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3화. 스승을 대신해 하늘에 묻다
파지직……!
쿠궁!
천지를 밝히는 환한 빛에 뒤이어, 벼락 한 줄기가 뇌운 속에서 떨어져 우규산 어느 곳에 떨어졌다.
“어흥-!”
번개가 산 깊은 곳을 밝게 비추자, 포효하는 맹수 한 마리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 형형한 눈빛은 금방이라도 떨어지는 벼락을 향해 달려들 듯했다.
떨어진 벼락으로 인해 주위의 절벽이나 봉우리에는 은색 뱀 같은 번개가 파지직 요동쳤다.
‘기백이 넘치는구나. 뇌겁(*雷劫: 수행에 승급을 이루기 위해 겪어야 하는 하늘이 내리는 벼락)을 피하지 않다니!’
계연은 이 모습을 보고 저도 모르게 감탄을 금치 못했다.
수행이란 하늘을 거스르는 일이었고, 벼락은 하늘의 위엄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수행하는 동물들은 모두 벼락을 두려워했다. 영지를 얻은 정괴(精怪)들은 비가 오고 천둥과 번개가 치는 날이면 본능적으로 몸을 숨겼다. 그것은 마치 영혼에 각인된 공포 같았다.
정괴들, 특히 사악한 존재의 수행에 진전이 생기려고 하면 그것은 더욱 쉽게 벼락을 불러일으킨다. 심지어 계절에 상관없이 큰 비와 벼락을 부르기도 했는데, 이는 마치 하늘이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런 벼락이 아무리 두려워도 그것은 기상 현상일 뿐이었다. 진정한 요물들은 모두 높은 영지를 지니고 있었으므로, 굳이 벼락의 위세가 흉흉할 때 나가 그것을 맞으려 하지 않았다. 일단 피했다가 수행을 공고히 쌓고, 물이 흐르듯 자연스럽게 요괴의 기운도 잠잠해지면, 후에 뇌겁이 생긴다 해도 전보다는 훨씬 기세가 약해졌다.
그때, 적당한 곳을 찾아 뇌겁을 견디면 훨씬 쉽고 안전하게 승급할 수 있었다.
하지만 육 산군은 그렇게 하려 하지 않았다. 계연은 육 산군에 대해 잘 알고 있었으므로, 이는 그가 무모하거나 어리석어 벌인 일이 아님을 알았다. 육 산군은 다만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넘치고 높은 긍지를 지니고 있을 뿐이었다.
계연이 육 산군에게 가르침을 주었던 석대(*石臺: 평평하고 커다란 돌) 위에는 털이 몽땅 빠진 호랑이 한 마리가 엎드려 있었다. 그의 몸에는 이미 벼락에 맞아 그을린 흔적이 적지 않았지만, 육 산군은 조금도 개의치 않는 듯했다.
진정한 뇌겁은 세 번밖에 떨어지지 않았고, 떨어질 때마다 그 전보다 위력이 강했다. 하늘에 모여든 뇌운은 점점 더 그 범위를 넓혀가고 있었다.
쿠르릉……!
쾅!
뇌겁 중간중간에는 보통의 벼락이 쉬지 않고 떨어졌는데, 가끔 육 산군에게 떨어지기도 했다. 비록 무척 고통스럽기는 했지만, 그는 조금도 피하려 하지 않았다. 진정한 뇌겁에 비하면 이런 벼락은 간지러울 뿐이었다.
“어흥-!”
육 산군의 포효성이 산을 타고 퍼져 나갔고, 원래부터 불던 광풍은 더욱 그 위세를 더했다. 하늘에 모여든 먹구름은 더욱 두껍고 무겁게 느껴졌다. 돌 위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면, 사방천지에서 모든 먹구름이 이쪽으로 모여드는 것만 같았다.
벼락을 맞아 까맣게 피부가 탄 육 산군은 가렵기도 하고 아프기도 했지만, 그에 신경 쓸 새가 없었다.
파지직!
먹구름이 잔뜩 밀집한 곳에 다시 번개가 모여들었다. 전류가 흐르는 소리가 더없이 또렷하게 들려왔다.
이때, 번개의 중심에 한 줄기 핏빛이 비치자 육 산군의 동공이 수축했다. 극도의 두려움을 느낀 그의 심장이 더욱 빨리 뛰기 시작했다.
‘도망쳐! 도망쳐야 해!’
무의식적으로 이런 생각이 떠올랐지만, 육 산군은 얼굴을 찌푸리며 참아냈다.
