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342화 (342/892)

342화. 호랑이 요괴에 관한 전설

배불리 먹고 난 후, 사냥꾼들의 우두머리는 장인에게 술을 한 잔 따르면서 이렇게 물었다.

“아버님, 뭐 좀 묻겠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우규산에 요괴가 있다고 한창 시끄럽지 않았나요?”

“아이고, 그런 말은 꺼내서 뭐 하나!”

장모가 눈을 홉뜨며 사위를 타박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아이는 오히려 흥분하기 시작했다.

“요괴요? 요괴가 정말 있어요? 그럼 신령이나 선인(仙人)은요?”

“신령님들은 전부 사당 안에 있지! 밥부터 먹자.”

아이의 모친이 이렇게 대답한 후, 젓가락으로 무채를 한 움큼 집어 아이의 입안으로 넣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아이는 계속 고기만 집어 먹을 터였다.

“아버님, 비록 어렸을 때 일이긴 하지만 아직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해에 관아에서도…….”

“맞아! 정말 그런 일이 있었지.”

그는 이 마을에서 촌장 노릇을 한 지 어느덧 40년이 된 노인이었다. 당연히 주위 두 마을과 함께 이곳을 관리한 역대 이정(里正)들과도 관계가 아주 좋았고, 예전에 있었던 중요한 일들도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벌써 20년이 다 되어가는구나!”

그는 감상에 젖어 이렇게 말을 잇고는 잔 안에 있던 술을 한입에 털어 넣었다.

“할아버지, 저도 이야기 들려주세요!”

촌장의 외손자는 무와 고기를 서둘러 씹어 삼키고는, 다시 다가오는 모친의 젓가락을 밀어내고 이렇게 애걸했다. 사위도 다시 장인에게 술을 한잔 따른 뒤, 껍질과 고기가 적절히 뒤섞인 부위를 한 점 집어 그릇에 올려 주었다.

“좋아, 내가 이야기해 주지!”

촌장은 다시 입안에 술을 털어 넣고, 사위가 집어 준 고기를 씹으며 생각에 잠겼다. 어느새 다시 그 인심이 흉흉하던 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구체적으로 언제인지는 기억이 안 나고, 약 20년 전이었다. 그때는 네 아비도 너만 한 나이였지.”

촌장은 외손자를 가리키며 웃었다.

“그 몇 년간 우규산에 호랑이가 나타나 소동을 피웠기 때문에, 관아에서는 나처럼 산 근처 마을에 사는 사냥꾼들을 소집해 호랑이를 잡도록 했지…….”

18년 전, 실은 영안현이 있는 덕승부뿐만 아니라 우규산과 인접한 다른 두 부(府)에서도 호랑이로 인해 여러 소동이 일어났었다. 다만 영안현이 다른 곳보다 사태가 좀 더 심각했던 데다가, 촌장으로서는 다른 부의 소식까지 알 수는 없었다.

“그때는 나도 아직 팔팔할 때라서, 다른 사냥꾼들과 함께 산에 두 번 들어갔었지. 심지어 호랑이가 머물던 동굴을 찾아내 직접 호랑이를 죽이기도 했었는데, 그 동굴에는 사람 뼈 같은 게 하나도 없었어. 그런데 나중에…….”

촌장은 다시 생각해도 두려운 듯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옛말에 호랑이는 바람을 부리고 용은 구름을 부린다고 하지. 그러나 아무도 그것을 직접 보지는 못했을 거야. 하지만 그때 우리는 직접 보았지! 어느 날 밤, 인근 마을까지 해서 총 서른 명이 넘는 우리 사냥꾼들은 호랑이가 출몰한 적이 있다던 한 언덕 근처를 지키고 있었어. 그날 밤은 바람도 잔잔하고 달도 밝았는데, 별안간 광풍이 불어닥치더구나. 돌이며 모래가 바람에 휘날려 눈을 제대로 뜨기도 힘들었었지. 그와 동시에 호랑이의 포효 소리가 들려왔다. 듣기만 해도 간담이 서늘해지더구나. 아무리 용감한 사냥꾼이라 해도 그때는 모두 겁을 집어먹었었지!”

이 대목에서 아이는 무의식적으로 어머니 곁에 가까이 붙어 앉았다. 입으로는 여전히 고기를 우적우적 씹고 있는 채였다.

“그러나 우리는 어쨌든 사냥꾼들이 아니냐.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해야 하지. 그래서 아무도 찍소리도 내지 않고 숨어있는데, 그 호랑이는 마치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줄곧 알고 있었던 것처럼 불쑥 다가와 인근 마을의 사냥꾼 한 사람을 잡아갔다. 그가 내지르는 끔찍한 비명이 내내 들려왔지…… 우리는 그 호랑이를 뒤쫓아갔지만 결국 어디로 갔는지는 찾지 못했어. 호랑이가 사라지자 괴이쩍게도…….”

