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1화. 우규산 사냥꾼들의 풍수절(豊收節)
우두머리에 있던 남자는 추운지 손을 비비다가, 등 뒤에 매고 있던 장창을 꺼내 지팡이처럼 사용하며 산을 탔다.
“일단 덫부터 확인하러 가보세!”
그들은 모두 원숭이처럼 산에서 뛰어다니며 자란 이들이었다. 비록 날씨가 추워 옷을 두껍게 입었지만, 이 노련한 사냥꾼들에게는 아무런 방해도 되지 못했고 걸음걸이는 안정적이고 가벼웠다. 강호의 협객들이라 해도 무공이 일정 수준에 이른 자들이 아니라면 이 사냥꾼들이 산 타는 체력을 따라올 수 없을 것이다.
산길을 약 한 시진(*2시간) 정도 걷자, 그들은 미리 설치해둔 첫 번째 덫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우두머리 남자는 앞으로 몇 걸음 다가가 수풀 사이에 놓인 함정 위를 덮어둔 위장용 나뭇잎들이 아래로 떨어진 것을 발견하고는 미소 지었다.
“안에 걸린 것 같군!”
사냥꾼들은 천천히 함정 부근을 포위해갔다.
“오호! 멧돼지군!”
“잘됐군. 고기도 많고. 이 정도면 괜찮지!”
“하하, 다만 멧돼지 가죽은 돈이 안 되니 아깝군.”
“그래도 이게 어딘가.”
사냥꾼들을 발견한 멧돼지가 함정 안에서 이리저리 날뛰는 것을 보는 사냥꾼들의 얼굴에 환한 웃음꽃이 피었다.
“일단 이대로 두고, 다른 덫도 확인하러 가지!”
우두머리가 손짓하자 다른 이들은 다시 산길을 타고 설치해둔 덫을 하나씩 확인해갔다. 그들은 각기 떨어진 곳에 총 10개의 덫을 설치해두었었는데, 땅에 구멍을 판 함정이나 밧줄 그물로 만들어진 덫도 있었다. 9개 가운데 5개의 덫에 모두 동물들이 걸려 있었고, 이 정도면 풍성한 수확이라 할 수 있었다.
마지막 남은 한 곳을 향해 가던 사냥꾼들은 이미 들뜬 목소리로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우우!
돌연 멀리서 들려오는 포효에 사냥꾼 무리는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하지만 그들은 조금도 긴장하지 않고 침착하게 몸을 낮추었다.
우두머리가 손을 좌우로 흔들며 무언가 신호를 보내자, 사람들이 각기 활을 들거나 창을 손에 쥐었다. 어떤 이들은 등에 건 밧줄 같은 것을 풀어 내렸는데, 그것은 커다란 그물 두 개였다.
“마지막 덫이 뭐였지? 그물? 구덩이?”
“구덩이요.”
우두머리는 고개를 끄덕인 뒤 다시 수신호로 사냥꾼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들은 아무런 기척도 없이 움직였다.
그들은 모두 노련한 사냥꾼들이었고, 지금 바람의 풍향도 그들에게 유리했다. 큰 소리만 내지 않는다면 무사히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조금 전 소리를 들어보니 아무래도 맹수인 것 같았다. 비록 위험하긴 하지만, 그들은 열 명이 넘는 일행이었기 때문에 그리 겁을 먹지 않았다. 게다가 맹수의 가죽은 짭짤한 가격으로 내다 팔 수 있었다.
구덩이에서 수십 보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그들은 수풀 뒤에 숨어 그쪽을 바라보았다. 울음소리는 역시 그 구덩이 안에서 나오고 있었고, 심지어 뼈가 부러지거나 무언가 우적우적 씹어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두머리는 7, 8명 정도의 사냥꾼들을 하나씩 손가락으로 짚었다. 그러고는 다른 이들에게는 활을 조준하여 이 자리에 숨어 다른 이들을 지원하도록 했다. 그러고는 조금 전 짚은 이들을 이끌고 수풀을 빠져나갔다.
뒤이어 그들은 구덩이 안의 맹수를 제압하고자 일부러 큰소리를 지르며 달려갔다.
“으아아아!”
“덤벼라!”
“네 이놈!”
커헝! 우우…….
그러자 구덩이 안에서 놀라 두려워하는 듯한 짐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고는 순식간에 얼룩덜룩한 무늬의 무언가가 구덩이에서 단번에 뛰어 올라왔다. 하지만 그것은 사냥꾼들이 때마침 던진 그물에 잡혀버렸다.
커흥…….
“하하하! 표범이군!”
“이놈 가죽은 값을 꽤 쳐주지, 하하하…….”
“호랑이나 표범 가죽은 모두 값이 나가니까! 성에서 마누라에게 화포(*花布: 무늬 있는 염색 천)를 사다 줄 수 있겠구먼!”
놀라 허둥지둥하는 표범과 달리 사냥꾼 일행은 모두 얼굴에 환한 웃음꽃이 피었다.
우두머리 남자도 한 차례 시원스레 웃은 뒤 이렇게 말했다.