“으르렁…… 크르릉…….”
그의 양쪽 입가가 벌어지더니 창백한 송곳니와 그 주위의 날카로운 이빨을 모두 드러냈다. 육 산군은 그렇게 하늘을 향해 이를 드러내며 위협했다. 그의 몸을 받치고 선 사지에서는 날카로운 발톱이 연이어 튀어나왔다. 파도가 치듯이 육 산군의 온몸에서 근육이 솟아오르며 힘이 들어갔다.
다음 순간, 육 산군은 발톱을 드러낸 네 발을 디뎌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그러자 바람 한 줄기가 그의 몸을 감쌌고, 그는 십여 장(*약 30m)의 거리를 단숨에 도약했다. 육 산군은 비록 날 수는 없었지만, 공중을 딛고 선 자세로 막 떨어지려는 핏빛 번개를 향해 맹렬하게 울부짖었다.
“어흥-!”
파직…… 콰앙!
그의 포효와 함께 검은 바람이 휘감은 육 산군의 몸으로 벼락이 떨어져 내렸다.
육 산군은 핏빛 벼락에 관통당해 아래에 있던 석대 위에 내던져졌다. 번개가 그의 몸을 휘감다 못해 석대 전체를 뒤덮었다.
뒤이어 핏빛 벼락이 쓰러진 육 산군 위로 또 한 줄기 떨어졌다.
콰지직……!
쿠궁!
“아우우……!”
육 산군은 고통이 극에 달해 비명을 내질렀다.
이 시각, 우규산의 모든 짐승은 조용히 몸을 말았고 새들은 둥지에 숨어있었다. 수많은 동물은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곳에 숨어, 떨어지는 벼락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덜덜 떨었다.
호운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동굴 안에 움츠려 있었다. 그의 동굴은 높은 산봉우리 중간 즈음에 자리해 있어, 중앙의 보금자리 앞뒤로 작은 동굴이 이어져 있었다. 한쪽은 영안현을 향해 나 있었고, 다른 한쪽은 우규산 깊은 곳을 향해 나 있었다.
호운은 동굴 입구를 통해 근심 어린 얼굴로 우규산 깊은 곳에 떨어지는 벼락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호운의 시각으로는 핏빛 벼락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호운에게는 그저 이것이 보통의 번개로만 보였다.
호운은 혼자서 중얼거렸다.
“산군아, 산군! 제발 조심해야 해. 선생님께서도 안 계셔서, 만약 무슨 일이라도 나면 아무도 못 구한단 말이야!”
아오오……!
호랑이의 고통에 찬 비명이 들려오자, 호운은 놀라 몸을 떨었다. 긴장과 두려움으로 온몸의 붉은 털이 꼿꼿이 솟았다.
* * *
육 산군은 얼굴 반쪽이 모두 탄 채로 석대 위에 엎드려 있었다. 그의 몸에는 이제 제대로 남은 가죽이 얼마 없었고, 어느 부분은 바싹 그을려 살점이 떨어져 나가기도 했다. 때때로 경련을 일으키는 몸 곳곳에서는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허…… 허억…… 헉…….”
육 산군의 입술 부근은 그을려 피부가 떨어져 나갔기 때문에 그의 송곳니가 밖에 드러나 있었다. 그는 떨리는 네발로 몸을 지탱하여 다시 하늘을 바라보고 일어서려 했다. 그러자 머리 위의 타버린 피부 껍질이 핏물과 함께 떨어져 내렸다. 피부가 벗겨진 곳에는 좀 더 깊은 줄무늬가 보였는데, 그 외에 눈썹 부근이 더 가늘고 길어졌으며 코도 얇고 길게 변했다.
하늘에서는 여섯 번째 뇌겁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것은 이리저리 뒤틀리며 푸르게도 보였다가 빨갛게도 보였다.
“내가 비록, 뇌겁의 위세를 얕잡아 보고, 오늘 여기서 죽는다 해도…… 그래도, 그래도 사부님을 부끄럽게 하지는 않겠다…….”
육 산군은 온몸을 떨며 이를 꽉 물고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상처를 따라 핏물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이제 도(道)의 오묘함을 조금 알 것 같은데. 한 발만 더 가면 될 것 같은데…….’
육 산군은 이대로 죽기가 너무 아쉬웠다. 하지만 하늘에 모여든 뇌겁을 바라보자, 이번에는 동굴로 숨어들어도 결코 피할 수 없겠다는 강렬한 예감이 들었다.