촌장은 일부러 손자에게 얼굴을 들이밀고 속삭였다.

“바람도 멈추더구나!”

“헉!”

“아이고, 당신! 아이는 왜 놀라게 하고 그래요!”

“하하하…… 얘가 듣고 싶어 했잖소!”

“무서워서 얼굴이 다 하얘졌네!”

사위가 다시 장인에게 술을 한잔 가득 따라주었다.

“아버님, 계속 말씀해 주세요.”

“음, 그래서 우리는 모두 마을로 돌아온 후 무척 낙담하고 두려워했단다. 하지만 저 사람 잡아먹는 호랑이를 얼른 잡지 못하면 인근 마을 누구도 안심하고 살 수가 없었지. 그러자 관아에서는 많은 상금을 내걸고 무공을 익힌 관차(*官差: 관아의 하급 관리, 심부름꾼)들을 파견해주었다.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우리 사냥꾼들도 결국 다시 한번 산에 들어갔지.”

여기까지 말한 촌장은 탄식했다.

“어휴……. 내 형제도 그때 잡혀갔지. 그 호랑이는 확실히 요사스러운 데가 있었어. 놀이라도 하듯 두 사람을 물고 가더니, 사냥개를 일곱 마리나 죽여 놓았단다. 산바람을 몰고 오듯 사라지는 것도 무척 빨랐고, 그 포효하는 소리는 듣기만 해도 다리에 힘이 풀릴 정도였다. 그 후로 우리 사냥꾼들은 그 호랑이를 상대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해야 했지. 관아에서 다시 어떻게 말을 해도, 우리 중 누구도 다시는 산에 들어가려 하지 않았어…….”

촌장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듯 술을 한잔 마셨다.

“산속 호랑이가 요괴가 되었다는 소문은, 그때부터 퍼져 나간 거야. 하지만 이 근처 마을에서는 모두 그 호랑이를 두려워했기 때문에, 화를 입을까 저어하여 함부로 그 이야기를 입에 담지 않았어. 그러자 후에 영안현 관아에서는 방문(榜文)을 내걸었고, 덕승부 관아에도 도움을 구하는 같은 방문을 붙였지. 그러자 대단한 강호 대협들이 나타났단다. 과연 무공을 수련한 강호인들이라 그런가 정말로 그 호랑이를 죽였더구나. 그건 무척 보기 드문 백호(白虎)였어. 그놈의 가죽은 영안현 관아 앞에 며칠 동안 전시되어 있었단다. 우리 마을에서도 많은 사람이 그걸 보러 갔었지!”

그러자 사냥꾼들의 우두머리인 사위가 눈썹을 찌푸리며 술을 한입에 마시고는 이렇게 물었다.

“아버님, 그 호랑이가 죽은 것이 확실합니까?”

“그럼 설마 가짜일까? 그 백호는 보통 호랑이 두 마리를 합쳐 놓은 크기였다. 확실히 범상치 않은 놈이었지. 게다가 그 후로 우규산에서는 호랑이를 본 자가 아무도 없었어!”

사위는 잠시 망설이다가 몸을 장인에게 가까이 붙여 이렇게 속삭였다.

“아버님, 어쩌면 그 호랑이 요괴가 죽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촌장은 조건반사적으로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 설마 뭐라도 본 것이냐?”

“아뇨, 아뇨. 그저 이번에 산에서 내려올 때 천둥소리에 호랑이 울음소리 같은 게 섞여 들렸어요. 먹구름도 어찌나 빽빽하게 모여들던지, 동물들은 모두 깊은 산에서 도망쳐 나오고…… 아무래도 너무 이상해서요…….”

그러자 촌장과 사위는 모두 말없이 창문을 통해 바깥쪽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너무 멀어 산 깊은 곳은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먼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바로 그때.

번쩍!

콰쾅!

귀청이 떨어질 정도로 큰 천둥소리와 함께, 세 번 꺾인 모양의 벼락 한줄기가 산 깊은 곳에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산 근처 마을의 모든 이들이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딩딩딩…….

그 어마어마한 소리와 울림에 식탁 위에 있던 그릇들이 덜덜 떨렸다. 잠시 후, 고요했던 방 안에서는 다시 대화 소리가 들려왔지만, 방 안에 있는 그 누구도 요괴에 관한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옛말에 낮에는 다른 이의 험담을 하지 말고, 밤에는 귀신 얘기를 하지 말라고 했다. 이때 촌장의 집에서 벌어지는 상황도 그 말에 따른 것이었다.

