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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가기연-344화 (344/892)

344화. 당신이 육 산군?

우규산의 거대한 석대 위에는 호랑이 한 마리가 포효하고 있었고, 조금 전 그가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듯 소리친 물음이 여전히 산골짜기에 메아리쳤다. 머리 위의 먹구름에서는 새로운 번개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이번에 내려치는 번개는 반드시 육 산군의 목숨을 빼앗고야 말 터였다.

바로 그 순간, 묘연한 목소리가 육 산군의 귓가에 들려왔다.

“육 산군, 사부가 네게 힘을 보태주마!”

육 산군은 놀라 기뻐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계연의 목소리는 마치 공중에서 울려 퍼진 것 같았다.

“스승님?”

뒤이어 희미한 현황의 기운이 소용돌이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와 동시에 육 산군은 아무런 위협도 담기지 않은 육중한 무게감이 자신의 몸을 눌러오는 것을 느꼈다.

상공에서는 여전히 번개가 번쩍이며 모여들고 있었다. 주위의 풍경은 그대로였지만, 눈을 감자 육 산군은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안개에 휘감겨 환상처럼 보이는 거대한 손이, 현황의 기운이 흐르는 검지를 뻗어 자신을 향해 다가왔다. 그 팔은 육 산군에게는 무척 익숙한 길고 푸른 소매를 입고 있었다.

텅……!

검지가 육 산군의 이마에 닿자, 마음속에 깊고 무거운 북소리 같은 것이 울렸다.

슈웃!

현황의 기운이 검지를 따라 그의 이마로 들어왔고, 그것은 곧 그의 사지와 뼈 군데군데로 퍼져 나가 골수(骨髓)에까지 스며들었다.

“어흥-!”

그것을 느낀 육 산군이 다시 한번 포효했다. 비록 그의 체력이나 법력이 회복되는 것을 느끼지는 못했지만, 알 수 없는 힘이 내면에서 솟구쳐 그가 저 뇌겁(雷劫)과 맞붙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 주었다.

포효가 끝나자 마치 환각처럼 방금 본 장면이 사라졌고, 동시에 어떤 깨달음이 육 산군의 마음속에 떠올랐다.

‘사부님께서 가까이 계시지는 않지만, 분명 어떤 신통한 수단으로 멀리서부터 나를 도우신 거야.’

까드득…… 털컥! 턱!

그의 몸속에서 무언가가 뒤틀리고 새로 맞춰지는 소리가 났다. 벼락을 몇 줄기 맞고 변화한 부분의 뼈와 근육이 급속도로 자라나기 시작한 것이다. 육 산군의 온몸이 벌벌 떨리더니, 척추와 얼굴 부근의 형태가 미세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어흥……! 아오오! 크헝!”

육 산군의 포효성은 점차 낮아지며 무언가에 억눌린 듯한 소리를 냈다. 그와 동시에 알 수 없는 기백이 그가 딛고 선 석대를 뒤덮었다.

‘아직 모자라. 무언가가 모자라…….’

육 산군의 온몸이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그는 속으로 진정한 환골탈태가 시작되었음을 알았으나, 아직도 무언가가 모자란 것처럼 느껴졌다.

우르릉…….

상공에서 천둥소리가 울려 퍼지자, 육 산군은 휙 고개를 들어 먹구름이 모인 곳을 바라보았다. 푸르스름하고 붉은빛을 띤 번개가 지직 모여들어 곧 떨어질 것처럼 보였다.

‘바로 너로구나!’

번쩍……!

콰쾅!

하늘과 땅 사이가 온통 푸른빛이 도는 하얀색으로 뒤덮였다. 우규산 전체와 그 주변 마을의 모든 사물이 또렷하게 눈에 들어왔다. 신령이든 범인(凡人)이든 가릴 것 없이, 이번에는 모든 이들이 벼락이 떨어질 때의 그 귓전을 때리는 듯한 소리를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벼락은 곧바로 육 산군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사방팔방에서 모여든 번개가 모두 그 한 줄기가 담긴 것 같은 위세였다. 이에 육 산군은 석대 위에 완전히 엎드린 모습으로 짓눌러졌다.

치지직……!

그의 주위로 전류가 퍼져 나가 수풀에 불이 붙을 뻔하다가, 한순간에 까맣게 그을렸다.

강렬한 고통이 육 산군의 온몸에 퍼져 나갔지만, 그것은 이제 그에게 있어 전과 같은 우세를 점하지 못했다.

“헉…… 허윽……!”

육 산군은 덜덜 떨리는 전류가 흐르는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온몸의 피부는 이미 까맣게 그을렸고, 몸속의 혈액은 요동치듯 들끓더니 더욱 끈적거리게 변했다.

지짓……! 치지직!

까득, 까드득…….