“참된 이치를 깨닫는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건만(*朝聞道夕死可矣: <논어(論語)>의 한 구절)…… 윽…….”
육 산군은 몸을 지탱하고 서서 차가운 눈빛으로 뇌운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온몸에 남은 요기(妖氣)를 끌어올려, 포효도 비명도 아닌 큰소리로 외쳤다.
“은사(恩師)를 대신해, 하늘에 묻나니, 벼락을 내리는 이는, 누구입니까?”
……벼락을 내리는 이는, 누구입니까?
……누구입니까?
육 산군의 포효성이 우규산 전체에 울려 퍼지며, 하늘과 땅 사이에 메아리쳤다.
* * *
멀리 북해의 용암도 용궁에 있던 계연은 이때 눈썹을 찡그렸다. 육 산군이 상대하는 뇌겁(雷劫)이 다른 요물들이 맞닥뜨린 번개보다 몇 배는 더 위험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번개의 빛이 붉은색에서 푸른색으로 변하는 것은 듣도 보도 못한 것이었다. 그것은 아무리 봐도 요물들이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벼락이 아니었다.
만약 둔갑하려고 하는 요물들이 모두 그런 수준의 벼락을 맞아야 한다면, 지금까지 살아남은 이들이 몇 되지 않을 것이다.
‘왜 육 산군은 그런 벼락을 맞아야 했을까? 설마 그는 다른 생명체로 환골탈태하려는 걸까? 하지만 교룡들도 진룡이 될 때는…… 아니지!’
화룡겁(*化龍劫: 진룡으로 거듭나기 위해 겪어야 하는 시련)도 마찬가지로 가볍게 볼 수 없는 시련이지만, 용족들은 지혜를 모아서 오랜 세월 동안 그것을 ‘물길을 타는’ 신기한 방식으로 그 시련을 견딜 만하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교룡이 되는 게 아니라, 진룡이 되는 단계였다. 육 산군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하더라도, 겨우 횡골을 녹인 호랑이 요괴가 진룡이 되고자 하는 이들이 겪어야 하는 시련에 맞먹는 것을 겪을 리는 없다는 뜻이다.
계연은 재빨리 머리를 굴려 보았지만, 생각할 시간이 충분치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결론은 어쨌든 계속 이대로 놔둘 수는 없다는 것뿐이었다.
‘육 산군은 죽으면 안 돼!’
이는 단순히 가진 바둑돌을 활용하는 문제만은 아니었다. 육 산군은 그가 직접 가르침을 주고 제자로 받아들인 요괴인데, 어찌 아무런 감정이 없을 수 있겠는가?
그러자 계연의 의식 세계 속 세상에서 두 발을 땅에 디디고 머리로는 하늘을 떠받치고 있던 거대한 계연의 형상이 실체를 드러냈다. 그가 하늘을 향해 손을 뻗자, 반짝거리는 검은 돌이 계연의 손안으로 들어왔다. 그 바둑돌에서는 벼락이 떨어지고 바람이 부는 소리가 은은히 들려왔다.
계연이 손을 한번 휘두르자 높은 봉우리 위에 있던 단로에서 현황(*玄黃: 우주)의 기운이 한 줄기씩 뽑혀 나왔다. 마치 가느다란 황색 끈들이 한곳으로 모여드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곧이어 검은 바둑돌에서 육 산군의 기운을 느낄 수 있게 된 계연의 법상(法相)이 별처럼 반짝이는 바둑돌을 쥔 채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계연이 눈을 부릅뜨는 동시에 천지화생(天地化生)이 시작되었다.
의식 세계의 세상이 연기나 안개처럼 이리저리 휙휙 흐르며 변하더니, 주위의 풍경이 점차 우규산과 비슷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엄지와 검지로 바둑돌을 쥔 계연의 손가락 끝에서는 현황의 기운이 그의 손을 따라 회전하고 있었다. 계연이 손가락으로 아래의 산과 하천을 가리키자, 단로의 불이 맹렬하게 타오르더니 법력이 솟구치며 세상이 변하기 시작했다. 그 간단하고 무심한 동작에는 계연의 모든 뜻과 의지가 담겨 있었다. 눈앞의 안개는 계연의 시야를 모호하게 했는데, 언뜻 꿈속의 풍경처럼 우규산 석대의 모습이 드러났다.
‘육 산군, 사부가 네게 힘을 보태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