“작년 겨울부터 산 외곽에 동물들이 많아졌단 말이지. 게다가 잡기도 무척 쉽고.”
“하하, 좋은 일 아니오!”
그러자 우두머리는 우규산 깊은 곳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좋은 일이긴 하지. 하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동물들이 꼭 도망쳐 나온 것 같단 말이야.”
“음? 저 안에는 먹을 게 없나?”
우두머리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건 나도 모르겠군. 우규산은 무척 크니, 어쩌면 우리 쪽만 이런 것일 수도 있고. 어쨌든 우리한테는 잘된 일이지.”
그들은 곧 잡은 동물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그물에 걸린 표범은 어느새 밧줄에 칭칭 감겨있었다. 사냥꾼들은 밧줄 틈새로 표범의 사지를 다시 한번 단단히 묶은 뒤, 밧줄 끈을 이용해 표범을 목 졸라 죽였다. 누군가 특별히 돈을 내고 부탁하지 않는다면, 사냥꾼들은 이런 맹수들을 산 채로 가지고 가지 않았다.
구덩이 안에 잡힌 것은 이미 표범에 의해 배 부근이 모두 뜯긴 채였다. 그래도 표범이 내장을 먼저 먹었기 때문에, 살은 아직 많이 남아있어서 사냥꾼들은 그것을 낭비하지 않고 함께 챙겼다.
그때 하늘이 점차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간이 늦어 어두워진 것이 아니라 뇌운(雷雲)이 모여든 것이었다.
우르릉……!
천둥소리와 함께 먹구름이 모여들자 사냥꾼들은 깜짝 놀랐다.
“이런, 날씨가 변했어. 어서 사냥감들을 가지고 돌아가세.”
“자자, 물건 잘 챙기고, 덫은 일단 그대로 놔두세!”
사냥꾼들은 수확이 풍성했으므로 가벼운 발걸음으로 날 듯이 산길을 내려갔다. 그리고 그들은 모르겠지만, 지금 이와 비슷한 풍경이 광활한 우규산 여러 곳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 * *
우규산 상공에 먹구름이 몰려들더니 그 안에서 번개가 번쩍거렸다.
우르릉……!
번쩍! 콰앙!
번개가 내리치자 우규산 깊은 곳이 환하게 밝아졌다.
털이 몽땅 빠진 거대한 호랑이는 동굴 밖으로 몸을 반쯤 내밀었다. 얼굴에 복잡한 무늬가 난 호랑이는 번쩍이는 번개가 주위를 밝게 비추는 것을 바라보았다. 호랑이에게서는 벼락에 대한 두려움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호랑이는 무척 집중한 얼굴로 상공의 뇌운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부님께서 전에 이렇게 물으신 적이 있었지. 벼락을 내리는 것은 대체 누구인가, 하늘이 아닌가?”
육 산군은 한 걸음씩 동굴 밖으로 천천히 빠져나왔다. 그러고는 커다랗고 평평한 석대(石臺) 근처에 다가가, 상공의 먹구름이 우규산을 무겁게 짓누르는 것을 쳐다보았다.
우르릉……!
“크헝-!”
호랑이의 포효가 천둥소리를 뒤덮더니, 돌연 광풍(狂風)이 불어와 우규산 깊은 곳을 휩쓸기 시작했다.
다행히 이곳에 살던 동물들은 일찍이 산 외곽으로 도망친 후였다.
“산군, 둔갑하려는 건가 봐?”
겁을 먹은 듯한 목소리가 육 산군이 서 있던 석대 근처에서 들려왔다. 육 산군이 그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붉은 털을 가진 여우의 머리가 삐죽 나온 것이 그의 시야에 보였다.
“하하, 그건 저 하늘 위의 벼락이 언제 내게 떨어지는지에 달려 있지. 넌 멀리 떨어져 있는 게 좋겠다. 아니면 내 동굴 안으로 들어가 있던가. 그간 너도 수행에 퍽 진전이 있기는 했지만, 네 도행으로는 저 벼락에 맞으면 죽지는 않더라도 최소 중상일걸.”
‘겨우 중상이라니?’
호운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면서 육 산군이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한다고 생각했다.
“그럼 나는 가볼 테니, 조심해라!”
이 한 마디를 남기고서 호운은 육 산군이 머물던 동굴로 가지 않고 산 외곽을 향해 도망쳤다.
* * *
쿠르릉……!
어흥!
호랑이의 포효가 천둥소리에 섞여 우규산 깊은 곳에서부터 퍼져 나갔다. 하지만 그 소리는 산 외곽에 다다를 즈음엔 그 소리가 무척 희미해졌고, 다시 울려 퍼지는 다음번 천둥소리에 덮였다.
사냥감들을 짊어진 사냥꾼들은 걸음을 서둘렀다. 당장 지금이라도 곧 폭우가 쏟아질 것 같았다. 산길이 젖으면 미끄러워서 산에서 내려가기가 더욱 힘들어진다. 그렇게 되면 산에서 밤을 지새워야 할 수도 있었다.
웅웅웅…….