* * *

우규산은 2백여 리(*약 78km) 넘게 이어진 산자락으로, 덕승부 경계를 지나 정원부를 가로질러 천월부와 맞닿아 있었다. 번개를 품은 먹구름이 점차 면적을 넓혀감에 따라, 특이한 존재들이 하나둘 나타나 우규산 방향을 바라보았다.

덕승부의 영안현과 보순현(寶順縣), 정원부의 성택현과 채명현(采明縣), 그리고 천월부의 대강현(大康縣)처럼 우규산과 인접한 큰 현의 성황당 위에는 모두 성황신들의 법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성황당 위 높은 하늘에 떠올라 우규산 깊은 곳에 모여든 뇌운(雷雲)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영안현이 그 뇌운의 중심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었다.

우르릉……!

삽시간에 하늘과 땅이 환해지더니, 잘 벼린 검처럼 위력이 엄청나 보이는 벼락 한 줄기가 뇌운에서부터 우규산 안쪽으로 떨어졌다.

영안현의 성황당 위 높은 하늘에서는 영안현의 성황신인 송세창(宋世昌)이 가만히 서서, 어두운 얼굴로 우규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성황신님, 저 벼락은 아무래도 보통의 천둥 번개가 아닌 듯합니다. 우규산에 진귀한 보물이 나타난 게 아니라면, 분명 무언가 이상이 있는 겁니다. 대단한 요괴가 수행에 큰 진전을 이루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음양사 기관장이 근심 어린 얼굴로 성황신을 향해 말했다.

“그렇다. 저 뇌운은 확실히 무언가 이상하군. 보통 구름이 아니라 겁운(*劫雲: 뇌겁(雷劫)을 몰고 오는 구름)과 무척 비슷하고……. 하지만 하늘의 뜻을 우리가 어찌 알겠나!”

이때 먼 곳에서는 은빛 뱀 같은 벼락들이 춤을 추듯이 떨어져 내렸는데, 어떨 때는 그 소리가 약했으나 어떨 때는 귀청이 얼얼할 정도로 벼락 치는 소리가 커지기도 했다. 이러한 벼락 세례는 신령들에게도 적지 않은 두려움을 느끼게 했다.

성황신은 무의식적으로 현성(縣城) 안의 한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두운 밤에 하늘을 뒤덮은 먹구름과 장대비로 주위가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성 한쪽에서는 여전히 희미한 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곳은 바로 거안소각이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그리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네. 영안현에는 그 선생의 집이 남아있고 그분도 자주 우규산에 오르셨으니, 산에 정말로 곧 수행에 진전이 있을 삿된 것이 있었다면 어찌 그분의 법안을 피해갈 수 있었겠는가?”

한쪽에 있던 무판관(武判官)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이렇게 말했다.

“어쩌면 그 선생과 어떤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지요!”

“그 붉은 털 여우 말하는 것이오? 아닌데, 그 여우의 도행은 아직 한참 멀었지 않소?”

“그런 존재께서 행하시는 일을 어찌 우리가 다 알 수 있겠소? 비록 그분이 평안하고 고요한 삶을 추구하시는 분이지만, 그래도 함부로 거론하지 않는 것이 좋겠소.”

“그래, 더는 거론하지 맙시다.”

* * *

이때, 북해 동남쪽의 용암도 용궁에 있던 계연은 객사(*客舍: 손님용 숙소) 안에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두 눈은 비록 감고 있었지만 쉴 새 없이 눈꺼풀이 떨렸다. 계연이 마음과 의식을 평온하게 가다듬자, 그의 의식 세계 안의 산과 하천에 뿌옇게 안개가 끼었다.

계연은 이때 이전에도 겪었던 꿈인 듯 현실인 듯 알 수 없는 경계에 있었다. 그런데 별안간 그의 마음이 무언가에 감응(感應)하여 계주 서쪽의 우규산으로 향했다.

그의 시선은 드넓은 산과 강을 통과해 먹구름이 모여들고 벼락이 내리치는 곳으로 이동했다.

이상한 점은, 우규산의 다른 쪽 그리고 주변 마을과 현성에는 천둥 번개가 치고 비가 내렸는데 오직 한 곳에만 비는 내리지 않고 벼락만이 떨어지고 있었다.

번쩍이는 번개가 구름 사이에서 쉬지 않고 꿈틀댔고, 구름 안쪽에 있는 것들과 허공에 갑자기 생겨나는 것들이 모두 뇌운의 중심으로 몰려들었다. 번개들은 꿈틀대며 힘을 모으다가 커다란 한 줄기 벼락으로 변해 땅으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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