심지어 보아하니 푸릇푸릇하고 상태도 좋아 보였다. 대정국이나 조월국에서는 야자수를 찾아볼 수 없었다.

가까운 해수면에서 다시 한번 파문이 일더니 응약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계 숙부님, 섬에서 야자를 따고 계셨어요? 이런 일은 하인들을 시키면 될 텐데요.”

계연은 응굉을 만났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저 야자를 스무 개 정도 딴 후, 바다에 밀어 넣고서 다른 화제로 말을 돌렸다.

“그냥 좀 걸으려고 왔단다. 그 김에 야자도 몇 개 따고. 어떻게 됐니? 영당(*令堂: 상대의 모친에 대한 존칭)께서 통천강으로 돌아가는 것에 동의하셨어?”

이는 응약리가 이곳에 오기 전부터 꼭 하고 싶어 했던 일이었다. 그래서 계연은 그녀가 분명 말을 꺼냈으리라고 짐작했다.

응약리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어머니께서는 통천강으로 가길 원하지 않으세요.”

하지만 그녀는 곧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어머니를 동해로 가게 하는 데에는 성공했어요. 오라버니랑 함께 어머니를 위해 적당한 곳을 찾아드릴 거예요. 그럼 서로 무슨 일이 생겨도 도움을 주기 편하겠죠.”

“잘됐구나. 여기는 너무 머니까 말이야.”

하지만 계연은 속으로 용왕비(龍母)가 그리 약한 여인이 아닐 텐데 하고 생각했다. 용암도에 떨어진 벼락의 흔적만 봐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용암도 용궁에 돌아왔을 때, 계연은 야자를 스무 개나 땄다고 차마 말할 수가 없었으므로 딴 야자를 모두 소매 안에 넣었다. 응약리도 아무 말 없이 계 숙부님이 섬을 거닐다 왔다고만 이야기했다.

용암도의 연회상은 무척 풍족했지만, 하나같이 익히지 않은 요리여서 계연에게는 조금 거북하게 느껴졌다. 생선, 새우, 조개 등등은 모두 깨끗이 손질해 잘라놓은 뒤 정교한 접시에 담아놓기만 한 모양새였다.

계연은 지난 생에서도 날것을 그리 즐겨 먹지 않았고, 이번 생에서는 날것을 맛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예의상 몇 번 음식을 집어 먹었는데 의외로 꽤 맛이 좋았다.

* * *

대정국 계주의 우규산 자락에 자리한 한 마을에서는 백성들이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두꺼운 옷을 차려입은 건장한 남자 하나는 따끈한 아침밥을 든든히 먹은 뒤, 활이며 장창과 밧줄 등을 챙겨 들고 집 밖으로 나섰다.

남자는 마을 곳곳에서 솟아오르는 밥 짓는 연기를 바라보다가 장창을 바닥에 탁 꽂았다. 그러고는 두 손을 입가에 가져다 대고 큰 소리로 고함쳤다.

“오늘 산에 오를 인원들, 어서 준비하시게!”

그의 목소리가 마을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고, 그는 같은 말을 한 번 더 반복했다.

잠시 후, 마을 곳곳의 가옥에서 남자들이 하나씩 나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대부분 활, 몽둥이, 작살 등등을 들고 있었고 밧줄을 든 자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렇게 총 열 명이 넘는 키도 체격도 다양한 남자들이 모였다.

그들이 마을 담장의 대문 밖을 나설 때는 가족들이 차례로 배웅하러 나왔다.

“걱정하지 마시오. 요즘은 계속 수확이 좋은 데다, 오늘은 날씨도 추워서 우리도 깊이는 들어가지 않을 거요. 그냥 덫만 확인하고 올 것이니.”

“여보, 일찍 와야 해요. 저녁밥 해놓고 기다릴 테니까!”

“아이 아버지, 날씨도 춥고 산길은 위험하니 혹 수확이 없더라도 빨리 오세요. 작년 입동 전에 비축해 놓은 고기도 아직 있으니까요!”

“알았소, 걱정하지 마시게.”

“어서 들어가시오, 날씨도 추운데!”

일행은 산을 향해 걸어가며 때때로 고개를 돌려 이렇게 소리쳤다. 산길에 들어선 이들은 속도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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