무언가가 메아리치는 소리가 들려와 우두머리는 발을 멈추고 우규산 깊은 곳을 바라보았다. 가장 멀리 떨어진 한 산봉우리에서는 초목들이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고, 그 깊은 곳에서부터 검은 바람이 불어 나오는 것 같았다.
어흥…….
그때 희미하게 무언가 다른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우두머리 사냥꾼은 일종의 환각을 보게 되었다. 저 멀리 깊은 산에서 시커먼 안개가 하늘로 치솟더니, 먹구름 아래에서 거대한 맹수의 머리 모양으로 변하여 뇌운(雷雲)을 향해 포효하는 장면이었다.
“허억……!”
사내는 자신이 본 화면에 너무 놀라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다리는 마치 천근을 매단 것처럼 무거워져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한 사냥꾼이 그가 따라오지 않는 걸 눈치채고, 고개를 돌려 산 깊은 곳을 바라보는 우두머리를 향해 이렇게 물었다.
“대장, 뭘 보고 계시오? 사냥감이라도 있나?”
그는 별안간 누군가 이렇게 말을 걸자 깜짝 놀라 정신을 차렸다. 그가 다시 하늘 저편을 바라보니 조금 전 보았던 장면은 마치 자신의 착각이었던 것처럼 사라진 상태였다. 다시 제정신으로 돌아온 남자는 사냥꾼에게 이렇게 말했다.
“별것 아니네. 어서 가지. 사냥감을 본다 해도 멈추면 안 돼. 산에서 밤을 지새울 수는 없으니까!”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발걸음을 서둘렀다.
“이렇게 추운데 누가 산에서 밤을 보내고 싶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잡은 게 많아서……. 이것들 무게가 좀 나가!”
“일단 뛰세!”
사냥꾼들은 사냥감을 지고서 산길을 빠르게 통과했다. 먹구름이 점점 더 범위를 넓히고 천둥소리도 점차 가까워졌지만, 다행히 그들이 산자락에 도착할 때까지 비가 내리지는 않았다.
마을 입구에서는 일찍부터 사냥꾼의 가족들이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이 산에서 빠져나오는 걸 발견한 가족들은 기쁜 얼굴로 맞이했다.
“저기 봐! 돌아왔네, 사냥감도 무척이나 많아!”
“어서 가서 도웁시다!”
“어? 저기 좀 보게! 저것은 호랑이 아닌가?”
“뭐? 호랑이?”
“아닐세, 잘 좀 보게! 저건 표범이지 않나!”
“그게 그거지!”
“둘 다 좋은 가죽이지!”
사냥꾼의 가족들과 구경을 하러 나온 마을 사람들이 몰려나와, 그들이 지고 온 사냥감을 넘겨받았다. 육중한 무게의 멧돼지, 선명한 무늬의 표범……. 사람들은 이를 보자마자 맛있는 고기와 은자로 바꿀 수 있는 가죽을 떠올렸다.
우르릉……!
천둥소리가 다시 한번 울려 퍼진 후, 곧이어 장대비가 주르륵 쏟아졌다. 사냥꾼들과 마을 사람들은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다.
산간 마을은 그다지 크지 않아서, 사람들은 멧돼지 두 마리를 전부 요리할 작정이었다. 그리고 요리를 집마다 나누어 봄맞이도 할 겸 신선한 고기 요리를 먹을 요량이었다.
우두머리 사냥꾼은 집으로 돌아온 후 내내 마음이 불안했다.
그래서 그는 돼지갈비와 앞다릿살을 준비해 부인과 아이를 데리고 마을 촌장이기도 한 장인어른 댁으로 향했다.
그의 장모와 부인은 뜨거운 김이 폴폴 나는 돼지갈비와 앞다릿살을 요리해왔다. 산초(山椒)와 생강을 함께 넣어 고기에서는 누린내가 거의 나지 않았다. 그들은 족발 하나를 통째로 커다란 대접에 따로 담아왔다.
“자, 뜨거울 때 어서 드세요. 아버님께서는 이 부위를 제일 좋아하시잖아요!”
“맞아요, 일부러 아버지께 드리려고 남겨둔 거예요. 흐물흐물해질 때까지 푹 삶은 거예요.”
딸과 사위과 웃으며 촌장에게 권했다.
“하하하, 효성스럽기도 하지!”
촌장은 기쁜 듯 웃으며 대답했다.
그는 젓가락으로 살코기를 조금 뜯어낸 뒤 한쪽에 앉은 외손자에게 주었다.
“아, 하렴.”
그러자 아이가 입을 크게 벌려 그것을 받아먹었고, 아이는 곧 양 볼이 빵빵하게 차오른 상태로 고기를 열심히 씹었다.
“자, 어서 앉으려무나. 다들 먹자!”
그들은 한자리에 둘러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무채 볶음을 제외하면 돼지고기 요리 두 가지에 미주(米酒) 한 주전자가 전부인 단출한 식사였다. 하지만 영안현 성안에 사는 이들이라도 모두 이 요리를 탐낼 것이 분명했다.
우르릉……!
천둥소리가 다시 울렸지만,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다지 놀라지도 않고 유등(油燈) 아래에서 다 함께 식사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