전류가 흐르는 소리와 뼈끼리 마찰하는 소리가 한동안 계속되다가 마침내 완전히 잦아들었고, 이제는 고요한 가운데 먼 곳의 빗소리만이 들려왔다.

육 산군은 석탄처럼 완전히 까맣게 타버린 몸으로 석대 위에 가만히 서 있었다.

휘잉- 휘이이……!

산간에 바람이 불어 닥쳤다.

까맣게 그을린 부분이 바람에 의해 모두 떨어져 나가자, 뼈와 근육만이 크게 드러나며 육 산군의 크기가 단번에 확 줄어들었다. 마치 호랑이 형체의 해골이 담담히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쿵……쿵……쿵……!

북을 거세게 두드리는 듯한 심장 소리가 육 산군의 몸속에서부터 들려왔다.

봄기운이 모습을 드러내면 만물이 다시 생장한다.

오래전 선검의 도움으로 흡수했던 새해의 기운이 육 산군의 몸속 장기 곳곳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생명의 기운이 새로 만들어진 혈액을 타고 다시 흘렀다.

한 줄기씩, 조금씩, 육 산군의 신체 조직이 새로이 자라났다.

그의 형태는 여전히 호랑이였지만, 자세히 보면 무언가 달라져 있었다.

그의 몸에서 까맣고 노란 새털이 선명하게 자라기 시작했다. 다만 얼굴 부분의 털은 무척 짧아져 있었고, 코와 입 부근은 날렵하고 길게 변화했으며, 두 눈은 더는 호랑이의 눈처럼 둥글고 부리부리하지 않았다. 검은 눈썹처럼 보이는 무늬 아래에는 한 쌍의 얕고 기다란 눈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그것은 사람의 눈과 무척 흡사했다. 삼각형 모양의 뾰족했던 두 귀는 좀 더 둥글게 변했고, 귀 아래에는 각각 흑백이 뒤섞인 기다란 털이 하나씩 자라나 있었다. 그 끝단은 털이 약간 뭉쳐져 있어서 특이한 귀걸이처럼 보이기도 했다.

육 산군의 얼굴은 호랑이 같기도 한 동시에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우득, 우드득……!

뼈와 관절이 자라나고 살이 붙고 가죽이 뒤덮이는 동시에, 그의 몸은 점점 더 거대해져 이전의 크기보다 더욱 커졌다.

육 산군이 노랗고 까만 무늬가 돌돌 휘감긴 꼬리를 좌우로 흔들자, 마치 희미한 연기에 휩싸인 것처럼 보였다. 그 덕에 그가 꼬리를 흔들 때마다 꼬리가 몇 개는 더 붙어있는 듯한 환각을 불러일으켰다.

“후우…… 하아아…….”

고통이 점차 약해지자 그는 온몸이 저릿하기도 하고 간지러운 것 같기도 한 감각에 휩싸였다. 그러나 육 산군은 동시에 그것이 무척 편안하게 느껴졌다.

북해 용암도 아래에 있던 계연은 육 산군의 변화를 느끼고는 깜짝 놀랐다. 육 산군의 저런 모습은 계연으로 하여금 무언가를 의심하게 했지만, 확실히 단언할 수는 없었다.

뇌겁이 끝난 데다, 육 산군의 변화로 인해 놀란 마음에 의해 바둑돌 사이로 흐르는 연결이 점차 약해지기 시작했다. 이건 계연도 어찌할 수 없는 것이라, 아마 곧 연결이 끊어질 터였다.

다행히 자신이 할 일은 이미 마쳤고, 육 산군도 겁(劫)을 성공적으로 견뎌냈기 때문에 계연은 마음 놓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한편, 우규산에 있던 육 산군의 변화는 아직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었다.

약 한 시진 후, 호랑이의 형체이지만 또 자세히 보면 호랑이가 아닌 듯도 한 거대한 맹수가 석대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육 산군은 거울이 없어도 이미 마음속으로 충분히 느끼고 있었다.

‘이게 바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환골탈태구나!’

이런 생각을 하며 육 산군은 석대 위에서 편안하게 몸을 늘어뜨렸다. 원래도 크다고 느껴졌던 자신의 몸이 이제는 더욱 거대하게 변하였고, 은은한 빛이 감도는 털은 몸이 움직일 때마다 파도처럼 물결치며 흔들렸다.

그 후 육 산군은 뒷발로 디디고 일어나 앞발 두 개를 겹쳐 얼굴을 덮었다.

휘이…… 휘이잉……!

별안간 바람이 불어 닥치더니, 호랑이의 주위에 떨어져 있던 검은 잿가루를 몰아냈다. 육 산군은 두 앞발을 얼굴에서 천천히 떼어냈다.

그때 그의 몸에서 법력이 흐르기 시작하더니 온몸에 은은한 빛이 감돌았다. 육 산군의 얼굴에서부터 흐르기 시작한 빛무리가 점차 그의 온몸을 휘감았다.

수많은 금가루와 반짝이는 빛이 그의 온몸을 뒤덮은 것처럼 보였다. 그것은 마치 바람에 흩날리는 것처럼 이리저리 움직이다가도 절대로 흩어지지 않았고, 마침내 그의 몸속으로 침투해 갔다.

거대한 호랑이는 은은한 빛무리로 변하더니, 점점 작아지다가 마침내 완전한 사람의 모습으로 변했다.

한편 줄곧 동굴에 숨어있던 호운은 벼락이 멈춘 것을 깨달은 후에도 육 산군에게서 어떤 소리도 들려오지 않자 초조한 마음에 동굴을 뛰쳐나갔다. 그는 계연의 가르침을 들었던 우규산 깊은 곳의 거대한 바위를 향해 뛰어갔다.

호운이 마침 그곳에 도착했을 때, 육 산군은 빛무리에 휩싸여 있었다.

마침내 육 산군을 감싼 빛이 사라지자, 호운은 육 산군이 인간이 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붉은 여우는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입을 떡 벌렸다. 온몸의 털을 꼿꼿이 세운 호운은 멍하니 눈앞의 ‘사람’을 바라보더니 앞발을 뻗어 그 사람을 가리키며 물었다.

“당, 당신 육 산군이야?”

그러자 돌 위에 서 있던 사람이 스르륵 몸을 돌렸다. 그는 웃는 얼굴로 여우를 향해 공수하며 사람처럼 인사했다.

“예, 제가 바로 육 산군입니다!”

육 산군은 검은 머리를 기른 준수한 얼굴과, 큰 키에 적당한 체격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또한 검은 구름무늬가 들어간 연한 노란색의 장포를 입고 있었는데, 보기에 무척 우아하고 잘 어울렸기 때문에 꼭 학식을 갖춘 서생처럼 보였다.

“아니야! 둔갑이 잘못된 거야! 이런 모습일 리가 없잖아!”

둔갑이 무엇인지 호운은 이제 명확히 알게 되었다. 그것은 잠깐의 눈속임이나 환각이 아니라, 진정한 사람의 모습으로 거듭나는 것이었다. 또한, 누군가 원하는 모습이 있다 해서 그렇게 될 수 있는 게 아니라, 마음과 도(道)와 모든 것이 맞아떨어져야 했다.

그렇기에 호운은 더욱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육 산군이 둔갑한 모습이 이토록 우아하고 문약한 서생의 모습이라니! 육 산군에게는 팔뚝이 다른 사람 허벅지만큼 굵고, 허리는 커다란 맷돌처럼 단단하고, 머리를 한 번 부딪히면 벽도 부술 수 있을 만한, 근육이 불끈불끈한 모습이 더 잘 어울렸다.

육 산군은 공수한 자세를 풀고 양손을 내려놓았다. 그는 호운의 대경실색한 얼굴을 보고도 전혀 호운을 상대하지 않고, 뇌겁이 흩어져 먹구름만 남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한 번만 더 하늘에 묻겠습니다. 벼락을 내리는 이는 누구입니까?”

평온하고 담담한 그의 목소리가 점점이 메아리치며 퍼져 나갔다. 하지만 전처럼 어떤 반응도 되돌아오지 않았다.

솨아아아……!

뇌겁이 사라지자 그것이 남기고 간 먹구름에서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콩알만 한 빗방울들은 광풍과 벼락에 한밤 내내 시달린 대지와 산자락을 촉촉하게 적셨다.

빗방울이 쏟아져 내려 육 산군의 얼굴에 옷을 적셨다. 마침내 그가 딛고 선 거대한 바위도 빗물에 완전히 적셔지며, 그 위에 남아있던 잿가루와 핏자국들이 깨끗하게 씻겨 내려갔다.

호운은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육 산군은 그렇게 멍하니 빗속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는데, 보아하니 조금도 비를 피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이 거대한 석대(石臺)는 빗물에 씻겨나가 완전히 깨끗해진 후, 점차 투명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빗물에 씻겨져 나간 투명한 접시 같아 보여, 호운의 시선이 단번에 그쪽으로 쏠렸다.

육 산군도 마침 딛고 선 돌의 변화를 알아차린 듯, 시선을 내려 그것을 쳐다보다가 다시 호운을 향해 웃으며 물었다.

“왜 그래? 축하도 안 해주는 것이냐?”

호운은 그제야 정신이 돌아온 듯, 앞발을 가지런히 모아 육 산군을 향해 인사했다.

“둔갑에 성공한 것을 축하해. 앞으로는 세상천지 어디든 자유롭게 거닐 수 있겠네!”

“하하하, 그렇겠지!”

육 산군은 호탕하게 웃더니 돌에서 내려와 자신이 머물던 동굴이 있는 방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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